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01)
멜라니 로랑을 아느냐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질문에 모두들 놀란 눈으로 타란티노 감독과 우혁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걸 어떻게 아셨지요, 감독님?”
우혁이 타란티노 감독에게 되물었다.
우혁의 대답에 모두들 놀랐다.
특히 기무라 자오.
놀라면 눈을 크게 뜨고 3초 정도 움직이지 않는 버릇이 있는 모양이다.
그 모습이 조금 우스꽝스럽다.
타란티노 감독이 대답 대신 잠시 기다려 보라는 제스처를 취한 뒤 상의 왼쪽 안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도로 집어넣고, 오른쪽 안주머니에서 다른 휴대전화를 꺼냈다.
휴대전화에서 무언가를 찾더니 우혁에게 보여 주었다.
스위스 로카르노 영화제와 시상식이 열렸던 그란데 광장 대형 스크린 앞에서 멜라니가 우혁의 팔짱을 끼고 있는 사진.
우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타란티노 감독은 무슨 사진인지 궁금해 하는 장인 장모에게 사진을 보여 주고, 스톤 감독과 기무라에게도 보여 주었다.
한 사람에게 2초씩.
“멜라니 옆에 서 있는 사람이 당신이죠?”
“그렇습니다.”
“반갑습니다. 당신 라스트네임은 강이에요. 퍼스트네임이···?”
“우혁입니다. 강우혁!”
“우혁! 어려워요. 곧 잊어버릴 것 같군요. 사람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해요. 대신 얼굴을 보면 언제 어디서 만났는지, 어디서 봤는지 알아요.”
백곰하고 비슷하다.
백곰도 이름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
대신 한 번 만난 사람이나 사진, 영화 등으로 본 사람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기억했다.
타란티노 감독도 백곰처럼 난독증인가?
시나리오 내용을 들으면 잘될 영화인지 아닌지 느낌이 오고?
여하튼.
“제 영화에 동양인 배우가 한 사람 필요하다고 했더니 멜라니가 당신을 적극 추천하더군요. 줄리엣 비노쉬가 당신이 출연한 영화를 보고 당신 연기에 반했다면서요? 그러면서 사진 몇 장하고 당신이 출연한 영화 파일을 이메일로 보내 줬어요. 제목이 뭐였더
라? 하나는 진저, 하나는··· 새가 들어갔던 것 같던데···.”
진저?
[생강>을 봤다고?새가 들어간 제목이라면 당연히.
“[길 밖의 새>인 것 같네요.”
“맞아요. 길 밖의 새. 난 [생강>에서 당신이 연기한 ‘고문기술자’가 아주 인상 깊었어요. 그 눈빛, 잊히지 않아요.”
타란티노 감독이 포크로 방울토마토 하나를 찍어 먹으며 말을 이었다.
“고문기술자 연기는 정말 소름 돋더군요. 그 영화에서 당신의 연기가 가장 압권이었어요.”
타란티노 감독이 검지로 우혁을 가리키더니 불쑥 악수를 청했다.
우혁은 웃음을 띤 얼굴로 타란티노 감독의 악수를 받았다.
좀 전까지만 해도 타란티노 감독을 독점했던 기무라가 조금 외로워 보였다.
얘기에 끼어들고 싶어 힐끗거렸지만 틈이 보이지 않아 머쓱해하고 있었다.
“기무라 자오 씨의 연기에 비하면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우혁이 기무라를 대화 속에 끌어들였다.
기무라가 무슨 말인가 꺼내려고 하는데 타란티노 감독이 선수를 쳤다.
“기무라 연기는 일품이지요. 그런데, [생강>에서 당신의 비중이 너무 적었어요. 내가 그 영화감독이었다면 당신을 투톱으로 썼을 거예요. 그랬더라면 그 영화는 훨씬 멋진 작품이 되었을 겁니다.”
“[생강>이라고요? 처음 들어 보는데요? 요리사 이야기인가요? 하하!”
기회를 노리고 있던 기무라가 치고 들어왔다.
마지막 문장은 농담조로 던진 말이었다.
타란티노 감독이 검지를 세워서 흔들어 보였다.
“생강을 재갈 대신 입에 물리고서 고문을 하는 이야기에요.”
“오우!”
기무라가 마치 생강을 입에 씹은 듯이 과장된 표정으로 리액션을 취하며 타란티노 감독의 말에 장단을 맞추었다.
“그런데 강!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요.”
“?”
