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129
방문 (1)
오랜 논쟁 끝에 결론이 났다.
“원래 강은··· 사람이 옆에 살면 오염되게 되어 있소.”
원래 수도교 건설 쪽을 밀어주던 스클레오스가 조곤조곤 말했다.
“그는 케브렌 강의 지류를 다스리시는 모든 분들께서도 이미 알고 계실 것이오. 오수가 하수도를 거쳐 바다로 곧장 나가니, 강의 오염은 많이 줄겠지만 한계가 있소.
애초에 인구가 느는 것은 필연이고, 인구가 늘면 주위에 있는 물에 대한 수요는 늘고 주위의 물은 오염될 수밖에 없소.
거대한 하수도를 건설한 이상 거기에 영향받지 않는 깨끗한 우물을 팔 곳도 흔치는 않고 말이오.”
한쪽에 선 석공들이 마뜩찮은 표정을 지어 보이자, 스클레오스가 가만히 웃어보이며 말한다.
“허나 이미 그대들의 의견들을 들어본 바, 적군에게 외부의 수원지를 장악당한다면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오.”
“그렇다면?”
“만일을 대비하여 우물을 파는 것으로 하지. 다만 평소에는 사용을 금지하고 덮어놓았다가, 전시가 되면 본격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전쟁이 나면 안탄드로스의 성문이 닫히고, 수도교는 통제될 것이며, 안탄드로스 곳곳의 우물 덮개가 치워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갖춰질 공공 수조에는 병사들이 배치되어 가구별로 사용 가능한 수량을 통제하고 배급한다. 공공 수조는 빗물을 집수하는 역할 역시 수행한다.
명쾌하며, 깔끔한 결론이었다. 석공들은 서로 어깨를 두드리고 잔을 기울이며(물론 술은 아니다.) 이러한 합의안을 낸 서로를 치하했다.
그리고 그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데 며칠을 꼬박 소모한 스클레오스는 이마에 촘촘이 배인 땀을 닦아내며 내게 웃어 보였다.
“대강 마무리된 것 같지 않습니까?”
“···그래. 아주 인상 깊었어요.”
이건 지도자들이 상투적으로 내뱉고는 하는 빈말이 아니었다.
정말로 인상깊었다.
내가 별 생각 없이 수족처럼 데리고 다녔다 해서 저 장인들이 정말 손발처럼 수동적으로만 움직일 리는 없다.
저들도 사람인 이상 지식과 경험을 얻었고, 지식과 경험이 있는 사람은 무언가 창조하는 것도 가능했다.
이 도시의 석공들, 목수들, 대장장이들은 어느 귀족의 집에 들어갈 장식이나 깎고, 노예로서 일하거나, 사치스러운 금붙이나 만지는 이상의 일들을 했으니. 그 이상의 결과값을 뽑아낼 수도 있었다.
애초에 미래 지식이라는 것도 다 이런 사람들의 시행착오로 나온 것이 아니던가.
합의한 내용은 빠르게 결과로 도출되었다.
우물 정도는 지금 진행하고 있는 토목 공사 중에서 가장 규모가 작은 축에 속했으니 건설되는 속도도 빨랐고.
상수도도 슬슬 건설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안탄드로스 주위의 채석장 부지 등은 이미 알아본 지 한참은 지났으니 작업은 빨랐다.
규모도 생각만큼 크지 않으니 1년 안이면 끝날 거라며 장인들은 큰소리쳤다.
도시도 인간처럼 이렇게 호흡을 한다.
인간이 산소와 물과 음식을 넣고 탄소와 온갖 노폐물을 뱉어내듯이, 도시 역시 깨끗한 물과 갖은 재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인간과 마찬가지로.
“대체··· 왜, 완공된 하수도까지 오신 겁니까?”
“볼 게 있어서.”
들어간 게 있으면 뱉어내는 것도 있다.
***
질소는 공유결합을 통해 안정적인 구조를 이루고 공기 중을 떠다닌다. 대기의 80% 정도를 차지하면서.
그 공유결합이 질소고정세균의 대사작용이나, 번개를 비롯한 순간적인 고화력으로 깨져 토지에 저장되면, 그 영양분을 토대로 식물이 자라난다.
거기에 동물이 그 식물을 먹고서, 분뇨의 형태로 대지에 다시 질소를 돌려준다.
중고등학교 수준의 과학에서도 배우는 질소의 순환 과정이다.
