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246
그 외에도 40척의 배를 이끌고 온 둘리키온인들의 왕 필레우스의 아들 메게스나 다른 왕들이 들어선다. 그들 역시 못해도 십수 척씩의 배를 이끌고 온 이들이다.
이들 모두의 배를 합하면 몇 척이나 될까?
아마 200척은 훌쩍 넘기겠지. 넉넉잡아 250척쯤은 될 것이다.
250척, 나라 하나를 멸망시키기에는 충분한 숫자다. 원정군의 총원 중 못해도 5분의 1은 될 숫자다.
이들이 자신들의 모든 배를 쏟아부어 이도메네우스의 계획에 동원하지 않더라도 상관 없다. 그래도 여전히 막강한 함대가 구축될 테니.
최소 200척.
맛보기는 슬슬 이제 끝나간다.
아무리 강한 군선이라도 사방에서 포위해 옴싹달싹 못하게 만든 다음 백병전으로 무너뜨리면 그만이다. 물론 아군의 피해도 클 수밖에 없는 방법이지만 괜찮다.
저 나포한 괴물배를 뜯어보니 200명 정도가 정원이라 치면 대강 맞는 듯했다.
5척을 쓰려면 선원 1,000명이 필요하고, 10척을 쓰려면 선원 2,000명이 필요하다.
그렇게 많은 인력을 동원할 수 있는 군주가 얼마나 되겠는가? 지금 있는 트리에레스도 10여 척뿐일 테고, 개중 하나는 이미 그의 손에 나포되었는데.
일단 저들의 몇 없는 전력 중 하나를 빼앗아 왔다.
그 얼마 안 되는 ‘트리에레스’를 모조리 제거하고 난 다음에는?
별 수가 있겠는가?
***
“흠··· 이번에 완성되는 게 몇 척이라고?”
“6척입니다.”
“그럼 총 몇 척이지?”
“트리에레스만 따지자면 29척입니다.”
“아주 좋아.”
나는 시종들의 보고를 받으며 기지개를 켰다. 지난 ‘전투’ 이후로 뭘 하든 기분이 좋다. 밥을 먹으면 밥맛이 좋고, 화살을 던지면 손맛이 좋다.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이 말이다.
…자, 이렇게 ‘이기게’ 해줬는데. 다음에는 저 아카이아 놈들이 어떻게 나올까?
30척으로 ‘대승’을 거뒀으면, 이제 더 나와야지?
50척?
아니면, 100척?
그것도 아니라면···
···씁, 벌써부터 너무 기대하지 말자. 저 변화무쌍한 해적새끼들이 어떻게 나올지는 헤르메스 님도 모른다.
아, 그래도 입꼬리가 올라가는 건 참을 수가 없네.
참자. 시종들이 앞에 있으니 최대한 인자하고도 근엄한 미소로 화답하자.
“안탄드로스에 잠시 대기시켜. 명령하자마자 곧바로 출격시킬 수 있게 선원들 상시 대기시켜 놓고.”
“알겠습니다.”
원래 있던 트리에레스가 15척 정도.
그 뒤로 건조한 14척을 더해서 29척, 29척이면 거기에 타는 병사들만 해도 대강 5,000명···.
감당 가능하군.
미시아에서의 피난민들도 꾸준히 오고 있으니 생산 인구는 충분하고, 안탄드로스와 동맹시에서 징집되고 고용되는 인원들만 따져도 충분히 쓸 수 있는 숫자다.
이미 4,000명 정도는 숙련된 노잡이들로 구성되어 있던 참이다. 아가멤논의 명령에 뻗대던 해적들 때려잡는 게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다들 이미 전투 경험도 있다.
당장 동원한 가능한 것만 23척이고, 곧 6척이 더해지니.
해전은 문제 없다.
“일단 시찰이라도 나가보려 하는데, 문제 있겠나?”
“아닙니다, 파리스 님. ”
“그럼 준비하지.”
원래는 나도 어디 시찰 나가거나 하는 거 되게 안 좋아했다. 나 같아도 직장 상사가, 아니 사장이 ‘허허··· 사원들의 목소리도 듣고 파이팅도 좀 넣어볼까?’ 하면서 튀어나오면 좆 같을 것 같으니까.
그런데···
“저기, 파리스 님이시다!!”
“파리스 님께서 우릴 보신다!!!! 우릴 보신다고!!!!”
“···.”
