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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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 존재감
이 씨가 세상을 다 잃은 표정으로 털레털레 걸어오고 있다.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푹푹 내쉰다.
“쌀 팔아서 똥 사 먹을 인사야, 어딜 그래 싸돌아다니다 이제사 와. 딸네미가 나무에 목을 맸구만.”
욕쟁이할멈이 이 씨에게 호통을 친다.
“그게 무슨 말인교? 옥자가, 우리 옥자가 목을 매다니요?”
놀란 이 씨가 욕쟁이할멈에게 묻는다.
욕쟁이할멈은 대답 대신 은행나무 쪽으로 걸어간다.
이 씨는 황급히 대문을 열고 계단을 뛰어오른다.
옥탑방 문을 열고 들어서면 고요한 정적만 가득하다.
안방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옥자는 아랫목에 누워 잠들어 있고, 달성댁은 눈길도 돌리지 않고 빨랫감을 개고 있다.
“옥자 우예 된 기고?”
이 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저승 문턱까지 갔다 왔심더.”
달성댁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다.
“그기 무신 소리고?”
“무신 소린지 알 거 없고, 갈라섭시다. 당신하고는 못 살겠소. 옥자는 내가 키울 테니까 당신 혼자 잘 살아 보소.”
“옥자 돈 때문에 그카나? 며칠 내로 꼭 찾아올 테니까 걱정 마라.”
“그 돈 필요 없심더. 당신이 나갈랍니까, 아니면 내가 옥자캉 나갈까예?”
“내가 잘못했다. 다시는 노름 안 한다.”
“이 집에서 사실랍니까? 할 수 없지요. 우리가 나가는 수밖에. 옥자야, 일어나라. 나가자.”
“옥자 깨우지 마라. 내가 나갈게.”
이 씨가 일어난다.
문 쪽으로 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옥자를 돌아본다.
“이사 가지 말고, 1년만 기다리라. 노름 안 하고, 도둑질 안 하고, 일해서 돈 벌어 올게.”
이 씨가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이 씨가 떠나던 날 또 한 사람이 동네를 떠난다.
은비 엄마이자 박달재 처, 장미가 박달재와 대판 싸우고서 집을 나가 버린다.
은비는 대문 앞이나 은행나무 옆 나무 벤치에 앉아 엄마를 기다린다.
인기척만 들려도 발딱 일어나 외친다.
“엄마?!”
하지만 매번 다른 사람이다.
해가 져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다.
은비는 울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엄마가 제일 싫어하는 게 우는 거니까.
그때 가로등지기와 재채기가 나타난다.
셋은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하염없이 은비 엄마를 기다린다.
밤이 깊어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다.
“졸린다. 아함!”
재채기가 하품을 한다.
“가로등지기 아저씨, 재채기랑 같이 자면 안 돼요?”
“나도 은비랑 자고 싶어요.”
가로등지기가 허락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자 은비와 재채기가 환호성을 지른다.
“은비야, 재채기는 한 번 자기 시작하면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아. 내일 낮까지 잠만 잘 거야. 그래도 괜찮겠어?”
가로등지기가 은비에게 말한다.
“예! 괜찮아요. 제가 잘 돌봐줄게요.”
“나 잘 거야. 아함! 졸려! 은비야, 잘 자!”
재채기가 축 늘어진다.
가로등지기가 은비에게 재채기를 넘겨주면 은비가 재채기를 품에 안고서 재채기가 잠에서 깨지 않도록 조심하며 집으로 들어간다.
은비가 대문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 가로등지기는 벤치에 홀로 덩그러니 앉아 있다.
“이봐!”
박달재가 가로등지기에게 다가온다.
“당신 뭔데, 이 동네에서 얼짱거려. 여기 누구 허락받고 왔어. 여기는 내 땅이야. 사유지라고. 나가요, 나가!”
박달재가 가로등지기를 일으켜 세우더니 밀어낸다.
그런데 박달재가 아무리 힘껏 밀어도 가로등지기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겁에 질린 박달재가 뒤로 물러난다.