간단히 질소가 많을수록 옥토라고 치면, 번개가 많이 치는 에게 해 인근이 비옥한 이유나 동물의 분뇨가 있을 때 식물이 잘 자라는 이유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다.
제우스는 비바람에 더하여 번개를 지배하는 신이다. 땅을 비옥하게 만들고, 농사일을 돕는 신이라 이 말이다.
아무튼··· 이 순환 사이클에서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이 맡는 바는 간단하다.
돌려주기.
식물이 땅에서 질소를 빨아들이고, 동물들이 그를 섭취한 뒤 돌려주지 않는다면 일방적으로 질소를 빨아먹힌 땅은 황폐화되고 만다.
그렇기에 시비법이 중요한 것이다.
나는 코를 틀어 막은 채 고개를 돌렸다. 아노이토스 역시 얼굴을 찡그리며 하수도에서 몇 발짝 떨어졌다.
“내가 생각해봤는데 말이지. 포세이돈께 막대한 제물을 다 바친다 하더라도 바다에 이런 걸 냅다 내던지면 절대 좋아하실 리가 없을 것 같아서.”
“그건 동감합니다. 해일이라도 덥쳐오고, 하수도가 역류하지 않으면 다행이겠군요.”
“그러면 별 수 있나. 활용해야지.”
“어어··· 예?”
“저것들을 활용해서 비료를 만들 거야.”
이미 하수조에서 뭐라 형언하기 싫은 것들을 건져올리는 시민들이 있었다. 저들은 다른 이들의 몇 배나 되는 보수를 받고, 특별히 개인용 욕조가 딸린 주택을 증여받았다.
그러고도 자원자가 적어서 허겁지겁 이런저런 혜택들을 베풀자 겨우 인원 수를 채울 수 있었다.
“저··· 그··· ‘덩어리’들은 냄새가 사라질 때까지 태운 건초랑 섞어서 주기적으로 뒤집어주면서 삭혀놓을 거야.”
“왜 그런 수고로운 짓을 합니까?”
“안 그러면··· 기생충이 올라오거든. 인간의 내장 속에서 꿈틀거리는 작은 벌레들인데 이게···”
“욱. 우웩.”
나는 아노이토스를 배려하여 잠시 설명을 멈췄다.
안 그래도 이 남유럽, 소아시아 놈들은 야채를 생으로 많이 먹는다. 비료에서 토양으로 기어올라온 기생충이 작물에 침투하면 끝장이란 말이다.
“주군, 대체 그딴··· 아니, 그런 건 어떻게 다 알았습니까?”
아노이토스가 도저히 더 볼 수 없다는 듯 하수정화조와 퇴비발효조에서 뛰쳐나오며 내게 물었다.
물론 시비법이란 것 자체를 어떻게 알았느냐는 뜻은 아닐 테다. 그게 완전히 혁신적인 것도 아니다.
적어도 1,000년 뒤 로마인들은 인분을 재활용해 비료로 썼고, 그 이후의 중세인들도 인분을 쓰는 것을 더럽다며 꺼렸다 뿐이지 가축의 분뇨는 잘만 썼다.
여기까지만 보면 로마인들의 앞선 농법이 ‘암흑시대’인 중세에 이르러 실전된 것처럼 들린다.
그런데, 로마인들은 퇴비에 발효 따위 시키지 않았다.
기생충 덩어리를 땅에다 쏟아부었고, 거기서 자란 채소를 그냥 날로 먹었다는 뜻이다.
···시발.
“그냥, 어느 날 자고 있는데 꿈에서 나왔어. 데메테르 님의 계시인 것 같은데.”
더 이상 아노이토스에게 둘러댈 말도 많지 않았기에 나는 이 시대의 만능 변명을 사용했다. 이것저것 해봐서 잘 안다, 라고 끝내기에는 어릴 적부터 너무 오랫동안 나를 지켜본 인간이다.
물론 ‘신께서 내게 알려주셨다!’라고 대놓고 말하면 명칭 도용이니 대강 애매하게만 표현했고.
아노이토스는 그제야 납득한 표정을 짓는다. 하기사, 별자리까지 내려준 인간한테 무슨 은혜를 못 베풀까 하는 그런 얼굴.
아무튼. 그래, 기생충.
시비법을 도입한 것과 마찬가지 이유로, 로마식 공중목욕탕 따위 만들지도 않았다.
