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321
말했다시피, 이 ‘학교’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될 수밖에 없다.
문학기법을 가르치지도, 안탄드로스의 역사나 수학, 인근 지리에 대해 시험을 치지도 않는다.
심지어 수백 년 뒤, 이런 생산기술이 아닌 웅변술과 수학 등을 가르친 플라톤의 아카데미아도 우리 머릿속의 학교와는 다르다.
그것은 교육기관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공동체다. 무협 소설 속의 문파나 중세의 길드를 떠올리면 차라리 비슷하리라.
학생들을 가르치고 시험으로 우등생을 선별하는 과정은 이 ‘학교’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이곳에서 교수는 학생들과 공동체를 꾸린다. 그것을 길드라고 해도 좋으리라.
교수들끼리도, 학생들끼리도 공동체를 만들고 더 나아가 학교 전체를 하나의 공동체로 조직한다.
학교 전체가 하나의 길드인 것이다.
장인들이 자신들의 기술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며, 독립적인 지위를 가지고 어떤 사회적 위치를 차지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견고한 공동체.
이 시기에는 조선공들이든, 다른 장인들이든 아직 그렇게까지 천대받지 않는다. 아르고 호를 제작한 아르고스 역시 왕족이었으니.
그리고 수백 년 뒤.
아카이아와 그들의 문명이 뻗어나간 땅에는 노예제가 정착한다.
목수들은, 그리고 다른 수공업자들은 차즘차즘 노예가 되어간다. 사실 지금도 그런 변화는 일어나는 중이다.
이들은 누군가의 소유물이 되거나 국가의 공유물이 되어 수많은 건물을, 도자기를, 다른 여러 사치품과 생필품을 만들어 공급하는 일을 맡는다.
그렇게··· 전락한다.
그것이 도덕적인지 여부는, 차갑게 말하자면 그리 중요하지 않다. 도덕이란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니까.
다만 그것이 필연적인지는 생각해볼 수 있으리라.
내가 보기에는 아니다.
이렇듯, 장인들이 조직되어 지식과 기술을 재생산할 수 있는 기제가 있다면? 국가나 다른 시민에게 종속되지 않을 수 있게 된다면? 과연 똑같은 일이 벌어질까?
그리고, 한 가지 더.
어느 순간부터 타인을 위해 육체 노동을 한다는 사실, 그 자체를 천하게 여기게 된다면.
그 문명이 어떻게 기술적 발전을 이끌 수 있을까?
“자네들의 영광은··· 자네들을 위한 게 아닐세.”
나는 항해학교로 시작한다.
다음에는 어떤 장인들이 이렇게 조직될까? 어떤 이들이 새로운 권위를 움켜쥐게 될까?
그들은 어떤 업적을 세울까? 어떤 진보를 이끌어낼까?
내가 사라진다 해서, 그 업적과 진보가 모래성처럼 허물어질까?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지.”
모르겠다. 아마 아닐 것이다.
-“그리고 안탄드로스의 고결한 군주께서 사라지신다면, 인류가 이제껏 만나본 가장 영민한 군주께서 이 땅을 떠나신다면, 이 모든 것은 한 줌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아니었으면 한다.
이건 내가 이 세계에 심는 작은 씨앗이다.
여기서 무엇이 어떻게 자라날지는, 두고 봐야 알리라.
***
지고한 신들이 모였다.
각각 쇠 두드리고 연장 드는 이들의 수호신과 항해하는 뱃사람들의 후원자와 지혜로운 이들의 길잡이였다.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세상의 심오한 이치에 대한 각자의 고견을 나눈다.
[‘장인’학교.] [‘항해’학교.] [항해‘학교’.] [···.] [···.] [···.] [저 학교는 제 도시에 있습니다. 제 소유물로서의 우선권이 주어진다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학생 반수 이상이 내 신도일세. 뱃사람이니까.] [도서관에서 나오는 이들이 제 신상 발치에 입을 맞춥니다.] [이보시오! 뭘 그리들 사소한 것으로 다투시오? 따지자면 아름다움을 궁리하는 이들의 전당이니 저 학교는 이 포이보스 아폴론의 차지가 될 수도···] [···.] [···.] [···.] [···가던 길 가겠소.]논쟁은 파리스가 제대로 제사를 치를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수성 (1)
“정말, 마차는 필요 없으십니까?”
