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21
21화. 영동 할매
나를 보며 흐뭇하게 미소짓는 할머니 성좌, 아니 영동 할매.
“용케 알았구나.”
“할아버지가 종종 말씀해주셨거든요.”
사실 나도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거다.
성좌 중에서도 거의 없다는 한국 신화 계통 성좌, 그것도 무속 쪽의 성좌였으니까.
“나를 알아보는 인간을 만난 것도 참 오랜만이야. 예전에는 영동날이 되면 항상 이렇게 떡을 바쳤단다. 지금은 찾기 힘들지만.”
영동 할매는 그립다는 표정으로 내가 만든 시루떡을 내려다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게이트 사태 이후 바닷가는 해저 던전에서 흘러나온 몬스터들로 인해 위험지역이 되었고 많은 사람이 고향을 떠나야만 했다.
영동 할매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습도 우리 할아버지 대에나 있던 일이니 요즘은 아예 대가 끊겼다고 해야겠지.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들이 사라진 성좌의 기분은 어떤 걸까?
나는 손님이 끊긴 식당을 생각해보았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상상만 해도 서글퍼지네.
“떡이 식기 전에 드세요. 찰떡이라 식으면 다시 데워도 되지만, 그래도 갓 했을 때가 제일 맛있잖아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내 손으로 뜨거운 시루떡을 잡아 뜯어 영동 할매의 앞 접시에 놓아드렸다.
갓 지은 떡은 말랑말랑해서 이렇게 손으로 뜯어 먹는 게 제맛이거든.
물론 좀 많이 뜨겁긴 했지만, 아직 ‘전장의 축복’이 활성화되어 있는 내게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숯가마 속에도 손을 넣었던 나였는데, 떡쯤이야.
“암, 그렇지. 갓 한 떡 만큼 맛있는 게 없지. 그래서 사람들은 항상 무언갈 먹기 전에 나한테 먼저 바쳤단다.”
음력 2월인 영등달이 되면 떡을 비롯해 어떤 음식이든지 영동 할매에게 먼저 바치고 먹는 게 바닷가 사람들의 풍습이었다고 한다.
바닷가 사람들에겐 그만큼 영동 할매가 중요한 신이라는 소리겠지.
한때, 그랬던 존재가 지금은 왜소하고 자꾸만 챙겨드리고 싶은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드세요.”
그런 존재에게 나는 섣부른 위로보다는 식사를 권했다.
요리사는 말로 손님을 위로하는 존재가 아니라 맛으로 위로하는 존재니까.
내 권유에 영동 할매는 내가 소분해 놓은 시루떡을 입으로 쏙 가져갔다.
“맛있구나, 맛있어.”
“맛이 괜찮으세요?”
“아주 맛있어. 예전에 사람들이 주던 그대로야.”
나는 영동 할매의 맛평에 쓴웃음을 지었다.
요즘 시루떡은 이것저것 집어넣고 설탕도 넣어서 맛이 달콤하고 더 맛있었으니까.
이 슴슴한 시루떡이 맛이 좋다고 하시는 이유는 아마 사람들이 당신에게 떡을 바치던 그 시절이 생각이 나서 그런 걸 터였다.
“이번엔 감자밥도 드셔보세요.”
“제대로 삶았구나. 향이 아주 구수하고 좋아.”
영동 할매는 숟가락을 들어 감자를 으깨어 보리밥과 슥슥 섞었다.
밥의 찰기와 감자 속살이 엉기며 마치 떡처럼 변한 감자밥을 와앙 한입에 크게 넣는 영동 할매.
거기다 매콤한 겉절이까지 곁들이니 그녀의 얼굴에 다시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아주 손맛이 좋구나. 맛이 좋아.”
“감사합니다.”
정말 마음에 들었는지, 영동 할매는 시루떡과 감자밥을 번갈아 가며 먹으면서 접시를 깨끗하게 비웠다.
나는 그런 영동 할매를 뿌듯하게 지켜보다 문득 생각난 게 있어서 주방으로 돌아갔다.
“이거면 되겠지.”