다들 미개한 중세인들과 교회가 쓸데없이 검약을 강조해서 공중목욕탕을 없앴다고 생각들 하는데, 로마식 목욕탕이 어떻게 굴러갔는지를 몰라서 그런다.
끊임없이 석탄을 태워서 데운 물이다. 그걸 제대로 갈아줄 수 있을까?
미지근해진 물을, 거의 안 갈면서, 거기에 수천수만 명이 몸을 담갔다 뺐다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거기에 로마 시대의 목욕탕은 성매매 허브였는데?
어차피 안탄드로스 근처에 강 있잖아. 대강 상류로 가서 씻으라 그래.
남녀유별? 좆이나 까라. 공자는 아직 응애도 아니고 정자도 아니고 우주의 먼지일 뿐이다.
이 모든 것이 기생충으로부터 시민들을 구하기 위한 대업이다.
데메테르에게 제사도 지내고, 포세이돈에게도 “이렇듯 당신의 은혜가 인간의 도시를 정화하오니 결국 모든 물이 바다로 흘러가듯 모든 필멸자들의 존경심이 지진을 일으키시는 당신께 향합니다.” 정도 립서비스를 던지면 이제 수리사업은 마무리다.
그렇게 생각하며 개운하게 기지개를 키고 있는데, 마차 위에서 한참동안 뭔가 생각하던 아노이토스가 문득 내게 말을 건다.
“아, 주군. 그러고 보니 제가 소방대 관련해서 건의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기억하고 있어.”
“그래서 이곳저곳에 관제탑을 간단하게 설치하고 화제가 일어나면 종을 치자고도 제안해주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내가 그랬나?”
“예. 그래서 그런데 말입니다. 방화용으로 곳곳에 연못을 조성하고 수조를 가져다 놓는 건···.”
“···그건 또 어떻게 하게?”
“도시 안쪽으로 간단히 운하 하나를 파죠?”
“끄으으으응···.”
또 물, 물, 물이다.
***
아무튼 계속 시간은 흐른다.
이미 신작로 중 일부는 판석으로 단단하게 포장되어 그 밑의 하수도에서 올라오는 냄새를 막고, 애초에 짧은 길이로 설계되었던 수도로는 벌써부터 성벽 안쪽으로 뻗쳐오면서 부분적으로 기능을 수행한다.
그렇게 도시의 혈관들이 뻗어나가기 시작하니.
“제 13지구의 개발이 끝났습니다. 조합원 인원 수가···”
“352명.”
“네. 352명, 43가구가 모두 생활 공간을 배정받았고, 나머지 공간은 다른 지구에서의 입주 희망자를 받거나 공방이나 상점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살과 근육 역시 붙는다.
“오늘부로 11지구를 철거하오! 진입 금지요!!”
오래된 때를 벗겨내고,
“후우우··· 나 원, 엉망이군. 제대로 지반부터 다시 다져야겠는데요?”
병든 곳을 잘라내며 고름을 째낸다.
“어? 이쪽 기와들은 꽤나 힘을 준 모양입니다. 어디서 주워온 것 치고는 멀쩡한데요?”
“그건 그대로 재활용해. 안 그래도 기와 공장이 모자라서 다들 죽겠는데.”
그 중에서 살릴 것은 살려내기도 한다.
“3,000명.”
요정들의 대표? 또는 사절 격으로 이노와 그 ‘언니’들이 뒤따르는 가운데 아노이토스가 발언했다.
“약 3,000명의 주택을 공급했습니다. 그 중 1500여 명은 도시 성벽 안의 주거 공간이 확보되자 곧장 들어왔고 말입니다.”
자랑스러운 기색이 가득한 얼굴이다. 곧 속삭임이 이어지고, 그 중에서 유독 높고 빠르게 재잘거리던 요정들의 목소리가 곧 멎는다.
“저기? 아노이토스?”
“아··· 예, 주군.”
나 말고 이 도시에서 주군 소리 들을 사람이 이노 말고 더 있겠나.
“요정들이 숲 면적을 줄일 필요는 없냐고 묻는데?”
“아, 당장은 없습니다. 당장이라고 하지만 앞으로 수십 년은 없겠군요! 도시가 옆이 아니라 위로, 계속 자라날 테니 말입니다!”
아노이토스는 자랑스럽게 도심지의 3층짜리 공동주택을 가리킨다. 그 모습을 본 요정들은 흡족한 얼굴로 서로를 향해 미소짓다가 곧 휘파람 소리와 함께 사라진다.
