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290
트로이아의 구원자, 오디세우스.
흠··· 좋아. 좋은 이름이다.
겸사겸사 꼴 보기 싫은 메넬라오스도 날려버리고, 적절한 시기의 편 갈아타기로 오디세우스는 전쟁의 승리자가 될 수 있을 테다.
세인들이 보면서는 ‘불명예스러운 짓’이라고 손가락질할 테니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가 명예와 영광을 얻을 일도 없으리라.
오디세우스는 군막을 나서며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살을 즐긴다.
보라. 간단하지 않은가.
그 누구도 상처 입지 않는 세계의 완성이다.
오디세우스는 적당히 미시아와 카리아에서 약탈한 재물을 챙겨 이타카로 돌아간다. 그리고 만족한 장인어른의 감사인사를 받으며 페넬로페와 한가롭고 여유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을···
“아, 아킬레우스! 이보게! 큰일일세!”
···뭐지? 누가 이 완벽한 순간을 방해한다는 말인가.
“···폴리테스? 왜 그러지?”
자세히 보니 오디세우스의 전우 중 한 사람인 폴리테스다. 그가 숨을 헐떡이며 다가오니 오디세우스는 불길한 기운을 느낀다.
왠지는 모르겠는데, 한기가 등허리를 타고 올라온다.
뭔가 기분 나쁜 일이 생긴 게 분명하다.
“큰일일세.”
“그 얘기는 아까도 했네만, 무슨 일인가? 지금 내가 우리의 지휘관인 아킬레우스와 함께 중요한 일을 하러 가야 해서 말일···”
“메넬라오스의 사절이 왔네.”
“···벌써 왔다고?”
“일단은 다른 군주들에게 무슨 수상한 말 못하게 내 군막에 억류해놨네만, 한시가 급하네.”
메넬라오스가 이리 빠르게 사절을 보냈다···? 그도 오디세우스를 미심쩍게 여기고 있을 텐데?
설마 벌써 트로이아를 함락시키기라도 한 건가? 벌써 전쟁을 끝낸 다음 프리아모스와 파리스의 모가지를 예쁘게 오려 놓고서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게 맞네. 아, 아니, 반만 맞네.”
“뭐, 뭐라고?”
“그런데··· 졌네. 트로이아를 함락시킨 건 맞는데, 어, 이걸 뭐라 설명해야···.”
슬슬 오디세우스는 오랜 전우가 돌아버린 건 아닌가 의심한다. 그리고 벗의 의심을 눈치챘는지 폴리테스는 간결하게, 정확하게 사절의 이야기를 요약해서 들려준다.
“···오디세우스 님? 무슨 일인가요?”
“트로이아에서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나요?”
오디세우스는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의 말에 대답해줄 수 없었다.
···오.
메넬라오스도 좆 됐고.
디오메데스도 좆 됐고.
어··· 중간에서 간 보려던 나는··· 어···.
모두가 상처받는 세계의 완성이다.
다음 전쟁
-끼릭. 끼릭.
소금기를 머금은 나무판자들끼리 이리저리 끼걱대는 소리, 저 난간 쪽에서 노들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배를 앞으로 밀어내는 소리.
그 모든 소리가 헬레네에게는 품속의 심장박동처럼 편안하게만 느껴졌다. 그녀가 오랜 고난을 벗어났다는 증거니까.
트로이아를 벗어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헬레네와 호위병들은 며칠 동안이나 들판을 야영하면서 혹시 아카이아인들이 가까이 추격해오지는 않는지 끊임없이 경계해야만 했다.
게다가 아카이아인들은 급하게 근방의 나무를 베어 군선을 지으려 하는 참이다. 당연히 인근 해안을 샅샅이 뒤지며 남은 배 한 척 없나 수색하는 이들이 없을 리 없었다.
그렇기에 약속해놓은 장소에서 배를 만나 이렇게 칼리폴리스를 향해 나아가는 데만도 꽤 많은 고생이 들어갔다. 한 사나흘 정도 걸렸으리라.
“여왕이시여, 헬레스폰토스 해협입니다.”
