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347
〈 347화 〉 후회(1)
* * *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교회를 지키는 병력 같은 건 없었고, 재앙이 됐다는 카일의 모습 또한 보이지 않았다. 레미아는 잠이 든 라니엘을 마차에 태우는 것으로 제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했다.
“···후우.”
색잃은 나무에 기대어 레미아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숲은 엘프의 고향이다. 숲에 들어왔을 때 레미아는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이 숲에서마저 그러지는 못했다.
색잃은 숲은 무색이고 무취하다.
다만 모든 것이 공허한 숲에 기대어선 채 레미아는 제 눈가를 쓸어내렸다. 카일은 죽는 것보다 못한 꼴이 됐다고 위대한 선조께선 말씀하셨다. 사라 또한 정상은 아닐 거라 덧붙였다.
···그 둘이 그렇게 될 동안 자신은 뭘 했던가.
뭘 하긴 뭘 해. 북부에서 고기나 뜯고 있었지. 레미아는 헛웃음을 흘렸다.
지난 수년의 여정동안 이것이고 저것이고 모조리 부정당한 레미아다. 그녀의 궁술은 대단했으나, 검을 든 초인들을 상대할 만큼 대단하진 않았다. 재앙이라 불리는 이들의 앞에서 레미아는 한없이 무력했다.
신궁으로서의 자존심도, 엘프 최고의 레인저라는 자긍심도, 인간보다 오랜 세월을 살았으니 자신이 더 현명할 거란 자만도 모조리 깨졌다.
남은 것은 태생.
남들보다 타고난 것이 많은 엘프라는 종족적 특성뿐이다. 그 태생 하나로 수년을 자위질하며 망가진 자존심을 채우려 들던 레미아다. 위대한 선조께서 지적을 했음에도 레미아는 변치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마저 그럴 수는 없다.
레미아는 처음으로 생각이란 것을 했다. 외면하고 있던 복잡하고, 불편한 주제에 시선을 두었다. 그러자 보이기 시작한 것들에 레미아는 신음했다.
“···이게 뭐야.”
레미아가 중얼거렸다.
“인간, 인간, 그놈의 인간.”
제 얼굴을 두 손으로 덮은 채 이를 갈았다.
짧은 삶을 살아가는 인간.
엘프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란 시간을 사는 그들을 레미아는 우매하다고 여겼다. 딱하다고 동정했다. 그럴 수밖에. 그들에겐 여유가 없었으니까. 내일이라도 죽을 것 처럼 추하게 발버둥치며 살았으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그들은 빛났다.
그들의 빛에 레미아는 매료됐다. 잿빛 마법사의 빛에 매료됐으며, 용사의 찬란함에 매몰됐다. 그들은 자신보다 빛났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찬란하고 고결한 이들이었다.
“······.”
레미아는 제 귀를 매만졌다.
길쭉한 귀. 엘프의 상징.
한평생 자랑스럽다 여겨왔던 그것을 레미아는 지금 부끄럽게 여긴다. 지금 드는 부끄러움에서 눈을 돌릴 수 있는 방법을 레미아는 알고 있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마라.
생각 없이 쾌락만을 추구하며 움직이면 된다.
지난 수년간 그래 왔듯이, 지난 수십 년간 그래 왔듯이 행동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편해질 수 있음을 레미아는 안다. 하지만, 과연 그건···.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였다.
“······!”
레미아가 몸을 짧게 떨었다.
땅이 흔들렸다. 숲이 흔들리고 있었다. 나무가 요란스레 흔들렸다. 그 기이한 울림에 레미아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린 순간이다.
“···아.”
레미아가 무심코 탄식을 내뱉었다.
그녀는 보았다.
땅과 하늘이 뒤집히는 순간을.
카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각!
하늘로 흙더미가 솟구쳤다.
뿌리채 뽑힌 나무들이 하늘로 치솟았다. 흙더미와 함께 숲의 한 자락이 모조리 하늘로 내던져졌다. 눈으로 보고도 이해할 수 없는 풍경 앞에 레미아의 몸이 딱딱하게 굳고 말았다.
그리고.
“마차, 마차에 시동거십시요!”
