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289
“···.”
그렇다면 메넬라오스의 기이한 행동을 설명할 답은 한 가지뿐이었다.
“이곳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예, 형님. 여기로 오면 헬레네 님을 뵐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광기.
메넬라오스의 먼지 쌓인 유리알처럼 흐릿한 눈이 어느 허공을 주시한다. 달빛에 재먼지가 흩날리는 폐허의 탁한 공기 중을.
그러다 메넬라오스는 침묵한다. 마치 허공에다 대고 대화를 시도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깨달은 듯싶었다.
그의 눈에 순간 초점이 돌아온다. 그의 눈앞에 보이던 것이 무엇이든 간에, 아주 잠시라도 씻겨내려간 듯싶었다.
메넬라오스는 또렷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방금처럼 다시 헬레네가 서 있던 방향을 바라본다.
그가 입을 연다.
“헬레네 님.”
헬레네가 있는 허공을 향해 말한다. 그곳에 그녀가 있는 줄도 모르면서.
“제가 이곳에 온 이유는 간단합니다.”
“···.”
기둥 사이를 휘도는 스산한 바람 말고는 아무것도 그에게 답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말을 이어간다.
“···사죄하기 위함입니다.”
“···.”
“저는 헛된 것들을 쫓느라 당신을 학대했습니다. 그리고 패배했습니다.”
메넬라오스의 말은 차분하고 고요했다. 그러나 무감정에서 온 고요함이 아니라 그 반대였다.
수많은 감정들이 눌러담겨 있었다. 오랜 생각 끝에 정리된 차분함이었다.
“당신이 승리자로서 저를 단죄할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제게 선고될 죽음을 기다리겠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들에, 헬레네의 입이 자연스레 벌어진다.
[어째서지···?]그녀는 자신이 말을 꺼냈다는 사실에 잠시 놀란다. 메넬라오스 역시 창백한 얼굴을 들어 주위를 둘러본다.
그러나 메넬라오스는 그 목소리가 어디서 들려왔는지 가늠하지 못한다.
이내 헬레네는 방금 자신의 목소리에 신성이 담겨 있었음을 자각한다. 그녀의 육성은 말하는 위치를 특정할 수 없도록, 공간 자체를 울리는 영적인 힘으로 화(化)했다.
헤르메스를 돌아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속삭인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두어 마디 정도는 더 꺼내도 좋다. 그저 환청으로 여겨질 수 있도록 도우마.]두어 마디.
그 말에 헬레네는 곰곰히 생각한다. 자신을 그토록 괴롭히고 학대한 적수의 속내를 들을 몇 안 되는 기회다. 그녀는 질문을 고르고 고르다 입을 연다.
[어째서, 그대는 사죄하지?]“···.”
헬레네의 그 말에 메넬라오스의 얼굴에 떠올라 있던 평정이 순간 깨진다.
“이 음성이 제 광기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어느 장수하는 신께서 헬레네 님의 목소리를 빌려 제게 물으시는지는 알 수 없사오나··· 답하겠습니다.
후회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저지른 모든 일을 후회합니다. 헬레네 님께서 이를 듣고 흡족해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분께서 느끼실 승리의 기쁨과 복수의 쾌감이 경감되지 않기만을 바랍니다.”
“···.”
메넬라오스는 그렇게 말을 쏟아낸 뒤에도 전혀 후련해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얼굴의 그늘은 한층 짙어진 듯했다.
메넬라오스는 헬레네로부터 멀어져 곧 어느 부서진 벽의 잔해에 걸터앉아 눈을 감고 기도를 올린다.
헬레네와 그녀의 호위는 그 옆을 스치듯 걸어나가 파리스의 궁전을 빠져나갔다.
헬레네와 트로이아인 병사들은 밤의 여신이 그들에게 드리운 어둠 아래 숨고, 신들의 전령이 그들에게 쥐여준 행운으로써 트로이아를 빠져나갔다.