병사의 말에 동북쪽으로 눈을 돌리자 곧장 눈앞에 두 덩어리의 육지가 보인다. 거대한 신들의 얼굴이 서로 마주 보는 듯하다.
“···쌍둥이 등대.”
트로이아에 박혀 있을 때 늘상 내다보았던 해협 양편의 등대도 이제는 새로워보였다. 한쪽 등대는 반쯤 버려져 불이 꺼진 반면, 다른쪽 등대는 아직도 환하게 빛나며 주위를 철통 같이 감시하고 있다.
각각 트로이아와, 칼리폴리스의 등대였다. 그 두 등대의 상태가 각 도시의 처지를 상징하는 것만 같았다.
지금쯤 수만의 인구가 나아가 혼잡하면서도 활기찰 칼리폴리스.
그리고 폐허가 되어 마치 깨진 도자기 조각처럼 나동그라진 트로이아.
그녀는 애써 오른편의 트로이아에서 시선을 뗐다. 대신 그토록 닿고 싶어했던 목적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칼리폴리스다.
아직 밝은 낮이라 저 거대한 등대는 등불 대신 거대한 반사경으로 햇빛을 반사해 주위를 비추다가, 이내 그녀가 탄 배를 발견하고 그곳으로 빛을 집중한다.
곧 나팔소리와 북소리가 울리니 해안가 쪽으로 인파가 몰려든다. 다가오는 배가 적선이 아님을 확인한 것이다.
스파르타의 여왕, 트로이아를 불태우고 무수한 아카이아인 왕과 장수들을 죽인 헬레네가 돌아오고 있음을.
머지않아 그녀는 저 개미떼처럼 몰려든 수천, 수만의 인파가 자신을 향해 환호성을 지르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 사실에 헬레네는 선수 쪽으로 달려가 그들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제가 저지른 모든 일을 후회합니다.”
그녀는 승리했다. 그 모든 역경과 고난을 뚫고서 마침내 복수했다.
-“헬레네 님께서 이를 듣고 흡족해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분께서 느끼실 승리의 기쁨과 복수의 쾌감이 경감되지 않기만을 바랍니다.”
누군가의 넋두리가 그녀의 귓가를 스쳐지나갔지만 헬레네는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지운다. 그래, 어차피 패자의 자포자기일 뿐이다. 악인의 변명 섞인 혼잣말일 뿐이다.
그 생각을 끝으로 헬레네는 머릿속에서 메넬라오스에 대한 상념을 지운다. 해안에 가까워질수록 자신의 심장이 쿵쾅쿵쾅 뛰어오는 것을 느낀다.
저 군중들 사이에, 그녀가 있다. 라오메돈의 딸 헤시오네가 있다.
그녀가 시중들의 부축을 받아 몸을 일으키고는, 헬레네를 향해 손을 흔들어준다.
그 모습을 본 스파르타의 여왕은···
실로 오랜만에,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그녀는 승리했다.
헬레네가 머리에 쓰고 있던 갑갑한 투구를 벗어던지자 그녀의 어깨 위를 스치듯 날던 갈매기가 방향을 꺾어 난 데 없이 날아오른 투구를 피한다.
갈매기는 육지 쪽으로 방향을 틀어 저 멀리 드높은 탑, 등대를 향해 난다.
저 등대의 어느 창가에 앉아 쉬다 운이 좋으면 노닥거리는 일꾼들에게서 빵조각이나마 얻어먹을 수 있으리라.
갈매기가 고도를 높여 날아오르니 그 어느 난간에 서 있던 눈부시게 아름다운 남자가, 갈색 빛이 감도는 곱슬머리를 휘날리며 빵조각을 던진다.
갈매기는 턱, 하고 묘기를 부리듯 목을 내밀어 빵조각을 잡아챈 뒤 어딘가 머나먼 바다를 향해 다시 활강한다.
그 날짐승에게 빵조각을 던져준 남자는 무심코 사람이 바글바글한 해안을 바라보며··· 그리고 접안하는 여왕의 배를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대강 급한 건 끝났네.”