뒤집히는 숲 속에서 칼트가 뛰쳐나왔다.
사라를 등에 업은 채 온 힘을 다해 내달리며 그가 소리쳤다. 마차에 타고 있던 카르디가 급히 마도구를 조작했고, 마차가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숲이 뒤집힌다.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게 반전한다.
뒤집히고, 엎어지는 풍경을 뒤로하고 마차는 질주하기 시작한다. 레미아가 먼저 마차에 올라타고, 잠시 후 간신히 도착한 칼트가 마차의 장식을 잡고 올라탔다.
“헉, 허어억···.”
칼트가 숨을 몰아쉬는 가운데, 레미아는 고개를 내밀어 마차의 뒤편을 보았다. 하늘과 땅의 경계가 사라진 숲의 한복판. 그곳에 카일이 서 있었다. 용사였던 이가 서 있었다.
역천의 검, 카일 토벤.
비어버린동공으로 그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재앙이 되어버린 카일을 바라보던 레미아의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가 입술을 달싹였다.
“아, 아아···.”
레미아가 신음했다.
그녀의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2.
“큰 이상은 없다.”
덜컹거리는 마차 속에서 카르디가 입을 열었다.
“호흡도, 맥박도 정상이다. 몸에는 지장이 없어. 문제가 생긴 것은 영혼 쪽이군.”
“···영혼 쪽이요?”
“그래. 이 아이, 분명 성녀라고 하지 않았나?”
“예. 성녀 사라 님이 맞습니다.”
사라를 살펴본 카르디가 제 턱을 매만졌다.
“그렇다기엔 신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예?”
“성녀에 대해선 잘 알고 있다. 신에게 빚어진 그릇. 그 그릇에 담겨있어야 할 신성이 없어. 마치 텅 비어버린 것 같이.”
카르디로서도 처음 보는 경우였다.
“게다가 영혼의 일부가 잘려있어.”
영혼의 일부를 잃었다.
마치 일부를 툭 잘라 누군가에게 건넨 것과 같은 상태다. 그것이 가능한가를 둘째치고, 이건 미친 짓에 가까웠다.
“기억에 지장이 생겼으리라 본다. 눈을 뜨기 어려울지도 모르겠고.”
“···그렇습니까.”
“눈을 뜰지는 미지수다. 조금 두고 봐야 알 것 같군.”
카르디가 시선을 옮겼다.
그 시선은 여전히 잠 들어있는 라니엘을 향했다. 죽을 날을 앞두었던 그녀의 얼굴에 생기가 돌고 있었다. 망가진 몸 또한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회복력이 아니다.
‘···계약은 완수된 모양이고.’
영혼의 형태가 변했다.
금이 가고 갈라질 대로 갈라진 그릇이 아닌, 별을 담을 수 있는 완전한 그릇이 됐다. 그 그릇에 넘칠 만큼의 별빛이 찰랑이고 있었다.
“선배님은··· 무사하십니까?”
칼트가 질문했다.
카르디는 잠깐의 침묵 후 입을 열었다.
“무사하다.”
그 외에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칼트도 더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이미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한 칼트다. 누구의 핏물을 마시고 라니엘이 멀쩡해졌을지는 칼트 또한 안다.
“···아니었다면.”
주어를 말하지 않은 채 칼트가 중얼거렸다.
“선배님은 어떻게 됐습니까?”
“죽었겠지.”
“살 방법은 없었습니까?”
“없다. 나도 찾지 못했으니까.”
카일 토벤이 라니엘 반 트리아스를 살렸다.
라니엘은 본인이 결코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죽음에서 멀어졌다. 그녀가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두 사람은 잘 알고 있었다.
“···쉽지 않겠군요.”
누군가의 희생을 끔찍하게도 싫어하는 라니엘이다. 자신을 위해 죽어간 이들에게 답하고자, 지나치리만치 무거운 짐을 짊어졌던 라니엘이다.
그런 그녀에게 용사의 목숨이 얹어졌다.
유일한 친구나 다름없었던 카일 토벤의 희생으로 라니엘은 살아났다. 그리고, 카일 토벤은 재앙이 됐다. 마치 그 대가라는 것처럼.