그제야 가로등지기가 스스로 걸음을 옮긴다.
박달재는 공터에 사유지 안내와 침범 시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경고 문구의 팻말을 세운다.
한편 동네 사람들은 재개발 지지와 반대로 나뉘어 갈등한다.
박달재의 다세대 주택에서는 박달재 씨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재개발을 반대한다.
재개발 지지 세력들의 행동이 점점 거칠어진다.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을 힘과 조직으로 누르려 한다.
재개발을 반대하는 서정은 마을 사람들을 대표해 은행나무를 보호수로 지정하기 위해 애를 쓴다.
마을 일에 무관심하고, 외제차를 몰고 다니며 겉멋에 취해 살던 민준도 서정의 마음을 얻기 위해 서정 편에 선다.
은행나무를 보호수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이 보이자 재개발을 지지하는 측이 몰래 은행나무를 자르려고 시도한다. 은행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면 그 자리에 아파트를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행나무를 지키는 사람이 있다.
가로등지기.
은행나무를 사수하기 위해 서정과 민준, 욕쟁이할멈, 옥자가 힘을 보탠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하는 서정 뒤를 밟는 두 명의 괴한이 있다.
두 괴한은 서정을 으슥한 골목으로 끌고 가 나서지 말라고 협박한다.
이때 가로등지기가 나타나 화려한 무술 실력으로 두 괴한을 물리친다.
한편, 욕쟁이할멈의 치매 증세가 더욱 심해져 아기를 낳았다며 베개를 껴안고 다닌다.
부아가 난 박달재가 노모에게서 베개를 빼앗으며 울화통을 터트린다.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이건 얼라가 아니고 잠잘 때 베는 베개잖아요.”
“이리 내라. 우리 달재 달라 말이다.”
노모의 말에 박달재는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듯 동작을 멈춘다.
노모는 박달재에게서 베개를 빼앗아 품에 안고서 베개를 어른다.
♬ 자장자장 우리 달재. 잘도 잔다 우리 달재. 꼬꼬닭아 우지 마라. 우리 달재 잘도 잔다. ♬
달재는 비틀거리며 집을 나가 공터의 벤치에 가서 털썩 주저앉는다.
“아이고 엄니!”
박달재가 하늘을 올려다본다.
눈시울이 뜨겁다.
그때 부시럭 소리가 난다.
소리가 난 쪽을 보면, 은비가 숨어 있다. 벤치에 앉아서 엄마를 기다리다가 박달재가 나타나자 몸을 숨긴 것이다.
“은비야. 이리 오니라. 어여!”
은비가 쭈뼛거리며 박달재 앞으로 온다.
박달재는 은비 손을 만져본다.
“손이 꽁꽁 얼었네. 쯧쯧!”
은비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차가운 손과 발을 만져준다.
그러고서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우리 엄니는 과부였니라. 남편이 일찍 죽고 자식새끼 먹여 살리려고 안 해 본 장사가 없다. 동생하고 나는 해가 지면 엄마를 기다리는 거야. 어쩌다 장사가 안 돼서 늦기라도 하면 엄마 죽은 거 아닌가 싶어서 얼매나 무섭던지. 동생한테 안 들키려고 혼자서 울고 그랬니라. 내가 은비 니 심정 잘 안다.”
박달재가 하늘을 올려다본다.
“가난이 지긋지긋해서 이를 갈았다. 엄니 호강시켜 주고 싶어서 죽어라 돈을 벌었니라. 돈 버는 데 신경을 팔다 보니 돈을 왜 벌려고 했는지 잊어버렸어. 엄니 호강시켜 주겠다는 생각을 잊어버렸단 말이다.”
은비는 박달재 얼굴을 빤히 보고만 있다.
“내가 늬 엄마라도 도망갔을 것이여. 돈밖에 모르는 돈벌레하고 무슨 낙으로 살겄어.”
달재가 한숨을 내쉰다.
