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51
〈 51화 〉 레스티 엘레노아(2)
* * *
문득 옛 기억이 떠올랐다.
기억은 하나의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
“마탑의 원로들이 무엇이냐고?”
“네.”
언젠가 스승님께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그 계기를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한창 원로들이 지랄할 때였으니까.’
나는 마탑의 원로들이 싫었다. 특히, 내가 차기 마탑주에 올랐을 당시의 원로들은 더욱더.
“그 꼰대 새끼들은 도대체 뭐가 잘났길래 저한테 지랄을 하는지···.”
그러니, 이건 차기마탑주에 막 취임했을 시절에 했던 질문일 것이다.
‘그 질문에 스승님이 뭐라 답하셨더라.’
아마도.
“···라니엘, 일단은 나도 원로다.”
“당연히 스승님 말고 다른 원로들이죠.”
“흠···.”
내가 물어본 것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의 스승님은 나를 소파에 앉혀두고 이야기를 시작했었다.
“우선, 라니엘. 하나 정정하도록 하마.”
“네?”
“원로들이 차기 마탑주에게 유난히 까탈스럽게 구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잿빛 마탑의 건설 이후, 초대 마탑주 아르미엘님을 제외하곤 그 누구도 원로 여섯 전원의 지지를 받지 못했단 소리지.”
그러니까, 라고 스승님은 말씀하셨다.
“딱히 네 출신이 문제 되는 일이 아니란 소리다. 원로들은 기본적으로 마탑주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거든.”
“···왜요?”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라니엘, 잿빛 마탑의 특성을 알고 있느냐?”
“어··· 정해진 학파가 없다는 거요?”
“그래, 잿빛 마탑은 정해진 학파가 없지. 잿더미가 된 왕국의 마학을 복구하잔 목적으로 시작된 마탑이었으니까.”
한숨과 함께 이야기는 이어진다.
“가령 흑색은 주문 각인을 연구하고, 백색은 원소 주문을 연구하지. 보통 그렇게 하나의 주제를 정해두고 마탑은 연구를 시작해. 그러나, 잿빛 마탑은 그렇지 않단다.”
쫙, 스승님은 두 손가락을 펼치셨다.
“이는 장단점을 가진다. 장점은 마법사들을 가려 받지 않으니, 개개인들의 역량이 뛰어나단 것이고···.”
“단점은, 다 따로 논다는 거군요.”
“그래, 정답이다. 그게 잿빛 마탑의 첫 번째 특징이지.”
스승님이 남은 한 손가락을 접으셨다.
“두 번째 특징은 그 제멋대로 날뛰는 마법사를 여섯 개의 파벌로 나누어 관리한단 것이다. 이게 바로 네가 꼰대라고 부르는 마탑의 원로들이고.”
“아···.”
“이제 이해했느냐? 원로들이 마탑주를 경계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 특정 파벌에 든 마법사가 마탑주가 된다면··· 여섯 파벌 간의 균형이 깨질 테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스승님은 쓰게 웃었다.
“물론 나는 널 이용해 내 파벌을 키울 생각은 없다. 애초에, 나는 파벌 싸움에 상당히 회의적인 입장이니까. 내게 뭔 자격이 있어 젊은 마법사들을 관리하겠느냐?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조언뿐이지.”
우스운 일이야.
그렇게 말씀하신 스승님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니, 여태까지의 마탑주는 각 파벌에서 싸움을 통해 선출되었지만···.”
“·····.”
“너는 아니다, 라니엘.”
스승님이 내게 다가오셨다.
“장로님께서 널 직접 추천하셨다. 너라면 나눠진 여섯 파벌을 한데 묶을 수 있으리라 말씀하셨지. 이는 처음 있는 일이야.”
내 어깨에 손을 얹으셨다.
“나와 장로님은 네게서 가능성을 보았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적당한 무게감. 그 정도 무게감을 지닌 손이 내 어깨를 두어 번 두들겼다.
“자신을 가지란 이야기다.”
“그래도, 원로들이···.”
“원로들이라···. 뭐, 원로인 내가 하기도 우스운 말이지만···.”
스승님은 웃으며 말씀하셨다.
“원로는 찌꺼기 들이다.”
국물을 우릴 대로 우리고, 뽑을 건 다 뽑아먹고 남은 찌꺼기들. 더이상 토해낼 것도 없는 고여버린 것들.
스승님은 원로들을 그렇게 표현했다.
“그들의 말에 휘둘리지 마라, 라니엘.”
그렇게 말하며 스승님은 내 어깨를 붙잡았다.
그리곤, 스승님께선 당신의 로브를 장식하던 휘장을 잡아 뜯었다.
투두둑.
나는 그 손길을 기억한다.
“나를 포함한 원로들은, 이미 일선에서 물러선 이들이야.”
내 가슴팍에 달아주신 휘장.
그리고, 지금도 달린 휘장의 온기를 떠올린다.
