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77
177
“하아…….”
“후.”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한숨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서울 방어기지 남문 17번 구역. 진녹색 피와 붉은 피가 한데 뒤섞여 바닥을 흥건하게 적시고 있다. 시체가 쌓여 산이 되어 초대형 몬스터가 없어도 몬스터들이 바로 벽 위로 넘어온다. 그러나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마력기관총만으로도 견제가 가능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하루하고도 반나절이 흘렀다. 사람들은 교대하며 체계적으로 방어했고, 뒤쪽에서는 쉬지도 않고 길드 헌터들이 나뉘어 수원 지구로 파견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울은 자신이 직접 가르친 1급 정부 헌터들과 신한 길드 대원들을 만나 그동안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지천욱은 그에게 그동안 변한 정보들을 압축해서 말해 주었다.
“중국은 여울 님이 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아 무너졌고, 일본은 최후의 방어지인 후쿠오카만 남아 있는 상태였는데, 한 달 전부터는 아예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중국에서는 피난민들이 지속적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만…….”
그의 얘기를 들어 보니 이 게이트가 다시 열리기 전부터 이미 심각한 상황이었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중국은 물론 일본도 무너진 듯하고, 건너편은 캐나다도 완전히 몬스터들에게 먹히고 미국만 간신히 반 정도의 도시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다른 나라들과는 교류가 없기에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도시가 있는지 모르는 상황이다.
한국 같은 경우에는, 여울이 로디스로 떠난 후 벌어진 게이트 습격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은 천안, 대구 지구는 아예 없어지고 수원 지구와 서울 방어기지에 대한민국의 모든 인원이 나뉘어서 정착했다.
그리고 지금은 상위 랭크 헌터들을 모아 바로 수원 지구로 지원을 나가려 하고 있다. 은서와 수언도 북문 방어가 수월해지자 바로 남문으로 넘어와 지원대에 합류했다.
지천욱은 수원 쪽 게이트의 몬스터들이 대부분 이쪽으로 넘어와 피해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수언과 은서까지 합류했으니 지원은 수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은서는 여울의 팔뚝을 감싼 채 올려다보며 물었다.
“아빠, 아빠도 나랑 같이 갈 거지?”
“그래야지, 우리 딸이…….”
그때, 저 멀리서 고위급 공무원으로 보이는 중년인이 크게 통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국? 미국은 무슨! 우리도 다 죽어 가고 있어! 때려죽여도 없다고 해!”
그 통화는 여울이 아닌 다른 누가 들어도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있었다.
여울은 은서의 어깨를 한 번 두드리고는 그에게 다가갔다. 중년인은 인상을 쓴 채 여울을 힐끗거리다가 얼굴을 확인하고는 입을 쩍 벌리며 휴대폰을 내렸다.
“허업! R랭크 허, 헌터님?”
여울은 그의 말을 무시하며 물었다.
“미국 지원 요청입니까?”
중년인은 휴대폰을 한 번 쳐다보았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그를 보며 대답했다.
“예? 아 예, 예……. 하지만 저희도 이게 상황이 상황인지라 안타깝지만…….”
“제가 가겠습니다.”
“네?”
“전처럼 저 혼자 가겠습니다.”
“그, 그러면…….”
“누구의 허락도 필요치 않습니다. 바로 준비해 주십시오.”
“아, 아 옙!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휴대폰을 들어 어딘가로 다시 통화 버튼을 누르며 뛰어갔다.
미국을 지켜 내야 한다. 케라브도 혼자 싸우다가 실패해서 결국 다시 시간을 되돌렸다.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살려 몬스터에게, 아니 스올에게 대항해야 한다.
이쪽으로 정신체만 넘어와 인간의 몸을 차지하여 불완전하다는 스올. 그의 힘이 대체 어느 정도인지 짐작되지 않는다. 그곳에서는 자신이 아예 상대가 되지 않아 측정할 기회조차도 없었다.
정답은 정해져 있다.
강해질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며 그를 찾아다닌다. 카르의 말에 의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힘을 더 되찾는다고 했다. 최대한 빨리 그를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이라는 강대국이 굳건히 버티면서 세계가 몬스터들을 상대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아빠! 미국 가려고?”
여울은 은서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 아무래도 가야 할 것 같아, 한국은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으니…….”
“알겠어, 아빠, 나도 다 알아. 애처럼 아빠 안 붙잡을게. 얼른 다녀와.”