···후우. 그놈의 사이비 같은 건 조기에 뿌리 뽑았어야 했을지도.
아무튼 안탄드로스의 목수나 대장장이 중 태반은 원치 않은 신도가 되었으니, 일단은 주기적으로 이렇게 얼굴을 비춰주는 게 분위기 환기에 있어서든 기술 개발에 있어서든 효과적이었다.
나는 무수한 악수의 손길과 이런저런 기도를 읊는 신도들 사이를 뚫고서 겨우 항만 근처의 조선소로 걸음을 옮겼다.
-쾅! 쾅! 쾅!
-서걱. 서걱.
“왼편과 오른편의 높이가 잘 안 맞는다! 당장 이쪽 갈아내!!”
“누가 120번 장부촉 좀 가져와!! 120번 장부에 끼울 촉이 안 보이잖아!!”
그러자 내 눈에는 마치 블럭처럼 한 층, 한 층씩 쌓여가는 배들이 보인다.
이 시기의 함선 건조 방식은 훗날의 방식과는 완전히 판이하게 이뤄진다.
우리에게 익숙한 목선의 건조 방식이란, 우선 선박의 척추라 할 수 있는 용골을 세워놓고 그를 토대로 늑골을 세우고 그 위에 판자들을 씌우는 뼈대형 구조 방식이다.
훨씬 빠르게 배의 형태를 잡을 수 있을 뿐더러, 튼튼하고 유연한 선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중세 이후로는 거의 모든 배들이 그렇게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 시대는 다르다.
이름하여 장부맞춤식. 목공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들어 봤겠지만 홈을 파고 서로 끼워맞춰 나무 판자와 판자 사이를 고정하는 방식을 말한다.
장부맞춤식으로 이뤄지는 건조 과정에서는, 우선 외벽을 이루는 긴 판자들을 먼저 세워놓은 뒤 판자들 사이에 파낸 구멍에 장부(tenon)을 박고 그 장부에 다시 장부못(dowel)을 박아 고정한다.
그렇게 외벽이 완성되면 그제야 늑골을 안쪽에 덧댄 뒤 선체 내부를 완성하는 방식이다.
동물에 비유하자면 뼈대식은 척추와 갈비뼈부터 완성한 뒤 피부를 씌우는 것으로, 장부맞춤식은 피부를 완성한 다음 그 아래 뼈대를 끼우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명백히 전자가 더 큰 배를 건조하기에도 좋고, 훨씬 진보된 방식이다.
그런데 왜 채택을 안 했냐···.
-“기다려라!!!!”
-후우우우우욱!!!! 콰르르르르릉!!!!!!
···어우, 소름 끼쳐.
아직도 가끔 페르가몬에서 만난 디오메데스가 꿈에 나온다.
물론 디오메데스 같은 괴물이 또 있지는 않겠지만, 그 인간이 부순 건물도 다 무너져가고 곳곳에 금이 간 오래된 저택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는 투창으로 석조 건물을 부수는 인간도 있다.
그런데, 용골 하나 부숴지면 배가 무너질 방식을 채택하라고?
나는 그럴 배짱은 없다.
“147번 장부! 147번 장부 여기로!!”
“여깄네.”
“···가, 감사, 감사합, 니다. 파리스 님···.”
그 대신 나는 장부맞춤식 건조법을 최대한 효율화했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아마 뭔가 칼럼 비슷한 거였을 텐데.
바야흐로 지금으로부터 900년에서 1,000년 정도 지난 뒤, 먼 훗날 이탈리아 반도를 석권한 로마와 북아프리카의 패자 카르타고가 지중해 해상 패권을 다툴 시기. (이게 1,000년 뒤라니 적응 참 안 된다.)
육군력에 있어서는 압도적이었으나 해양제국이었던 카르타고에 비해 해군력에서 밀리던 로마는 카르타고와의 전쟁을 맞닥뜨리고 수심에 차게 된다.
그러다 마침 좌초한 카르타고의 선박을 역설계하던 로마인들은 큰 놀라움에 빠지게 되는데! 바로 카르타고인들은 현대인들이 그러하듯 선박 부품들마다 번호를 매겨 체계적으로 선박을 조립한 것이다!
아무튼 그런 기술을 받아들여 로마도 해군력을 증강시켜 카르타고로부터 승리하고 지중해를 차지할 수 있었다는 얘긴데··· 모 경제지에서 나온 말이라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150번까지 조립 끝났습니다!”