“그래. 부케팔로스가 있는데 뭘 더 걱정하겠나.”
걱정하는 시종들에게 그리 말하며 나는 부케팔로스의 배 아래쪽을 살짝 발로 툭 친다. 그러자 익숙한 투레질 소리와 함께 녀석은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곧 문이 열리고 나팔 소리와 함께 대로변의 사람들이 옆으로 비켜선다. 부케팔로스는 길이 뚫려있는 것을 보고 곧장 빠르게 질주한다.
도시의 바깥, 먼 해안 쪽으로.
그러니까 항해학교의 이런저런 시설들이 세워진 쪽으로 말이다.
“파리스 님이다! 문 열어!!”
내가 말에 올라 달려오는 모습을 문지기들은 신원 확인도 거치지 않은 채 곧장 고개를 숙이며 문을 연다. 말에서 내리자 하얀 대리석으로 시원하게 외장을 가꾼 건물들이 눈에 띈다.
조선 및 항해용 공돌이 양성 대학원··· 아니, 안탄드로스 항해학교다.
나는 항해학교에 딸린 조선소를 지나며 포세이돈 신상에 철전을 던지고, 도서관 앞을 지나치며 대리석으로 된 아테네의 발등에 올리브유를 뿌린다.
다시 이런저런 계단과 복도를 지나자 이번에는 헤파이스토스의 신상이 보인다. 나는 그 앞에서 경의를 표한 다음, 도금한 신상 옆에 있는 문으로 진입했다.
“파리스 님! 어쩌다 여기까지 또 오셨습니까?”
그러자 마침 생도들을 갈구던 교수들이 고개를 돌려 나를 향해 빙긋이 웃는다. 나는 그들과 일일이 악수를 주고 받은 다음 물건을 탁자 위에 내려놓는다.
짤랑이는 소리에 장인들은 그 정체가 무엇인지 빠르게 눈치챈 듯하다.
“아니, 생각해보니 지난 하투샤의 침공에서 해안을 방어하는 데 자네들이 이리저리 의견도 주고 공헌을 했는데 보상이 없었잖나? 내 소소한 성의 표시일세.”
좀 음습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럴 때 쾌감을 느낀다.
“소, 소소하다니요? 이 자루에 담긴 철전이면··· 새로 건물 하나를 더 올릴 수도 있을 터인데···.”
그러니까, 이런 거.
하, 하, 하. 나한테 이 정도는 ‘사소한’ 지출인데 말이야. 이렇게들 놀랄 줄은 전혀, 몰랐군.
“정말 감사드립니다, 주군. 저희에게 이리 신임을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아무것도 아닐세. 아무것도.”
···좋아.
음습한 욕구 충족은 이쯤으로 해두자. 이 이상으로 가면 내가 돌이킬 수 없이 이상해질 것 같으니까.
“뭔가 새로 만들어지거나 한 건 없나?”
“아, 이번에 새로 케브렌 강을 오가게 된 배는 보셨습니까?”
“···그래. 봤지.”
독한 놈들.
내가 그렇게 차륜선에는 희망이 없다고 하니까 기어코 뭐 하나는 완성시켰다.
말 몇 마리를 태운 다음, 그들이 걷는 힘으로 물레바퀴를 돌려 추진력을 얻는 대형선.
그 추진력으로 강을 오르락내리락 하니 인건비도 덜 들고 안탄드로스 시민들에게는 무슨 버스처럼 여겨지는 모양인데···.
기본적으로 비싼 이 시대의 말 값을 감당하고도 유지되는 걸 보면 의지의 승리라고밖에 할 수 없다. 바다에서는 못 다녀도 잔잔한 강 위에서는 나름 경제성을 갖췄으니.
나도 장인들의 집념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아무튼, 나쁠 건 없으니까. 안탄드로스는 그렇게 대중 교통 수단을 얻은 셈이다.
내가 뭔가 황당해하는 표정으로 있자니 장인들은 자기들끼리 뭔가를 쑥덕댄다.