프리아모스의 아들 파리스였다.
***
신화 원전에서도 그렇지만, 프리아모스의 아들 파리스는 탁월한 궁수다.
그리고 탁월한 궁수의 자질 중 하나는 목표물을 제대로 분간할 뛰어난 시력이다.
나는 그 뛰어난 시력으로 저 해안을 훤히 내다볼 수 있었다. 트로이아인들이 헬레네를 보자마자 꽃잎과 천을 던지며 환호하고, 헤시오네가 나아가 그녀를 끌어안는다.
헬레네는 감정을 꾹꾹 눌러담아 놓았던 듯하지만··· 헤시오네의 품에서 눈물을 터뜨린다. 그러자 시민들의 환호성은 더욱더 커진다.
“···여기까지 봤으면 충분하겠지.”
“물론입니다. 그동안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형님.”
“아냐. 너야말로 해협 너머에서 고생이 많았지, 데이포보스.”
칼리폴리스는 아카이아인들과 트로이아인들, 트라키아인들이 섞여서 세워진 도시다. 게다가 군주 역시 트로이아의 왕자 데이포보스와 미케네의 공주 이피게네이아고.
데이포보스와 이피게네이아 두 사람이 지금껏 시민들의 압력을 잘 무마시키며 어느 한편에 참전하지 않아준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시민들의 폭동이나 반란 같은 위협도 훌륭하게 잠재우거나 피해나갔고.
그 결과가 이것이다.
적들에게 안긴 외통수.
이번 작전으로 칼리폴리스와 트라키아의 참전은 확고해졌다.
아카이아인들은 이 가느다란 해협을 사이에 두고, 자신들은 넘어갈 수 없지만 적들은 언제든 넘어올 수 있는 해협을 등 뒤에 두고 포위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바다로 빠져나갈 길은 막혔으며, 사방에 깔린 트로이아의 동맹시들은 결국 트로이아에 대한 충성심을 잃지 않고 아카이아에 대한 적대를 유지하고 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는가.
“메넬라오스는 여전히 트로이아를 나오지 못하고 있다더군. 다른 이름 있는 장수들도 근방을 정찰하는 것 외에 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예. 일단 해안을 따라 정찰하는 배들도 특이한 보고 사항을 내놓지는 않더군요.”
“그렇겠지.”
칼리폴리스를 뒤통수에 달고서는 절대 트로이아를 섣불리 벗어날 수 없을 지경이다.
군선을 건조한다고? 해봐라. 그새 새로 건조해서 총 30척을 넘겨가는 트리에레스가 포위하고 있을 테니.
농사를 지어보겠다고? 절대 가만 놔두지 않으리라. 철쇄대와 불사조 근위대가 유격전을 벌여 그 밭을 불태우고 농사짓던 아카이아인들을 죽이거나 노예로 사로잡을 테니.
물론 그렇게 견제하지 않더라도 적들은 끊임없이··· 끊임없이··· 파도 앞의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있다.
식량과 무기가 없고, 지휘관과 목적이 없으며, 사기가 바닥난 수만의 군대가 유지될 수 있을 리 없으니.
벌써부터 아카이아인들이 수백 명씩 도망쳐나와 인근 도시로 항복을 한다든가, 아니면 산적떼가 되어 마찬가지로 떠도는 난민들을 습격하고 약탈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상관 없다. 그쯤 되었으면 그냥 농사짓다 나온 민간인들만도 못하다. 철쇄대나 불사조 근위대 같은 고급 병력 없이도 잘만 방비를 갖추면 막을 수 있다.
요약하자면 공수의 위치가 바뀐 것이다.
적들이 트로이아를 중심으로 옴싹달싹 못하고 웅크렸다면 우리는 그 주위에서 서서히 적들의 역량을 갉아먹어가는 중인 거다.
적들에게는 트로이아의 성벽 외에 기댈 요새나 방벽도 없다. 이미 거의가 청야전술 때 사라졌고, 나머지는 자신들 손으로 박살냈으니 말이다.