그들이 지나가는 성문의 경비들은 까무룩 잠에 빠졌다가 깨어났고, 그들이 움직인 길에 남은 발자욱은 바람에 지워졌다.
그렇게 그들은 불타버린 트로이아를 빠져나갔다. 가벼운 바람결처럼, 그 무엇보다도 날개달린 꿈처럼.
저 우주 어딘가의 공허에서는 운명의 여신들이 그들 모두를 바라보며 끊임없이 실을 자아낸다.
엉킨 실타래 속에서도 변하지 않은 예언 한 가지가 성취되었음에 만족하며.
간잽이
키크노스 왕이 죽은··· 아니, ‘승천’한 뒤 아킬레우스가 이끄는 병사들은 콜로나이로 입성했다. 도시의 시민들은 아카이아인들의 약탈을 막는 대신 왕자와 공주들을 볼모로 넘기는 데 찬성했다.
그리하여.
“키크노스의 아들 코비스, 코리아노스, 그리고 키크노스의 딸 글라우케.”
“···.”
“···.”
“···.”
오디세우스는 키크노스의 아들딸들을 군막에서 맞이하게 되었다.
“위대한 포세이돈의 손자와 손녀들이여, 우리 군영에 온 것을 환영하오. 이미 알겠지만 나는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라···”
“환영은 무슨, 우리 아버지가 그 피에 굶주린 아킬레우스의 손에 그토록 비참하게 돌아가셨는데!”
“안 돌아가셨소. 지축을 뒤흔드는 포세이돈의 아드님께서는 그 아버지의 자비로 살아나셨소.”
“그래, 백조가 돼서! 그게 죽은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이오!”
“···.”
“아카이아인들은 모조리 야만적인 해적들이라더니 그 말이 꼭 맞더군. 모두가 보는 앞에서 신의 축복을 입으신 우리 아버지를 그토록 잔인하게 살해하려 하다니···”
“그대들이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세 가지 있는 듯하여 내 말해주도록 하겠소.
나는 친절한 군주니까.”
오디세우스는 눈앞에 앉은 콜로나이의 왕자와 공주들에게 싱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첫째, 그대들의 아버지 키크노스 님께서 우리를 먼저 치셨고, 우리는 반격했을 뿐이라오.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와 칼리케의 아들 키크노스는 명예로운 전사로서 서로 정정당당하게 싸움에 임했으니 우리 사이에 은원이 있을 게 없소.”
“그게 말이 되는···”
“둘째.”
-쿵!
콜로나이의 왕자와 공주들은 탁자를 내리치는 소리에 놀라 말을 멈춘다.
그들이 다시 고개를 들어보니 오디세우스의 얼굴에서 미소가 가셨다.
“그대들은 우리의 전리품이오. 죽이든, 노예로 삼든 둘 중 하나일 텐데. 솔직히 이길 것 같지도 않은 이 전쟁에서 그대들을 살려 데려가 노예로 쓸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군.
그대들은 언제든 내 한 마디면 죽을 수 있는 목숨들이오. 언젠가 죽여야 할 목숨들이고. 언제부터 그대들에게 발언권이 있다고 착각했지? 나의 친절이 그리 값싸 보였나?”
“···.”
군막 안의 모두가 입을 다문다. 호위들은 끼어들 상황이 아니라 여겼는지 적당히 눈치를 보다 바깥으로 나선다.
“그, 그럼··· 셋째는 무엇이오?”
이번에 어렵사리 말을 꺼낸 건 키크노스의 딸 글라우케였다.
그 말에 오디세우스는 갑자기 방금의 미소로 되돌아가며 다시 자리에 앉는다.
“내가 왜 그대들을 살려두겠소?”
“···예?”
“잘 생각해보시오. 우리는 언제나 그대들을 환영할 테니. 밖으로 나가면 병사들이 그대들이 머무를 곳을 알려줄 것이오.”
