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4
4화. 발키리는 배고프다
콰직!
빛처럼 쏘아진 창이 서리 거인의 머리를 뚫고 지나갔다.
서리 거인의 피답게 얼마나 차가운지 쏟아지자마자 얼어버렸다.
그 피를 밟고 선 이는 자신이 던진 창을 회수해 높이 들며 고함을 질렀다.
“발키리들이여! 나를 따르라! 저 얼음덩어리 거인들을 깨부수자!”
“스루드의 이름으로!”
자신을 연호하는 부하 발키리들의 외침에 발키리의 수장인 스루드가 씨익 웃었다.
그때, 그녀의 눈앞에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서리 거인의 군대가 보였다.
스루드는 자신의 방패를 들며 크게 외쳤다.
“쉴드월(Shield Wall)!”
쾅! 쾅!
무기와 방패를 부딪치는 소리가 전장을 울리며 발키리들이 방패를 들어 올렸다.
쉴드메이든, 즉 방패를 든 여전사들이라 불리는 발키리들의 방패 벽 앞에서 서리 거인의 공격은 단 하나도 그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공격이 실패한 서리 거인들의 운명은 뻔했다.
“찔러!”
방패벽 사이로 내찔러지는 창과 검.
죽음을 불러오는 갈까마귀, 발키리들의 공격에 서리 거인들은 모두 차가운 피를 뿌리며 전장의 시체가 되었다.
“후, 오늘도 멋진 전투였어.”
전투를 마친 스루드가 투구를 벗자 놀랍게도 그 안에서 황금을 녹여낸 것 같은 탐스러운 금발이 쏟아져 내렸다.
그녀의 부모 모두 탐스러운 금발로 유명했기에 그녀 역시 아름다운 금발로 유명한 이였다.
“스루드 님, 오늘도 대승입니다!”
“역시 위대한 전사의 딸!”
“그분과 비교해도 지지 않을 실력이세요!”
스루드의 아버지는 북유럽 신화 속에서 가장 위대한 전사였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와도 비교할만하다는 칭찬에 저도 모르게 빙그레 웃었다.
“정말? 내가 아버지만큼 잘 싸워?”
“그럼요! 스루드 님의 거인들 머리통 부수는 실력은 이미 아홉 개 왕국에 소문이 자자하다구요!”
“그거 기쁜 소리네. 헤헤헤.”
가차 없이 거인들의 머리통을 부수고 다니는 그녀였지만, 칭찬에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아이처럼 순수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모습조차도 아버지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부하 발키리들이였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스루드가 화났을 때 날뛰는 것도 아버지를 닮은 탓이었다.
“기분이다! 전투를 끝냈으니 잔치를 벌여야지. 내가 쏜다!”
“와! 고기! 고기를 먹어요!”
“고기 좋지! 가자!”
그러나 기쁨도 잠시, 전투의 승리와 만찬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뜬 스루드와 발키리들의 표정은 시커멓게 탄 고깃덩어리를 보고 시무룩해졌다.
“이, 이게 아닌데?”
포크로 푹 찌르면 육즙이 흐르면서 쑥 들어가야 할 터인데 스루드가 찌른 고기는 숯덩어리처럼 퍼석 하고 무너져 내렸다.
동시에 스루드의 표정도 무너져 내렸다.
“너무 태웠나? 그, 그래! 빵이 있지. 빵이라도 맘껏 먹자고!”
스루드는 얼른 미리 구워놓은 빵을 가져오라고 시켰지만, 빵이라고 멀쩡한 건 아니었다.
아드득!
전장을 누비며 거인들의 골통을 부수고 다니는 위대한 여전사들의 튼튼한 이로도 흠집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빵은 단단했다.
“스루드 님, 빵이 너무 딱딱해서 못 먹겠어요.”
“이거 누가 구운 거야?”
“쉿, 조용히 해. 스루드 님이 구웠어.”
“흡!”
발키리들의 소곤거림에 스루드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전장에선 그 누구보다 빛나는 활약을 보인 자신이 이런 추태라니.
두 번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스루드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전사가 무슨 고기나 빵으로 배를 채워! 술, 술이다! 전사의 혈관에는 술이 흐르는 법이지!”
“저기 스루드 님······.”
“으, 응? 왜?”
“미드(mead, 벌꿀주)가 너무 오래 둬서 식초가 됐는데요?”
아뿔싸.
전투 전에 시원한 동굴에 넣어놓고 온다는 걸 깜빡하고 밖에 내놓은 탓에 식초가 되어버린 술을 보며 스루드가 울상을 지었다.
“······미안해, 얘들아.”
