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72
72화. 광장 헌터 마켓
“여, 동생. 왔냐?”
“형, 여기 가려고 부른 거야?”
광장 헌터 마켓 입구 앞에서 연준이 녀석이 기가 찬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평소랑 달리 눈을 가릴 정도로 깊숙이 눌러쓴 버킷햇, 그러니까 벙거지 모자에 선글라스, 마스크까지 써서 철저히 얼굴을 가린 상태였다.
“아이돌이냐? 뭐 그리 꽁꽁 싸매고 왔어?”
“······비슷해.”
S급 헌터의 인기는 유명 아이돌이랑 비슷할 정도라나.
하긴 게이트 사태 이후로는 아이돌보다 헌터들의 인기가 더 높긴 하지.
그래도 나는 어릴 적에 무려 VTS와 벨벳핑크가 전 세계를 호령하는 걸 본 사람이다.
내 동생이 아이돌급 인기라고는 인정 못 해.
······뭐, 기생오라비처럼 잘생기긴 했다만.
“뭐, 안내만 잘해주면 되지. 앞장서.”
“나 여기 처음인데.”
“응?”
내 말에 곤혹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하는 연준이.
아니, 이게 무슨 말이야? 헌터가 헌터 마켓이 처음이라니?
“아니, 너 헌터잖아. 여기 한 번도 안 와봤어?”
“다 길마 형이 알아서 사다 줬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하는 연준이를 보며 나는 이마를 붙잡았다.
허윤권, 그 양반.
길드 마스터면서 우리 연준이 전속 매니저처럼 따라다니더니 이런 심부름까지 하는 거였냐.
아무리 S급 헌터에 미스틱 길드를 키워준 일등 공신이라도 자존심도 없나?
“없겠지. 얘가 벌어다 주는 돈이 얼만데.”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다. 그런 게 있어.”
나는 소용이 없어진 안내꾼 동생을 보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보고 선글라스와 마스크 너머로 불쾌해하는 동생의 기색이 느껴졌지만, 지가 뭘 어쩔 거야.
꼬우면 형 때리고 패륜아 되던가.
“이대로 돌아갈까. 아냐, 그래도 보기는 해야지.”
이대로라면 내가 연준이한테 헌터 마켓을 설명해주는 상황이 될 터였다.
나야 약초상 들린다고 몇 번 와봤으니까.
그냥 무작정 돌아다녀 보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내딛으려는 찰나였다.
“어? ‘연성이네’ 사장님?”
내가 ‘연성이네’ 사장인 도연성이니 맞는 말인데 누구지? 하며 고개를 돌렸다.
“윤진하 씨?”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우리를 향해 훤칠한 키의 미녀 헌터, 윤진하가 다가오고 있었다.
잘 됐다. 그녀를 본 내가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안내 좀 해주세요!”
“······네?”
아, 너무 본론만 말했나?
나는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으며 사정을 설명했다.
“그런 거라면 저한테 맡겨주세요.”
내게 사정 설명을 들은 윤진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광장 헌터 마켓을 탐방하는 멤버가 세 명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놀랍게도 윤진하와 연준이는 이미 서로 아는 사이였다.
“예전부터 아는 사이였어. 둘이서 같이 던전 공략도 했었고.”
“정말요?”
내가 윤진하를 바라보면서 묻자 그녀는 아직도 얼떨떨한지 고개를 끄덕였다.
“도연준 헌터가 각성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부터 종종 같이 헌팅 뛰었어요. 상부 지시였거든요.”
“상부 지시요?”
“네. 소문에 의하면 회장님 지시라고······. 그때 미스틱 길드는 많이 영세해서 독자적으로 던전 공략이 힘들었거든요.”
아, 그렇게 된 거였구나.
삼천 길드의 회장님이라면 당연히 국밥 할아버지, 아니 삼천 그룹 천 회장님.
연준이가 본인의 지원을 거부하고 미스틱 길드로 간 덕분에 직접 지원은 못 해주고 길드 자체를 지원해주는 방식으로 성의를 보인 모양이었네.
정작 천 회장님을 탐탁지 않아 하는 연준이는 입술을 삐죽거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신기하네요. 제 동생과 진하 씨가 원래 알고 지내던 사이라니.”
“얼굴만 아는 사이야.”
“야, 섭섭하게 그럴 거야?”
“흥.”
막 각성했을 때는 등급은 높아도 초보였던 연준이를 윤진하가 많이 가르쳐준 모양이었다.
그래서 꽤나 친한 듯했다.
짜식, 안 보는 사이에 사회생활도 하고 잘살고 있었네.
그렇게 동생의 초보 시절 이야기를 윤진하에게 들으면서 우리는 광장 헌터 마켓 입구로 향했다.
“도, 도연준 헌터님! 영광입니다!”
연준이를 알아본 헌터 마켓 직원의 호들갑.