나와 이노, 스클레오스와 아노이토스는 그제야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적어도 아침에 일어나보니 도시 수뇌부가 전부 나무로 변해 있다거나, 덩쿨로 목이 졸려 죽어 있을 일은 미연에 방지했다.
아무튼 큰일 하나를 처리한 뒤 우리는 계속 도시를 둘러보았다.
여전히 돌 깨지고 나무 쪼개는 소리로 시끄러운 도시다. 이미 웬만큼 부유한 이들은 자기 저택 부지를 ‘헌납’했든 아니든 교외로 빠져나갔다. 아마 소음을 피하려는 목적이겠지.
그래도 활기차다.
슬럼은 이제 반쯤 해체되어 있었고, 성벽 내부의 생활 공간이 확보되면서 그 자체의 규모도 크게 줄었다.
반듯반듯하게 놓인 ㅁ자 모양의 공동 주택들 사이로 마차 여러 대가 나란히 지나갈 수 있을 만한 크기의 길이 나 있고, 그 길바닥에다 귀를 대보면 깊은 저 아래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아노이토스가 세운 목제 관제탑에는 두셋씩 사람이 올라가 여기저기를 바라보았다.
“저들이 화재와 그 외의 범죄를 감독하고 움직이게 되어 있소. 저런 탑이 이제 총 10여 개 정도 세워졌는데, 저마다 크기와 소리가 다른 종이 3개씩 달려 있지.
가장 크고 낮은 소리가 나는 것이 울리면 적습을 나타내고, 중간의 것이 범죄요. 마지막으로 가장 귀에 카랑카랑 울리는 작은 종이···”
-땡! 땡! 땡! 땡! 땡!
“···화재를 가리키지.”
그 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니 그닥 멀지 않은 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아직 헐리지 않은 목조 공동주택이었다.
목조 주택이 많았던 일본 에도시대의 소방꾼들은, 화재가 일어나면 그 즉시 주위 건물을 부숴서 화재가 번지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썼다고 한다.
여기서는 그게 안 된다.
애초에 벽돌이든 시멘트든 대리석이든 타지 않는 외장재를 둘러놓아서 연소할 거리가 적은 것은 둘째 치더라도 그 돌더미를 어느 세월에 다 부수고 있겠나.
고로 우리가 택한 방식은 간단했다.
“빨리, 빨리 달려!!”
기중기에 썼던 거 그대로 써먹기.
쳇바퀴가 달린 마차가 현장에 도착하자, 그 즉시 나머지는 호스를 공공 수조에 담그고, 소방대원 하나는 펌프에 연결한 쳇바퀴 위에 올라 열나게 달린다.
그리고 호스의 나머지 끝을 두세 사람이 잡고 있으니···
-쏴아아아아!!
물줄기가 피어오른다.
당연히 거세진 화마를 이것만으로 막기에는 역부족이니 그때 가면 불이 커지지 않게 애쓰는 게 최선이지만, 지금은 다행히 화재 초기.
급하게 도착한 사다리를 타고 몇 안 되는 이들이 구조되고, 불도 얼마 지나지 않아 꺼진다.
마침, 나도 여기 있고.
“아노이토스, 이게 지난 세 달 동안 일어난 몇 번째 화재지?”
“한··· 두번째일 겁니다. 그리고, 소방대로 잡아낸 첫번째 화재군요.”
역시 이런 역사적 순간에는 얼굴을 비춰줘야지.
인근 조합에서 징집한 소방대원들이 반쯤 타버린 건물 안쪽으로 진입해 재투성이가 된 사람들을 꺼내는 참이다.
구조 작업이 대강 끝나는 대로 나도 불꺼진 건물의 1층으로 들어가 생존자들을 만났다.
“파, 파리스 님···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한 게 아닐세. 자네의 동료 시민들이 한 것이지. 고생들이 많았네.”
나는 울고 있는 여인들을 적당히 달래주었다. 왠지 모르게 젊은 여성들이 많은 1층에는 이런저런 집기들이 많았다.
아직 탄내가 나는 탓에 불안한 생각이 들어 거동이 불편한 스클레오스를 밖에 놔두고 들어왔다.
이노가 내 뒤를 따랐고, 아노이토스가 주군보다 천천히 앞서나가며 주의를 기울였다.
그도, 나도, 이상한 낌새를 맡았기 때문이다.
“···아노이토스?”
“예, 주군.”
