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101
101화. 동맹들
다들 이야기하길 프리아모스는 중흥의 군주다.
무너져가던 트로이아를 되살린 위대한 재건자이고, 주변의 동맹국들로부터 깊은 신뢰를 사낸 덕 있는 왕이기도 하다, 라고들 이야기한다.
그러나 사실 프리아모스는 중흥의 군주나 재건자보다는 사실상 건국자다.
무너진 나라, 쑥대밭이 된 도시, 부랑자가 되어 흩어진 시민을 다시 세우고 불러모은 도시의 개창자다. 성벽이랑 몇몇 신전, 주춧돌 말고 트로이아에 남은 옛 흔적이란 거의 없으니.
두번째, 프리아모스는 그저 덕 있고 선량한 왕이 아니다. 나라가 무너졌는데 주위에서 이 요충지를 통째로 잡아먹으러 오지 않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혼란 속에서 빠르게 정신을 차린 프리아모스가 트로이아의 유민들을 빠르게 결집시킨 것도 그렇지만, 주변국들의 지원과 협조를 끌어내면서 많은 정치적 빚을 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 정도면 빚도 자산인 법이다.
프리아모스에게 은혜를 입힌 동맹국의 왕과 족장들은 자신들이 통제할 수 있는 프리아모스가 트로이아를 안정화하는 데 만족했고, 프리아모스가 그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데 안심했다.
물론 그 뒤로 프리아모스가 그렇게 생긴 무수한 채권자들에게 무릎 꿇지 않고서 당당한 한 나라의 왕으로서 남을 수 있었던 건 외교적 감각 덕택이다.
그 능력을 단순히 ‘덕이 있다’ 정도로 축약할 수는 없다.
프리아모스가 동맹들로부터 얻어낸 깊은 신뢰는, 수십 년에 걸쳐 쌓아올린 정치적 작품이었다.
“···근래 안탄드로스의 상황에 대해 왕께서 걱정이 많으십니다.”
심지어 국내에서 강철을 쏟아내고 그걸로 대규모 병장기를 발주해도 무너지지 않을 만큼 견고하기도 했고.
지금 미시아의 왕이 보내온 사절 또한 그리 말하지 않는가? ‘걱정이 많다’고. 그게 전부다.
물론 저건 단순히 외교적 언사고 그 너머에는 단순 걱정보다 깊은 의심과 불안이 잠자고 있겠지만, 그걸 드러내놓고 따지지는 않을 정도의 수위라는 것이리라.
“트로이아의 상황에 대해서 말입니다.”
미시아의 사절은 나도 알고 있는, 이후 트로이아의 동맹으로서 참전하는 예언자 엔노모스였다.
그는 뭔가 어려운 수학문제를 푸는 듯 날아가는 새의 형상을 유심히 지켜보면서 말을 이어갔다.
“양국은 오랫동안 서로 우호하는 관계를 맺으며 평화를 지켰습니다.
헌데 갑작스레 안탄드로스에서 무수한 강철이 쏟아져나오고 트로이아의 병졸들이 쇠갑옷으로 무장하고 있다 하니 시민들의 불안이 만만치 않습니다.”
정작 본인은 그래보이지 않았지만.
“그렇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미시아의 용맹한 텔레포스 왕과 트로이아의 덕 있는 프리아모스 왕은 우정을 두텁게 쌓아온고로 시민들 역시 ‘라오메돈의 아들 프리아모스는 의리를 아니 걱정할 필요 없다’라며 안심하고 있습니다.
허나 저희는 당신의 차남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 우정을 쌓아온 바도 없으니 불안한 마음을 쉬이 잠재울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트로이아의 편을 들어 참전하는 엔노모스의 형제 크로미오스가 말을 잇는다.
두 사절은 “너는 믿더라도, 어디서 굴러왔는지도 모를 네 아들은 어떻게 믿냐.”라는 말을 상당히 세련된 방식으로 발화했다.
이런 일이 벌써 요사이 몇 번째였다.
지난번에는 바다 건너의 트라키아, 그 전번에는 프리기아, 카리아, 리디아···.