“휴식시간!! 휴식시간이다!! 파리스 님께서 특식으로 쇠고기 꼬치를 가져오셨다!!”
“우와아아아아!!!!”
꼭 그 일화가 아니더라도, 그런 체계화 정도야 조립식 가구든 뭐든 몇 번 만져봤을 현대인들에게는 아주 간단한 기초이기는 하다.
그리고, 그 아주 간단한 기초가 많은 것을 바꿔놓는다.
선박의 건조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여놓는다든가.
조선공들이 새로운 설계에 아주 빠르게 숙련될 수 있도록 돕는다든가.
“파리스 님? 곧 포세이돈 님과 헤파이스토스 님을 향한 제사가 이뤄집니다. 혹시 함께해주실 수 있으실지···”
안탄드로스에, 대함대를 꾸릴 역량을 준다든가.
방금 조립이 끝난 저 배는, 내일이면 진수된다. 아마 못해도 적선을 10척도 넘게 깨부수겠지. 아카이아인들을 최소 500명은 죽일 것이란 뜻이다.
“기꺼이 함께하겠네. 안내하게.”
이렇게, 이 전쟁에서 우리는 다시 한발짝 승리에 가까워지리라.
아카이아인들은?
뭐, 한 번 이겨봤으니까 한 번은 져도 상관 없지 않을까?
몰이 사냥 (2)
“메리오네스.”
“예, 왕이시여.”
지금 방 안에는 크레타의 왕인 이도메네우스와, 지난 승전의 주역이었던 메리오네스 둘뿐이다.
지금 그들은 아주 중대하고도 중요한 회의를 진행하기 위해 이렇게 은밀히 모였다.
“적들은 분명 강대합니다. 그러나 저희는 이미 저들을 한 번 이겼습니다. 다시 그러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바로 트로이아인들의 약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메리오네스의 이야기는 분명 수많은 전투를 겪어온 이도메네우스가 듣기에도 감동적이었다.
거대한 바다괴물들, 드높은 벽들을 기어올라가 기어코 적들을 무찌르고(전투의 흥분은 가끔 기억을 조작하기 마련이다.) 배들을 점령한 병사들, 그리고 승리의 감동과 영광까지.
···말하다 보니 감정이 북받쳐 올랐는지 점점 웅변조로 말하기 시작하는 메리오네스를 진정시켜 내보낸 뒤, 이도메네우스는 홀로 생각에 잠긴 채 상체를 앞뒤로 천천히 흔들었다.
그러니까, 메리오네스의 이야기에서 온갖 감성적인 부분과 사건을 겪은 당사자로서 부지불식간에 더하게 되는 과장을 빼놓으면···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이 남는다.
첫째, 적들은 기묘하리만치 백병전을 피했다.
메리오네스의 이야기 속 전장에서 적들의 피해 대부분(사실 전부지만)은 아군의 화살에 맞아 발생하였다.
생각해보면, 저 소위 ‘괴물배’라 불리우는 함종 자체가 적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피하고 함선 그 자체의 충격력을 통한 충각 전술로 끝을 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지 않나?
게다가 그 특유의 규모와 높이 때문에 적선을 향한 공격과 점령의 과정은 거의 공성전을 방불케 한다. 그 역시 선내의 아군들을 보호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내는 설계로 보인다.
그리고, 둘째.
‘분명, 작은 배를 감싸고 돌았다고 했지.’
‘작은 배’라 해봐야 괴물배에 비해 작아 보이는 것이지 실상 일반적인 50인승 갤리선을 말하는 거겠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상식적으로 작고 조밀하게 움직일 수 있는 배가 있다면 그것들이 앞으로 나서서 본격적인 백병전을 시도해야 하지 않는가?
이 역시 앞서 언급한 백병전을 꺼리던 양상과 겹친다.
대체 왜?
‘···역시 전사가 부족해서일 터인가.’
아카이아 연합군의 머릿수가 트로이아의 시민 수보다도 더 많으니, 저들에게는 싸울 수 있는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역시 하투샤의 노예였던 족속답게 용기를 모르고 나약한 탓일지도 모르고.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뿐이다.
백병전.
백병전을 적에게 어떻게든 강요해야 한다. 그것이 뛰어난 장수들이 더 많은 아카이아인들에게 유리한 방식이기도 하고.
작은 배들을 우선으로 백병전을 노려 적들을 혼란하게 만들고, 또한 더 나아가 저 괴물배에도 쉽게 대응할 만한 방법이 필요하다.