내가 서둘러 준비한 건 새하얀 국그릇에 담은 깨끗한 마력수였다.
그리고 그 위에는 채하나로부터 구한 던전의 꽃 하나를 동동 띄웠다.
원래는 동백꽃을 띄워서 바치는 거라던데, 던전에는 동백꽃이 없었으니까.
나는 마력수 앞에서 짧게 기도를 올렸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이 영동 할매를 기억하기를.”
주방에서 국그릇에 맑은 물을 띄워놓고 올리는 기도.
즉, 이 순간, 이 마력수는 그 옛날 우리네 어머니들이 가정의 평안과 안녕을 빌던 ‘정화수’가 되었다.
뭐, 사실 특별한 효과가 있다기보다는 그냥 마음이 그렇다는 거지만 말이야.
나는 그렇게 만든 정화수를 쟁반에 담아 다시 홀로 나왔다.
“이것도 드셔보세요.”
“정화수가 아니더냐.”
내가 가져온 마력수로 만든 정화수를 본 영동 할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떡 드실 때 목 막히면 큰일 나잖아요. 물이랑 같이 드시라고 가져와 봤어요.”
“그냥 물로 가져올 수도 있는데 기도까지 올렸구나. 착한 아이로고. 고맙구나.”
영동 할매는 주름진 손으로 내 손을 꼭 잡고 감사함을 표현했다.
그냥 맹물, 아니 맹마력수만 드리기 뭐해서 정화수를 올린 것뿐인데, 정말 기쁘신 모양이네.
꿀꺽꿀꺽.
놀랍게도 영동 할매는 국그릇을 들고 그 자리에서 시원하게 정화수를 원샷했다.
와우, 호탕도 하셔라.
“시원타, 정말 시원타.”
신기하게도 정화수를 모두 마신 영동 할매의 얼굴에 화색이 돌고 기운이 펄펄 솟는 듯 굽었던 허리가 펴졌다.
이, 이상하다? 그냥 마력수에 기도만 올린 것뿐인데?
그런 효과가 있다고?
“마력이 듬뿍 담겨서 좋지만, 정성이 담겨서 더 좋구나. 우리 같은 신들에게는 정성과 믿음이 제일 좋은 보약이니라.”
좋다는 건 정말 말뿐만이 아닌 듯했다.
가게를 은은하게 채우던 바다 향기가 갑자기 사라지고 어디선가 기분 좋은 산들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바다 냄새의 근원이었던 영동 할매의 젖은 치마는 어느새 뽀송뽀송하게 마른 데다 고운 다홍 빛으로 물들어 예쁘게 펄럭이고 있었다.
“내 사실 여기에 부탁을 받고 온 것이거늘, 오히려 내가 더 귀한 대접을 받고 가는구나.”
“부탁이요?”
그냥 ‘신야식당’에 오고 싶어서 예약한 게 아닌가?
내가 의아해하자 영동 할매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그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내가 여기에 온 건 다 네 할애비의 부탁을 받아서 온 거란다.”
“할······아버지요? 우리 할아버지 말씀이세요?”
옛날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왜 나오는 거지?
영동 할매는 주름진 손을 뻗어 내 볼을 매만졌다.
“수웅이랑 똑 닮았구나. 그놈도 어릴 적엔 너처럼 똘망똘망했지.”
영동 할매의 입에서 흘러나온 건 할아버지의 이름, 그리고 어렸을 때이 이야기였다.
“네 할애비가 내게 그렇게 지극정성이었다. 영동날이나 영동달이 아니어도 항상 먹을 게 생기면 내게 제를 올리고 먹었지.”
영동 할매에게 바치는 제사는 무당을 부르거나 굿을 하는 것처럼 거창한 게 아니었다.
그냥 길한 방향으로 음식을 놓고 먹기 전에 영동 할매에게 먼저 바친 뒤 기도하고 먹으면 그만.
어렵지도 않은 일이라 할아버지는 매일 기도를 바치고 밥을 드신 모양이었다.
마치 기독교인들이 밥 먹기 전에 감사 기도를 올리는 거랑 비슷하게 말이다.