부녀의 대화를 멀리서 훔쳐 듣던 보라가 다가오며 말을 거들었다.
“그치 누구한테 배웠는지 참 잘 컸네. 딴 세계만 아니면 돼. 대신 빨리 와요.”
여울은 보라에게 시선을 돌리며 대답했다.
“알겠다. 은서를 부탁하지.”
여울이 두 여자와 인사를 나누는 중에 중년인 공무원이 다가와 비행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는 도중에 왜소하지만 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중년인과 마주쳤다. 여울은 그와 눈을 마주하자 죄책감에 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그는 반갑게 다가와 여울의 손을 두 손으로 잡으며 말했다.
“여울 님, 이렇게 다시 돌아와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잘 막을 수 있었습니다.”
“예…….”
그의 검은 방어복을 마주하고 나서부터 여울은 계속 한 가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백일권은 여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조용히 물었다.
“여울 님, 혹시…… 그곳에서 대장님은 못 만나셨습니까?”
일권은 그 순간 흔들리는 여울의 눈빛을 보았다. 덜컥 불안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만히 대답을 기다렸다.
여울은 바로 대답했다.
“그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예?”
“죄송합니다.”
일권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어느새 여울의 두 어깨를 붙잡고 다시 물었다.
“그게 무슨…… 무슨 말입니까? 설마 대장님이 죽기라도 했다는 겁니까?”
그의 말에 여울은 대답하지 못했다. 조금만 더 강했으면 진후가 죽지 않았을 거란 죄책감이 다시 몰려온다.
일권은 여울의 어깨에 올려놨던 손을 스르르 내리며 비틀거리다가 옆에 복도 벽에 몸을 기대었다. 그의 눈동자는 허공에 있었다.
“대장님이 그럴 리가…… 그, 그럴 리가 없습니다! 대장님은, 대장님은…….”
그는 다시금 일어서 여울을 붙잡으며 말했다.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참아 내는 얼굴이다. 여울은 그 대신 말을 이었다.
“언데드도 심장이 뜯기면 죽습니다. 그를 죽인 자는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상대였습니다.”
여울의 확인 사살 같은 대답에 일권은 다시 몸을 복도 벽에 기대며 중얼거렸다.
“하…… 그, 복수는…… 해 주셨습니까?”
여울은 오른손을 그의 어깨에 올리며 굵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확실하게 했습니다.”
“그, 그렇군요…….”
그때, 백일권이기에 지금까지 말을 꺼내지 못했던 공무원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다가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저…… 빨리 가셔야 합니다만…….”
여울은 그를 향해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걸음을 옮기기 직전에 일권에게 한마디 툭 던졌다.
“그는 괴로웠다고 했습니다. 차라리 잘 되었다고……. 그럼.”
여울은 그 말을 남기고는 바로 자리를 떴다. 일권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는 여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잘 되었다……. 그래, 그 얼굴은……. 괴로움이었군.”
일권은 풀린 다리에 다시 힘을 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큰 충격에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지만 자신은 그가 남긴 길드의 부길드장, 아니 이제는 길드장이다. 수백 명의 대원들이 자신만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다.
“하압……. 후.”
흔들리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일권은 물기가 차오르는 눈을 거칠게 닦아내고는 여울과는 반대편 길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 * *
쩌적, 쩌적, 쩝쩝.
노을이 지고 있는 무너진 도시, 사람들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고, 시체를 찾아다니는 몬스터 칼로가 자연적으로 생겨나 네 발로 그 위를 기어 다니며 시체를 파먹고 있다.
가아아아아, 가아아.
초음파와 같은 그들의 울음소리 외에는 어떤 생명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
으득, 으드득.
한 마리의 칼로가 창자가 모두 밖으로 쏟아져 있는 시체의 팔뚝을 뜯어 먹고 있었다.
그때, 그 팔의 주인인 사내의 눈이 갑자기 번쩍 뜨였다. 그 눈동자는 순간 파랗게 빛났다가 사라졌다.
그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팔을 뜯어 먹고 있는 칼로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손을 뻗어 칼로의 목을 잡아 우그러트렸다.
으드드득.
칼로는 단말마도 내지 못하고 그대로 붙잡힌 채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는 칼로의 목을 움켜잡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놈의 몸뚱아리에서 목을 뽑아내 버렸다.
푸슈욱!