내 눈치라도 보는 듯 이쪽을 흘긋거리며 수근대더니 곧 뭔가 정리됐는지 장인들 중 한 사람이 다가와 내게 고개를 숙인다.
“파리스 님, 일전에 말씀하시길 가능성만 충분히 보인다면 한번 저희끼리 독자적으로 이런저런 실험을 해보아도 괜찮겠다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뭐, 그랬지.”
장인이 이야기하는 말투가 심상치 않아,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러자 장인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저희가 항해학교라 이름을 달고 있기는 하나, 실상 도시의 목수들 중 거진 태반이 저희와 연결된지라 나무로 깎아 만드는 물건이라면 웬만한 건 죄 건드려보고 있습니다.
개중에 괜찮아 보이는 것을 하나쯤 만들어보았는데, 이를 십수 대 정도 만들어 놓으면 어떨까 하여···.”
십수 ‘대’?
그 뭔지 모를 기물을 세는 단위를 듣고, 나는 그게 작은 장난감 같은 게 아님을 짐작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해주었다.
“혹시 그게 뭔지 말해줄 수 있나? 아니, 아니지. 한 대를 만들어보았다고 했었나?”
“예, 주군.”
“한번 보여주게.”
내 말에 장인들은 자기들끼리 시선을 교환하다가 쑥덕인다.
“그거, 어디다 놨었지?”
“뒷마당에.”
“어디 뒷마당?”
“저 왼쪽에서 두 번째 문으로 나가면 이어지는 곳에.”
“알겠네.”
그리고 다시 나를 보고.
“알겠습니다.”
하고 답한다.
그들이 들고 있던 연장과 두루마리를 놓고 걸으니 나 역시 뒤를 따랐다. 나무 깎는 소리와 톱밥 내음이 어딜 가든 벽과 문을 뚫고서 사방에 진동한다. 내가 싫어하지 않는 것들이다.
아까 장인 중 한 사람이 말한 대로 왼쪽에서 두 번째 문으로 나가 복도 끝까지 걸어간다. 그리고 다시 앞서나가던 이가 문을 열어 옆으로 비키며 내게 손짓한다.
내가 문밖으로 나서니··· 보이는 건 수레다.
그냥 수레는 아니고. 앞에 거대한 방패, 아니 벽이 세워진 수레.
보기에 내가 아는 병기와 가장 비슷한 건 공성탑인데, 좌우로 길쭉하다. 얼마냐 길쭉하냐면···
“두 대를 나란히 세우면 안탄드로스의 표준적인 도로는 모두 막힙니다.”
그래.
안탄드로스의 도로를 딱 가로막을 만큼.
“···시내에서의 전투를 염두에 둔 건가?”
“맞습니다.”
공성탑과 비슷하지만 공성이 목적도 아니고, 탑도 아니다.
“이건 차라리 이동식 성벽이라 하는 게 옳겠군. 괜찮은··· 생각이야.”
사실 웃기는 이야기다.
웬만한 상황에서 이런 걸 십수 대씩 만들자는 건 ‘괜찮은 생각’일 수가 없다.
그렇게 비효율적인 짓이 어딨나. 이런 걸 세울 자원과 노동력으로 목책을 더 두르고, 다른 무기를 만드는 게 낫다.
이 ‘벽’은 세상에서 단 한 가지 경우에만 유용하다.
“···누가 생각해낸 거지?”
안탄드로스에서 공방전이 일어날 때.
저것으로 안탄드로스의 공동주택들 사이로 난 대로를 틀어막고, 마치 새로운 성벽을 세운 것처럼 방어선을 단단하게 구축할 때.
저 거대한 구조물을 십수 대씩 만들어 계속 유지하자는 생각 역시 평시에는 터무니없다.
그러니까 이런 장비를 생각해내고, 제작을 종용한 사람은 근시일 내에 안탄드로스에서 대규모의 수성전이 벌어지리라 생각하는···
“실은 미시아의 왕자께서 제안하셨습니다.”
아.
“텔레포스의 아들 에우리필로스가?”
“그, 그러합니다.”