살짝 겁먹고, 살짝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그들은 천막 바깥으로 나섰다. 오디세우스는 가볍게 물을 마셔 목을 축인 뒤 헛기침을 했다.
이 정도 말했다고 벌써 지치면 안 된다. 오늘은 만나야 할 사람들이 많다. 해야 할 말도 아직 많이 남았고.
“오디세우스 님, 장수들이 이곳으로 들어옵니다.”
“···들여보내게.”
지금부터가 진짜 중요하다. 얼치기 왕자와 공주들을 겁박하고 어르고 달래는 것쯤이야 쉬운 일이었으니.
곧 천막을 들추니 세 사람의 군주가 이곳으로 들어온다.
에니에니스 족과 페라이보이 족을 지휘하는 구네우스, 그리고 포키스인들의 지도자 스케디오스와 에피스트로포스.
오디세우스는 아까 왕자와 공주를 대할 때보다는 보다 엄숙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살짝 들어올려 옅은 미소를 띤 채 그들을 맞이한다.
“어서들 오시오. 내 그대들을 오랫동안 기다렸으니.”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불안한 듯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주춤주춤 오디세우스의 앞까지 걸어온다.
“···무슨 일로 우리를 부른 거요. 비록 우리의 지휘관인 아킬레우스가 그대에게 자문을 구한다 하여도 그대가 우리를 사사로이 오가게 할 수는 없소.”
“구네우스의 말이 옳소! 그대는 우리의 지휘관도, 왕중왕도 아니잖소?”
“무슨 자격으로 우리를 불러왔는지 알 수가 없구려.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는 어디 있소? 그와 이야기를 나눠봐야겠소.”
가장 먼저 구네우스가 불만에 찬 목소리로 말하자 다른 두 사람 역시 맞장구치며 오디세우스에게 반항적으로 나온다.
“진정들 하고 목소리를 죽이시오.”
오디세우스는 그들이 칼을 차고 이곳에 왔음을 확인하고 조용히 읊조린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바깥으로 새나가서는 안 될 것이니.”
“무슨 얘기길래···”
“메넬라오스가 트로이아에서 대패를 당했다는 소식이 들어왔소.
오일레우스의 아들 아이아스가 죽었고, 다른 장수들도 대부분 목숨을 잃거나 큰 부상을 입었다고 하는군.”
“뭐, 뭐라···”
“트로이아로 향한 메넬라오스의 군대가 거의 궤멸 상태가 되었다 하였소.
이 전쟁은 끝났소. 패배했단 말이오.”
정적.
세 군주는 순식간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가··· 다시 서로의 얼굴을 보고 빠르게 침착을 되찾는다.
“···그럼 이유가 무엇이오.”
“구네우스여, 무슨 이유 말이오?”
이번에도 구네우스가 가장 먼저 질문해온다.
“이 소식을 모두에게 알리지 않고 우리 셋에게만 먼저 알리는 이유가 뭐요?”
“그거야···”
”그리고, 그대의 말에는 증거가 없잖소? 메넬라오스가 데려간 병력이 만 단위요! 트로이아의 시민들을 모두 모아서 싸워도 이길 수 없는 규모의 군세란 말이오!”
“···증거. 그래, 증거를 물어보았소?”
오디세우스가 손가락을 튕긴다. 그러자 뒤쪽에서 장막을 걷고 시종 한 사람이 덜덜 떨면서 쟁반 하나를 가져온다.
그 쟁반을 보자마자 구네우스를 비롯한 군주들은 얼어붙는다.
쟁반 위에는 머리가 올라가 있었다. 그러니까, 깨끗하게 잘린 사람의 머리가.
“메넬라오스가 보내온 사절의 머리요. 이제 증거가 되었소?”
“이···이게 무슨···.”
“그리고 그대들에게만 알려준 이유가 뭐냐고 물어봤지.
자비를 베푸는 거요.”
“···.”
“···.”
“···.”
