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Leader of a Girl Group Destined To Fail RAW novel - Chapter (173)
173화.
“정말 후회 안 하겠어요?”
“응.”
나는 잘게 떨리는 류보라의 목소리에,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제가 낸 기획서 그대로… 컨셉을 잡겠다고요?”
“응.”
컨셉만 잡겠냐.
네가 써 놓은 기획서 그대로 플랜도 진행할 생각이다.
“영화판에서 살다 와서 그런가 예산 아주 거하게 잡았던데. 사장님이 뒷목 잡으시더라.”
“그건…!”
류보라는 얼굴을 확 붉혔다.
초보 감독다우시구만.
“걱정 마. 자체 프로듀싱이라 돈 많이 아끼신 거 다 안다고. 이럴 때 안 쓰시면 대체 언제 쓸 거냐고 했어, 내가.”
“…진짜 그랬어요?”
“응.”
진짜 그랬는데.
홍 사장은 우리한테 너무 투자를 안 해.
스틸블루만큼 돈 안 들어가는 그룹도 없다.
최소한 곡 사 오는 돈은 아꼈잖아.
안무도 서백영이 짜니까 그 예산도 아꼈지.
여기서 더 어떻게 아낀단 말인가.
이럴 때라도 써야지.
“자컨 영상 기획도 종종 했었잖아. 왜 새삼스럽게 겁을 내?”
“그래도 저한테 컬러 필름 연출까지 맡길 줄은 몰랐죠.”
아.
그게 겁이 났던 건가.
“연출, 하고 싶어 했잖아.”
“그건 그렇죠.”
“너 혼자 스토리 짠 것도 아니고. 보니까 다른 멤버들이랑 같이 짰다던데.”
앨범 컨셉은 다 같이 대략적으로 정했다.
그러나 세부적인 세계관 설정과 스토리 설정까지는 완성되지 않았을 때.
갑자기 류보라가 자기가 한번 디렉팅을 해 보고 싶다고 하기에, 그러라 했다.
멤버들도 신나하더니, 나 빼고 매일 숙덕거리며 같이 기획하기 시작했다.
나도 끼고 싶어서 다가가면, 다들 문을 잠그고 날 내쫓아 냈다.
나는 일을 너무 많이 하니까 이건 그냥 자기들한테 맡기고 쉬라면서.
그게 더 마음이 불편한데 말이다.
“…네.”
“다들 요즘 왜 나만 따돌리는지 모르겠어. 나는 왜 빼? 내가 작곡한 노래인데, 가사도 막 너네끼리 만들고.”
“그래 봤자 저랑 김금 둘이 만든 거잖아요.”
“흥.”
잘해 줘 봐야 소용없다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 거던가.
섭섭해 죽겠다.
노래도 내가 다 만들어 왔는데.
“그리고 언니가 몰라야 이 스토리가 완성되거든요.”
“…그니까 대체 왜? 이번 컬러 필름은 내가 주인공이라며.”
“네.”
처음 기획서를 봤을 땐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내가 주인공이라고?
근데 그 스토리를 나 빼고 네 명이서 짰다고?
“그럼 왜 주인공한테 스토리를 안 알려 줘. 나 연기 어떻게 하라고?”
“몰라야 연기가 된다니까요.”
“….”
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해하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다들 잘 생각했겠지….
“그럼 난 언제 스토리 알 수 있어?”
“7월 3일에요.”
“…뭐?”
7월 3일이면 컬러 필름이 세상에 공개되는 날 아니었나?
“잠깐. 그럼 너 진짜 끝까지 나한테 말 안 해 줄 거야?”
“트리트먼트는 간략하게 보여 줄 거예요. 솔직히 몇 장면 되지도 않으니까 충분히 할 수 있어요.”
“뭐?!”
류보라는 그제야 피식 웃으며 여유로운 미소를 그렸다.
“그리고 언니 의견 안 들어간 거 아니에요.”
“…?”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맞아. 청청 의견도 다 반영되었어요.”
그때, 김금이 우리 대화에 끼어들었다.
믿었던 김금 너마저.
“평소에 청청 하는 얘기들이랑 청청 성격 100% 반영했으니까, 사실상 청청 의견이 반영된 거나 마찬가지죠.”
그게 어떻게 내 의견이 반영된 거냐.
나는 황당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무튼 보면 안다니까요. 실망 안 하실 거임.”
김 대리는 새 앨범 떡밥에 목말라 있었다.
어느 순간 멤버들의 활동이 거의 멈췄기 때문이었다.
퍼블과 라이브 방송으로 찾아오는 것 외에, 공식 스케줄은 확연히 줄어들었다.
그러자 팬들도 직감했다.
‘새 앨범 준비에 돌입했구나!’
다들 스틸블루가 보고 싶었지만 꾹 참고 기다렸다.
우리 애들이 최고의 앨범으로 돌아오겠다고 했으니까.
우리 몫은 그저 믿고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너무 보고 싶은 걸 어쩌란 말이냐~!’
출퇴근의 낙이 사라졌어….
보고 싶어… 스틸블루 얼른 컴백해….
그렇게 부르짖는 날들만 지속되던 어느 날.
