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74
〈 74화 〉 외전, 배교자(2)
* * *
용사의 파티는 소수로 이루어져 있다.
역사상 여럿의 용사 파티가 있었지만, 구성원의 수는 언제나 다섯을 넘기지 않았다.
용사, 마법사, 성직자, 척후 겸 사수.
가장 기본적인 구성으로 이루어진 파티는 기사단에 속하되, 일종의 유격대와 같이 운용된다. 그들은 여러 전선을 돌아다닌다.기사단만으로는 상대할 수 없는 거물을 사냥하는 것이 용사 파티의 역할이다.
인간이 상대할 수 없는 것들.
상대하더라도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는 것들.
용사가 사냥하는 건 바로 그런 것들이다.
그러나, 거물을 노리는 건 용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용사와 견줄 바는 못되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용사를 능가하는 초인들 또한 존재한다.
로디멜 요새가 함락되었다.
그곳에 배교자, 글레투스가 개입했다.
재앙이 출몰했다.
소문은 빠르게 퍼진다.
전장에 퍼진 소문을 듣고 각지에서 이름을 날린 기사들이 서부 전선으로 집결한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는 초인 또한 섞여 있다.
검의 초인.
소드 마스터, 쿤텔.
검을 든 사내는 용사보다 하루 먼저 전장에 도착했다. 그는 곧장 칼을 빼내든 채, 점령당한 로디멜 요새를 정찰했다.
“허.”
그리곤, 헛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이걸 뚫으라고?”
회색의 안개가 요새를 집어삼키고 있다.
안개의 안에서 번뜩이는 안광을 마주한 채, 쿤텔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끼익, 끼이이익.
법칙을 벗어난 무언가가, 요새의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2.
“···아저씨, 팔은 왜 그래?”
“미친 개새끼들한테 물어 뜯겼지. 그래도, 지금은 좀 괜찮아. 포션으로 목욕을 했거든.”
쿤텔은 어깨를 으쓱였다.
피투성이가 된 붕대를 풀고, 새 붕대를 감으며 그가 입을 열었다.
“뭐, 아무튼간, 오랜만이다. 애송이들아.”
막사의 한 켠.
소드 마스터 쿤텔은 팔짱을 낀 채 자신에게 찾아온 손님 둘을 바라봤다. 그 둘은 한때나마 쿤텔에게 체술과 검을 배운 이들이다.
용사, 카일 토벤.
현자, 라니엘 반 트리아스.
인류의 희망이라 불리는 이들.
물론, 쿤텔이 그 둘을 가르친 기간이 길지는 않다.
‘사실 가르쳤다기 보단··· 전장에서 같이 싸웠다는 게 더 맞겠지.’
전장에서 자주 마주치다 보니, 단점을 짚어주고 움직임을 좀 고쳐준게 고작이다.
‘각잡고 가르친 적은 얼마 없긴 하지.’
그래도 제자라 부를만한 이들이다.
물론 현자 쪽이야, 주문을 메인으로 삼으니 가르친 게 많이 없다고는 하지만··· 용사 쪽은 조금 다르다.
“오랜만입니다, 스승님.”
용사, 카일이 고개를 숙인다.
쿤텔이 반 백 년 가까이 살아오며 가르쳤던 아이 중, 가장 뛰어난 검사.
그를 바라보며 쿤텔은 웃음을 흘렸다.
“그래, 카일. 듣기로는 흑룡의 목을 땄다지? 짜식, 나한테 검 배우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야.”
“라니엘이 발을 묶어줬기에 가능했습니다.”
“그 흑룡의 발을? 말도 안 되는 건 여전하구나, 늬들.”
쿤텔이 호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 웃음도 길게 가진 않는다. 목을 한번 가다듬으며 쿤텔은 말을 이었다.
“맘만 같아선 술이라도 한잔 걸치며 흑룡 토벌에 관한 이야기를 좀 듣고 싶긴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러기는 힘들겠지.”
“배교자가 나타났다면서?”
잿빛 머리칼의 남자가 말했다.
그는 쓰고 있던 로브를 벗고 가볍게 고개를 털었다. 잿빛 머리칼 사이로 푸른 눈동자가 빛난다.
“···로디멜 요새가 함락됐다고 들었어.”
“그래. 함락당했다더군. 한순간에.”
“상황은?”
쿤텔이 칼집을 가볍게 휙, 휘두른다.
천막의 한쪽이 열리며 평야의 정경이 드러난다.
넓게 펼쳐진 검은 평야.
평야의 경계선에 협곡처럼 솟아있는 절벽의 위에 존재하는 고성, 로디멜 요새.
오래된 성을 개조해 만든 로디멜 요새의 망루에는 언제나 빛나야 할 마력 광이 전부 꺼져 있었다.
“보시다시피.”
어둠에 잠긴 로디맬 요새를 가리키며, 쿤텔은 짧게 말했다.