그러자 부하 발키리들이 앞다투어 그녀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괘, 괜찮아요, 스루드 님! 저희는 안 먹고도 살 수 있잖아요!”
“그러엄! 우리가 누군데! 전사들의 영혼을 발할라로 데려가는 전장의 사신! 위대한 오딘의 전투 시녀!”
“오딘의 시녀······.”
부하들의 위로에 더 침울해지는 스루드였다.
발키리는 원래 발할라에서 오딘과 전사들의 술과 음식 시중을 드는 시녀들.
그러나 위대한 전사를 아버지로 뒀고 본인도 뛰어난 전사였던 스루드는 술 시중 따위 들기 싫다며 부하 발키리들을 데리고 발할라를 뛰쳐나온 상황이었다.
“발할라에 계속 있었으면 맛있는 요리를 먹을 수 있었을 텐데, 나 때문에 너희까지······.”
고개가 숙여지다 못해 땅속으로 들어갈 것 같은 스루드의 말에 결국 부하 발키리들도 말을 잃고 고개를 푹 숙였다.
다들 스루드와 마찬가지로 싸움은 누구보다 잘했지만, 요리나 가사 일엔 젬병인 탓이었다.
그렇게 기분 좋아야 했지만 망해버린 회식을 파하고 스루드는 혼자 남아 시무룩해 있었다.
“휴, 이럴 땐 하계인들이 부러워. 다들 맛있는 것만 먹고 다니던데.”
스루드는 ‘전장을 누비는 힘의 처녀’라는 이름을 지닌 성좌.
성좌답게 그녀가 계약을 맺고 후원하는 헌터들이 있었다.
그 헌터들이 어떻게 지내나 하계를 내려다볼 때마다 다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는 걸 보면 언제나 부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하계로 내려가 음식을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성좌들에게 하계의 음식은 격이 너무 낮아 먹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때문에, 항상 헌터들이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걸 하계 말로 ‘먹방’이라고 하던가.”
하계인이나 성좌들이나 먹방을 보다 보면 따라 먹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하지만 그럴 방법이 없으니 침만 꼴깍 삼키는 수밖에.
“뭐, 나만 그런 것도 아니니까.”
하계의 음식을 탐내는 성좌가 그녀뿐만은 아니어서 가끔 성좌 커뮤니티에 비슷한 글이 올라오곤 했었다.
그렇게 스루드가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끼려 성좌 커뮤니티를 찾아볼 때였다.
[(후기) 아놔~ 이넘들아~~ 으르신,,, 몸보신 했다~~!!!]글쓴이 : [왕년농사꾼]
– 야~~~~ 오늘,,, 인간 요리 먹었다,,,!!!
인간이 요리해봤자지,,, 맛은 개뿔,,,이라고 생각했는데,,,!!!
먹어보니,,, 허미 쉿펄,,, 천국에 계신 그분 본 줄 알아따,,,,!! 난 천국에,,, 못 가지만서두ㅠㅠ,,,,
농담이니께 써글놈들아,,, 웃어,,,^^
어쨌든,,, 요즘 애들 말로,,, 강추,,, 강추여,,,,!!
아주 노인네 입맛에,,, 딱이여,,, 또 갈겨~~~^^
다른 놈들도,,, 기회 되면ㅋ 꼭 가 봐~~!! 으르신의,,, 금과옥조니,,, 새겨 듣고~~~!!!
└ [형이싫은양치기] : 어휴 틀딱 냄새. 거기다 입만 열면 구라네. 성좌가 어떻게 인간 요리를 먹음? 어그로 오지네ㅋㅋㅋㅋ
└ [조왕신이조왕] : 근데 진짜면 겁나 부러운데. 정보 좀.
└ [형이싫은양치기] : 이걸 또 믿는 놈이 나오네ㅋㅋㅋ 능지 어디?
└ [재림한탐식] : 근데 인간들 요리가 맛이 있긴 함?
무려 인간의 요리를 먹어봤다는 글을 본 성좌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믿지 않고 무조건 거짓말이라고 하는 성좌도 있긴 하지만, 얜 그냥 커뮤 빌런 같고······.”
잠시 고민에 빠졌던 스루드는 글에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 [묠니르곧내꺼] : 진짜라면 혹시 정보 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정말 급해서 그래요ㅠㅠ
전장에서는 피를 부르는 전사인 자신이 커뮤에서 우는소리를 하는 게 조금 창피했지만, 어차피 익명이니까.
아무도 자신의 정체를 알지 못할 거라며 자신한 스루드는 댓글을 기어코 올리고야 말았다.
그리고 잠시 후,
[[왕년농사꾼] 님의 쪽지 : 스루드 처자,,, 궁금혀,,,?]“어, 어떻게 알아챈 거지? 아닌 척할까?”
