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Leader of a Girl Group Destined To Fail RAW novel - Chapter (79)
79화.
김려유가 아예 무대를 포기하자, 연습생들은 당황했다.
하지만 당황할 시간도 없었다. 일단 김려유가 부르지 않는 부분을, 누군가가 소화해야 했다.
그리고 그 순간에, 연습생들의 협력이 빛났다.
너는 나의 빛만 봐 줘
내가 감추려는 그림자는 잠시 잊어 줘
누구 하나 망설이지 않고 자신이 불렀다.
처음엔 서백영이,
너는 나의 빛이니까
그다음엔 이경아가,
나도 너의 빛이 될 거야
그다음엔 윤청이,
우린 같은 여름의 프리즘을 거쳤으니까
또 김금, 방수인, 류보라….
다행히 꼬이지 않고 다들 시선을 교환해 가며, 돌아오는 김려유의 파트 때마다 입을 맞추었다.
단 한 명이라도 겹쳤다면 어색해 보일 수도 있었을 상황이었다.
하지만 연습생들은 그동안 호흡을 맞췄던 것을 토대로 상대방의 마음을 읽었다.
이번엔 네가?
다음엔 내가.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에도, 다들 미소를 잃지 않으며 노래를 불렀다.
영원히 빛날 거야
반짝이는 너와 나
그렇게 마지막 소절까지 끝나자마자.
김려유는 도망치듯이 무대 밑으로 내려갔다.
그제야 연습생들의 눈에도 무대 아래의 방청객들이 보였다.
그제야 사람들의 눈이 보였다.
그제야 다들 이해했다.
왜 김려유가 도망쳤는지.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게 분명했다.
***
“오래 기다려 주셨습니다. 지금부터 카운트다운을 시작하겠습니다. 이제, 컬러리스트 여러분께서 연습생들의 꿈에 색을 칠해 주실 수 있는 시간이 딱. 1분. 1분이 남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힘을 보태 주시길 바랍니다.”
도희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카메라를 보며 웃고 있었다.
그러나 무대 위에 있는 연습생들은 그렇게 포커페이스를 유지할 수 없었다.
저마다 받아들이는 방식은 달랐지만, 모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까, 무대가 끝나자마자 내려갔다.
그리고 전해 들었다.
지금 이 커다란 듯 작은 스튜디오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다들 그래도, 절대 알은척하지 마라. 너네는 아예 이 사건 자체를 모르는 척해. 그게 모두에게 가장 좋은 길이야.’
급하게 본사에서 나온 직원이 설명했다.
수습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함부로 말 얹지 마라.
그래 봤자 너네도 같이 진창으로 끌려가는 꼴밖에 안 되니까.
그 말은 연습생들의 마음에 그림자를 남겼다.
김려유를 좋아하는 건 아니었지만, 마음이 좋을 수도 없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보통 큰 논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실은, 열심히 카메라를 보고 자신의 번호를 어필해야 하는 시간인데도.
다들 손이 굳어서 제대로 홍보하지도 못했다.
억지로 미소 지으며 간신히 손을 흔들 뿐.
“간절한 꿈들에 응원을 보내 주세요. 컬러즈라는 흰 도화지에, 새로운 색을 더해 주세요. #16XX로, 지지하시는 연습생의 번호를 보내 주시면 됩니다. 최대 다섯 명까지 보내 주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색으로 자유롭게 색칠해 주실 시간이… 이제. 10초. 10초 남았습니다. 10. 9. 8….”
3.
2.
1.
방청객들도 목이 터져라 외쳤다.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열띤 성화에 힘입어, 엄청난 투표수로 [메이크 어 뉴 컬러> 투표가 마감되었습니다. 대한민국 K-POP의 미래를 이끌어 갈 차세대 드림 컬러. 그 새로운 색깔을 채워 줄 다섯 명은 과연 누가 될지. 투표를 집계하는 시간을 잠시 갖겠습니다. 1분 뒤에, 결과가, 공개됩니다.”
잠시 1분 광고 타임.
여전히 인터넷은 떠들썩했다.
★
와 드디어 누구되는지 나오겠네
누가 되든 돌서바 ㄹㅈㄷ로 남을듯….. 역대급 시끄러웠던 돌서바이벌ㅋㅋㅋㅋㅋ
현재까지 메뉴컬 근황
: 자진하차 1
전국민 하차 기원 1
10명 중에 누가 되든 응원함
다섯 명까지 뽑을 수 있다는데 그냥 난 솔직히 10명 다 뽑아주고 싶었어…
팬들도, 컬러즈도, 연습생들도 웃기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입이 찢어져라 웃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오 PD였다.