“그들이 비웃을 적, 너도 따라 비웃거라. 그들이 내 업적을 물고 늘어진다면, 너 또한 그들의 업적을 물어뜯고, 무너트리면 될 일이다.”
그 말을 떠올리며 나는 눈을 뜬다.
감았던 눈을 뜨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가슴팍에 달아둔 휘장이다.
그 휘장에서 눈을 뗀다.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본다.
그곳에는 초로의 노인이 앉아있다.
그 얼굴이 눈에 익다.
“라니아 반 트리아스.”
그가 내 이름을 부른다. 예전과는 달라진 내 이름이, 그 노인의 입을 통해 발음된다.
나는 그를 알고 있다. 모를 리가 없다.
‘질레온.’
마탑의 가장 오래된 원로.
그 노인을 보는 눈이 자연스레 가늘어졌다.
2.
잿빛 마탑의 원로라는 직위는 굉장히 편리하다.
질레온은 그를 알고 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직위를 사용할 줄 안다.
질레온은 카페를 통째로 대여하고 점주를 잠시 바깥으로 내보냈다. 그렇게 단 둘뿐인 된 카페에서 질레온은 한차례 이야기를 마쳤다.
‘전부털어놓진 않는다.’
이야기에 도움이 될 정보만을 말했다. 당장은 그것만 해도 충분했다. 지금 질레온이 제안하려는 것은 마법사라면 필시 탐낼만한 것이니까.
‘무려 잿빛 마탑의 주인이 될 기회.’
그에 혹하지 않는 마법사는 없을 것이다.
그리 확신하며 질레온은 준비해온 것을 내밀었다.
“이게 그 추천장이지.”
테이블에 검은 편지지를 내려놓았다.
편지지에는 잿빛 마탑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차기 마탑주 추천장.’
모든 원로가 쉽게 추천장을 낭비할 때, 질레온은 이를 아껴두고 있었다. 지금과 같은 기회를 위해서.
“나, 질레온이 가진 추천장.”
질레온은 그를 강조하며 몸을 뒤로 젖혔다.
‘이 추천장을 올려놓은 이상, 긴말은 필요하지 않다.’
그만한 가치를 가진 물건이니까.
질레온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음.”
질레온은 짧게 헛기침을 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눈앞에 앉은 소녀를 흘겨본다.
사락.
잿빛 머리칼이 어깨를 타고 흘러내린다.
가느다란 속눈썹 사이에 감춰진 푸른 눈동자는 질레온을 향하지 않는다.
“·····.”
그녀는 커피잔 아래 고인 찌꺼기를 보고 있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먼 곳을 보고 있는 것 같다는 감상도 든다.
‘···종잡을 수 없는 인상이로군.’
소녀의 인상이 그랬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짐작이 가질 않는다. 이거나 저거나 신경 쓰이는 게 한둘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눈길조차 주고 있지 않다.’
소녀가 추천장을 바라보고 있지조차 않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이 질레온의 자존심을 건든다.
‘아까부터 무얼 그리 보고 있는 거지?’
소녀의 시선은 커피잔 아래 가라앉은 찌꺼기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
그 사실에 의문이 든다.
무릇 마법사라면 이 추천장의 가치를 모를 리가 없다. 하물며, 잿빛 마탑의 관계자라면 말 할 것도 없다.
‘로셀 원로의 밑에서 자랐다면, 이 자리의 가치를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이야기를 듣지 않은 것인가?’
지팡이를 쥔 손끝에 힘이 들어간다.
“후우···.”
질레온은 한번 짧게 숨을 내쉰다.
그리곤, 자존심을 굽히고 다시 입을 열었다.
“내 제안을 듣지 못했나?”
추천장을 손끝으로 밀며 말한다.
“내가 자네를 차기 마탑주···.”
“그러니까.”
그 말을 자르며 소녀가 입을 열었다.
대화를 시작한 지 한 시간 째, 질레온은 처음으로 소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요약하자면.”
소녀의 푸른 눈동자는 여전히 투명하다.
찌꺼기를 볼 때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눈길로, 그녀는 질레온을 바라봤다.
입을 열어 말한다.
그 목소리에는 조금의 흥미도 느껴지지 않는다.
“현재 잿빛 마탑의 차기 마탑주가 원로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고.”
그녀가 커피잔을 기울인다.
“잿빛 마탑을 한데 묶을 힘을, 현 차기 마탑주가 가지지 않고 있으니 아예 새로운 차기 마탑주를 들여서 그 힘을 메꾸겠다.”
커피잔이 흔들린다.
안에 든 찌꺼기가 고인 물과 함께 출렁인다.
“그 역할에, 라니엘···님과 같은 스승을 두었고, 그 정통성도 가진 제가 적합하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정확했다.
‘···그런 정보까지 전부 말하진 않았거늘.’