“···좋아.
그럼 이만 가보도록 하지.”
난 대강 고개를 끄덕인 뒤 빠르게 뒤돌아 항해학교의 출구 쪽을 응시했다. 그쪽으로 휘파람을 불자 가만히 기다리고 있던 부케팔로스가 이쪽으로 달려온다.
나는 망설임없이 녀석의 등 뒤에 올라탄 뒤 장인들에게 마지막으로 말했다.
“아, 그리고 저건 곧장 양산하게.”
“그럼, 얼마나···”
“일단 20대 정도로 시작하지. 효용성이 입증되면 더 늘리도록 하고.”
장인들은 예상보다 높은 주문량에 놀라 뭐라 입을 떼려 했지만 나는 이미 박차를 가했다.
부케팔로스는 다시 안탄드로스 시내를 향해 달렸다.
···에우리필로스를 만나봐야겠다.
***
아카이아인들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다음, 미시아 전역은 완전히 쑥대밭이 되었다.
수만의 전사와 수십수백의 장수들이 마치 메뚜기떼처럼 자비 없이 모든 재산을 갉아먹고 떠난 탓이었다.
미시아의 왕 텔레포스와 왕자 에우리필로스는 환난을 피해 페르가몬과 인근의 시민들을 이끌고 피신해 안전한 아드라미티온에 자리잡았다. 안탄드로스의 영향력이 뻗치는 땅이었으니까.
“하지만 크게 걱정은 없었습니다. 이 전쟁이 마무리된 다음에 다시 미시아를 재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니까요.”
수많은 도시가 폐허가 되고 그 부유하던 페르가몬의 자산들이 약탈당했지만 그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아카이아인들은 한바탕 약탈을 끝낸 다음, 미련 없이 미시아를 떠났다. 혼란이 이어지고는 있지만 일단 가장 큰 적대세력은 사라진 것이다.
게다가 바로 그들의 바로 곁에 안탄드로스라는 부유한 동맹이 있다. 지금 그들이 아드라미티온에 정착한 것도 안탄드로스의 도움이 컸다.
안탄드로스의 지원만 있다면, 정치적으로 무거운 빚을 지더라도 어렵잖게 고향을 재건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아카이아인들을 트로이아로 몰아넣고 촘촘한 포위망을 완성했을 때, 그 꿈은 실현 직전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리고, 그 꿈은 깨졌습니다.”
에우리필로스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곳은 아드라미티온, 내 동맹시 중 하나.
원래 미시아 왕국의 일원이기도 했기에, 텔레포스가 미시아에서 끌고 온 난민들과 함께 정착한 곳이기도 했다.
이곳의 한 저택을 텔레포스와 에우리필로스는 임시 왕궁으로 삼았고, 나는 그곳에 손님 자격으로 방문했다.
어쨌건 에우리필로스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꿈이 깨졌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무엇 때문입니까?”
“정확히는··· 하투샤 때문이지요. 하투샤가 싸움을 걸어왔을 때부터 저와 아버지는 긴장했습니다.”
그리 말하며 에우리필로스는 내 앞에 지도를 내민다. 소아시아와 에게 해 일대를 그린 지도다.
“수백 년 전, 그들이 서쪽으로 영향력을 뻗칠 때 미시아 남부부터 장악했습니다. 하투샤에서 이곳까지 육로를 통해 연결한다면 미시아가 가장 손을 뻗치기 좋다는 말이지요.”
“그렇다는 건···”
“예. 저도 파리스 님처럼 하투샤가 순순히 물러가지 않으리라 여깁니다.”
에우리필로스의 미간에 힘이 들어간다.
“그리고 제가 보기에 저들이 육로를 통해 진군해온다면, 그 첫 목표는 미시아일 겁니다.”
당연히, 저들이 다시 돌아온다면 육로를 택하겠지. 처음 시도한 상륙전이 그리 처참히 실패했으니까.
“라리사의 왕 히포토스가 아카이아인들을 지원한 뒤, 그들이 떠나자 곧장 폐허만 남은 미시아의 영역들을 침략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아카이아가 패배한 뒤에도 그 패악한 짓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럴 만한 자신감이 어디서 나왔겠습니까? 누가 그들을 배후에서 움직였겠습니까?”
