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279)
279화 뱁새가 황새를 따라잡는 법. (5)
제물포에 도착한 명의 사신단은 외무부 차관의 환대를 받았다.
“어서 오십시오, 원로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간단한 인사가 오가고, 명의 사신들은 조선이 준비한 마차에 올랐다.
수탈이 금지되면서, 오래 있어도 별로 재미를 못 보게 된 명의 사신들은 최대한 빨리 볼일을 보고 돌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때문에, 육로보다도 해로를 선택하고, 가마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아닌 마차를 애용하게 되었다.
그렇게 마차를 타고 제물포에서 한성까지 걸리는 시간은 반나절에 불과했다.
“100리(약 40km)가 넘는 길을 반나절 만에 오다니….”
마차에 탄 명의 정사는 감탄을 거듭했다.
전국규모의 도로 공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가장 먼저 공사가 진행된 곳 가운데 하나가 한성에서 제물포를 오가는 도로였다.
선유도 인근에서 배를 타고 한수를 건넌 명의 사신단은 다시 마차에 올라 돈의문(敦義門, 서대문)으로 향했다.
돈의문 밖에 세워진 모화루(慕華樓)의 입구인 영은문(迎恩門) 앞에는 관례에 따라 세자인 향과 관리들이 명의 사신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하. 사신들이 오고 있사옵니다.”
내관의 말에 향은 옷매무새를 다시 살피고 앞으로 나섰다.
잠시 후, 영은문 앞에 도착한 마차에서 사신들이 내렸다.
정해진 예법에 맞춰 향은 재배(再拜)했고, 명의 사신들도 예법에 맞춰 깍듯하게 답례를 했다.
“원로에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이리 환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들어가시지요.”
“예.”
명의 사신단이 도착하자, 모화루에서는 사신을 환영하는 큰 연회가 벌어졌다.
기녀들이 음률에 맞춰 가무를 하며 흥을 돋우는 동안, 세자와 정사(正使)는 담소를 이어 갔다.
“예전에 세자께서 북경에 오셨을 때, 한 번 뵌 적이 있사옵니다. 그때도 감탄했지만, 더욱 헌앙해지셔서 감탄을 금치 못하겠사옵니다.”
“하하하! 좋게 봐 주시니 너무나도 감사할 뿐입니다.”
“아닙니다. 당시, 자금성은 물론이고 북경의 재녀들 사이에 소문이 자자했었지요.”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단호하게 대답하는 정사는 진심이었다.
뿐만 아니라, 명에서 온 이들은 정사와 거의 같은 반응이었다.
* * *
향이 북경에 갔을 당시, 향의 미모는 자금성을 뒤흔들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북경 거리에 나서면 척과영거(擲果盈車)의 고사를 재현할 것이다.’
소문을 들은 선덕제와 대신들이 모두 동의를 할 정도의 미모를 자랑한 향이었다.
결국, 소문을 들은 자금성의 궁녀들이 향의 얼굴을 보기 위해 모이면서 소란이 벌어졌었다. 그리고, 이런 향의 소문은 자금성 밖으로도 퍼져 향이 조선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금성을 벗어나는 날, 많은 여성들이 길거리로 몰려나와 향을 구경했었다.
* * *
이후로도 명의 정사는 향의 매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듯이 보였다. 특히, 연회가 이어지던 도중에 요청을 받은 향이 한시를 지어 적어 주자 정사는 눈물을 보일 정도였다.
“참으로 영광이옵니다!”
“하하하! 좋게 봐 주어 고맙습니다!”
너무나도 과한 칭찬에 점점 난처해지는 향이었다.
* * *
연회가 끝나고, 모화루를 나온 향의 얼굴은 심각하게 굳었다.
“과유불급이라지?”
명 사신의 과한 호의에 더욱 의심이 가는 향이었다.
한편, 명의 정사는 자신의 방에 모인 일행들과 심각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쉽지가 않겠소이다.”
정사의 말에 부사(副使)가 바로 말을 받았다.
“그런 것 같습니다. 저도 조선의 대신들과 이야기를 나눠 봤는데 만만치 않은 이들입니다.”
“세자 역시 마찬가지네. 호의에 감사하면서도 조심하고, 칭찬에 좋아하면서도 경계하더군. 만약 세자가 협상의 주체로 나선다면….”
속이 답답해진 정사는 찻잔을 들어 속을 달래고는 말을 이었다.
“만약, 세자가 협상의 주체로 나선다면 많이 까다로울 것 같소.”
결론을 내린 정사는 푸념을 터뜨렸다.
“조선의 왕은 자식을 어떻게 훈육을 시킨 것인지 참으로 궁금하오. 저런 기재라니….”
“그러게나 말입니다.”
* * *
이틀 뒤, 여독(旅毒)을 푼 명의 사신 일행은 경복궁으로 들어섰다.