“최악이지.”
로디멜 요새는 회색의 안개에 둘러싸여 있다.
요새를 에워싼 안개는 비정상적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뚫으려곤 해봤어?”
“해봤지.”
“아저씨 정도면, 잠입 정도는 가능하지 않아?”
“나도 그럴 줄 알았는데.”
쿤텔이 칼집에서 칼자루를 천천히 뺐다.
“안되더라고.”
칼집 사이로 칼날이 드러난다.
칼날의 이가 다 빠져 있다. 이가 나간 칼날은 당장이라도 부러질 것만 같다.
그 모습에, 카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칼, 레어메탈제 아니었습니까?”
“검의 성지에서 받은 검이니 레어메탈제가 맞지. 나도 이렇게까지 이가 나가는 건 처음 봤다.”
쿤텔은 쓰게 웃었다.
“요새의 주변에 별의별 마수들이 다 깔려있더라. 내가 길을 좀 만들어 두긴 했는데··· 더 갔다간 나도 죽을 것 같더라고.”
적어도 혼자는 못 뚫어.
뚫으려고 해도 기사들을 꼬라박아야 할 거고.
그리 중얼거리며 쿤텔이 칼집에 칼을 도로 넣었다.
“흑룡을 토벌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너희를 부른 건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래도, 이건 너희가 아니면 힘들 것 같다.”
본래대로라면.
용사의 빈자리를 쿤텔과 같은 소드 마스터들이 메꿨을 것이다. 그러나, 사천왕과 같은 재앙들이 모습을 드러냈다면 그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그중에서도, 이번 건 독특하지.’
언제나 전장을 헤집는 고대 리치가 아니다.
수백 년의 역사상 그 모습을 드러낸 수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그 태반이 베일에 싸인 존재.
배교자, 글레투스.
그 재앙이 등장할 때마다 기사들은 도망쳤다. 재앙이 휩쓰는 전장을 포기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로디멜 요새를 빼앗겨서는 안돼.”
“·····.”
“요새가 무너지면, 앞으로의 전장이 몹시 힘들어진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요새를 탈환해야 한다.”
“알고 있어.”
라니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로디멜 요새가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지는 알지. 그리고, 아저씨가 미안해 할 필요도 없고.”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애초에 물량 빨로 밀어붙이는 소환사하고, 소드 마스터는 상성이 안 좋을 테니까.”
“···그렇긴 하지.”
“그러니, 이건 우리가 하는 게 맞아.”
자리에서 일어선 라니엘이 카일의 어깨를 툭, 하고 건드린다.
“먼저 가 있는다. 미리 봐둬야 하니까.”
그리곤 그는 막사 바깥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멀뚱멀뚱 바라보던 쿤텔이 문득 입을 열었다.
“···네가 용사 맞지? 카일?”
“예?”
“아니, 가끔 보면 저 녀석이 더 용사 같지 않나 싶어서.”
“아하하···.”
카일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저보단 저 녀석이 머리가 좋으니까요. 대부분의 작전은 녀석이 세워줍니다. 특히, 이런 상황에서는 더.”
“···그러냐?”
“예. 어지간한 전장에선 돌격만 하면 되지만, 이런 상황에선 아닐 테니까요. 게다가···.”
그가 성검의 칼자루를 매만지며 답했다.
“저 녀석의 판단은, 때로는 별보다 예리합니다. 저보다 더 나은 판단을 합니다.”
“별, 이라.”
쿤텔은 카일이 쥔 성검을 보며 웃었다.
“카일, 조언 하나 하마.”
“예?”
“별을 너무 믿지는 마라.”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쿤텔이 답했다.
“결정적인 순간, 별은 아무것도 해주지 않으니까.”
3.
용사 파티를 위해 배정된 막사.
라니엘은 턱을 매만지며 옆에 펼쳐둔 지도와, 로디멜 요새의 구조도를 번갈아 확인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예요? 라니엘?”
“기다려 봐. 생각하고 있으니까.”
“언제나처럼 하면 되는 거 아닐까요?”
책상에 걸터앉은 사라가, 다리를 흔들며 말했다. 라니엘은 그런 사라를 째려보며 손을 휘저었다.
“책상에 앉아 있지 마라. 신경 쓰인다.”
“뭐 어때서요?”
사라가 고개를 라니엘에게 쓱 내밀었다.
“솔직히, 흑룡 토벌 때 당신을 좀 달리 봤다니까요? 당신의 주문이 그렇게까지 빛나는 건 처음 봤어요. 저희 교단에서도 그런 별빛은 보기 드문데.”
“거의 한 달 가까이 회로를 그렸으니까. 그 정도는 해야 흑룡 발을 묶을 수 있었을 테고.”
“아무튼, 다시 봤다는 이야기에요.”