“이야. 아주 내가 전생에 무슨 덕을 쌓아서 이렇게 애들이 알아서 넝쿨째로 어그로를 다 끌어 주냐?”
“….”
사실 이렇게 연습생들이 논란에 휩싸인다 해서, 오 PD가 손해 볼 건 하나도 없었다.
컬러즈야 당연히 애써 키운 연습생이 날아가게 생겼으니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하지만 엠텐은?
그야말로 호재였다.
논란이 터질수록 실시간 시청률도 고공 행진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거 기획했을 땐 1%라도 나올까 말까, 했는데. 그렇지, 강 작가? 우리 저번 화, 몇 퍼 떴지?”
“…2.1%요.”
“난 이번에 2.5% 넘는다고 본다.”
아이돌이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사실 시청률이 높기 힘든 프로그램이었다.
특히나 소속사 한 개의 아이돌 그룹을 뽑는 프로그램은 더욱 그랬다.
이유는 단순했다.
나오는 연습생의 수가 적으니까.
나오는 사람이 많을수록, 팬층은 넓어지기 마련이다.
사람 취향은 다양하니까.
이 중 하나는 네 취향이겠지 전략이 정말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메뉴컬에 나오는 연습생은 기껏해야 열두 명. 이제는 열한 명이었다.
당연히 시청률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물론 컬러즈가 손에 꼽을 정도로 대형 소속사고, 팬들의 충성도가 높은 편이긴 했다.
그래서 재미도 없고 사고 하나 안 치는 애들만 나올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사건 사고들이 줄줄이 터졌다.
물론… 대부분 김려유가 원인이긴 했지만.
다른 애들도 그냥 당하기만 하는 성격은 아니라, 보는 재미가 있었다.
“여기서 진짜 한 명만 더 터트려 주면 재밌을 텐데.”
“한 명 더…라고요?”
보다 못한 강 작가가 입을 열었다.
“응?”
“지금 이게, 무슨… 얘네 기껏해야 스물 갓 넘은 나이가 최연장자인 애들이에요.”
“어?”
오 PD는 당황했다.
강 작가가 한 번도 자기 말에 이렇게 반응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김려유가 불쌍하다는 건 아니에요. 걔가 뿌린 대로 걷어 가는 거라고도 생각해요. 근데 방금 그 말은, 뭐예요? 학폭이 아예 없길 바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학폭이 오 PD님 승진을 위해 발생해야 하는, 그런 쉬운 문제로 보이세요? 논란이 하나 더 터졌으면 좋겠다니, 그걸 말이라고 하시는 거냐고요.”
“아니, 강 작가. 되게 말 웃기게 하네?”
“본인 이득 위해서 어린 애들 망하길 바라시는 PD님이 더 말 웃기게 하시는 거 아니고요?”
오 PD는 눈을 희번득하게 떴다.
“막말로 내가 보도했어? 걔 학폭 터트린 게 나야? 아니지. 오튜버들 아냐?”
“소스 넘긴 거는 PD님이시잖아요.”
그랬다.
애초에 사이버 렉카 오튜버들에게 김려유의 학폭 소스를 넘긴 건.
오 PD였다.
당연히 오 PD는 처음부터 김려유의 학폭 사건을 알았다.
아무렴 프로그램에 들어가는 돈이 얼마인데. 고작 열두 명밖에 안 되는 연습생들의 생활 기록부도 안 떼 봤겠는가.
그냥 김 이사가 덮어 두라고 하니까, 일단은 덮어 준 것뿐이지.
오 PD는 그저 상황을 잠시 살폈을 뿐이었다.
사실 오 PD는 고민하고 있었다.
이걸 터트려, 말아?
처음엔 터트리지 않으려 했다.
이걸 터트린다고 해서 꼭 김려유가 데뷔하지 못하게 될 거라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컬러즈에서 강경하게 사실 무근이라고 대응하면 묻힐 수도 있고, 대중들이 그냥 관심 없어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칫 잘못 움직였다간 컬러즈의 미움만 받고 망하는 수가 있었다.
이걸 터트리면 김려유는 절대로 데뷔해선 안 된다.
그러니 자기보다 더 독한 놈이 필요했다.
그래서 오 PD는 눈치를 봤다.
오 PD는 지금 상황이 딱 모래성 뺏기 게임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참여자는 컬러즈, 엠텐, 그리고… 윤청.
고작 연습생인데 게임 플레이어일 수 있냐고?
오 PD는 윤청만큼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이 셋 중 한 놈은 무너져야 시청률이 대박 난다.