공식 SNS 계정에 멤버들의 근황 사진이 올라왔다.
★
안뇽 에블! 우리 보고 싶었어요?
다섯 명 모두 머리를 꽁꽁 감싸 숨긴 채로 나타난 것이었다.
멤버들이 해맑게 웃고 있는 사진에, 김 대리는 거의 눈물까지 날 지경이었다.
드디어 기다림이 끝났다…!
띠링!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스틸블루 타임테이블 떴어요ㅠㅠㅠㅠㅠㅠㅠ
7.02 : Color Film 1부
7.03 : 티저
7.04 ~ 7.08 : 멤버별 컨셉 포토
7.10 : 하이라이트 메들리
7.12 : 뮤직비디오 & 앨범 발매
7.13 : 쇼케이스
7.14 : Color Film 2부 & 첫 음방
컬러필름 나오는 것도 놀라운데 2개나 나온다굽쇼?
심지어 2부는 쇼케하고 난 다음에 나오네…?? 왜지 뭔데 뭐냐고 나도 같이 알자ㅠㅠ
잠만 7월 2일이면 오늘 아님?
★
님들 오튜브 얼른 가보셈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스틸블루의 오튜브 계정에, 무언가가 올라온 것이다.
▶ [StillBlue(스틸블루) – Color film ‘모든 시간을 뛰어넘어’ (1/2)]
‘미친.’
컬러 필름?
데뷔 앨범 때 그룹 컨셉을 알려 주기 위해 나온 그게… 한 번 더…?
‘모든 시간을 뛰어넘어’…?
김 대리는 경건한 마음으로 영상을 클릭했다.
그러자.
[네가 어느 세계에 있든.]지하철역 야외 플랫폼이 보였다.
겨울인 듯, 새하얀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이 소복이 쌓이며.
류보라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되었다.
철커덕, 하고 울리는 소리, 그리고 빠르게 내달리는 지하철.
[네가 어느 시간에 있든.]지하철이 완전히 떠나고 나서야.
플랫폼에 남겨진 윤청이 보였다.
하얀색 블루투스 이어폰,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
검은색 코트, 흰 셔츠, 파란색 목도리.
직장인이 입을 법한 단정한 옷을 입고서 지친 얼굴로 서 있었다.
[나는 너를 찾아낼 거야.]류보라의 내레이션이 끝나자.
갑자기 화면이 되감기되었다.
그러자 떠나갔던 지하철이 다시 철커덕거리는 소리를 내며 돌아오고.
눈은 반대 방향으로 빠르게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바람 소리.
세상을 울리는 듯한 지하철의 진동 소리.
[우리가 함께했던 시절을 기억해?]그 커다란 소리를 뚫고 김금의 내레이션이 시작되었다.
지하철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역행해 달리다가-
멈춰 섰다.
그러나 이번엔 다른 플랫폼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다른 시간대의 같은 플랫폼이었다.
[날 보는 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빛나는 여름날.
우거지는 신록과 부서지는 햇빛이 눈부신 무지개를 자아냈다.
창백했던 역사에도 푸르름이 가득했고.
그곳엔 윤청이 교복을 입은 채로, 유선 이어폰을 끼고 서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지친 얼굴이 아니었다.
[너도 나만큼, 불안함을 느꼈을까?]어딘지 밝은 얼굴.
그건 내일을 기대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전철은 윤청을 태우고, 어딘가로 다시 내달렸다.
이윽고 문이 열려, 윤청이 발을 내딛자.
그곳은 학교의 운동장이 되었다.
[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기억은 있다고 하잖아.]이번에는 연주홍의 목소리였다.
윤청의 눈길이 닿는 곳마다 온통 싱그러움이었다.
수돗가에 물이 흐르는 소리.
그 앞에서 장난치는 목소리.
[내가 너의 그런 기억이 될 수 있을까.]운동장을 메우는 웃음소리.
누군가가 뛰어다니는 발자국 소리.
그 소리를 헤치고 윤청은 앞으로 나아갔다.
그 순간, 누군가가 윤청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상대방을 확인하기 위해 윤청이 뒤를 돌아본 순간.
화면은 블랙아웃되고.
[나를 떠올려 줘.]서백영의 목소리와.
흰 글씨의 자막만이 떠올랐다.
[나를 기억해 줘.]다시 화면이 돌아오고.
윤청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우리의 모든 순간을 네가 불러 줘.]류보라가.
[그러면 나는 모든 시간을 뛰어넘어,]김금이.
연주홍이.
[기필코 너를 안아 줄게.]서백영이 있었다.
모두 같은 교복을 입고서.
윤청을 기다리고 있었다.
[We are still here]반짝.
배경이 모두 지워져 흰 빛만이 남고.
뒤돌아선 윤청 뒤로 네 멤버들이 서 있었다.
[We are waiting for you] [Forever and Ever]자막과 함께 멤버들의 내레이션이 들리고.
빛이 꺼지듯 블랙아웃되었다.
[Forever Blue]그리고 물빛이 아롱지듯, 앨범의 로고가 떠올랐다.
어느 한 여름날의 아지랑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