검붉은 피가 쏟아져 나와 그의 얼굴을 적셨다. 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놈의 몸과 목을 내던졌다.
키켁, 키켁.
사내를 발견한 칼로들은 공격은커녕 뒷걸음치며 몸을 낮췄다.
“크, 크흐, 크흐으…….”
그는 칼로들을 신경도 쓰지 않고 비틀비틀 걸으며 시체 산을 걸어갔다.
창자가 모두 배 밖으로 나오고 한쪽 발목은 바깥으로 90도 이상 꺾였으며, 오른팔은 팔뚝이 뜯어 먹혀 뼈가 훤히 보이는 것이 마치 좀비와도 같았다.
그는 눈동자만큼은 생기 가득하게 반짝이며 중얼거렸다.
“더, 더…… 강한 몸이, 더 쓸모 있는 놈의 몸이 필요해…….”
그는 한쪽 다리를 질질 끌며 걸음을 옮겼다.
* * *
푹, 푹, 푸직.
날카로운 검이 사람의 뱃가죽을 거침없이 가른다. 그러고는 손을 집어넣어 내장을 끄집어내고 그 안을 뒤적거린다. 그 일련의 움직임이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 듯하다.
사람의 배 안을 한참 뒤적거리다가 무언가를 꺼냈다. 손끝에는 영롱하게 반짝이는 마석이 들려 있었다.
그 손의 주인, 날카로운 눈매에 각진 턱을 가진 사내가 그것을 보며 말했다.
“히야……. 이것 봐. 역시 예나 지금이나 전쟁은 돈이 된다니까.”
그의 말에 옆에 있던 다른 사내들이 말을 이었다.
“히히, 몬스터 떼만 피하면 이렇게 쏠쏠할 줄 누가 알았겠어? 남들은 미쳤다고 하겠지.”
“겁쟁이들은 평생 못 버는 거지.”
뒤에서 홀로 시체들을 파며 작업하던 한 여인이 고개를 들어 그 사내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사람들 다 죽어서 세상이 망하면 이것도 돈 안 되는 거 아니야?”
대장으로 보이는 그 사내는 인상을 쓰며 말했다.
“야, 내가 장담하는데 금세 제자리 찾는다. 몬스터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인간들 못 이겨. 우리는 그때 한몫 챙겨서 저어~기 최정상에 앉아서…… 응?”
그의 시선이 여인의 뒤쪽으로 돌아갔다.
즈즈, 턱. 즈즈, 턱.
그곳에는 배 쪽에 피가 잔뜩 묻은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한쪽 다리를 심하게 절며 걸어오는 한 남자가 있었다. 대장 사내는 그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뭐야, 생존자가 있었어?”
“아니, 잠깐. 언데드 아니야?”
한 사내가 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어이, 거기 서 봐.”
그때, 그 남자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퍼석!
그러자 가까이 다가가던 여인의 머리가 사라져 버렸다. 머리가 떨어진 것도 아니고 아예 그 자리에서 터져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그 모습에 화들짝 놀란 다른 일행들은 다급히 일어나 검을 다잡았다.
“뭐, 뭐야!”
“이런 씨!”
남자는 그들을 보며 몇 걸음 더 다가가다가 한 손을 들어 앞으로 뻗었다.
솨아아악!
“크허업!”
“크흡!”
“켁, 케헥!”
그러자 세 사내의 몸이 공중에 떴다. 그들은 하나같이 목을 두 손으로 틀어잡고 괴로워했다. 남자는 그들을 한 명 한 명씩 둘러보고는 펴고 있던 손을 안으로 말아 쥐었다.
퍼서석!
그러자 그중에 두 사내의 몸이 그 자리에서 터져 버렸다. 형태를 전혀 알아볼 수 없이 수천 조각으로 찢겨 것이다.
각진 턱의 대장 사내만 그 희한한 힘에서 벗어나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나 지금까지 겪어 본 적 없는 공포에 일어서지도 못하고 두 손발을 이용하여 뒷걸음질만 칠뿐이었다.
그가 바로 앞에 다가오자 사내는 더 이상 뒤로 가지도 못하고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떨리는 입술로 말했다.
“대, 대체 당신은 뭐야…….”
남자는 고개를 천천히 숙여 사내의 몸을 훑어보다가 그의 눈동자를 보며 대답했다.
“나, 나는…… 신이 될 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