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349
〈 349화 〉 후회(3)
* * *
희생에 답해야 한다.
죽음이 무의미해지게 둬선 안 된다.
흘린 핏물이 다만 흐르게 둬선 안 된다. 그 모든 게 무가치해지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죽음은 지독하니까.
나는, 그들의 희생을 책임져야 한다.
그것이 라니엘 반 트리아스가 가진 강박이다. 라니엘은 결코 누군가의 희생을 외면하지 못한다. 그것이 자신을 위한 희생이라면 더더욱. 그것은 유년기 시절 그녀에게 새겨진 강박이다.
불타버린 마을.
무가치하고 무의미해져 버린 죽음.
잿더미가 되어버린 소중한 것들에게서 라니엘은 지독함을 느꼈다. 재로 변한 제 부모를 바라볼 적, 라니엘이 느낀 것은 두려움이다.
무의미하다.
허무하다.
공허하기 짝이 없다.
그 두려움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라니엘은 누군가의 희생에 지나치리만치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런 그녀에게 있어 전장은 지옥이나 마찬가지였다.
수많고 수많은 이들이 죽어간다.
다름아닌 자신을 위해서.
그들의 죽음이 무의미할지 훗날을 위한 초석이 될지 정하는 것은 자신이다. 그 책임감이 라니엘의 어깨를 짓눌렀다. 외면하지 못하기에 라니엘은 쉴 수 없었다.
그렇게 수년을 살아왔다.
살다가.
제 길의 끝에서 라니엘은 뒤를 돌아봤다.
돌아보노라면 참 지독한 삶이었다.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에서야 라니엘은 제 삶이 지옥 같았음을 깨달았다. 제 삶은 빈말로도 즐겁지 않았다. 즐겁기는커녕 지랄 맞았다. 도대체 내가 왜 그렇게까지.
지독한 삶을 살다 지독하게 가는구나.
그리 웃으며 라니엘은 이 지독한 삶에 후회라도 남기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많은 것을 후회했으니, 마지막의 순간에 남에게 폐라도 끼쳐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심한말을 했던 그 녀석에게 사과하고.
내 죽음은 신경 쓰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말하고자 했다. 그리고 나한테 할 말 없냐며 사과도 한 번 받아보려고 했다.
그렇게 화해를 해보고자 했다.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 라니엘이 마지막으로 품은 소망은 그것이었다. 큰 소망은 아니었다. 작은 꿈이었다. 현자라 불리던 인간이 품기에는 지나치리만치 작은 꿈.
‘다퉜던 친구와 화해하고 싶다.’
누가보면 웃을만한 이야기다.
재앙을 맨손으로 때려잡는 그 위대한 잿빛 마법사의 마지막 소망이 고작 ‘싸웠던 고향 친구와 화해하고 싶다’ 라니, 웃지 못할 농담이다.
그래도, 라니엘은 그리 바랐다.
그녀의 작은 바람에 세상은 답을 들려주었다. 그것도 최악의 방식으로. 세상은 그녀에게 진실을 들이밀었다. 그녀가 마주해야 할 비극을.
「카일 토벤은 죽었다.」
너를 살리고자 카일은 희생했다.
너는 카일의 핏물을 마시고 살아났다.
네가 책임져야 할 삶의 무게가 늘었다.
【재앙, 카일 토벤.】
별 또한 그녀에게 답을 들려주었다.
【태어난 재앙을 토벌하라.】
너를 위해 희생한 고향 친구를 죽여라.
네 어깨에 짊어진 짐을 보아라.
네가 책임져야 할 목숨을 직시하라.
“난, 나는···.”
기회를 잃어버린 라니엘은 무너졌다.
“나는, 이런 걸 바란 게 아니었어.”
조금은 헐거워졌다고 생각한 사슬이.
그녀가 품었던 강박이.
망가지는 라니엘의 어깨를 강하게 짓눌렀다. 그 무게를 견딜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의 라니엘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한다. 결국 무릎 꿇고만 라니엘은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아니었다고.”
라니엘이 웃음을 흘렸다.
흘러나온 웃음은 메말랐다.
2.
로셀과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카르디와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라니엘은 방으로 돌아왔다. 비틀거리며 걷는 그녀를 막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침대에 걸터앉은 채 라니엘은 멍하니 제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별빛이 피어오르는 손. 제 손목을 할퀴어 보았으나 금세 회복될 뿐이다.
별의 축복.
용사가 가지고 있는 축복이다.
용사들이 지닌 인간을 뛰어넘는 육체 능력과 괴물 같은 회복력의 원천이 되는 것. 한때는 라니엘이 바랐던 것이기도 했다.
