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152)
짱그라
헬로밤
152화 불안 요소. (1)
‘자동베틀’이 만들어지고 입찰경쟁의 승자가 정해지면서, 조선의 상업계는 점점 더 몸집을 키워 나갈 준비에 들어갔다.
“이대로만 간다면 조선의 상계는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아니 더욱 커지게 될 것이다!”
많은 상인들이 희망적인 미래를 꿈꾸며 적극적인 움직임에 들어갔다.
“돈이 되는 것이 뭐가 있을까?”
“흐음…. 이 물목으로 한번 장사를 해 볼까?”
점점 커지는 판에서 돈을 벌기 위해 상인들은 돈이 될 만한 아이템을 찾아 조선 팔도를 뒤지고 다녔다.
아니, 조선만 뒤진 것이 아니었다. 조금 더 적극적인 상인들은 명국과 왜국들을 뒤지고 다녔다.
“왜국은 왜 가? 거기서 건질 것이 뭐가 있다고?”
“혹시 알아?”
“백주에 뜬금없이 모가지가 날아가도 할 말 없는 동네잖아, 거기는!”
“그래서 대내하고 구주만 다녀 볼 생각이야!”
많은 상인들이 새로운 기회를 찾아 조선, 명, 왜를 돌아다녔다.
하지만, 상인들 모두가 적극적인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우리가 이문을 쫓아다니는 상인이라 해도 함부로 모험수를 던지는 것은 안 될 일이야.”
“맞아. 제대로 상업이 커지려면 화폐가 있어야 하는데, 조선은 없잖아? 모험은 안 돼. 모험은. 지금은 오히려 현실을 직시하고 있어야 해.”
이렇게 각각의 가치관에 따라 선택을 달리했지만, 전체적으로 조선의 상업 규모는 점점 성장하고 있었다.
상업만 성장한 것은 아니었다. 나름 기술을 가진 장인들은 자신들이 가진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최고의 표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인은 계작으로 한성의 재물을 긁어모으고 있고, 남편은 철망 하나로 자손 대대가 먹고살 재물을 모으고 있다는 송일철 부부가 가장 대표적인 표본이었다.
송일철 부부만이 아니라 51구역에서 일하면서 ‘나리’ 소리를 듣게 된 장인들의 존재도 조선의 장인들이 모험수를 던지게 만든 원인이었다.
도전에 나선 장인들 가운데 가장 벌이가 좋아진 이들은 나전칠기 장인들이었다.
이탈리아 장인들이 만들어 낸 유리거울이 시장에 풀리면서 나전칠기 장인들은 거울을 부착한 각종 칠기 가구들과 소품을 만들어 냈다.
이 가구들과 소품들은 조선은 물론이고 명과 왜국 여인들의 ‘Must have’가 되어 버렸다.
“지화자! 물 들어왔으면 노를 저어야지!”
호조를 통해서 올라온 보고를 확인한 향은 바로 세종에게 요청해 대회를 열었다.
‘제1회 조선 가구 경연’이었다.
1등 상금이 ‘은 10냥’이라는 어찌 보면 많지 않은 금액이었다. 하지만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장인들이 한성으로 모여들었다.
대회의 부상(副賞) 때문이었다.
-1등부터 5등까지는 만든 제품을 전부 궁에서 구입하겠다.
-1등부터 5등까지의 수상자는 전국 관아와 산동의 상관과 왜관에 방을 붙여 그 이름을 알려 주겠다.
이 중 핵심은 해당 제품에는 5개-1등-에서 1개-5등-까지의 이화꽃 문양을 붙이게 해 주겠다.
“과연 잘될까?”
향의 제안에 세종은 확신을 가지지 못했지만, 향은 확신에 차 있었다.
이미 금필 등에서 알려졌듯이 이화문양은 최고급을 상징하고 있었다.
거기에 급수까지 나눈 상황이다. 차후에 순위쟁탈전도 예상이 된다.
“반드시 뜹니다!”
그리고, 결과는 향의 예상대로였다.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소헌왕후와 후궁들, 세자빈과 양제, 양원은 눈을 반짝이며 출품된 작품들을 꼼꼼하게 살폈다.
그런 여인들의 모습에 향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 저 눈빛 본 적 있어! 명품 백을 봤을 때 우리 엄니와 숙모들이 저 눈빛이었어!’
그렇게 해서 1등부터 5등까지가 정해졌다.
그리고, 그 결과로 세종과 향의 지갑이 털렸다.
출품한 작품들은 진상의 형태로 소헌왕후에게 갔지만, 다른 이들을 위해서 돈을 지출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세종과 향의 지갑이 털리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이후에는 향의 예상대로였다.