근정문을 통과한 사신들을 맞이한 세종은 예법에 따라 사신과 인사를 교환했다.
잠시 후, 세종과 향, 대신들은 근정전 뜰에 무릎을 꿇고 앉았고, 정사는 근정전 계단 위에 올라 칙서를 봉한 봉인을 풀었다.
“조선의 왕은 듣거라….”
사신이 대독(代讀)한 선덕제의 칙서는 간단했다.
-조선의 병사 개인이 사용하는 소형 화포가 매우 우수하다고 들었다. 그렇게 우수하다면 적당량을 조공으로 바쳐라.
대독이 끝나고, 공식적인 진행이 끝나자 정사는 칙서가 담긴 두루마리를 공손히 세종에게 내밀었다.
두루마리를 건네받은 세종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적당량이라고 했는데, 도대체 얼마를 원하는 것이오?”
“말 그대로 적당량입니다.”
“협상을 하자는 소리로군.”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결국, 의정부 건물에 협상장이 마련되었고, 양쪽의 사람들이 모여 협상이 시작되었다.
“이런….”
협상장에 자리를 잡은 명의 사신들은 조선의 대표로 향이 나서자 작게 욕설을 뱉었다.
그들로서는 가장 피하고 싶은 이가 대표로 나선 것이었다.
“적당량이라고 했는데 얼마를 원하시오?”
향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명의 정사가 바로 말을 받았다.
“우선은 조선이 사용하는 소형 화포의 성능을 보고 싶습니다.”
“소문을 듣고 왔다고 하지 않았소?”
“소문과 실제는 다른 법이지요. 안 그렇습니까?”
정사의 말에 향은 고개를 돌려 내관에게 명했다.
“내금위에 일러 준비하라 전하게.”
“예, 저하.”
잠시 후, 양국의 협상단은 경복궁 안에 마련된 사격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격장에는 일정 거리 간격으로 두정갑을 걸친 허수아비들이 세워졌다. 그리고 가장 뒤에는 나무로 만든 표적판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작은 상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조총들과 부속 장비들이 놓여 있었다.
“저것들이 사신이 말한 소문의 소형 화포요. 우리는 장총이라고 부르지.”
“그렇습니까?”
명의 사신단은 사격장으로 내려가 조총을 구경했다. 앞에 나선 군관의 설명을 들으며 조총을 관찰하는 과정이 끝나고, 바로 사격 시범이 진행되었다.
세 명의 내금위병사들이 조총을 들고 대기하는 가운데, 향이 사신들에게 설명했다.
“잘 훈련받은 병사라면 10장(약 30m) 밖의 표적을 명중시킬 수 있소.”
향의 손짓에 군관이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방포!”
타타탕!
요란한 총성과 함께 자욱한 연기가 피어올랐고, 10장 밖에 있던 허수아비가 출렁거렸다.
“허수아비를 살펴도 되겠습니까?”
“원하는 대로 하시오.”
향이 허락하자, 명의 사신들은 곧장 사격장으로 내려가 허수아비를 살폈다.
“대단하군. 대단해.”
허수아비를 살핀 정사는 감탄을 연발했다. 사대(射臺)에서 10장 떨어진 곳에 자리한 허수아비가 걸친 두정갑은 앞뒤로 깔끔하게 구멍이 뚫려 있었다.
사신단에 동행한 명의 장수는 두정갑을 살피고는 입을 열었다.
“제대로 만든 두정갑입니다. 이 정도의 위력이라면 북원의 기병들도 추풍낙엽 신세가 될 겁니다.”
“그런가?”
그 뒤로 계속 이어진 시범을 본 명의 사신들은 협상장으로 돌아오며 작게 대화를 나누었다.
“확실히 한계는 있군.”
“그래도, 우리 군이 사용하는 화창(火槍)보다는 훨씬 우수합니다. 그리고….”
급한 마음을 가라앉힌 명의 장수는 바로 말을 이었다.
“한두 명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대규모로 사용한다면 그 위력은 엄청날 것입니다.”
“그렇군….”
장수의 말을 들은 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협상장으로 돌아와 다시 자리에 앉은 향은 명의 정사에게 물었다.
“성능은 확인하셨소?”
“예, 제대로 확인했습니다.”
“그래, 어떻소?”
“소문대로더군요.”
“그렇소? 그러면 적당량으로 얼마가 좋겠소?”
“1천 문. 한 달 안에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쾅!
정사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향은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소리쳤다.
“웃기는 소리! 지금 조선의 총병은 겨우 5천! 그것도 거의 10년 가까운 시간을 들여 양성한 병력들이오! 그런데 1천 문을 내놓으라고? 그것이 황제 폐하의 뜻인가! 황제 폐하는 내게 분명히 양국의 선린을 이야기하고 약속했소이다! 정사는 똑바로 답하시오! 1천 문이 황제의 뜻이오!”
“아니, 그게 아니라….”