종종 마켓에 왔다는 윤진하와 달리 처음인 연준이의 방문에 흥분한 모양이었다.
“야, 인기 좋다?”
“불편하기만 해.”
“얼씨구, 진짜 아이돌처럼 대답하네.”
나는 킥킥 웃었지만, 연준이는 진짜 불편한 기색이었다.
윤진하는 그런 우리 형제를 재밌게 보더니 앞장서서 걸어가며 우리에게 광장 헌터 마켓을 안내했다.
“여긴 원자재 구역이에요. 던전에서 캐온 광석이나 목재 같은 원재료를 파는 곳이죠.”
윤진하가 가리킨 곳에는 여러 종류의 광석과 목재, 그리고 흙 같은 게 잔뜩 쌓여 있었다.
“파는 상품들이 마력이 좀 짙어서 정말 필요할 때 외에는 접근하지 않는 게 좋아요.”
그녀의 말대로 방출되는 마력이 꽤 강한 지 상인들도 죄다 마력 방호복을 입고 있었다.
물론 S급 헌터인 윤진하와 연준이는 아무렇지 않아 했고, 나 역시도 이제 마력이 몸에 해로울 수준은 아니게 됐으니까.
“이쪽은 포션이나 기타 약재를 파는 곳이구요.”
여기는 나도 잘 안다.
채하나의 약초상이 있는 곳이었으니까.
나랑 윤진하에겐 익숙했지만, 연준이는 신기한지 이곳저곳 둘러보고 있었다.
“저쪽으로 가면 헌팅몰이 있어요. 중저가의 헌팅 장비를 파는 곳이죠.”
“사람이 제일 많네요.”
“아무래도 원재료나 약초, 포션보다는 아이템이 수요가 더 많으니까요.”
아이템이 진열되어 있고 상인들과 손님으로 보이는 헌터들이 가격을 흥정하며 소란스러운 구역이었다.
“후, 정신없어.”
연준이가 질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어댔다.
아이템을 살 건 아니었으니 굳이 갈 필요는 없겠지.
우리는 다음 구역으로 넘어갔다.
그러자 내게는 익숙한 냄새가 났다.
“저기는 해체 구역이에요. 몬스터를 해체하고 소재를 가공하는 곳이죠.”
아, 피 냄새였구나.
방수 앞치마를 두른 사람들이 거대한 소 모양의 몬스터 사체를 해체하는 게 보였다.
놀랍게도 그 소의 가죽은 금속 비늘로 되어 있었다.
“제길, 칼이 또 부러졌어!”
“[검기] 사용자 없어?”
“내가 검기 쓸 줄 알았으면 여기서 해체하고 있겠냐!”
피부가 오죽 단단하면 아이템으로 보이는 해체 칼로도 가죽에 흠집도 못 내는 모양이었다.
연준이가 그걸 보고 눈을 빛냈다.
“고르곤이네. A급 몬스터야.”
“고르곤?”
“응. 피부가 갑옷처럼 단단하고 독 숨결을 내뿜는 몬스터야. 칼날이 안 들어가서 몽둥이로 때려잡아야 하는 몬스터인데 용케 잡았네.”
연준이가 감탄하자 옆에서 윤진하가 자신이 아는 것을 이야기해줬다.
“음파를 다루는 헌터가 파동 공격으로 안에서부터 공격해서 잡았다는 소문이 있었어.”
“[통배권]인가? [격산타우(隔山打牛)]의 수법일지도.”
“어휴, 누가 무림 쪽 헌터 아니랄까 봐.”
어떻게 고르곤을 잡았는지 추측에 빠진 연준이를 보며 윤진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장님, 얼른 가죠.”
“잠시만요.”
미안하지만 나도 저 고르곤이라는 몬스터에 관심이 있거든.
저거, 소고기 대용으로 쓸 수 있으려나?
견우에게서 ‘천우(天牛)’의 꽃등심을 받아서 요리에 써본 뒤로 제대로 소고기 요리를 해보고 싶어졌거든.
“연준아, 너라면 저 가죽 벗길 수 있지?”
[검기] 사용자가 필요하다고 했다.연준이는 다름 아닌 검선의 제자에 S급 헌터니 당연히 가능하겠지.
내 물음에 연준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고기가 필요해?”
“응. 한 번 시도해볼 가치가 있을 것 같네.”
단순히 소라서 그런 게 아니었다.
‘격’을 볼 수 있게 된 내 눈에 저 고르곤이라는 몬스터의 고기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보였으니까.
특히 엉덩이 쪽에 기운이 반짝이는 걸 보니 저쪽이 맛있어 보였다.
우둔살이려나? 아니면 홍두깨살?
“해볼게.”
연준이는 그렇게 말하곤 해체작업자들에게 다가갔다.
처음에는 외부인에게 퉁명스럽게 대하던 작업자들은 연준이가 선글라스를 벗고 마스크를 살짝 내리자,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부, 부디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가실 때 사인도 좀······.”