정체가 들통난 이유를 전혀 알 수가 없어 당황한 스루드였지만, 둘러대는 것보다 인간의 요리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던 탓에 스루드는 눈 딱 감고 답장을 보냈다.
* * *
땅을 갈지 못하는 농부, 성좌 카인에게 코카트리스 삼계탕을 바치고 돌아온 다음 날.
나는 내가 다시 평온한 일상을 맞이할 거라고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전장을 누비는 힘의 처녀가 당신에게 관심을 가집니다.] [전장을 누비는 힘의 처녀가 자신도 인간의 요리를 먹고 싶다고 합니다.] [전장을 누비는 힘의 처녀가 왜 땅을 갈지 못하는 농부한테만 공물을 바치냐며 투덜댑니다.]띵- 띵- 띵-
하루 종일 울리는 메시지 알람 소리에 미쳐버리겠네.
장사에 집중이 전혀 안 되잖아!
카인도 그러더니 성좌들은 다 원래 이렇게 질척대나?
얘기 들어보면 성좌들이 연락하는 건 계약할 때랑 중요한 퀘스트 내릴 때 말곤 없다던데 왜 나한테만 이래?
“어휴, 진짜 매달리는 전여친도 아니고.”
“네? 저한테 하는 말씀이세요?”
하도 짜증 나서 혼잣말로 중얼거린다는 게 계산 중인 여자 손님한테 들린 모양이었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닙니다. 요즘 자꾸 뭘 해달라는 사람이 있어서요. 하, 하하.”
“아, 그러시구나······.”
전혀 안 믿는다는 표정을 한 여자 손님이 가게 밖으로 나갔다.
아, 다신 안 오실 것 같네.
나는 부글부글 끓는 마음으로 허공에 대고 외쳤다.
“아, 메시지 좀 그만 좀 보내요! 장사를 못하겠잖아요!”
“으아아! 성좌용 요리가 무슨 3분 만에 뚝딱 나오는 카레인 줄 아세요?”
다행히 손님이 없는 한가한 시간대라 이상한 사람 취급받지 않을 수 있었지만, 이렇게 계속 메시지를 받다 보면 내가 미쳐버릴 것 같았다.
[전장을 누비는 힘의 처녀가······.]“알았어요, 알았다구요. 요리해드리면 되잖아요!”
[······드디어 하계의 요리를 먹을 수 있다며 매우 기뻐합니다.]요리 하나에 이렇게 기뻐하다니.
내가 알던 위대하고 근엄한 성좌의 이미지는 나락으로 간 모양이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물었다.
“대체 무슨 요리를 드시고 싶으신 겁니까?”
[전장을 누비는 힘의 처녀는 전사다운 요리를 원합니다.]“······전사다운 요리?”
아니, 어떤 요리인지 정확하게 말해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주문한다고?
카인은 그래도 내가 요리한 걸 달라고 해서 준 거니 쉽기라도 했지.
이건 그냥 ‘아무거나 주세요’랑 뭐가 달라?
나는 한숨을 깊이 내쉬며 말했다.
“일단 식당이 우선이니 장사 다 끝나면 그때 다시 이야기합시다.”
[전장을 누비는 힘의 처녀가 식당이 끝나면 바로 먹을 수 있는 거냐고 묻습니다.]“그럴 리가요. 아직 무슨 요리를 할지도 안 정했는데.”
요리를 정하고 나면 레시피에 맞춰 재료를 구해야 했다.
코카트리스 삼계탕도 요리하기까지 꽤 고생했었다.
잘 나가는 헌터인 동생이 아니었으면 재료 구하는 것도 힘들었을 테니까.
“그러니 제발 얌전히 있어 주세요. 요리해드릴 테니까요. 네?”
[전장을 누비는 힘의 처녀가 입이 댓발로 나와서 알겠다고 합니다.] [전장을 누비는 힘의 처녀가 요리를 해주지 않으면 오딘의 수염에 걸고 천벌을 내릴 거라고 엄포를 내립니다.]아니, 성좌가 보내는 메시지는 저런 말도 쓰나?
나는 삐졌다고 티를 팍팍 내는 성좌를 보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나저나 대체 전사다운 요리가 뭘까?”
오딘의 수염 어쩌고 하는 걸 보니 대충 북유럽 신화 계통 성좌인 거 같은데.
그쪽 전사라면 떠오르는 게 바이킹밖에 없는데 말이지.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바이킹요리에 대해 이것저것 검색을 시작했다.
“음? 이런 요리가 있었네?”
내 눈에 든 요리는 바이킹식 통삼겹살 보쌈 요리, 플레스케스텍(Fløskesteg)이었다.
전설급 퀘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