그 말 이후로 오디세우스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그들 세 사람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오디세우스의 말뜻을 완벽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서, 서, 설마, 배신을···”
“배신이 아니오.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가 거짓 명분으로 우리를 이끌고 왔으니 우리에게는 마땅히 그에게 거역할 권리가 있소. 우리는 이 전쟁의 승자에게 항복할 것이오.”
“거짓 명분이라니! 그 무슨···!”
“그만. 내가 말하고 있잖소.”
오디세우스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변한다. 그의 들려올라간 한쪽 입꼬리가 비웃음과 냉소를 동시에 머금는다.
“우리에게는 돌아갈 배도 없소. 콜로나이를 점령해서 버티고 있다만 남은 식량도 넉넉지 않지. 설마 우리들만의 힘으로 트로이아를 상대로 승리할 수 있다는 허황된 망상을 하는 건 아닐 거라 믿소.”
“우리에게는 아킬레우스가 있소!!”
“그래, 그리고 적들에게는 헥토르가 있지!!!! 조용히 하라 하지 않았소!!!!”
“···.”
“내 자비심을 시험하지 마시오.”
-딱. 딱.
오디세우스가 손가락을 튕긴다. 이번에는 두 번이다.
그리고 그들이 천막자락 스치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이미···
“혀, 형님?”
“이, 이게 무슨 일이오?”
“조용. 그리고 칼에서 손 떼시오.”
그들의 목에 칼이 겨눠져 있었다.
그들이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가 접근해, 구네우스와 스케디오스를 위협했다.
그들에게는 칼을 뽑을 새도 없었다.
유일하게 칼을 겨눠지지 않은 에피스트로포스만이 멀뚱히 그 광경을 보고 뒷걸음질칠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본 오디세우스가 입을 연다.
“그대의 공로에 대해서는 추후에 자세히 논하도록 하겠소, 이피토스의 아들 에피스트로포스.
나중에 트로이아 측과 항복에 관해 협상하도록 할 때 그대의 형을 제거하고 그대를 포키스인들의 유일한 지도자로 삼는 조건에 대해 논하도록 하지.”
“···뭐?”
“모르겠소? 그대의 동생이 밀고했소. 여기 이렇게 있는 세 사람이 메넬라오스의 끄나풀이라고. 그대들은 내 자비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여기서 죽을 수밖에.”
포키스의 왕자 스케디오스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짓다가 동생 에피스트로포스를 향해 노호성을 지른다.
“이 개만도 못한 자식! 형제를 버려?”
“아니, 나, 나는 그런 게···.”
“여기 두 사람을 죽이면 이제 메넬라오스의 끄나풀은 모조리 일소되겠군. 수고하였소, 에피스트로포스.”
“어어···.”
당황한 에피스트로포스가 이리저리 눈을 굴리는 와중에···
-턱.
-털썩.
순식간에 구네우스와 그의 형 스케디오스가 쓰러진다. 어딘가 혈자리라도 정확히 얻어맞았는지 순식간에 기절해버렸다.
급작스러운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에피스트로포스만이 여전히 몸이 굳은 채 서 있을 뿐.
“에피스트로포스.”
“내, 내가, 밀고를 했다니, 그게 무슨 말이, 오? 나는 그런 적이···”
“없지.”
오디세우스는 싱긋 웃는다.
“그냥 확인사살이었소. 반응을 보니 정말 이 셋이 메넬라오스가 심어놓은 전부가 맞군.”
“···어?”
다음 순간 에피스트로포스는 칼을 뽑아든다. 그는 왼쪽에서 날아드는 파트로클로스의 검격을 받아내며 휘청였고.
-촤락!!
이어져 날아온 아킬레우스의 칼등에 뒷목을 가격당했다.
그는 허망하게 굳은 얼굴로 형제 곁에 쓰러졌다.
“···다 해치웠나?”
“아마도요?”
아킬레우스가 발끝으로 배신자들을 톡톡 건드리며 반응을 확인하자 오디세우스는 심호흡을 내쉬며 다시 자리에 앉는다.