적들은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무너져간다.
지도력의 부재에.
식량의 부족에.
목표의 상실에.
조금씩.
아주 조금씩.
“···.”
“파리스 형님, 왜 그러십니까?”
“···아. 미안하다.”
이런.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리고 있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데이포보스가 지적해준 덕에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도 미간에 힘이 들어가는 걸 막을 수가 없다.
“뭔가 불편하신 점이라도 있으십니까?”
“불편한 점이라···.”
나는 다시 날아온 갈매기를 향해 나머지 빵조각까지 모두 던져준 다음 말했다.
“불편한 점이야 물론 있지.”
머릿속으로 정리해보니, 두어 가지 정도 있다.
첫째는··· 불편할 정도는 아니고, 신경쓰일 정도의 문제다.
트로이아로 향하지 않은 아카이아인들.
저 남쪽에서 키크노스를 죽이고 콜로나이를 점령한 뒤 적당히 그 주위에서 버팅기고 있는 이들.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디세우스가 그들을 이끈다.
적당히 메넬라오스와 마찰을 일으키면서 찢어져 움직이는 것 같더니만, 그 아킬레우스랑 그 파트로클로스를 데리고서 고작 콜로나이 하나 점령하고 눌러앉은 걸 보니···
트로이아의 소식을 들은 모양이군.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일리아스에 보면, 스파르타의 여왕과 프리아모스가 성벽 위에서 싸움을 구경하며 아카이아 쪽 등장인물들을 대화로 소개하는 장면이 있다.
거기서 그녀가 오디세우스에 대해 뭐라 평하던가?
‘온갖 계략과 영리한 생각에 능한 사람.’
틀린 말은 아니지만 오디세우스의 그 ‘영리한 생각’들로 이뤄진 행보를 한번 쭉 살펴보면···
스파르타에 모인 구혼자들에게 이상한 걸 맹세하게 했다가 자기까지 코 꿰임.
식인 괴물 폴리페무스의 동굴에서 탈출하면서 굳이 인성질하다가 저주 받음.
음···.
꼭 결과가 나쁜 것만 보지 않더라도 그렇다.
아카이아 군의 기강이 해이해질 때 갑자기 아가멤논의 지휘봉을 빼앗고 일장연설로 병사들을 설득한 것도 그렇고.
아킬레우스 사후에 여론몰이로 대(大) 아이아스에게 갈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뺏은 것도 그렇고.
‘목마 작전’을 개시해서 트로이아 성을 함락시킨 것도 그렇고.
재빠른 상황 판단, 그리고 거기에 알맞은 임기응변에 능한 인간이지 장기적이고 치밀한 계획을 짜는 인간은 아니다.
물론 나랑 친분도 있는 사람이라 나쁘게 말하기 그렇지만··· 사기꾼이나 약장수에 걸맞은 인간상이다.
정직하고 우직하게 지략과 미래 지식으로 밀어붙이는 나 같은 타입하고는 상반된달까.
그런 인간이 지금껏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는 건?
트로이아 측이랑 메넬라오스 측이랑 한번 박 터지게 싸우고 둘 다 힘 빠졌을 때, 멋들어지게 등장해서 몸값 최대로 땡기고 둘 중 이길 것 같은 쪽에 붙으려 했겠지.
뭐, 비등비등해 보이면 우리 쪽에 붙으려고 했을 거고. 아무래도 메넬라오스는 곱게 안 보이는 인간일 테니.
“오디세우스···.”
“아, 그 장수가 이끄는 아카이아인들이 남았죠. 그들은 어떻게 나올까요?”
“나도 몰라. 거기서 대장 노릇해먹는 게 워낙에 기상천외한 인간이라.”
하지만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는 확실히 안다.
100퍼센트 패닉 상태다.
***
“얘들아, 우리 망했다.”
“···예?”
“오디세우스 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어, 어, 어쩌냐? 우리 진짜 망했다. 으허, 허? 허허허, 허허? 흐힉···!”
“···.”
“···.”
***
아, 됐다. 지금 당장은 안 중요하다.