「부럽다, 새꺄.」
「나도 너처럼 축복이나 있었음 이 개고생을 안 할 텐데. 팔 덜렁거리는 거 봐. 아파 죽겠다.」
카일에게 툴툴댔던 일이 떠올랐다.
농담조로 던졌던 말이지만, 지금에는 그것이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자신이 말한 대로 이루어진 것만 같은 끔찍한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지금 이 모든 게 내가 바라던 게 아닌가?
「별빛만 있었으면 이 고생을 안 하지.」
「그래 뭐, 솔직히 부럽긴 하네.」
그리 말했던 자신에게 별빛이 주어졌다.
「일어서.」
「검을 쥐어.」
「일어서라고, 개자식아.」
자신이 바란 대로 카일은 일어섰다.
바라던 대로 카일은 검을 쥐었다.
「네가 안 하면 누가 할 건데.」
「해야 하잖아. 여기서 포기하면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거 몰라? 알고 있을 거 아냐, 새꺄.」
「그러니까 일어서라고.」
「검을 들고, 네가 해야 할 일을 해.」
「용사로서 책무를 다 해.」
자신이 바란 대로 카일은 용사로서 책무를 다했다. 너무나도 훌륭하게. 더는 자신이 아무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마왕을 토벌하자며.」
「마왕을 토벌하자고, 네가 말했잖아.」
「그 누구도 무시 못할 위업을 세우자며? 모두에게 인정받자며. 마을 사람들의 복수를 하자며. 그거 죄다 거짓말이었냐?」
라니엘은 말없이 시선을 옮겼다.
그녀는 선반에 올려둔 목걸이를 보았다.
잿더미가 된 고향에서 건져낸 목걸이.
이 목걸이 앞에서 카일이 중얼거렸던 약속과, 그 약속을 운운하며 카일의 멱살을 잡았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말하면서 날 데려온 게 너잖아.」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할 거 아냐.」
그 약속도 카일은 지켜냈다.
마왕을 베어 용사로서의 책무를 다했다.
모두가 칭송할 위업을 이루어 냈다.
“아, 하.”
라니엘이 헛웃음을 흘렸다.
정말로 자신이 말한 대로 다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이 모두가 자신이 바란 것 아닌가. 살고 싶다고 바라니 그마저도 이루어졌다.
다 이루어졌다.
이렇게 되기를 바란 것 아니냐고, 과거의 자신이 속삭이고 있다. 이상을 추구한 이들의 최후가 비참하다는 걸 모르지는 않았을 텐데. 갈라할의 최후에서 그것을 뼈저리게 느꼈을 텐데.
“······.”
라니엘은 침묵했다.
공허한 눈동자로 축 늘어트린 제 팔을 바라볼 뿐이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앞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하는데, 라니엘은 과거만을 돌아보고 있다.
「네겐 갚아야 할 빚이 있지.」
「언젠가 네게 사과해야 할 테고.」
그 빚을 갚기라도 한 거냐.
이게 네가 나한테 전하는 사과인 거냐.
정말로, 이런 걸 내가 바랄 거라 생각했냐.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그 말을 들어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라니엘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다음에 다시 보도록 하지.」
「그때는, 네게 사과할 수 있을 것 같군.」
“사과한다며.”
라니엘이 중얼거렸다.
카일은 멋대로 빚을 갚았다.
멋대로 영웅이 됐으며, 멋대로 라니엘이 바랐던 소망을 이루었다.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기어코 이루어내고 말았다.
‘내가 없는 곳에서···.’
라니엘은 늘 말해왔다.
내가 앞장설 테니 하다못해 따라와 달라고. 언제나 뒤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뒤를 돌아보면 아무도 없다.
곁에서 걷던 갈라할도.
뒤에 멈춰있던 카일도.
지금은 모두 자신을 앞질러갔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앞을 보아도 그들을 찾을 순 없다. 그 어디에도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혼자였다.
완전히 혼자가 됐다.
‘···움직여야 하는데.’
라니엘이 비어버린 눈동자로 제 다리를 바라봤다. 이제 자신은 두 발로 땅을 디디고 설 수 있다. 그럴 힘이 생겼다. 누워있을 때는 그토록 일어설 수 있기를 바라지 않았나.
일어 설 수 있게 된 지금, 일어서서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라니엘은 일어서지 못한다.
해야 할 일이 많음을 안다.
책임을 져야 할 일이 참 많았다. 그 첫단추로 무엇을 꿰어야 하는지도 알았다. 라니엘이 입을 열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죽여야 한다.”
카일 토벤을 죽여야 한다.
“···녀석이 재앙으로 불리기 전에,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 지금 녀석을 죽여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그리고 누가?
“내가.”
녀석에게 별을 받은 내가.
“내가, 카일을 죽여야 한다.”