“좋아. 그럼 적당히 이 근처에 눌러앉아 있다가 사세를 지켜보자고.
일단, 어, 저 인간들은 깨어나기 전에 재갈 물리고 묶어서 구석에 치워버리고. 나중에 내 친구 파리스한테 선물로 줘야지.”
“오디세우스 님?”
“왜 그러지, 파트로클로스?”
“방금 말씀하신 게 사실인가요? 정말로 밀고도 없이 첩자들의 정체를 밝혀내신 겁니까?”
파트로클로스와 아킬레우스의 눈이 경탄으로 물들어 간다. 두 사람의 반짝거리는 눈빛이 부담스러우면서도 어쩐지 싫지가 않다.
그래서 오디세우스는 과시하듯 어깨를 펴고서 말한다.
“그래. 내가 누구지?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
신조차 모독하는 천재성이 그의 머리 뒤에서 후광처럼 빛난다. 아킬레우스가 약간 들뜬 듯한 목소리로 묻는다.
“그··· 어떻게 알아내셨습니까? 저 아래 족장이나 병사들을 포섭했다든가, 아니면 애초부터 메넬라오스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었다든가···”
“전부 아니다. 과감하고 결단력 있는 어른에게는 그런 시시한 것들보다 더 확실하고 좋은 방법이 있단다.”
“예?”
오디세우스는 두 사람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감.”
“···.”
“어···”
“딱 보니 저들의 눈에 배신의 기운이 보였다.”
왠지 오디세우스에게 말하는 게 불손했고, 왠지 오디세우스가 제안하는 이런저런 작전에 거리낌이 많았고, 왠지 메넬라오스와 친할 것 같은··· 그런 기운.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배신자 색출에 널리 쓰인 방법이다.
일례로 초차원 흑마술사 제갈량이 위연을 ‘반골(反骨)의 상’이라며 죽이려 했다든가, 왠지 4달러를 좋아할 것 같은 이미지의 궁예가 머릿속의 마구니를 관심법으로 관측했다든가.
그렇게 직감이 가져다주는 수십, 수백 가지의 단서를 무의식 중에 조합해내면 그것이 바로 감이다.
“···때려맞추셨다고요?”
“탁월한 직관으로 통찰했다는 편이 더 듣기 좋을 것 같구나.”
“어···”
“때로는 판단보다 행동이 앞서야 할 때가 있단다. 어쨌든 배신자들이 맞았잖니?”
“그럼 우, 우리가 아군에게 칼을 들이댈 수도 있던 것 아닙니까?”
“그래서 확인사살을 한 거지. 자기들 입으로 시인했으면 된 것 아닌가?”
“···.”
“···.”
“자, 그럼 가자. 이제 배신자들을 색출했으니 지도자를 잃은 포키스인들과 에니에니스 족, 페라이보이 족을 설득해야지. 할 일이 많아.”
“저, 그럼 메넬라오스가 패배했다는 소식도···?”
“···.”
“···.”
“···그냥 흔들어보려고 던져본 말이다.”
오디세우스는 아직도 탁자 위에 올라가 있는 머리를 흘깃 바라본다. 저 머리는 지난 전투 때 죽은 병사 걸 빌린 거다.
머리통도 없이 하데스의 집으로 떠나갔을 어느 이름 모를 병사를 위해 오디세우스는 짧게 묵념했다.
뭐, 정말로 메넬라오스가 그렇게 급작스러운 패배를 겪을 리는 없다. 아까 구네우스의 말마따나 트로이아의 시민을 전부 합쳐도 메넬라오스의 군세에 이길 수는 없다.
물론 시간은 트로이아의 편이니 그쪽에서는 소모적인 공성전을 강요하며 점차 승기를 잡아나가겠지. 그때쯤 적당히 북상해서 메넬라오스의 뒤를 치면?
그때 키크노스의 아들딸은 적당한 가치를 지닌 포로··· 아니, 평화의 선물이 되어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