“방금 소방대원들에게 들었는데, 구조자가 많지 않고 사망자는 한둘뿐이라더군. 여기가 7번 지구에 속한 곳이 맞나?”
“···예.”
7번 지구의 조합원들은 이미 전부 새 거주지를 찾아 들어갔다.
이 공동 주택은 비어있어야 했다.
여전히 나는 구조자들에게 주의를 기울인 채, 1층 곳곳을 살펴보았다.
이상해보이는 것은 없었다. 착각인가? 하기사, 따로 들어온 피난민들이 빈 집에 들어와 살 수도 있고.
“윽.”
“이노? 왜 그래?”
“뭔가 이상한 냄새 나.”
“무슨 이상한 냄새가···”
나는 이노 쪽을 돌아보자마자 느꼈다.
코에 느껴져서는 안 될 냄새가 느껴진다.
톡 쏘는, 강렬한 인공향.
나는 곧장 뒤돌아 소방대원들에게 외쳤다.
“구조자들을 전부 밖으로 모아놓게! 딴 곳으로 가지 못하게 해!”
“주군? 왜 그러십니까?”
“이상한 게 있는지 자네도 살펴봐. 냄새, 냄새를 쫓으면서. 혹시 숨겨진 공간이라도 있는지 보고해!”
그리고 나는 곧장 1층 구석구석의 외진 곳을 살폈다. 영문을 모르는 소방대원들은 급한 대로 내 명령을 따라 건물 밖으로 나섰다.
마침내.
-턱. 탁. 탁. 텅.
···.
-텅. 텅.
뭔가를 찾는다.
발 아래 공간이 비어 있는 듯한 소리가 난다.
곧장 나무가 깔린 바닥을 손수 뜯어내니, 그 안에는 지하실이 있었다. 어두워서 횃불을 가져오자 그 안에 든 게 뭔지 뚜렷하게 보였다.
포도나무를 깎아 만든 중성적인 인상의 신상.
그리고···
“저게 뭐죠?”
“저건···”
나는 한숨을 꾹 눌러 참고는 말했다.
“증류기라고 하네.”
포도나무로 된 디오니소스가 내게 미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방문 (2)
···증류기라고 했지만 물론 거창한 물건은 아니다.
불순물이 섞인 술을 끓이면, 알코올과 수분만 증발되어 분리된다. 그리고 그걸 받아내면 비교적 순정한 알코올과 수분만 걸러져 나온다.
한국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전통 소주를 만드는 기구가 따로 있는데, 그걸 소줏고리라고 한다.
딱 그 수준이었다. 질그릇으로 조악하게 흉내낸 3,000년 전의 소줏고리.
반쯤 부숴져 있는데다가 검댕투성이인 게, 불길에 휩싸여 있었던 티가 폴폴 난다.
아니지. 단순히 휩싸인 게 아니라, 아마···
“저게, 화재 원인일 걸세.”
나는 손수건을 주머니에서 꺼내 그 깨진 파편을 감싸들고 아노이토스에게 내밀었다.
“여기. 이 안에 술을 넣고 끓이다가 순정해진 알코올··· 아니, 술의 독기에 불이 붙은 거지. 젠장··· 바닥부터 탔으면서 이 건물은 어떻게 안 무너진 거야?”
“그걸 파리스 님이 어떻게 아십···”
“트라키아에서 디오니소스 신도들을 때려잡으면서 캐낸 정보다.”
당연히 경건한 군주 파리스는 트라키아의 왕과 함께 포도주 원샷 때리는 무엄한 짓 따위 하지 않았다. 그럼, 당연하지.
아노이토스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가 내가 시선을 돌려 눈을 마주치자 원상복귀된다. 요새 저 양반 눈치가 서서히 예리해진단 말이야.
스클레오스 아저씨랑 어디 뒤에서 얘기 나눠보고 안 되겠다 싶으면···
“파리스 님! 여기 모아놓은 구조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다··· 감옥으로 데려가. 아니, 일단 한 사람만 내 앞으로 데려오지.”
이제 구조자에서 현행범이 된 누군가가 얼떨떨한 표정의 소방대원에게 이끌려 온다. 어차피 들킨 이상 저항해봤자 소용 없는 걸 아는 듯했다.
아까 내게 구해줘서 고맙다면서 울던 여자다. 이제는 어딘지 초연한 얼굴로 내게 가만히 고개 숙일 뿐이다.
그 갭 차이에 소소하게 충격받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돌린 뒤 그녀에게 물었다.
“이거 어디서 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