“[생강>에서 격투 신이 있는데, 편집을 잘한 겁니까, 아니면 당신이 직접 격투 신을 찍은 겁니까?”
“제가 직접했습니다.”
“정말이에요?”
“예!”
“와우!”
우혁과 타란티노 감독이 말을 할 때마다 기무라의 시선이 움직였다.
“기무라 자오 씨도 격투 신을 대역 없이 직접 하지 않나요?”
우혁이 기무라를 다시 화제에 울려 주었다.
우혁은 스톤 감독을 화제에 올릴 기회를 엿보았다.
대화를 하면서도 스톤 감독과 눈을 자주 맞추어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했다.
다행히 스톤 감독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우혁과 타란티노 감독의 대화를 들어 주었다.
“저는 단 한 번도 격투 신 대역을 써본 적이 없습니다. 모두 제가 했죠.”
“기무라!”
타란티노 감독이 기무라 쪽으로 몸을 틀었다.
“식사 끝나고 절권도 좀 보여줄 수 있어요?”
“물론입니다.”
“기무라가 이소룡 역할 하는 거 보고 반했어요. 정말 멋있었어요. 그게 전부 편집 기술은 아니겠죠?”
“그럼요!”
“여러분! 오늘밤 멋진 쇼를 기대해 주세요. 기무라의 절권도를 보실 수 있습니다.”
타란티노 감독이 너스레를 떨었다.
[생강>을 찍을 때만 해도 우혁의 절권도는 초보 단계였다.이소룡을 단 한 번 추체험하고 가서 촬영하지 않았던가.
가끔 [생강>을 보면서 어설프기 짝이 없는 액션 연기가 민망해서 눈을 돌리게 된다.
자세도 엉망이고 발차기 속도는 굼벵이보다 느리다.
일반인의 시선으로 보면 잘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절권도의 고수가 된 우혁의 눈에는 어린애 장난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날 연기에서 마음에 드는 게 있다면 눈빛!
액션은 아니다.
“[생강>이라는 작품 저도 보고 싶군요.”
올리버 스톤 감독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제가 파일 보내드리겠습니다.”
타란티노 감독이 스톤 감독에게 대답했다.
“고맙습니다. 저는 [길 밖의 새>가 흥미로웠어요. 주제를 풀어나가는 감독의 방식도 마음에 들더군요. 특히 우혁의 연기는···.”
“원맨쇼였죠. 다른 배우는 전혀 보이지 않았어요. 주인공만 보이는 영화.”
타란티노 감독이 스톤 감독의 말꼬리를 잘라먹으며 치고 들어왔다.
“그래서 얘긴데···.”
스톤 감독이 복수를 하듯이 타란티노의 감도의 말꼬리를 잘라 먹은 뒤 잠시 침묵을 지켰다.
“우혁! 나하고 작업해볼 생각 없어요?”
스톤 감독의 말에 모두가 놀란 눈으로 스톤 감독을 쳐다보았다.
“잠깐만요!”
타란티노 감독이 손바닥을 아래로 향한 채 두 손을 앞으로 뻗었다.
모두 타란티노 감독을 바라보았다.
“스톤 감독님이 하신 말씀, 제가 먼저 하려고 했는데 한 발 늦었네요. 결정은 시나리오를 보고 하겠지요? 안 그래요, 강?”
타란티노 감독이 우혁을 응시했다.
모두들 우혁의 대답을 기다렸다.
기무라가 다시 한 번 눈을 크게 뜨고 움직이지 않았다.
아까보다 눈이 더 커졌고 움직이지 않는 시간도 더 길었다.
“세계적인 감독님과 작업하고 싶지 않은 배우는 없을 것입니다. 제안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우혁은 두 감독을 번갈아보며 말을 이었다.
“시나리오를 주시면 소속사와 논의해서 결정하겠습니다.”
“잠깐만요!”
이번에는 기무라였다.
타란티노 감독과 똑같은 포즈를 취했다.
“감독님!”
기무라가 타란티노 감독 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 시나리오, 저도 보여주실 수 없나요? 감독님이 필요로 하는 역할, 제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기무라의 적극적인 모습이 우혁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하지만 일단 조용히 지켜보기로 했다.
“고백하자면 오늘 기무라 당신이 여기에 온다고 해서 왔어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감독님이 오신다고 해서 왔습니다.”
기무라가 반색했다.
“당신에게도 캐스팅 제안을 할 겁니다. 그러려고 왔어요.”
“오 마이 갓!”
기무라가 타란티노 감독에게 악수를 청했다.