이도메네우스의 눈이 승리를 향한 열망으로 점차 불타오른다. 오랫동안 앞이 보이지 않던 연패의 늪을 헤치고 다니다 이제야 희망의 빛을 찾았으니 오죽하겠는가.
지금 그의 머리는 한 가지 의념으로 가득했다.
‘그래. 백병전으로, 저 적들을 내 칼로 직접 썰어죽이겠다!’
저 적들을! 적들을 결정적으로 꺾어버릴 번뜩이는 기회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마치 시체를 부여잡고 그 고기를 뜯는 까마귀처럼! 영광을 향한 길이 있다면 반드시 붙···들어···.
···까마귀?
···붙들어?
···.
···백병전.
-벌떡!
가히 신의 도움이라 할 수 있을 만한 기가 막힌 영감이, 순간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원래 1,000년쯤 흘러 어느 라틴인의 머릿속에서 튀어나왔을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서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그렇게, 곧 크레타군의 병사들은 웬 뜬금없는 명령들을 전달받게 된다.
“무슨··· 갑자기 목재를 구해오라고?”
“뭘 만든다는데?”
“뭔가 다리 같은 걸 만든다고 들었어.”
“아니, 내가 듣기로는 선박에 달 갈고리라고 하던데.”
그들은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일단은 그들이 뽑은 지도자가 지시하는 바에 따랐다. 곧 크레타군뿐 아니라 아테나와 다른 지역의 시민들 역시 그 일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메넬라오스파와 아킬레우스파에 속하는 왕들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이도메네우스의 판단은 객관적으로 볼 때 전형적인 실패 사례로 기록되어야만 했다.
본래 잘못된 정보에서는 잘못된 판단이 나오는 법.
애초에 적들의 기만 아래 펼쳐진 전투 결과를 과대해석한 뒤, 그를 토대로 전략을 수립했으니 당연히 그는 파멸의 길로 똑바로 걸어들어가야만 했다.
그러나.
“‘적들이 해협을 넘어오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하여, 다르다노스의 시민들은 이제 곧장 군사를 일으켜 1,500명으로 구성된 20척의 함대를 구성하기로 결의한다.
이를 다르다노스의 평의회가 다르다노스의 군주 안키세스에게 통보하나니.
사령관으로는 안테노르의 아들 아카마스가 설 것···’
···예?”
어느 도시의 발작적인 반항이, 그의 잘못된 판단과 만나, 누구도 예상치 못한 화학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그 씨앗은 다르다노스에 있었다.
***
이 시기의 도시와 국가란 씨족과 부족의 느슨한 연합체다.
씨족과 부족의 수장은 대체로 존경받는 어른이 ‘선출’되거나 아니면 최소한 구성원 모두의 암묵적인 동의 하에 그 지위를 물려받는다. 본격적인 장자 세습의 시대가 도래하려면 앞으로 수백 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이는 부당하오.”
“그렇소! 다르다노스의 군주가 어째서 패권 경쟁에 끼지 못한다는 말이오?”
씨족과 부족의 수장이 그렇다면, 도시와 국가의 수장 역시 그러하다.
그들은 군사적 사령관이자 도시가 보유한 공동재산의 관리자이지만 전제군주는 아니다. 시민들이, 그 시민들이 속한 씨족과 부족들이 반발한다면 왕들은 마땅히 굴복해야 한다.
“다르다노스는 오랫동안 성세를 누려왔소. 하투샤의 침공에 패배한 뒤로 우리가 그 패권을 잃었다 한들 다르다노스의 핏줄은 이 땅에도 엄연히 자리하고 있소!!”
“또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장자의 혈통 역시 이 땅에 자리하고 있지!!”
“옳소!!!!”
“나와 내가 대변하는 부족 구성원들은 이러한 의견에 동의하는 바요!!!! 다르다노스는 마땅히 제국의 중심이 될 권리가 있소!!!!”
“우와아아아아아아!!!!!!”
안키세스는 그들에게 너무도 오랫동안 부당한 폭압을 저질러왔다. 그 자신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는 궂은 일들을 도맡아왔다.
프리아모스가 그를 재상으로서 존중한 것은 좋다. 그러나 안키세스가 그의 패권에 맥없이 굴복한 것은 좋지 않다.