오 PD가 무너지는데 어떻게 시청률이 대박 나냐고?
그거야 제작진이 조작을 좀 해서 인터넷 불타오르게 하면 가능하다.
하지만 오 PD는 절대 자신 차례에 모래성을 무너뜨릴 생각이 없었다.
조작을 내가 왜 해야 한단 말인가?
그러다 깜빵 가게?
그러니 윤청 차례나 컬러즈 차례에 무너져야 한다.
그렇다면 먼저… 앞선 놈 하나가 크게 모래를 퍼서 위태롭게 해 줘야 했다.
그러고 나서 자신이 바통을 이어받아 바로 다음 플레이어가 무너지도록 해야 했다.
그런데.
윤청이 모래를 펐다.
아주 크게.
오 PD는 본능적으로 이제 본인 차례임을 깨달았다.
이 논란을 터트렸을 때, 가장 효과적으로 시청률이 올라갈 때가 온 것이다.
기본적으로 오 PD는 기회주의자인 동시에, 안전제일주의자였다.
오 PD는 자신이 선봉을 뛸 생각은 없었다.
선두 주자가 있으면, 살짝 발을 얹는 게 오 PD의 방식이었다.
김려유의 평판이 흔들흔들할 때, 결정적인 사건을 터트린다.
기왕이면 유료 문자 투표로 돈을 왕창 버는 게 좋으니까-
딱 지금.
김려유를 떨어트리고 싶어서라도 사람들은 투표를 할 것이다.
문자 투표수를 높이는 방법은, 연습생 한 명의 인기에 기대는 게 아니다.
그 한 명을 온 국민의 적으로 돌리는 게 훨씬 효율적이지.
원래 남 띄우는 건 어렵고, 남 죽이는 건 쉬운 법이다.
그래서 오 PD는 소스를 넘겼다.
그리고 그건 아주 잘 먹혔다.
“그래. 내가 소스 넘겼어. 그리고 강 작가는 걔 과거 눈감아 주고 방송에 내보냈지.”
“…!”
“걔가 방송 나오면 상처받을 사람 있는 거 뻔히 알면서도, 눈감았잖아? 목적이 뭐든 간에 최소한 나는 권선징악을 이루기라도 했는데? 강 작가는 뭘 했지? 그냥 중립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방관을 한 건 아니고?”
오 PD는 절대로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자신이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자인 건 맞다.
그의 목적이 좀 자기 보전에만 있는 것도 맞다.
하지만, 수단이 그렇게 나쁘진 않잖아?
나쁜 짓 한 애, 나쁜 짓 했다고 제보했다.
그게 방송인 아닌가?
뭐가 나빠?
“강 작가도 잘리기 싫어서 눈감고 입 닦은 주제에, 남 비난하긴 좀 꼴사납지 않나? 내가 뭐 없는 사실 만들어서 제보했으면, 그래. 이해라도 돼. 나 비난하는 거. 근데 나, 정말 있는 사실만 고오대로 갖다 바쳤어. 조작도 안 하고. 그게 방송인 아냐? 안 그래?”
“그랬으면 PD님이 직접 방송에 내보내셨어야죠.”
처음으로 오 PD의 입이 막혔다.
한시도 쉬지 않고 나불대던 입이.
“그렇게, 숭고하신 행동이었으면 본인 손으로 직접 하셨으면 됐어요. 그런데 본인 손 더럽히긴 싫고, 컬러즈나 김려유 집안 적으로 돌리긴 또 싫으니까. 그래서 소스만 넘긴 거잖아요. 이득만 보고 싶어서. 그런 건 방송인 아니고요. 그냥 졸렬한 새끼라고 불러요.”
“강 작가 지금 미쳤나?”
“그리고 저도 그 졸렬한 새끼 밑에서 일하는 졸렬한 새끼 맞아요. 그래도, 어? 좀 자기 부끄러운 줄은 아는 졸렬한 새끼가 되자는 거예요!”
강 작가는 씩씩거리며 뒤돌아섰다.
이제 투표 집계가 끝날 시간이 됐기 때문이었다.
강 작가는 사실 자신의 입을 후회했다.
원래도 그렇게 용기 있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면 진작에 뭐라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강 작가는 침묵을 선택했다.
그래서 더 부끄러웠다.
그럼에도 그 순간 분노를 참을 수 없었던 건, 아마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지금 투표 집계가 막 끝났습니다. 총 투표수 먼저 발표하겠습니다. 와,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인데요. 총 문자 투표수. 1,244,728표. 백이십사만 사천칠백이십팔표입니다.]저 무대 위에 있는 애들에게 조금씩 마음이 움직여서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