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469)
469화 요동(遼東) (5)
바로 생각을 정리한 향이 세종에게 입을 열었다.
“아바마마, 소자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허락한다.”
“이번 가목사보 전투에서 보았듯이, 그리고 병서에도 이르듯이 지휘관의 가치는 매우 크옵니다. 단 한 발의 탄환으로 이런 지휘관들을 처리할 수 있다면….”
“거기까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잘 알겠다.”
향의 말을 끊은 세종은 조말생을 돌아봤다.
“즉시 조선 전역의 병사들과 간부들을 대상으로 장총의 사격 실력을 겨뤄 보도록 하시오. 육수군과 수군 모두.”
“육수군과 수군 모두 말이옵니까?”
조말생이 재차 확인하자, 세종은 오히려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으며 조말생에게 되물었다.
“지휘관의 존재 유무가 더욱 중요한 것은 수군 아닌가?”
“그렇긴 하옵니다. 수군에서도 겨룸을 실행하도록 하겠사옵니다.”
하지만, 세종은 영 마땅치가 않은 표정이었다.
“신이 무슨 실수라도….”
세종의 표정을 본 조말생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떠듬거리자, 세종은 고개를 돌리며 혀를 찼다.
“쯧! 서훈식이 끝나면 다시 이야기하세!”
“예, 전하!”
다급히 머리를 조아리는 조말생이었지만, 속으로는 한바탕 욕을 해 대고 있었다.
‘아니! 갑자기 명령을 내려놓고서는 뭘 어떻게 하라고! 왕이면 다야! 아오! 저 빌어먹을 혀 차는 소리!’
한편, 옆에서 그 광경을 보던 대신들은 다들 불쌍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거참! 아직도 전하의 성정을 모르는 것인가? 몰랐어도 기다렸어야지! 거기서 한 박자만 쉬면 전하와 세자께서 알아서 다 알려 줄 것인데!’
‘저놈의 혓바닥! 저러니 관모를 머리에 심었다는 말을 듣지!’
‘저렇게 아둔하니 근정전의 사람 장승이라고 불리는 거야!’
‘어우! 저 혀 차는 소리! 그동안 안 들어서 괜찮았는데!’
그런 대신들의 마음을 알았는지 향이 세종에게 아뢰었다.
“아바마마, 단순히 실력을 확인하라 하면 정확한 기준이 없어 평가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아! 그건 그렇구나! 그 부분을 잊었구나!”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면서 세종은 조말생을 바라봤다. 조말생을 바라보는 세종의 눈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지적이라는 것은 말이야. 이렇게 하는 것이 지적이야!’
그렇게 조말생을 노려본 세종은 향에게 고개를 돌렸다. 향을 바라보는 세종의 눈에는 뿌듯함이 가득했다.
‘어화둥둥, 내 새끼 잘한다!’
“그러면, 어찌하면 좋겠느냐?”
세종의 물음에 향은 바로 대답했다.
“예. 궁술을 겨루는 것처럼 과녁판을 설치하고 겨루면 쉽게 결판이 나지를 않을 것이옵니다.”
향의 말에 세종과 대신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조선인들이 활을 귀신같이 쏜다는 것은 주변국의 사람들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향이 개입하기 전의 역사에서도 청나라의 사신을 호위해 간 조선 무관들 사이에 활쏘기 내기가 벌어졌는데 쉽게 승부가 나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였다.
세종과 대신들이 모두 동의하자 향은 말을 이어 갔다.
“장정(壯丁)의 크기와 모양을 본뜬 표적을 만듭니다. 그리고 50장(약 150m), 70장 (약 210m), 100장(약 300m)으로 거리를 나눠 표적을 세운 다음 겨룹니다. 아! 표적에는 급소에 표시를 해서 급소에 맞히면 더욱 높은 점수를 주도록 합니다.”
“괜찮구나.”
향의 제안에 세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세종의 모습을 보며 향은 말을 이어 갔다.
“이렇게 겨룬 결과를 기본으로 70장과 100장에서 우수한 성적을 기록한 이들을 따로 추려 저격을 전문으로 하는 부대를 편성합니다.”
“저격을 전문으로 하는 부대라….”
향의 말을 들으며 나름 계산을 해 보던 세종은 조말생을 돌아봤다.
“가장 좋은 방안인 것 같은데, 어떠하오?”
“가장 합당하다 생각하옵니다.”
“그럼 세자의 제안대로 실행하도록 합시다.”
“명을 받드옵니다.”