예상을 벗어난 향의 격한 반응에 정사는 진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명, 아니, 명의 황제와 조선 왕실은 이익을 공유하는 관계였다. 만약, 일이 잘못되어 사이가 틀어진다면 그 화는 자신에게 향할 것이 분명했다.
‘너무 욕심을 부렸다.’
명의 정사는 후회막급이었다.
* * *
조선으로 오기 전에 선덕제가 내린 명령은 다음과 같았다.
-조선이 사용하는 소형 화포가 소문과 같다면 적당량을 입수해 명으로 올 것.
-단, 이 적당량은 명의 장인들이 연구하기에 충분한 수량이면 된다. 대신, 최대한 빠른 시간, 가능하면 명으로 돌아올 때 가지고 올 수 있는 물량이면 충분하다.
-수량보다 시간이 중요하다. 시간을 많이 주면 조선이 화포에 장난을 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선덕제의 명령을 들은 정사와 부사는 출발하기 전의 우두머리 장인들을 모아 물었다.
“몇 문이나 가져오면 되겠소?”
질문을 받은 우두머리 장인들은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교환했다. 한참을 수군거리며 이야기를 나눈 장인들은 적당한 숫자를 이야기했다.
“70문 정도면 적당하겠습니다. 20문씩 연구용으로 나누고, 남은 10문은 성능 비교용으로 삼으면 됩니다.”
“70문인가? 알겠네.”
* * *
명국의 장인들에게서 이야기는 들었지만, 막상 실제 성능을 본 정사는 욕심을 이기지 못했다.
‘최대한 뺏어 가자! 우리 명이 상국이니 조선은 달라는 대로 내줄 것이다! 여태까지 그러했으니까! 만약, 조선이 무리라고 읍소하면 봐주는 척하면서 최대한 시간을 줄이면 돼! 일거양득(一擧兩得)의 계책이다!’
하지만, 향은 정사의 예상을 벗어나는 반응을 보였다.
읍소가 아니라 황제를 직접 걸고 넘어간 것이었다.
“확실히 말하시오! 그 1천 문이라는 숫자가 황제 폐하의 뜻이 확실한 것이오! 정사는 목을 걸고 장담할 수 있는 것이오! 말도 그렇게는 많이 조공하지 않았소! 만약, 이것이 진정 황제 폐하의 명이라면 내가 직접 북경에 가서 이야기할 것이오!”
향의 거친 목소리에, 정사의 옆에 앉아 있던 부사는 다급해졌다. 향의 말대로라면 지금 정사가 말한 수량을 내주면 조선의 국방력이 크게 약화될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10년에 5천 문이라면 1년에 5백 문. 2년 생산량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면 화를 내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정신이 반쯤 나간 정사를 대신해 부사가 대신 끼어들었다.
“세자께서는 잠시 진정하시지요. 폐하께서는 단지 적당량이라고만 하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1천 문이라는 숫자가 나온 것이오!”
“우리는 조선이 가진 소형 화포가 겨우 5천 문이라는 것을 몰랐을 뿐입니다. 적어도 2만에서 3만 정도는 되지 않을까 했던 것이지요.”
“우리 조선이 명만큼 대국이오? 저 장총 한 자루에 구리가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데! 우리 조선에 구리가 귀하다는 것은 명도 알지 않소!”
“그 부분은 죄송합니다.”
부사가 사태를 진정하고 있을 때, 정신을 차린 정사가 향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참으로 죄송합니다.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1천 문까지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얼마를 원하오?”
“얼마까지 주실 수 있으십니까?”
“50문.”
“너무 적습니다. 200문만 주시지요.”
“우리 조선의 국방이 걸린 일인데 흥정을 하자는 것인가! 지금 아바마마께서 거하시는 이 궁을 지키는 병사들에게도 겨우 100문이 배정되었을 뿐이오!”
그렇게 밀고 당기는 설전이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대화의 주도권은 향이 쥐고 있었다.
‘외교에서도 가끔씩은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법이지.’
그렇게 설전이 이어진 결과, 명의 사신들은 궁에 배치된 100문을 가지고 가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다.
“바로 주실 수 있다는 것이지요?”
“황제 폐하께서 원하신다는데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겠소?”
향이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하자, 명의 사신들은 바로 고개를 숙였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됐다! 이로써 조선이 장난을 칠 시간을 뺐었다! 아쉽지만 이것으로 만족하자!’
“다 우리 조선과 상국의 선린을 위한 것이오.”
‘낚았다! 혹시 몰라 그동안 미리 만들어 뒀던 100자루로 끝을 볼 수 있었다!’
서로가 이득을 봤다며 자축하면서 협상은 끝이 났다.
이틀 뒤, 명의 사신들이 직접 보는 앞에서 내금위의 병사들에게서 조총을 수거했다.
조총과 부속 장비들이 담긴 나무 상자들을 제물포로 옮긴 명의 사신들은 바로 산동으로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