대강 21세기의 튀르키예 땅 서쪽 연안에 자리잡은 모든 나라가 우리에게 항의 표시를 보냈다 하면 얼추 이해할 수 있으리라.
“우방국에서 온 벗들이여, 그대들의 우려는 나 역시 동감하는 바요. 허나 우리는 우리의 부를 홀로 독점하지 않았소.
나의 아들 파리스는 주변 도시들에 도로를 놓으며 그 풍요를 나누어주었고, 나의 통치가 닿지 않는 테베(Υποπλακίη Θήβη, 카드모스가 건국한 그리스 본토의 테베와는 이름만 같을 뿐 다른 도시다. 오늘날의 튀르키예 땅 서부에, 그러니까 트로이아 인근에 존재했다. 오늘날 학자들은 흔히 킬리키아 테베라고 불러 구분한다.) 역시 그 덕을 입었으니 이는 우방에 대한 우리의 변치 않는 충실함을 드러내는 것 아니겠소?”
“하오나···”
“그대들의 조국도 바로 얼마 전에 겪었겠지만, 아마존 족의 매서운 침공이 있었소. 우리 역시 다르다노스 등지가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그때 이러한 대비가 큰 도움이 되었소. 해적들로부터 조국과 시민을 위한 조치라 생각해주시오.”
아무튼 프리아모스 역시 그에 걸맞은 정중한 언어로 화답한다. 프리아모스의 해명은 그 뒤로도 길게 이어졌다.
요지는 이랬다.
나는 왕자 파리스를 꽉 잡고 있다. 목줄과 입마개도 이렇게 잘 채우고 있다.
파리스는 그럴 아이가 아니다. 우리 파리스는 순해서 다른 도시를 물거나 하지 않는다.
당연히 납득할 수 없는 대답에, 미시아의 사절 중 크로미오스는 찝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예언자 엔노모스는 만족한 듯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제가 이곳으로 오는 길에 사슴 한 마리를 사냥했습니다. 아까 바쳤던 뿔이 그 녀석에게서 나온 것이죠.”
“선물은 고맙게 받았소.”
“아닙니다. 어쨌건 저는 천직이 점쟁이인지라 짐승을 잡으면 꼭 그 내장으로 점을 쳐봅니다.
···트로이아가 낯선 손님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
프리아모스는 조용히 엔노모스의 입을 주시했다.
“조국으로 돌아가 때를 기다리라 말해두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미시아에서 온 사절들은 알현실을 나섰다. 한 사람만을 제외하면 납득하지 못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그들의 발걸음 소리가 완전히 멀어지고 나서야 나는 프리아모스에게 말을 걸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아니다. 하투샤와의 전쟁을 준비하는 건 국가의 중대한 일이니 우리도 네게 갑옷의 공급을 맡긴 것 아니겠느냐?”
프리아모스는 예의 인자한 미소를 지어보이면서도 여전히 아쉬운 표정을 지우지 않는다.
“하지만, 너무 과한 것은 아니겠느냐? 주변의 동맹들이 불안해하면 추후에 좋지 않은 일로 돌아올 수도 있을 게다.”
“혹시 아버지께서 하투샤와의 전쟁 위험을 언급하면 되지 않을까요?
어차피 며칠 전에 사신이 찾아온 프리기아나 이번에 아버지를 알현한 미시아 모두 하투샤에서 트로이아로 오는 길목 쪽에 있지 않습니까? 도움을 요청하면 함께 해줄 수 있을 겁니다.”
“아니다.”
딴에는 꽤나 고민해서 꺼낸 제안이었는데, 프리아모스는 단칼에 부정한다.
“모든 일이 그렇듯, 전쟁에서도 명분이 중요한 법이다.
아직 하투샤 쪽에서 전쟁을 준비하는지 어떤지도 모르는데 우리 쪽에서 먼저 대대적으로 전쟁을 준비하며 주변 동맹들을 포섭하려 하기까지 한다면 그건 반역이다.”
“아···.”
물론 언젠가 하투샤가 쳐들어오리라는 것은 알지만, 아직까지는 공식적으로 ‘짐작’에 불과하니.
“어차피 하투샤에서 군사를 내어 서쪽을 정벌하려 한다면 자국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우리에게 붙을 동맹들이다. 굳이 그렇게 약점을 벌써부터 내보일 필요는 없겠지.”