“기특했지. 암, 기특하고말고. 그래서 내 얼마 안 되는 힘을 그 아이에게 많이 써주었단다.”
“할아버지께요?”
내 물음에 영동 할매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웅이 그 아이가 공사판이나 물건을 내다 파는 장사치 노릇 할 때는 내가 지켜줄 게 별로 없었어. 다치지 않게 하는 게 고작이었지.”
“그러고 보니 공사 현장에서 한번 크게 다칠 뻔했는데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하셨다는 이야기도 하셨어요.”
“다 내가 지켜준 게야. 그렇지만 그게 한계였지.”
“아, 설마······.”
나는 영동 할매의 말을 듣고 떠오르는 게 있어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가 돈을 벌기 위해 다른 일을 하실 때는 일이 잘 안 풀렸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식당 일을 할 때마다 일이 술술 잘 풀렸다고 하셨어요.”
“나는 사람들을 배부르게 하고 지켜주는 신이니까.”
바닷바람으로부터 어부를 보호하고 풍어를 가져다주는 신.
자신을 위해 제를 올리는 사람들을 건강하고 배부르게 해주던 영동 할매는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아이가 세운 식당이 지금까지 이렇게 잘 이어져 네가 날 또 대접하니, 이 어찌 기쁜 일이 아니겠느냐.”
신기한 인연이었다.
배고픈 게 싫으셔서 영동 할매한테 열심히 기도했던 할아버지가 그 덕분에 ‘연성 백반’을 세우시고 이제 내가 그 식당을 물려받아 다시 영동 할매에게 요리를 해주다니.
인간과 성좌, 성과 속을 넘나드는 인연이라는 게 있긴 있구나 싶었다.
“수웅이가 자기 손주 자랑을 어찌나 하면서 한 번 만 가서 봐달라고 하더라. 내가 여기에 온 건 그 때문이야.”
“할아버지가······.”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었다.
나의 아버지, 즉 할아버지의 유일한 자식인 아들이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많이 쇠약해지셨지만, 그래도 어머니 말에 의하면 돌아가시기 며칠 전까지 식당 일을 하셨다고.
그런 할아버지의 마지막 걱정이 바로 나였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연성이놈 팔자가 뒤숭숭해. 큰 어르신들과 엮일 팔자야. 괜히 화를 입지 않으면 좋겠건만······.’
지금 성좌들에게 엮여서 요리를 대접하는 걸 보면 할아버지의 말이 딱 들어맞았던 모양이다.
어찌 됐든 돌아가시기 전까지 나를 걱정하시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영동 할매에게 나를 부탁하시다니.
“참, 걱정도 많으시다니까.”
나는 뜨거워지는 눈을 식히려 잠깐 고개를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를 마치 할아버지 대신이라는 듯 영동 할매가 토닥토닥 안아주었다.
“떡을 맛있게 먹었으니 이제 밥값을 치러야지.”
“그러지 마세요. 할아버지를 평생 지켜주셨잖아요. 영동 할매가 아니었으면 저도 없었을 겁니다.”
나는 밥값을 내겠다는 영동 할매를 한사코 말렸다.
그러나 고집은 영동 할매가 더 한 고집했다.
“대접받았는데 복을 주지 않으면 부정 타, 이것아!”
으으, 그놈의 부정.
기분이 좋아지셔도 달라지는 건 없는 모양이네.
자신의 호통에 목을 움츠리자, 영동 할매는 그런 내가 귀엽다는 듯 깔깔 웃음을 터뜨리곤 입을 열었다.
“내가 옛날과는 달리 힘이 많이 약해져서, 거창한 축복은 내리진 못하지만, 수웅이에게 해주었던 만큼 해주마.”
바닷바람의 가호.
손자가 인생의 역경을 피하도록 내리는 영동 할매와 내 할아버지의 마음이 담긴 축복이었다.
그 마음에 내 마음이 따뜻해져 왔다.
역경을 모두 피하지 못하면 어떠랴.