내가, 녀석을 죽여야만 한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내뱉은 순간 라니엘의 표정은 무너졌다. 그녀의 어깨가 옅게 떨렸다. 숨을 삼키는 소리가, 억눌린 숨소리가 토해져 나왔다.
못 해.
라니엘이 중얼거렸다.
못 해, 나는.
3.
며칠의 시간이 흘렀다.
카르디는 퀭한 눈동자로 연초에 불을 붙였다. 몇백 년 만에 태우는 연초였다. 연초를 태우고 있자니 옛 생각이 났다.
「문 좀 열고 살아요, 하여간 마법사란 족속들은 죄다 이래? 공기가 텁텁하잖아요!」
자신을 찾아온 건방진 소녀.
이제 막 자신에게 신성술과 주문의 기초를 배우던 교단의 소녀는 카르디의 마탑까지 찾아와 난동을 피우곤 했다.
「그거 그만 펴요. 숨 막혀.」
「내 맘이다. 애초에 여긴 내 연구실이고. 여기에 쳐들어온 건 너 아니냐?」
「아무튼 그만 펴요.」
불 붙인 연초를 신성술로 꺾어버리고선 히죽히죽 웃던 소녀의 얼굴이 생각났다. 당시에는 하도 어이가 없어 이마에 딱밤을 먹였거 같다.
‘···그 난리를 피워서 결국 끊었지.’
결국 그 소녀가 바란 대로 연초를 끊긴 했지만, 그로부터 몇 년 뒤 성인이 된 소녀는 카르디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연초 피우는 카르디도 퇴폐미가 있어 좋긴 했죠. 다시 태울래요? 그 퀭한 눈동자 좀 다시 보고 싶은데.」
「······.」
「뭐에요 그 눈은? 왜 막 경멸하듯이 봐요?」
「어이가 없어서 그렇다.」
어이가 없어서 오기로라도 안 피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또한 추억이다.
그때 끊고 다시는 태우지 않았던 연초다. 글레리아를 잃고 나서도 연초를 볼 때마다 ‘피우지 말라’고 중얼거리는 그녀가 떠올라 카르디는 끝내 연초에만큼은 손을 대지 않았었다.
하지만, 수백 년이 흐른 지금.
카르디는 결국 연초에 다시 손을 댔다. 퀭한 눈동자로 연기를 뱉으며 카르디가 중얼거렸다.
“지랄 맞군.”
정말이지 지랄 맞기 짝이 없다.
미래에서 온 라니엘이 말한 대로, 지금의 라니엘은 망가지고 말았다. 카르디가 생각하던 것 이상으로 더 심각하게.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그녀는 축 늘어진 채 방에 처박혀 있을 뿐이다. 퀭한 눈동자로 땅바닥을 내려다보는 그녀에게서 카르디는 제 과거를 보았다.
모든 걸 잃고 죄다 놓아버렸던 자신.
카르디는 과거의 자신을 라니엘에게서 마주했다. 자꾸만 한숨이 새어나왔다. 숨을 삼킬 때마다 폐가 쓰라렸다.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카르디는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자신 또한 완전히 털어내진 못했으니까.
카르디 또한 겪어봤으니 안다.
저 상태의 라니엘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건 한 명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건 카르디가 아니다. 라니엘 자기 자신이다. 스스로 생각하여 내린 결론만이 그녀를 일으켜 세울 수 있으리라.
‘오직 자기 자신만이···.’
속으로 그리 중얼거리던 카르디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귀를 기울였다. 누군가 이 낡디낡은 가게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으니까.
“···아니, 한 명밖에 없는 건 아니로군.”
자기 자신.
라니엘이 그렇게 부를 수 있는 존재가 이 시대에는 한 명 더 존재한다. 시간을 샘하면 어느새 그때로부터 열흘의 시간이 흘러 있었다.
약속된 시간이 됐다.
누군가 문을 두들겼고, 카르디는 문을 열었다.
“왔나.”
카르디가 쓰게 웃었다.
“라니엘.”
“눈만 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겠네.”
미래에서 온 라니엘 또한 카르디와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더 흐릿해진 모습으로 카르디를 마주했다.
“그러는 너도··· 조금 바뀐 것 같군.”
하지만 카르디는 보았다.
라니엘의 눈동자에 깃든 옅은 빛 무리를.
“응.”
라니엘이 웃었다.
“어쩌면, 답이 있을지도 모르거든.”
그녀가 자신이 알던 라니엘처럼 웃었다.
지금의 라니엘에게서 찾지 못하게 된 표정을, 미래에서 온 라니엘이 짓고 있었다.
“그러니까 안내해줘.”
재의 여신이 말했다.
“내 멱살을 잡으러 가야 할 것 같으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