“은비야, 아무 걱정하지 마라. 내가 니 앞길은 책임질 테니까네. 공부만 여얼심히 해라. 대학, 유학까지 다 보내 줄게. 그만 들어가자. 춥다.”
박달재가 은비를 무릎에서 내려 손을 잡고 집으로 걸어간다.
은행나무 뒤에서 가로등지기가 나타나 박달재의 뒷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본다.
어딘가에서 바람 한 줄기가 불어온다.
가로등지기는 발걸음을 옮겨 공터를 빠져 나간다.
누군가가 잔뜩 웅크린 채 도심의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그 뒤를 가로등지기가 따라간다.
앞서 걸어가는 사람은 옥자 아버지 이 씨다.
이 씨가 문득 걸음을 멈추더니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낸다.
복권이다.
“제발 한 번만 도와 주이소!”
이 씨가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런데 그 순간 바람 한 줄기가 불어와 복권을 낚아채 간다.
“아이고 내 복권!”
이미 늦었다. 복권은 바람에 날려 하늘 저 멀리 사라져 버린다.
“보나마나 꽝이겠지. 내 복에 무슨···.”
이 씨는 복권을 포기하고 털레털레 걸어간다.
“요행 그만 바라고 인자 노력해서 돈 벌 생각을 해라! 이 빌어먹을 인간아!”
이 씨가 자신의 뺨을 호되게 후려친다.
가로등지기는 하늘로 날아간 복권을 올려다본다.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복권은 하늘 위로 하염없이 나비처럼 하늘하늘 날아가다가 어딘가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박달재 씨 옥탑방이 있는 옥상의 빨랫줄에서 빨래를 걷으러 나온 옥자의 발 앞에!
***
정 실장은 설민환의 스케줄 표를 확인하며 민환에게 전화를 걸었다.
– 예, 실장님!
“별일 없나 해서.”
– 별일 있을 게 있나요.
“촬영 스케줄이 뭐가 이렇게 빡빡해. 쉬는 날이 거의 없잖아.”
– 촬영 틈틈이 쉬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이렇게 빡빡한 일정이 좋아요. 할 때 집중해서 하고 쉴 때 쉬고.
“해진 씨는 잘해?”
– 업무 평가 할 시기인가요?
“아니야. 궁금해서 그래.”
– 우리 매니저 아주 잘하고 있습니다. 업무 평가 때 최고 점수 주세요.
“불편한 건 없고?”
– 없습니다.
“우혁 씨 고문 장면 추가 촬영 있다고 백 대리한테 얼핏 들은 것 같은데, 그건 왜 소식이 없지?”
– 아마 곧 연락 갈 거예요. 최 감독이 엄청 공을 들이고 있어요. 그거 때문에 콘티를 몇 번이나 갈아엎었는지 몰라요. 고문 장면을 이번 영화 핵심 장면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완벽하게 준비한 뒤에 연락할 모양이에요.
“그렇구나. 내가 한 번 찾아뵙던가 해야겠다. 우혁 씨한테 소속사 있다는 것도 알려드릴 겸.”
– 우혁이 우리 회사하고 계약했다는 얘기는 벌써 내가 말씀드렸죠. 최 감독님도 기획사 소개시켜 주려고 마음먹고 있더라고요. [서울 가로등>도 종종 챙겨 보시나 봐요. 최 감독님, 우혁이한테 완전히 뿅 간 것 같던데요.
“우혁이한테 뿅 간 사람이 한둘이 아닐걸.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시간도 얼마 안 되는데 인기 폭발이야. 사람들이 마법에 걸린 것 같아.
– 압도적 존재감의 위력 아니겠습니까. [서울 가로등>에는 딱히 주인공이 없잖아요. 데이빗하고 박예진이 주인공이라고 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던데요. 오히려 조연들의 연기가 돋보이더라구요. 고만고만한 배역들 중에서 가로등지기는 잠깐만 나와도 눈에 확 띄던데요.