당연히 하투샤다.
저들이 육로로 오는 게 확실하다 친다면, 아마 교두보를 마련하는 과정이겠지.
그리고 혼란에 빠진 미시아로 하투샤가 진군한다면, 그들은 곧장 북상하여 트로이아의 주요한 동맹시들을 치기 시작하리라.
“우선 적들은 이 도시들을 칠 겁니다. 리르네소스, 아드라미티온, 테베, 아스티라.”
“···.”
이곳 아드라미티온까지, 전부 안탄드로스의 동쪽 도로로 연결된 도시들이다.
“그럼 그런 곳들을 어떻게 지켜야 할지 생각해야 하겠군요.”
“버려야 합니다. 버티지 못할 겁니다.”
“···뭐라고요?”
“동쪽에서 기이할 정도로 많은 농민들이 안탄드로스로, 그 서쪽으로 넘어가지 않았습니까?”
“···.”
“제가 보냈습니다. 그들은 살아야지요. 이 도시에 남는 이들은 시간을 끌며 맞서싸울 이들이어야 합니다.”
에우리필로스의 표정은 진지했다. 나는 뭐라 입을 떼지 못하다, 그의 말에 담긴 뜻을 깨닫고 뒤늦게 물었다.
“‘시간을 끌며’ 맞서싸운다 하셨습니까?”
“예. 결국 지켜야 할 것은 안탄드로스입니다. 하투샤의 대군이 궁극적으로 몰아닥칠 곳도, 하투샤의 대군을 막아낼 수 있는 곳도 안탄드로스일 겁니다.
그렇게 확신합니다.”
“···그래서군요.”
그제야, 주위에 펼쳐진 번잡스럽고도 기묘한 풍경이 이해가 된다.
나는 고개를 돌려 미시아 왕실의 임시 궁전을 한차례 돌아보았다.
수많은 두루마리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다. 반쯤은 펼쳐져 있고, 반쯤은 구겨져 있는 채로.
조금 조잡하지만, 나무를 깎아 만든 수많은 모형들이 완성되거나 아직 완성되지 못한 상태로 온 바닥과 벽과 탁자마다 쌓여 있다.
마지막으로, 수많은 학자들이 나와 에우리필로스의 대화를 들으며 시립해 있다. 그들은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모두들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넨다.
저 옷차림새, 저 말씨, 저 장신구.
“모두 아이깁토스인들이군요.”
“맞습니다. 안탄드로스 부근에는 정말··· 아이깁토스인 학자들이 많이들 머물더군요.”
저들 중 반수 이상이 나를 보고 기이하게 눈을 빛내는 광신도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에우리필로스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들과 함께 안탄드로스를 지키고 적들을 막을 온갖 병장기들을 고안해보고 있었습니다. 항해학교에서 보셨다는 물건은 그 결과물 중 하나였습니다.”
“‘온갖 병장기들’을 고안하셨다고요?”
“예.”
역시.
이 난잡한 꼴만 봐도 바로 알 수 있었지만, 이들이 고안해낸 건 그 이동식 성벽뿐만이 아니었다.
“현실적으로 말이 되는 것부터, 되지 않는 것까지. 헤파이스토스 신께서 직접 내려오시지 않는 한 절대 만들 수 없는 물건까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착상은 기록하고 연구해보았습니다.”
“그 연구 기록을 좀 뒤져 볼 수 있겠습니까?”
내 말에 에우리필로스가 답하기도 전에, 뒤에 서 있던 아이깁토스인들이 먼저 입을 열었다.
“···거룩한 성지를 지키는 데 저희의 미약한 지혜가 보탬이 될 수 있다 생각하니 온마음이 기쁨으로 차올랐습니다!”
“지혜로써 세상을 이로이 하시는 사도께서 저희의 피조물을 보신다는 데 지상의 그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
“크흠. 제가 초대한 문객들이 말씀드린 바대로, 어차피 모두 파리스 님께 헌정하고자 떠올린 것들입니다. 오히려 이쪽에서 부디 사양 않고 봐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해주신다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