‘조선의 왕이 주최한 경연에서 수상(受賞)한 장인이 만든 작품’이라는 포장이 더해지면서 명국의 상인들과 왜국의 상인들은 줄을 서서 상품을 기다렸다.
* * *
모든 것이 다 향의 예상대로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었다.
가뜩이나 세종의 행보가 마음에 안 들었던 지방의 향반들이 작성한 상소문들이 다시 수레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상소문들을 본 세종은 이번에도 향을 불렀다. 이번에는 향도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방에서 대량의 상소문들이 올라왔다.’라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뭘 해야 할지 알지?”
“예, 아바마마. 이쪽부터 하면 됩니까?”
냉큼 한 무더기의 상소문들을 끌어당긴 향은 두루마리의 매듭을 풀고는 상소문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어떠냐? 좀 쓸 만한 글들이 있느냐?”
열심히 상소문을 읽고 분류하던 향은 세종의 물음에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후우~. 종이 낭비입니다.”
“그러냐…. 이번에도 좀 괜찮은 이들이 있을까 기대를 했는데….”
향의 대답에 세종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여전히 인재에 대한 욕심을 감추지 못하는 세종이었다.
‘뭐…. 인재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긴 하니까….’
향은 세종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채우고 채워도 여전히 인재가 모자란 것이 지금의 조선 조정과 행정기구였다.
“후우~. 이놈이나 저놈이나 ‘사치는 망국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니 어쩌고저쩌고’ 이러고만 있으니…. 저들 비단 도포나 입지 말 것이지.”
‘사치는 망국병이니 지금의 행태를 금하고, 상업을 엄히 막아야 한다.’라는 내용이 대부분인 상소들을 살피며 투덜거리던 향은 신경질적으로 상소문의 매듭을 풀었다.
심드렁한 얼굴로 상소문을 읽어 나가던 향은 갑자기 자세를 바로 하고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이거 봐라?”
꼼꼼하게 상소문을 읽던 향은 문제의 상소문을 들고 세종에게 다가갔다.
“아바마마. 하나 찾은 것 같사옵니다.”
“그러냐? 이리 줘 보거라.”
향의 말에 세종은 반색하며 상소문을 건네받았다.
상소문을 읽어 가던 세종은 무릎을 쳤다.
“옳거니! 오랜만에 생각이 깊은 이를 찾았구나!”
“그렇사옵니다.”
향이 찾아낸 상소는 무역분쟁을 예견한 것이었다.
-자고로 자신의 곳간에 쌓아 놓은 재물을 남이 가져가는 것을 그냥 보는 이들은 없다.
-당금, 조선의 상황을 보자면 명국과 왜국에서 막대한 이문을 거둬들이는 상황이다. 다행히 지금 명과 왜국에 팔리는 물산들은 사치품이 주종이라 그리 큰 문제가 될 소지는 적은 상황이다.
-하지만, 상인들은 점점 더 많은 이문을 얻기를 원할 것이고, 결국은 박리다매의 상품까지 갖다 팔 것이다.
-그렇게 사치품부터 박리다매의 저가품까지 팔면서 명국과 왜국의 재물을 가지고 오면 명국과 왜국의 적대감을 살 수 있다.
-만약, 정도가 심해지면 명국은 상국과 대국으로서의 힘을 이용해 압박을 가할 것이고, 왜국은 왜구들이 다시 활발하게 활동할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 조선에 피해가 가지 않는 품목을 골라 명국과 왜국에서 생산해 판매하도록 해야 한다. 명국과 왜국에서 얻은 재물을 명국과 왜국의 내부에서 돌게 만들고, 조선은 적정한 양의 재물만 가지고 오면 인심을 잃지 않고 꾸준하게 상행을 이어 갈 수 있다.
“괜찮구나.”
상소문을 읽은 세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종은 문제의 상소문을 한쪽에 따로 분류했다.
하다못해 이젠 상소문을 가지고 인재 발굴의 기회로 삼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관행으로 자리 잡으면서 또 하나의 유행이 만들어졌다.
이름하여 ‘상소별시(上訴別試)’라고 불리는, 상소를 이용해 빠른 출세를 꿈꾸는 이들이 나타난 것이었다.
* * *
결국, 지방 향반들은 또다시 자신들의 주장이 묵살되자 분통을 터뜨렸다.
“이는 주상의 폭정이오!”
“이래서야 언로(言路)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가!”
“이대로 가면 조선은 무너질 것이오!”
지방의 향반들이 생각하기에 세종은 ‘귀를 닫고 눈을 가린 채’ 폭정을 행하는 중이었다.
“무슨 수를 찾아야 하오.”
“그렇소이다.”
지방 향반들 사이에서는 점점 불온한 공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세종 11년의 추수철이 가까워졌을 때, 세종은 지방 향반들에게 폭탄들을 던졌다.