어차피 간잽이의 최후란 그런 것···!
오디세우스가 이제 와서 한번만 봐달라고, 마음만으로는 항상 트로이아 편이었다고 싹싹 빌어도 소용 없다.
대가는 최대한 뜯어먹을 대로 뜯어먹고, 적당히 목줄 묶어다 나중에 아카이아 쪽 세력들 정리할 때 두고두고 써먹어야지. 그런 면에서는 아주 유용하게 쓰일 인간일 테니.
그래도 나와의 친분이 조금이나마 있으니 이렇게 살길도 열리고 그런 것 아니겠나.
오디세우스는 분명 내 자비로운 마음씨를 보고 친구를 잘 두어서 다행이라며 오열하게 되리라.
···아무튼.
그러므로 오디세우스 쪽은 그리 걱정할 게 못 된다. 그 역시 대세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고, 적당히 숙이면서 생존할 줄 아는 사람이니.
결국 내 머리를 아프게 할 문제는 이제 한 가지밖에 없다.
“···데이포보스?”
“예, 형님.”
“트로이아에 웅크린 적들을 모조리 청소하려면 얼마나 걸릴까?”
“일단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습니까? 적들의 수도 점점 줄어들 테고, 그러다 보면 군주들 사이에도 점차 불협화음이···”
“그래서, 저 트로이아에서 적들을 완전히 일소하려면?
그래서 ‘다음 전쟁’에만 온전히 신경쓸 수 있게 되려면?”
“···그걸 모르겠군요.”
“나도 그래.”
나는 나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씹다가, 피가 흐르기 전에 놓았다.
메넬라오스와 디오메데스 같은 이들이 완전히 기어나와 항복하게 될 때까지, 아니면 그들 모두를 죽일 수 있게 될 때까지 과연 얼마나 남았을까?
짧으면 1년?
하지만, 길어지면?
나도 모른다.
“그래서 걱정이야.”
그나마 위안이 되는 점은 아카이아 놈들이 원전에서 그랬듯 공략에 10년씩 걸리지는 않으리란 것. 적들이 아예 저 성 안에 작정하고 웅크리더라도 말이다.
우리에게는 적들보다 훨씬 진보된 공성수단들이 있으니까.
목마 따위 잔재주 부리지 않고 사다리차와 투석기, 그리고 불화살로 적들을 괴롭힐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 해서 내 걱정이 가시는 건 아니다.
어떻게든, 저들을 완전히 해소해버려야 두 발 쭉 뻗고 잘 수 있을 텐데···.
-쿠쿠쿠쿵!
갑자기 우리 등 뒤에서 큰 소리가 울린다. 톱니바퀴와 도르래가 움직였다 멈추는 소리다. 승강기가 도착했다는 이야기다.
뒤돌아보니 승강기 안에서 아노이토스가 걸어나오고 있다.
“주군, 남쪽 바다를 움직이던 상인들에게서 정보가 입수되었습니다.”
“무슨 일인가?”
“···.”
아노이토스의 얼굴이 유독 굳어있다.
뭔가 심각한 일이라도 일어난 건가 싶어 바라보니, 갑자기 내게 가까이 다가와 귀에다 무언가를 속삭이기 시작한다. 아니··· 옆에 데이포보스도 있는데 이 무···슨··· 실례···란···
···아.
“혀, 형님?”
“···.”
아노이토스가 내게서 한걸음 멀리 떨어지며 고개를 숙인다. 나는 그와 잠시 시선을 마주치며 결정을 내린다.
“형님, 무슨 일이기에 그러십니까?”
이 사실에 대해 데이포보스에게 말해줘도 좋을지.
아노이토스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입을 열었다.
“···하투샤의 움직임이 감지됐다.
적들이 군선을 모으고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시간은, 예상보다도 훨씬 촉박했다.
뒤처리 (1)
“···.”
“트로이아 쪽이··· 압승을 했다고요?”
“그럼, 우리는 어쩌죠? 중간에 전쟁에 개입할 계획이라고 하지 않으셨던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