타란티노 감독이 기무라의 손을 맞잡으며 왼손으로 기무라의 어깨를 쳤다.
“제 영화에는 두 명의 동양인이 필요합니다.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동양인이 아니라 황인종이지요. 한 사람은 주연, 다른 한 사람은 조연. 조연도 매우 중요한 역할이에요.”
“조연 중요하죠.”
기무라가 그 말을 하며 우혁을 바라보았다.
조연은 네가 맡을 역할이라는 듯이.
“영화에서 중요하지 않은 역할이 어디 있겠습니까.”
기무라가 동의를 구하듯이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
스톤 감독이 강을 캐스팅하겠다고 제안할 줄 몰랐다.
아무 말도 않고 조용히 있다가 갑자기 훅!
여우처럼 엉큼한 노인네 같으니라구.
이해해.
할리우드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어.
내가 잡지 않으면 빼앗기고 말지.
빼앗기고 나서 울어 봤자 아무도 쳐다보지 않아.
“감독님, 시나리오 빨리 보고 싶네요.”
“기무라! 미안하지만 종이로 인쇄된 건 없어요. 시나리오는 내 머리에 있으니까. 대사, 지문 모두 여기 있지요.”
엉덩이에 종기 날 정도로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서 키보드나 두드리는 짓은 끔찍해.
난 걸어 다니면서 써.
누워서도 쓰고.
샤워를 하면서도 쓸 수 있어.
수정?
아주 간단해.
머릿속에서 하면 되니까.
종이에 출력하는 건 미련한 짓이야.
종이 낭비라고.
“미완성이란 말씀이군요.”
기무라 이 친구 날 의심하는군.
물론 미완성이야.
완성된 시나리오라는 건 있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 내 머릿속에는 완성 시나리오가 있어.
당장 구술을 해서 비서에게 불러줄 수도 있지.
그렇게 출력하는 건 배우들과 스텝들을 위한 짓이지 나한테는 쓸모가 없어.
난 글자를 읽으면 오히려 머리가 굳어 버려.
“영화 제목이 궁금하네요.”
젠장!
편집이 끝날 때까지도 바뀌는 게 제목이야.
제목 후보만 100가지가 넘는다고.
쓰레기들
쓰레기 청소부
쓰레기를 치워 주겠어
세 친구
화이트, 블랙, 옐로우
세 친구! 화이트, 블랙, 옐로우
쓰레기들! 화이트, 블랙, 옐로우
······.
“[쓰레기들! 화이트, 블랙, 옐로우>.”
“그게 제목인가요?”
“아직 미정. 내일 아침이면 바뀔 수도 있어요.”
“아, 예!”
표정이 왜 그래, 기무라?
제목이 마음에 안 든다는 거야?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거야?
내가 시나리오도 없이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제목을 떠들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화이트, 블랙, 옐로우가 등장인물 이름인가요.”
강 이 친구, 예리한데!
“맞아요. 등장인물이에요.”
“감독님이 오늘 찾고 있는 배역은 옐로우일 테구요?”
“정확해요!”
“제목이 끌리네요.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재미있지.
끝내주게 재미있고말고.
“화이트는 백인, 블랙은 흑인이겠지요?”
내가 너무 단순했나? 강, 이 친구 다 맞히는군.
“화이트, 블랙, 옐로우는 거친 친구들일 것 같네요. 살인청부업자라든가···.”
나를 훤히 꿰고 있군.
화이트는 칼을 잘 쓰지.
블랙은 총잡이.
백발백중이야.
세 사람의 직업은 살인 청부업자.
절친한 친구들이지.
그들은 피를 나눈 형제들보다 친한.
돈을 벌기 위해 청부 살인을 하지만 쓰레기가 아니면 안 죽여.
돈도 벌고 쓰레기도 처치하고.
[생강>에서는 ‘고문기술자’가 조연이지만 내 영화에서는 ‘고문기술자’가 주인공이야.어느 날 세 건의 살인 의뢰가 들어와.
각자 한 건씩 맡기로 해.
세 건 모두 마음에 쏙 드는 쓰레기였거든.
쓰레기를 찾아 뒤통수를 때렸는데 어라!?
내 뒤통수가 아프네!
알고 보니 그 쓰레기는 내 가장 친한 친구였던 거야.
갈등 되네.
이제 어쩌지?
죽여 말어?
안 죽여. 이럴 수는 없잖아. 그렇게 되면 영화가 끝나는 거 아니겠어.