정보와 정보를 이어 현 상황을 유추했단 것인가? 질레온은 속으로 그 통찰력을 감탄한다. 허나, 바깥으로 드러내진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가 빠르군, 과연 그 말대로다.”
질레온은 미소지었다.
“뒷 일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걸세. 나, 가장 오래된 원로인 질레온이 자네를 잿빛의 차기 마탑주로 추천하···.”
“싫은데요.”
툭, 하고 소녀가 커피잔을 밀친다. 커피잔에 담겨있던 찌꺼기가 검은 물과 함께 흘러나온다.
흘러나온 물이 편지지를 적신다.
검은 편지지에 장식돼있던 잿빛 문양이 검게 물든다. 물든 문양은 질레온의 파벌을 나타내는 문양이다.
“제가 왜요?”
테이블에 검은 얼룩이 진다.
그 찌꺼기를 한번 흘겨본 소녀는, 이어서 질레온을 바라본다. 그 눈에는 경멸이 담겨있다.
3.
레스티는 자신의 이름을 떠올린다.
레스티 엘레노아.
보다 정확하겐, 그 뒤에 붙은 성을.
‘···엘레노아.’
잿빛의 장로가 레스티를 양녀로 들이며 붙여준 성이 바로 엘레노아다. 그 ‘엘레노아’라는 글자가 가진 무게를 떠올리며, 레스티는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내뱉은 한숨이 깊다.
내딛는 발걸음에는 힘이 없다. 손에 쥔 연구 리포트가 오늘따라 더 무겁게 느껴졌다.
‘힘들다.’
평가회마다 이렇다.
말이 평가회지, 사실상 자신을 구박 하는 자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떤 연구를 올려놔도,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연구에 문제가 없다면 레스티의 행실로 꼬투리를 잡는다. 벌써 몇 년 째 이어지는 일이다. 장로가 추천한 레스티를 끌어내릴 수는 없으니, 레스티 스스로가 내려가길 바라는 눈치다.
‘나도 그만두고 싶긴 하지만···.’
레스티는 자신을 거둬준 장로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
네게는 재능이 있다, 레스티.
그 부드러운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다.
지금은 병상에 누워계시지만, 언젠가 그분이 일어나셨을 때는···.
‘마탑주로서 맞이하고 싶으니까.’
그것이 레스티의 바람이다.
아무도 자신을 봐주지 않는다.
그래도 괜찮다. 언젠가, 장로가 자리에서 일어난다면 자신을 봐줄 테니까.
그거면 충분하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레스티는 조금 더 견딜 수 있다.
“·····.”
서류뭉치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레스티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휴일이지만, 레스티는 아플리아의 연구실로 향한다.
물론, 마탑의 연구시설에 비할 바는 못 된다.
그래도,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연구하는 것보단 훨씬 좋을 테니까.
‘아론 학장님도 어느 정도 편의를 봐주시고 있고.’
힘내서 해보자.
더 열심히 고치면 봐줄지도 모르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레스티가 한산한 아플리아를 걷고 있을 때였다.
“···?”
문득, 레스티의 시야 한 편에 무언가 잡혔다.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어느 카페다. 조금 독특한 교수님이 애용하는 카페.
아니나 다를까, 카페의 유리창 너머로 잿빛 머리칼이 보인다. 멀리서 보아도 그 잿빛 머리칼은 한눈에 들어온다.
‘라니아 교수님?’
휴일인데도 출근하신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무심코 카페로 다가서던 레스티는 멈춰 섰다.
그 맞은편에 앉은 인물을 알아본 까닭이다.
양복을 차려 입은 초로의 노인.
그리고, 노인이 들고 있는 지팡이.
‘···질레온 원로님?’
레스티는고개를 갸웃거린다.
‘저분이 왜 여기 계시지?’
질레온 원로는 그나마 자신을 적대하지 않는 원로였다. 남들의 앞에서는 아니지만, 뒤로는 자신을 응원한다며 격려를 보낸 원로기도 하다.
가끔씩 미소 지어주던 원로.
원로와 시선을 마주치면, 일단 고개를 돌리는 레스티였지만 질레온 만큼은 예외다. 자신에게 살갑게 대해주는 몇 안되는 분이셨으니까.
‘오늘 평가회도 안나오셨던데, 왜 여기에···.’
그렇게.
레스티는 멍하니 질레온을 바라본다.
그 시선이 질레온이 품에서 꺼내 든 것으로 이어지는 것 역시, 당연한 수순이었다.
검은색 편지지.
잿빛 문양이 가미 된 고급스러운 편지.
그것을 본 순간.
“·····.”
레스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저게 무엇인지 모를 리가 없다. 레스티 역시 받아본 적이 있는 편지였으니까.
‘추천장.’
어느 자리를 위한 추천장인가.
‘잿빛 마탑의, 차기 마탑주.’
그것이 향하는 상대는.
‘라니아 교수님.’
후두둑.
레스티가 품에 안고 있던 종이가 바닥에 떨어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