‘쉽지 않군, 정말로.’
칼트가 미간을 짚으며 화제를 돌렸다.
“···카일 토벤님 말입니다. 그게 정말 완성이 안 된 겁니까?”
“그래.”
“끔찍하군요.”
한번의 검격으로 숲을 뒤집었다.
하늘과 땅의 경계를 허무는 그 검격을 눈으로 보고도 칼트는 이해하지 못했다. 마주하는 순간 느낀 것은 죽음이다.
‘···죽음의 칼, 가니칼트.’
떠올리는 것은 가장 두려운 재앙이다.
물론 당장은 가니칼트와 비교가 안될지도 모르나, 눈앞의 엘프는 말했다. 저게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고. 앞으로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죽음의 칼에 비견되는 재앙.
하물며 한때는 용사였던 이가 재앙이 됐다.
“···정말이지.”
칼트가 헛웃음을 흘렸다.
수년간 전장에서 일했던 칼트다. 인류를 위해 몇 번이고 제 목숨을 내던졌던 칼트다. 그런 칼트는 새로운 재앙의 등장에 허무함을 느꼈다.
“이쯤 되면 그냥 온 세상이 인간더러 멸망하라고 고사를 지내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대체 뭘 어쩌란 건지···.”
끝이 없다.
수많은 이들이 죽어가며 재앙에게 상처를 입혔다. 최후의 순간 그들은 위업을 이루었다. 하지만, 그들의 말로는 어떠한가.
검의 초인, 쿤텔은 배교자의 사역마가 됐다.
용사, 갈라할은 시체조차 남기지 못했다.
용사, 카일은 재앙이 됐다.
끔찍하기 짝이 없는 말로다.
그들의 끝을 떠올리자니 밀려드는 것은 허무함 뿐이다. 칼트가 공허한 눈동자로 제 손바닥을 보았다. 초인이 됐음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 한숨을 토하려다가.
문득 칼트는 제 옆에 앉은 레미아를 보았다. 그녀의 표정을 보았다. 그 순간 칼트는 내뱉으려던 숨을 참아야만 했다.
“······.”
칼트도, 카르디도 침묵한다.
적막 속에서 마차는 움직였다.
그렇게 왕도에 마차가 도착하기까지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레미아는 멍한 눈동자로 창문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임무는 끝이 났다.
그로부터 하루 뒤, 라니엘이 눈을 떴다.
3.
긴 꿈을 꿨다.
꿈속에서 나는 어째서인지 과거로 돌아와 있었다. 카일과 틀어지기 전의 시기. 내가 카일을 본격적으로 몰아붙였을 때로 돌아와 있었다. 나는 녀석의 멱살을 잡고 있었다.
이때 뭐라 외쳤더라.
아마도 검을 들라고 다그쳤던 것 같다.
쉴 틈이 어딨냐고 소리를 질렀다. 넌 하면 되는 새낀데, 왜 안 하냐고 짜증을 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다급했던 것 같다.
주어진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내 수명을 갈아버린 지금, 어쩌면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말고 죽고 말거란 공포를 느꼈으니까.
그 걱정은 옳았다.
실제로 그렇게 됐으니까. 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죽게 될 거다. 그 사실을 나는 이제는 안다. 그렇기에, 과거로 돌아온 나는 조금 다르게 행동했다. 어쩌면 이미 체념했기에 그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뭐, 그래.”
붙잡고 있던 카일의 멱살을 놓았다.
“···그럴 수 있지.”
너도 네 나름의 고충이 있겠지.
까놓고 말하면 나도 무서웠다.
씨발, 그걸 어떻게 잡냐?
“내 손 보이냐? 새꺄?”
떨리고 있잖아.
사실 지금 서 있는 것도 힘들어.
그냥 나도 쉬고 싶다. 왜 씨발, 다들 우리한테만 의지하는지 모르겠다. 아니, 알기는 아는데··· 좀 쉬어도 되지 않냐? 이쯤 했으면.
“조금만.”
우리.
“우리, 조금만 쉴까.”
조금은 괜찮겠지.