첫 번째 폭탄은 ‘노비법’이었다.
-비(婢, 여자 종)가 낳은 자식의 신분은 아비의 신분을 따른다.
-비가 낳은 자식의 아비가 양인이면 자식은 양인의 신분이 될 것이다.
-비가 낳은 자식이 양인의 신분이면 자식을 낳은 비는 면천시킨다.
-비가 낳은 자식의 아비가 기혼자면, 위의 조항을 적용하지 않는다.
바로 이 부분에서 향과 세종, 대신들 사이에서 약간의 설전이 벌어졌었다.
“너무 몰인정한 것 아닙니까?”
향의 지적에 세종과 대신들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렇지 않다. 최소한의 도덕은 지켜져야 한다.”
“맞습니다. 저 조항이 없다면 향촌에서는 매일같이 분란이 일 것입니다.”
세종과 대신들의 단호한 태도에 향은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뭐, 시대가 시대니까….’
“흐음….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괜찮은 듯하오.”
지방 향반들 대부분의 반응도 위와 같았다.
하지만, 지방 향반들의 관심이 집중된 것은 이 법안의 후반부였다.
“‘면천’에 관한 조항?”
“갑자기 면천은 왜?”
‘노비법’의 후반부에서는 노비의 면천에 관해서 다루고 있었다.
-노비의 면천은 춘궁기에는 할 수 없다.
-노비를 면천시킬 경우에는 3개월을 생활할 수 있는 재물을 줘야 한다.
-노비가 가정을 이루고 있을 경우에는 가족 단위로 면천을 시켜야 한다. 단, 자식 가운데 성인이 된 미혼의 노(奴)와 비(婢)는 제외한다.
이 부분에서 향은 혀를 찼다.
“쯧. 성인도 포함이라고 했다가는 당장 난리가 났을 테니까…. 하지만….”
잠시 말을 멈춘 향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이게 독소조항이라는 것이지. 가만 보면 아바마마도 참 사기꾼 기질이 강해.”
이렇게 이어지는 면천에 관한 규정에서 가장 의외인 것은 마지막 조항이었다.
-60세 이상의 노와 비는 면천시키지 못한다.
이 부분은 우습게도 향이 강하게 주장한 것이었다.
“세자야, 평소 너의 주장에 따르면 이 부분은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세종의 물음에 향은 바로 대답했다.
“아니옵니다. 평소의 주장에 합치하는 것이옵니다.”
“어째서?”
“이어지는 다른 법안들과 합쳐지면 향반들은 어쩔 수 없이 노비들을 면천시켜야 하옵니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면천시킬 이들은 노동력으로 가치가 없는 늙은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아!”
향의 설명에 세종과 대신들은 감탄사를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의 향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21세기 교양과목으로 선택했던 미국사 담당 교수가 그랬었던가?’
당시 미국사 교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전쟁 전에는 노예 해방에 그렇게 반대했던 남부의 농장주들이 전쟁이 끝난 다음에는 노예 해방을 환영했습니다. 왜였을까요? 나이 먹어 밥만 축내던 늙은 노예들을 마음 편하게 처리할 수 있었거든요.
21세기의 기억을 더듬던 향은 씁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지금의 조선으로서는 무연고 노인의 복지 같은 것은 꿈도 못 꾸는 상황이니까. 향반들에게 떠넘길 수밖에 없어.’
* * *
이렇게 해서 세종 11년 가을에 반포된 노비법에 대해서 대부분의 향반들이 보이는 반응은 대동소이했다.
‘완전히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소수의 향반들은 의혹이 가득한 눈으로 법안들을 살폈다.
‘면천에 관한 조항이 수상해. 갑자기 왜 면천에 관한 조항을 넣은 거지?’
‘면천에 관한 기준을 만들었다는 것으로만 이해하고 넘어가기에는 너무 수상쩍어.’
‘그것도 그렇지만, 하필이면 왜 지금?’
의문이 가득한 눈으로 향반들은 한성의 움직임에 촉각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얼마 뒤에 또 다른 법안이 반포되면서 향반들은 의혹을 깡그리 잊어버리게 되었다.
‘노비법’에 이어 반포된 것은 ‘미출사 급제자의 처우에 관한 법’이었다.
새롭게 반포된 법의 내용은 간단했다.
‘생원시에 급제하고 10년이 넘은 자, 진사시에 급제하고 5년이 넘은 자로서 출사하지 않은 자들은 면세 혜택을 박탈한다. 더불어 향안(鄕案)에서 박탈한다. 향안에 적을 올릴 수 있는 자는 관직에서 은퇴한 자, 공훈을 인정받아 명예직을 받은 자에 한정한다.’
지방에서 사대부라고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는 이들의 명예를 날려 버리는 법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