프리아모스는 그리 말하고는 옥좌에서 몸을 일으킨 뒤 헤카베와 함께 알현실을 나선다.
헤카베는 알현실의 문을 밀치던 도중 무언가 생각난 듯 뒤를 돌아보더니 나를 향해 눈을 맞춘다.
“파리스?”
“예, 어머니.”
“조심하거라.”
“알겠습니다.”
“하지만 조심하는 선 안에서는··· 최선을 다하거라. 네가 하고픈 대로 했으면 하는구나.”
“예?”
“우리가 널 지켜줄 테니.”
헤카베는 약간 망설이다 마지막 말을 이었다.
“···널 지켜주지 못한 세월이 너무 길잖니.”
그리고 알현실의 문이 닫힌다.
나 역시 의자에 걸쳐놓았던 망토를 다시 어깨에 두르고서 나설 준비를 마친다.
안탄드로스의 상황, 안탄드로스의 상황이라···.
그래. 점검하지 못한 지도 꽤 됐지.
해야 할 일도 있고.
알현실 문 바깥으로 나서니 사방이 분주하다.
시종들은 앞으로 닥칠 행사를 위하여 음료와 음식, 손님과 사제들을 모았고 다른 이들은 궁전 안팎을 색색깔의 천으로 장식했다.
여러모로 어수선하면서도 뭔가 들뜬 분위기.
큰 행사를 앞두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오라버니?”
“아, 크레우사!”
지난 며칠 사이에 꽤나 빠르게··· 가까워졌다고 할지, 친해졌다고 할지, 아무튼 익숙해진 얼굴의 크레우사가 내 앞으로 시녀들을 이끌고 오도도 달려온다.
궁정 내의 장식 배치를 감독하는 중이었는지 손에는 이런저런 색깔로 물들이고 신들의 모습이 수놓아진 삼베 천들이 들려 있었다.
크레우사는 내 앞에서 한번 빙글 돌더니 나를 향해 말한다.
“어때요? 결혼하는 날 입을 옷인데, 괜찮아요?”
당연히 백색의 드레스는 이 시대에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화려하게 금실이 수놓아진 붉은색 바탕의 튜닉과 망토가 바람에 살랑인다.
저 위에 베일과 화환과 목걸이 등 각종 장신구를 걸친 채, 마찬가지로 화려한 옷을 차려 입은 아이네이아스와 함께 행진을 하고 잔치를 벌일 거다.
···결혼하는 아이네이아스라니, 포차에서 술 마시고 인생 한탄하는 뽀x로만큼이나 상상이 안 된다.
“정말 잘 어울려. 아이네이아스라면, 음, ‘어, 어, 어, 엄청 예, 뻐요.’라고 해줄 거야.”
“풉··· 고마워요. 덕분에 제가 반역자라고 목이 잘리거나 하는 일 없이 무사히 일이 이렇게 되네요. 특별히 결혼 연회 때 오라버니를 옆자리에 모시고 싶은데 괜찮겠어요?”
“어··· 아냐. 나쁜 생각일 것 같네.”
“왜요?”
“내 옆자리면 오이노네도 같이 앉을 것 아냐.”
“···아.”
결혼식에서 남편 첫사랑을 근처에 앉혀놓는 짓은··· 안 된다.
그런 고로, 트로이아를 잠시 떠나 있어야 할 이유가 한 가지 더 늘어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배편을 구하고 포세이돈과 스카만드로스 강의 신께 제사를 올렸다.
그리고는 이노와 함께, 곧장 안탄드로스를 향하여 출항했다.
***
주변국과의 마찰은 항상 예상하던 문제였다.
육로 교통을 통해 트로이아의 권역 바깥까지 뻗어나간 것도 그 때문이었으니.
안탄드로스의 부가 해로를 통해 아카이아로 유출되는 시기를 늦추고, 그 대신 주변 도시와 부족들의 입에 꿀을 물려주어 입을 다물게 한다.
-깡! 깡! 깡!
“파리스 님! 찰갑이 300벌 정도 완성되었습니다! 근위대원들에게 들려주면 되겠습니까?”