사실 그러면 안 되는 걸 아는데.
너무 지치니까··· 조금은 쉴까 우리.
나는 그리 중얼거리며 카일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농담을 던지기도 하고, 옛날이야기를 중얼거리며 참 많은 게 바뀌었다고 잡담을 늘어놓았다.
용사와 현자가 아닌, 그냥 어릴 때부터 알고 지냈던 친구로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 씨발, 그때···.”
“넌 그 입담 좀 어떻게 해라. 라니엘.”
“너도 그 말투 뒤지게 안 어울리는 거 아냐?”
“···용사의 말투다.”
“지랄. 무게 잡지 마, 등신아.”
이것이 꿈속임은 안다.
눈을 뜨면 나는 다시 죽음을 마주해야 함을 안다. 그래도 꿈을 꾸며 나는 생각했다. 일어나면 카일에게 연락해야지.
‘그래, 이대로 마무리 짓기엔 아쉬우니까···.’
최소한 후회라도 남기지 말아야지.
그렇다면, 녀석에게 뭘 말해야 할까. 무슨 말을 전하면 좋을까. 사실 그 정답이야 이미 알고 있다. 카일 그자식은 또 쓰잘데 없는 고민이나 하고 있을 게 분명했으니까.
눈을 감았다 떴다.
시간은 흐르고 나는 병상에 누워있었으며, 찾아온 카일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꿈속에서 연습이라도 해보라는 건가. 나는 그만 웃음을 흘리며 눈앞의 카일에게 손을 뻗었다. 꼭 악수를 청하듯.
“야, 카일.”
카일은 말이 없었다.
말없이 나를 바라보는 카일에게 난 말했다.
“너, 여전히 나랑 친구 맞지?”
그 말에 카일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녀석이 내 손을 붙잡았다. 그리곤, 확 잡아당겼다. 마치 일어서라는 것처럼. 분명 일어설만한 몸 상태가 아니었을 텐데 나는 어느새 두 발로 땅을 디디고 서 있었다.
“···어?”
내가 눈을 크게 뜬 채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그곳에 카일은 없었다.
깜빡.
내가 눈을 떴다.
따스한 햇살이 밀려왔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손가락 하나 까딱일 수 없었던 몸이었는데, 어째서인지 지금은 몸을 일으키는 게 너무나도 쉬웠다.
몸을 일으켜 세웠다.
침대에서 내려와 두 발로 땅을 디디고 일어섰다. 천천히 호흡을 해보았지만 평소와 달리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피를 게워내지도 않았다. 시야가 흐릿하지도 않았으며, 가슴팍에서 느껴지던 아릿한 통증도 없었다.
몸이 너무나도 멀쩡했다.
“···와, 뭐야?”
무심코 탄식을 뱉으며 내가 팔을 빙빙 돌렸다. 딱딱하게 굳어있던 몸이 삐걱거리긴 했지만, 딱 그뿐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몸에 힘이 넘쳤다.
···이게 가능한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입가에 웃음이 번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침대에 누워 그대로 죽게 될 거라 생각했는데, 이젠 최소한 움직일 수는 있다는 말이 아닌가. 기쁠 수밖에 없었다.
‘···카르디한테 감사해야겠네.’
아직도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려나?
얼마나 잠에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기다리고 있으면 바로 절부터 하고 볼까. 그런 생각을 하며 문고리에 손을 얹으려는 순간이다.
“······.”
내가 멈춰 섰다.
“뭐야.”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내 심장에 손을 얹었다.
지난 수년간 나를 괴롭히던 구정물이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가슴팍에 새겨진 회로도 활동을 멈췄다. 그것들 대신 다른 무언가 내 심장에서 박동하고 있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가 고개를 들었다.
눈을 감았다 뜨면, 내 몸의 주변으로 백금색의 입자가 피어오르고 있다. 그 입자가 무엇인지 나는 알고 있다. 모를 수가 없다.
별빛이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본 별빛.
“이게 무슨···.”
이건 카일 토벤의 별빛이었다.
【라니엘 반 트리아스.】
그때였다.
【새로운 용사에게 축복을.】
별의 목소리가 귀에 울린 것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