미안해, 친구야! 넌 줄 몰랐어. 하지만 넌 인간 말종 쓰레기야. 죽어 마땅해! 잘 가!
화이트가 블랙을, 블랙이 옐로우를, 옐로우가 화이트를 죽여.
자기 꼬리를 물어뜯는 뱀처럼 세 명은 서로를 죽이지.
지금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야.
인간끼리 죽이고 죽이잖아.
그렇게 다 죽어.
그게 내 영화의 엔딩이야.
옐로우는 기무라가 어울려.
이들 세 명이 주인공이고 나머지는 조연.
강이 맡을 배역은 옐로우의 착한 동생이야.
무술?
잘할 필요 없어.
싸움 같은 거 할 줄 몰라.
평화주의자니까.
개미 한 마리 죽이지 않아.
그런데 친형인 옐로우를 죽여 달라고 의뢰를 한 사람이 바로 옐로우의 동생이야.
옐로우의 시체를 끌어안고 질질 짜.
자기가 죽여 놓고 울긴 왜 우니?
바보 같은 옐로우는 동생을 사랑해.
천사 같은 동생이라면서 자랑하고 다니지.
동생에게 생활비로 갖다 주고, 사랑하는 여자도 양보해.
바보!
그 동생한테 뒤통수를 맞고 죽어.
누가 착한 거니?
누가 악한 거야?
인간이란 참 재미있는 동물이라니까.
그게 내가 이 영화를 통해서 말하고 싶은 거야.
이 따위 주제?
몰라도 돼.
내 영화 즐겁게 보는 인간이 나는 제일 좋아.
처음과 끝만 보면 재미없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아야 재미있으니까.
하지만 그걸 다 얘기하려면 한 시간은 족히 걸려.
그걸 여기서 다 얘기해야 돼?
나는 감독이야.
칼자루는 내가 쥐고 있다고.
옐로우는 무술을 잘해야 돼. 이소룡만큼.
대역을 쓰면 티가 나.
다른 배역은 총질이나 하면 되지만 옐로우는 무술이 무기야.
무기 따위 손도 대지 않아.
주먹과 발차기로 죽여.
죽을 땐 온몸에 총알구멍이 나겠지만.
스톤 감독의 [플래툰>은 끝내주는 영화야.
반스 중사가 총에 맞아 죽는 장면을 볼 때마다 화가 나.
너무 멋있게 찍었단 말이야.
사무엘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가 흐르면서 두두두두두두두두두 총알이 쏟아져.
반스 중사의 몸 위로.
만세를 부르면서 멋지게 죽어 가지.
옐로우도 그렇게 멋있게 죽어야 돼.
반스 중사처럼 멋있게!
자, 식사도 끝났으니 쇼 타임이나 즐겨볼까?
“기무라! 절권도 좀 보여 줘요.”
“알겠습니다. 자, 그러면 거실로 가실까요.”
거실이 넓어서 좋군.
기무라!
멋진 모습을 보여줘.
이게 그냥 쇼 타임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
그래, 이건 오디션이야.
캐스팅이 걸려 있다고.
“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그래, 시작해! 기무라! 충분히 뜸 들였어!
···.
뭐야?!
텔레비전에서 볼 때보다 동작이 느리잖아.
표정, 기합 소리는 이소룡하고 똑같군.
내 영화는 이소룡 영화가 아니라고.
실망인데···.
기대치가 너무 높았나.
하지만 어쩌겠어.
기무라만큼 옐로우를 잘 소화할 황인종 배우가 없지 않나.
“강! [생강>에서 격투 신을 대역 없이 하셨다고 했죠? 그때 했던 액션 실력 한 번 보여 주시죠.”
기무라 저 친구, 강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싶은 모양이군.
자기는 여기 오기 전에 열심히 연습하고 왔을걸.
몸도 안 푼 사람한테 액션 실력을 보자고 하다니!
더러운 인간성!
나하고 비슷해.
인간성 필요 없고, 연기만 잘하면 돼.
“그럼! 간단한 동작 몇 가지만 해보겠습니다.”
웃음거리가 되어 주겠다는 건가?
참아, 이 친구야.
장인 장모 앞에서 무슨 창피를 당하려고.
어라!?
기무라보다 훨씬 잘하잖아!
눈빛 좋은데!
악당의 눈빛이지만 그 속엔 순수한 천사가 들어 있어.
와우!!
[ 쇼 타임? 아니 오디션! > 끝ⓒ 길밖의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