흥얼거리는 사라를 뒤로한 채, 라니엘은 계속해서 깃펜을 움직였다. 소드 마스터가 뚫어놨다는 길을 통해 침입 경로를 그려본다.
“잠입하게요?”
“어느 정도인지 보긴 해야 하니까.”
“그냥 흑룡 잡을 때처럼 하면 안 돼요? 당신이 주문으로 발을 묶고, 카일이 날뛰고. 제 축복하고 레미아의 달빛 화살이면 될 텐데?”
“그때하곤 상황이 달라.”
라니엘이 턱을 괸 채 말했다.
“그때는 준비 기간이 길었잖아. 흑룡은 제 해츨링을 지키느라 둥지를 못 뜨는 상황이었어. 그래서 오랜 시간을 들여 사냥할 수 있었지.”
“···그렇긴 하죠?”
“그 준비 기간만 한 달이야. 한 달 동안 준비하고도 그만한 피해를 입었다는 소리지.”
그가 로브를 걷어붙였다.
드러난 팔뚝에는 길게 화상 자국이 남아있다. 사라의 회복에도 아직 다 낫지 않은 부상이다.
“게다가, 흑룡은 기록도 많았어. 검은 폭풍, 고룡 등등··· 우리가 가진 정보가 많았으니 거의 모든 공격에 대응할 수 있었지.”
“브레스는 대응 못 했잖아요.”
“애초에 씨발, 그걸 대응할 수 있는 새끼가 어딨어? 카일처럼 몸으로 뚫고 가는 거 말곤 답이 없는데.”
아무튼 말야.
그러게 말하며 라니엘이 투덜거렸다.
“흑룡에 비해 배교자는 그 정보가 적어. 애초에 전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도 손에 꼽고··· 전장에 나왔을 때도 이런 식으로만 묘사 돼 있다고.”
그가 서적의 한쪽을 가리켰다.
“안개와 함께 나타나서, 안개와 함께 사라졌다. 이런 식의 서술밖에 없어. 우리가 아는 거라곤··· 배교자가 연금술사이자 소환사란 거야.”
“소환사···.”
“그래, 소환사. 재앙이라 불릴 정도의 소환사가, 어떤 걸 부릴지 감이 안 잡혀.”
라니엘이 깃펜을 툭툭 건드렸다.
그 깃펜의 잉크가 떨어지는 곳은 로디멜 요새의 중심에 있는 홀이다. 고성을 개조해 만든 요새이기에, 유난히 텅 비어있는 홀이 존재한다.
“저곳에 뭐가 있을지를 모르겠단 소리야.”
소환사의 강함은 준비된 사역마의 수로 결정된다. 그리고, 외곽에 풀어놓은 사역마의 수만 해도 족히 백은 넘는다.
‘그 수준도 말이 안 됐고.’
요새의 외곽에 놓인 사역마만 해도 그러하다.
‘그렇다면, 성 안에 있는 건?’
계산이 안된다. 짐작조차 불가능 하다.
“한 번 보고 올 필요가 있어.”
“그럼 카일이랑 가게요?”
“걔가 잠입을 어떻게 하게? 레미아, 그 귀쟁이 년이랑 같이 가야지.”
라니엘이 지도를 정리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모습을 보며 사라가 물었다.
“근데 말이에요, 라니엘.”
“왜.”
“성 안에 기사들은 어떻게 할 거예요?”
“···뭐?”
얘가 무슨 소리야?
라니엘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사라를 흘겨봤다. 성 안에 기사들을 어떻게 할 거냐니.
‘설마 진심으로 묻는 건가?’
배교자가 요새를 집어삼킨 지 하룻밤이 지났다.
요새에 주둔하던 기사들이 살아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아니, 희박은커녕 그냥 없다고 보는 게 맞았다.
‘···좀 그렇긴 하지만.’
다 죽었다고 보는 게 옳다.
그리고 사라가 아무리 멍청하다 한들, 그걸 모를 리가 없다.
‘기사들의 시체를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 거겠지.’
그쪽으로 해석하면 사라 답다는 생각이 드는 질문이다. 라니엘은 한숨을 쉬며 답했다.
“···죽은 기사들을 어떻게 하긴? 탈환 이후에 합동 장례를 치르던, 그건 나중에 생각해 봐야겠지.”
“살아있는 기사들을 말하는 건데요?”
사라가 태연하게 말했다.
“저 안에, 성기사들이 아직 살아있는걸요?”
“···뭐라고?”
“기도 소리가 들려요.”
그녀가 자신의 귓가를 툭툭 건드렸다.
꼭 간지럽다는 듯이 귀를 긁고 있는 사라의 모습을 보며, 라니엘이 물었다.
“···뭐라고 하는데?”
“음, 거리도 먼데다가, 뭔가 막고 있는 것 같아서 잘 들리지는 않는데···.”
사라가 무표정히 답했다.
“죽여달라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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