이야, 진짜 아이돌급 인기네.
연준이는 자신의 검을 놓고 왔기에, 해체작업자의 도축용 칼을 빌렸다.
그리고 잠시 힘을 주자,
우우웅!
하고 푸른 검기가 흘러나왔다.
“와, 저게 검기구나.”
“사장님은 처음 보시겠구나. 연준이의 검기는 정밀하고 농도가 짙기로 유명해요.”
윤진하의 말대로 연준이는 검기가 서린 도축용 칼로 고르곤의 단단한 금속 피부를 마치 종이 가르듯 슥슥 잘라냈다.
해체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작업자들의 표정이 한층 더 밝아졌다.
“감사합니다!”
“아, 감사하면 혹시 소고기 좀 얻어갈 수 있을까요?”
“네?”
연준이 옆에 가서 고기를 요구한 나를 보며 해체작업자들이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라는 표정을 지었다.
“고기는 쓸모없어서 버리는 거라 상관없지만 이걸 어디에 쓰시려고······?”
마력이 깃든 고기를 달라고 하면 당연히 의심부터 하겠지.
내가 아니면 몬스터 고기는 먹으면 죽는 독극물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이걸 어떻게 설명해줄 수도 없고.
내가 난감해하고 있을 때였다.
“그냥 주세요.”
“넵!”
연준이 녀석의 말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이는 작업자들.
크, 이게 S급 헌터의 위엄이구나.
동생 하난 잘 뒀네, 내가.
나는 해체작업자들의 허락을 받고 고기를 살폈다.
“어디 보자, 다른 부위는 전부 엉망진창이네.”
음파 공격으로 잡았다더니 내장이 모두 터져 내용물이 고기에 잔뜩 스며 있었다.
이런 경우에는 고기에서 역한 냄새가 나서 요리에 쓰지 못한다.
다른 부위도 음파 공격 때문인지 살이 짓뭉개져서 쓸 수가 없었고.
“그나마 괜찮은 게 우둔살인가.”
괜히 엉덩이 쪽에서만 기운이 빛난 게 아니었구나.
나는 [최초의 검]을 품에서 꺼내 우둔살을 슥슥 잘라냈다.
그걸 본 해체작업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호, 혹시 고위 헌터십니까?”
“네?”
“고르곤의 고기 역시 가죽만큼은 아니어도 질기고 튼튼해서 보통 칼로는 안 잘리는데······.”
아, [최초의 검]이 워낙 잘 들어서 내가 연준이처럼 검기를 쓴다고 착각한 거였구나.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칼이 잘 들어서요.”
“그 칼 정보 좀······!”
배고픈 성좌한테 밥해주고 받으시면 됩니다, 라고 말할 수는 없었으니 나는 그냥 난처하게 웃고 넘겼다.
해체작업자들은 내가 대답을 해주지 않자 아쉬운 눈치였지만, 연준이의 눈치를 보곤 더 묻지 않았다.
S급 헌터 최고!
그렇게 얻어낸 두툼한 우둔살을 종이로 감싸서 가지고 들어오자 윤진하가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걸로 어떤 요리를 하실 건가요?”
“글쎄요, 우둔살은 여러 요리에 쓰이거든요.”
우둔살은 지방이 적고 살코기가 많아서 구이보다는 다른 재료로 많이 쓰인다. 불고기나 장조림, 육포 등.
그렇지만 역시 광장 시장에 왔으니,
“육회가 좋지 않을까요?”
헌터 마켓으로 바뀌기 전에는 육회로 유명했던 광장 시장.
여기서 고르곤의 소고기를 얻었으니 육회를 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았다.
“육회! 빨리 용무 보고 가요!”
육회라는 소리에 눈이 뒤집힌 윤진하가 나를 잡고 다른 구역으로 향했다.
“여기가 마지막 구역이에요. 수제 장비를 만드는 장인 구역이죠.”
헌터라면 누구나 양산형 아이템이 아닌 자신의 몸에 딱 맞게 제작된 아이템을 원하는 법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아이템이어야 위기의 순간에서 조금이라도 더 목숨을 살릴 확률이 높아지니까.
그래서 아예 헌터몰과 달리 장인들이 모인 구역이 따로 있는 모양이었다.
“진하 씨는 저기로 가나요?”
“아니요. 저는 2층의 VIP 장인 구역으로 갈 거예요.”
광장 헌터 마켓 2층은 상위 등급 헌터들을 위한 고급 매장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이제 S급 헌터가 된 윤진하니, VIP 대우를 받겠지.
윤진하의 안내를 받고 2층으로 올라가려는 순간이었다.
“어?”
1층 장인 구역의 허름한 외곽에서 내게 굉장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저 양반이 왜 저기에 있지?
그 얼굴의 정체는 다름 아닌, 북유럽 성좌 스루드의 부탁으로 내 주방을 바꿔준 장인, 드워프 알비스였다.
만년한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