안키세스가 프리아모스와 긴밀히 협의하여 다르다노스에 여러 이익을 안긴 것은 좋다. 그러나 그 때문에 다르다노스의 많은 이익선이 프리아모스의 손에 달리도록 만든 것은 좋지 않다.
어째서 그는 프리아모스의 왕에게 그리 절대적인 충성을 바친다는 말인가? 다르다노스는 트로이아의 ‘동맹’이지 굴종해야 할 속국이 아니다!
심지어 저 안탄드로스의 왕자 파리스 역시 그의 권리를 주장하고 나서지 않는가? 어째서 안키세스는 다르다노스의 민의를 대변하는 자로서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않는가!
부당하다!!
궐기하겠다!!!!
우리의 권리를 되찾겠다!!!!!!
···
“···라는 요지의 서신이란다.”
“예?”
안키세스가 차근차근 설명해주자, 파리스는 순간 머리가 멍해지기라도 했는지 주위를 돌아본다.
프리아모스와, 최근 그에게 줄곧 조언을 주고는 하는 헤시오네가 그에게 잠자코 고개를 끄덕여준다.
함께 왕궁으로 불려온 헥토르와 아이네이아스, 헬레노스도 마찬가지로 어두운 표정을 지을 뿐이다.
그런데, 오직 파리스 한 사람만이 이해가 가지 않는지 저 샛별처럼 고혹적으로 반짝이는 두 눈을 깜빡인다.
“어, 아니,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런데 말입니다. 한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안키세스는 소년에게 너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답한다. 그러자 파리스는 무슨 딱따구리처럼 빠르게 입을 놀려 말한다.
“그러니까, 다르다노스의 시민들이, 다르다노스의 군주이신 안키세스 님의 허락도 받지 않고, 자기들끼리 군대를 조직해서 이곳으로 오고 있다, 이 말씀 아닙니까?”
“그게 맞단다. 명쾌하게도 정리해주었구나.”
파리스는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는다. 안키세스는 그의 어깨를 토닥여준다.
“파리스, 네 군공이 저들을 크게 자극한 모양이다. 내게 우호적이지 않은 부족들이 독자적으로 해군을 조직해서 이곳으로 올 것 같구나. 그것도 아주 기를 쓰고 모아서.”
“하지만 그런 게 어떻게 가능할 수가··· 안키세스 님께서는 그들의 군주 아니십니까?”
파리스는 참 신기한 아이다. 총명하면서도 유독 몇몇 부분에 있어서는 이해가 느리니.
실제로도 그를 제외한 모두가 올 것이 왔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을 뿐이 아니던가?
안키세스는 다르다노스의 시민들이 뽑아올린 대표다. 그를 쫓아낼 수도 있는데, 고작 그의 명령 없이 군사를 모으는 것쯤이야 그들의 자유 아니겠나?
저들이 안키세스를 쫓아내지 않는 건··· 안키세스를 쫓아내봤자 아이네이아스가 그들의 입맛대로 움직여주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예 아이네이아스까지 쫓아내자니 ‘다르다노스의 직계’라는 명분이 살지 않고.
그러니 딱 쫓아내지만 않는 선에서 멈춘 것이다.
안키세스로서는 더 할 수 있는 게 없다.
“다만 우리에게 다행인 점이 있지.”
안키세스는 파리스에게 미소지어 보이며 말한다.
“···뭐죠?”
“저들은 네가 세운 군공이 어떤 건지 잘 모른다. 트로이아의 시민들이야 네 군함을 직접 보았지. 안탄드로스와 그 동맹시의 시민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그렇지만 다르다노스와 그 동맹들은 트리에레스를 제대로 살핀 적도 없을 테다. 봤더라도 싸우는 모습을 본 건 아닐 테고 말이다.”
그들이 듣기로는 위대한 파리스가 배 1척으로 적선 6척을 아무런 피해 없이 쓰러뜨렸다느니 뭐니 하는 이야기가 어떻게 들리겠는가?
***
“당연히 헛소문이 아니겠소!”
안테노르의 아들 아카마스는 당당히 외치며 선수를 향해 나아갔다. 어느새 그들의 눈앞에 그 이름 높은 쌍둥이 등대가 가까워온다.
“···하지만, 우리 도시의 몇몇 상인들이 이야기하기로는 전부 사실이라 하였소만?
트로이아에 들렀다가 직접 그 승리를 마주했다 하니. 또한 트로이아에서는 이미 왕자 파리스를 영웅 취급하고 있다 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