그렇지만··· 이건 무리였나?
“아닐세. 빠르게 나눠주는 것보다는, 누구만 먼저 나눠주느니 누구는 늦게 주느니 하면서 분란을 만들지 않는 편이 더 중요하니. 인원수대로 500벌은 완성하고서 배포하지.”
“알겠습니다! 다들 들었나! 이번달 안까지 200벌 더 제작하면 보수를 2배로 쳐주겠다!!”
아니다. 내가 안탄드로스에서 한 게 뭐가 있다고.
해봐야 부랑민들 모아서 강철로 된 농기구(낫, 괭이 등. 살상 가능.) 간단한 민방위 훈련 정도만 진행한 정도고,
대대적으로 운동 경기를 열어 주위 도시들에서 인재를 빨아들인 뒤 기백 명 규모의 근위대를 창설하고서 철갑으로 완전무장을 준비시킨다든가,
근처 도시와 부족들의 장로들을 매수해 등 뒤에서 도시들을 조종하고 있을 뿐인데.
···
···확실히 프리아모스가 아니었더라면 뭔가 일이 나기는 했으리라.
지금의 파리스와 반정 직전의 수양대군을 비교하면 아마 후자가 더 충신처럼 보이지 않을까.
그렇지만 그만둘 생각도 없고, 그만두려 해도 그만둘 수 없다.
이미 대규모의 대장간이 세워져 강철을 양산하고, 평생 고용을 약속한 근위대가 발족된 이상 되돌리는 일은 불가하다. 도시가 뒤집힐 폭동을 각오하는 게 아니라면야.
확실히 닥쳐올 하투샤와의 전쟁이 가까웠고,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아카이아와의 ‘트로이 전쟁’ 역시 대비해야 한다.
여기서 이 모든 걸 놓아버릴 수는 없다.
내가 택할 방법은 단 하나.
“아노이토스?”
“예, 주군.”
“트로이아에 바치는 공물의 양을 늘리지. 병장기의 개수도 반에서 3분의 1 정도는 늘리게. 라오메돈의 아들 프리아모스의 명의로 각 신들께 번제물을 바치고.”
“알겠습니다.”
“거기에 테오에게 근위대의 훈련을 서둘러달라고 전해줬으면 하네. 부왕께 새로 창설될 안탄드로스 근위대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군.”
반역에 대한 의심을 덜어내는 것.
저 바깥의 왕국들은 프리아모스의 신의를 믿는다. 물론 그것도 어느 정도 한도가 있겠지만 적어도 프리아모스가 무모하고 어리석은 짓으로 사방에 적을 만들지 않으리라는 건 안다.
저들이 못 믿는 건 나다.
그동안 존재조차 몰랐는데, 갑자기 불쑥 튀어나와 자신을 왕자라 주장하는 수수께끼의 인물.
어느새부터인가 막대한 부를 쌓아놓고서, 자신의 무력집단을 키우다 마침내 한 도시의 군주까지 오른 프리아모스의 차자(次子).
프리아모스를 믿더라도 그 프리아모스가 파리스의 손에 목숨을 잃고 안탄드로스가 트로이아를 불태운다면 신의와 신뢰 역시 프리아모스의 유골과 함께 잿더미가 될 테니.
저들의 불안을 해소해주면서 지금의 사업을 이어가려면 그 수밖에 없으리라.
지금 가는 길은, 그대로 걸어간다.
어차피 때가 되면 저들 모두 우리의 옆에서 싸우게 될 테니. 트로이아 왔던 미시아의 사절 이름도 엔노모스였지.
아킬레우스에게 죽는.
“파리스 님? 테오가 파리스 님을 부르는군요. 곧 훈련을 시작할 테니 교관의 권위도 실어주고 사기도 진작시킬 겸 참석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노이토스가 나를 부른다.
“내친 김에 스클레오스도 불러오는 게 좋을까? 본인이 만든 무기가 어떻게 쓰이는지 보면 나중에 유용할지도 모르니.”
“좋은 생각인 것 같군요. 한번 원형 경기장 쪽으로 오시라고 스클레오스 님께 전갈을 보내놓겠습니다.”
그래.
이대로만 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