이 가호를 받은 것만으로도 할아버지, 그리고 영동 할매와 항상 함께 있는 기분이 들 텐데.
그리고 가호의 효과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덤으로 바다에서 언제나 풍족하게 먹을 걸 구할 수 있게 됩니다.]······대박.
이 가호가 있으면 앞으로 해산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잖아?
“할머니, 감사합니다!”
“영악한 놈. 지 할애비랑 똑 닮아서 먹는 거에만 관심 갖는 거 보소.”
아, 너무 티 났나?
그래도 어쩌겠어. 맛있는 걸 요리하고 먹고 대접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즐거운 일인걸.
나는 멋쩍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럼 난 이제 가보마.”
“아, 할머니, 잠시만요. 이거 가져가세요.”
나는 주방에 아직 남아있는 시루떡과 감자밥을 보자기에 모두 싸 왔다.
할아버지 생각이 나서 맛을 좀 볼까 했는데, 내가 먹기보다는 영동 할매에게 드리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였다.
“이렇게 많이 챙겨줘도 되겠느냐?”
“되고말고요. 나중에 또 드시고 싶으시면 찾아주세요. 오시면 맛있게 해드릴게요.”
“호호호, 네 덕분에 내가 호강하게 생겼구나.”
영동 할매는 내가 드린 보자기를 들고 기분 좋게 웃더니 가게 밖으로 나갔다.
그녀를 배웅하기 위해 문밖까지 따라가려 하자 영동 할매는 손을 내저었다.
“됐다. 이제 너도 쉬어야지, 어딜 나와.”
“할머니, 그래도······.”
“일 없다. 들어가.”
단호하게 내 배웅을 거절하던 영동 할매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내게 주름진 미소를 보이면서 인사를 건넸다.
“네가 싸준 게 양이 넉넉하니 가서 네 할애비와 나눠 먹으마.”
“네? 할아버지랑요?”
잠깐, 우리 할아버지가 내가 한 요리를 드실 수 있다고?
“자, 잠깐만요! 할머니!”
“호호호, 잘 있거라.”
더 물어보고 싶은 게 산더미였지만, 영동 할매는 웃음소리만 남기고 스르륵 사라져버렸다.
“하하······. 꿈만 같네, 이거.”
헤르메스가 왔다 갔을 때도 그랬지만, 오늘은 특히 더 그랬다.
‘신야식당’의 제대로 된 첫 손님이 우리 할아버지를 수호해주던 영동 할매라니.
거기다 내가 한 요리를 돌아가신 할아버지께 드릴 수 있다니.
“앞으로 열심히 할게요, 할아버지. ‘연성 백반’, 아니, ‘연성이네’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요.”
왠지 할아버지가 계실 것 같은 먼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 * *
“오늘은 특별히 디저트를 드립니다.”
“어머, 웬 시루떡이에요?”
손님들이 내가 나눠준 작게 자른 시루떡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제 할아버지 생각이 나서 기왕 떡 찐 김에 더 쪘거든.
생각해보면 ‘신야식당’도 신장개업인데 주변에 떡을 안 돌렸더라고.
이사나 새로 개업하면 시루떡 돌리는 게 국룰 아니겠어?
그래서 마력이 있는 그대로도 찌고 마력을 태운 재료들로도 시루떡을 쪘다.
참고로 마력을 태운 재료에는 설탕도 적절히 넣어서 더 맛있어졌다.
“많이는 못 드리지만, 맛있게 드세요.”
“정말 맛있어요. 사장님 떡집 하셔도 되겠는데요?”
“하하, 감사합니다.”
그렇게 손님들에게 떡을 나눠주고 다시 주방으로 향하려는 찰나였다.
[땅을 갈지 못하는 농부가 전에 약속한 대로 새로운 요리를 먹고 싶어 합니다.] [전장을 누비는 힘의 처녀가 당신의 안부를 물어보며 새 가게를 궁금해합니다.] [보이지 않는 저승의 왕이 막대한 보상을 해줄 테니 가게를 방문하고 싶어 합니다.]친숙한 성좌들에게서 메시지가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신들의 경쟁(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