“팍팍한 현실을 구원해 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라서 그럴지도 모르지. 편집도 우혁 씨 나오는 부분은 다른 장면하고 달리 아름답고 환상적이지 않아? 여기 드라마 피디도 우혁 씨한테 뿅 갔거든. 드라마 작가도 그렇고.”
– 우혁이가 연기도 잘하지만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다니까요. [생강>에서도 출연은 잠깐이지만 압도적 존재감을 발휘할 걸요. 가로등지기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요. 우혁이하고 계약하기 잘했죠?
“민환 씨가 왜 그렇게 우혁 씨를 적극적으로 추천했는지 알 것 같아. 민환 씨가 추천할 때 귓등으로도 안 들었던 죄책감 때문에 요즘 열심히 케어하고 있어.”
– 그렇다고 무슨 죄책감씩이나.
“그러다 보니 민환 씨한테 별로 신경을 못 쓰는 것 같아 미안하네.”
– 뭐가 미안이에요, 실장님도 참. 지난번 통화할 때 제가 부탁했잖아요. 당분간 저는 잊고 우혁이 신경 좀 써 달라구요. 저는 해진 씨가 너무 잘해 주고 있으니까 아무 신경 쓰지 마세요.
“어디 아픈 덴 없지?”
– 예!
“날씨 추우니까 감기 조심하고.”
– 예! 실장님도 감기 조심하세요.
“고마워.”
– 들어가세요.
정 실장은 통화를 끝내고 나서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혼잣말을 했다.
“유유상종이라더니 두 사람 다 참 착해.”
[생강> 추가 촬영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박용구 조감독에게 전화를 걸까 하다가 그 전에 설민환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최 감독이 준비를 하고 있다니 좀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우혁의 캐스팅 제의와 출연 섭외 목록을 훑어보았다.
영화가 좀 들어왔으면 좋겠는데 거의 대부분 드라마나 예능이다.
테마파크 매직월드 광고가 오늘부터 지상파 3사와 주요 종편에 깔리기 시작했다.
역시 광고 잘 만든다.
우혁을 멋지게 살려 주었다.
신비한 마술사 가로등지기.
콘티와 촬영 현장을 보았을 때는 유치하게 나오는 거 아닌가 싶어 걱정했는데 웬걸!
환상적이다.
강우혁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한껏 높여 줄 것 같다.
좋은 광고 출연은 그 자체로 배우에게는 최고의 홍보 기회이다.
광고를 찍으면서 돈도 벌고, 자기 홍보도 하고.
꿩 먹고 알 먹고.
가끔은 광고 한 편이 영화 몇 편을 찍는 것보다 배우 개인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효과적이다.
“장담하는데, 곧 제대로 된 광고 섭외 들어온다.”
정 실장이 우혁의 스케줄 표를 볼펜으로 톡톡 치며 장담했다.
광고 섭외는 많이 들어왔으나 앞으로 우혁의 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우혁과 상의하여 모두 고사했다.
주말 예능 ‘아름다운도전’ 섭외에 응하기로 했다. 일정을 조율중이다.
공중파 방송인 SBC의 ‘연예인뉴스’ 인터뷰 요청도 받아들였다. 최종회 촬영 때 촬영장에서 인터뷰를 할 예정이다.
인터폰이 울렸다.
“정희찬입니다. 예예. 사성전자에서 냉장고 광고 제의가 들어왔다구요? 알겠습니다.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 바로 회의할 수 있게 자료 좀 준비해 줘요.”
인터폰을 끊고 서둘러 회의 수첩을 챙겨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사무실을 빠져 나가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빠르다, 빨라! 오늘 첫 광고 나갔는데 벌써 반응이 오네. 이건 뭐 엘티이(LTE), 아니 오쥐(5G)급이구만.”
걸음을 멈추더니,
“광고 보고 연락한 게 아닐 수도 있겠다. 드라마 시청률, 댓글 반응 보고 결정했겠지. 여하튼!”
다시 빠른 걸음을 내디디며,
“이번엔 최소 5억 이상이다! 그 이하는 안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