세종의 말에 조말생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다른 대신들도 같이 머리를 조아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거봐! 조금만 기다리면 다 알아서 답까지 다 나오는데 왜 설쳐서는!’
그렇게 작은 소동을 행사는 끝났다. 이 행사를 통해 인생역전한 이들이 나왔는데, 오방섭과 만복이었다.
오방섭은 승차와 동시에 참모본부로 배속이 결정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군관들 가운데 전방으로 자원하는 이들이 늘었고, 전방에 자리한 진과 보의 지휘관들 가운데에는 밤마다 정화수를 떠 놓고 비는 이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제발 제 관할 구역에도 여진족 떨거지들을 좀 보내 주시옵소서…. 많이도 필요 없사옵니다. 한 200 정도만…. 비나이다, 비나이다….”
공포의 대상이었던 여진족들이 승진을 위한 제물로 추락한 현실이었다.
* * *
오방섭이 간부들의 희망이었다면, 만복의 경우는 병졸들의 희망이었다.
“만복이라 하였더냐? 성은 무엇이더냐?”
“없사옵니다.”
“없다?”
“예. 신량역천(身良役賤, 신분은 양인이나 하는 일은 천하다.) 가운데 하나인 엽부(獵夫)인지라 성이 없사옵니다.”
“허어….”
아직까지는 성이 없는 평민이 많았던 시기였다.
만복의 대답에 잠시 고민하던 세종이 입을 열었다.
“너의 선친이 활 하나로 범을 잡아 백성들은 안심시켰고, 너 또한 총 하나로 여진의 수괴를 잡아 백성들을 안심시켰다. 이런 가문이니 넓을 홍(弘)을 성으로 주겠다. 넓을 홍의 모양이 활을 크게 당기는 모습이고, 너로 인해 많은 이들이 평안해졌으니 가장 어울리는 성이로다.”
세종의 말에 만복은 바닥에 넙죽 엎드리며 큰절을 올렸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비천한 엽부의 자식에게 친히 성까지 내려 주시니 이 은혜, 죽어 혼백이 되어도 잊지 않을 것이며, 자손 대대로 보은할 것이옵니다!”
물기가 가득해 외치는 만복의 말에 세종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면 오히려 나와 왕실이 고마워해야겠지.”
이렇게 해서, 한국군의 역사와 같이 이어진다는 전통의 군인 가문 ‘한성 홍씨’가 탄생하게 되었다.
* * *
만복의 기적은 여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네가 마음먹고 쏜다면 어느 정도 거리까지 명중이 가능하느냐?”
“250장(약 750m)까지는 맞혀 봤습니다.”
만복의 대답에 세종과 향은 놀란 눈으로 만복을 바라봤다. 특히나 향은 경악하는 상황이었다.
‘그 거리는 거의 최대 사거리 수준인데?’
물론, 그 이상까지 날아갈 수는 있었지만, 실측할 장소와 장비가 없어서 거기까지만 잡은 상황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사거리는 경악할 수준이었다.
만복의 대답에 향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사격술도 놀랍지만 자네의 안력(眼力)이 더욱 놀랍군.”
“허어~. 대단하구나. 어쩌다 그렇게 먼 거리에 있는 표적을 잡게 된 것이냐?”
또 다른 무용담을 기대하는 세종의 물음에 만복은 바로 답했다.
“권관께서 보 안에서 사격 훈련은 효용성이 낮다고 밖으로 훈련을 나간 적이 있었사옵니다. 거기서 늑대를 잡았사옵니다.”
“그렇군.”
만복의 대답에 세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만복의 대답에 향이 다시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바마마, 소자 만복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허하노라.”
세종의 허락을 받은 향은 만복에게 질문을 던졌다.
“범상치 않은 사격 실력인데 내가 보기에 재능만으로는 가능한 것 같지가 않다. 혹시 따로 배운 것이 있느냐?”
“아버지가 궁술을 가르쳐 주시면서 숨 쉬는 법과 몇 가지를 가르쳐 주셨사옵니다.”
“어떤 거?”
“바람을 읽는 법, 제대로 겨누는 법, 기척을 죽이는 법, 호랑이한테 들키지 않고 다가가는 법과 같은 것 여러 가지입니다.”
만복의 대답에 향의 눈이 반짝였다.
‘이거 완전히 특수 부대잖아!’
만복의 대답을 들은 향은 지체하지 않고 세종에게 아뢰었다.
“만복이 그 선친에게 배운 것들은 참으로 귀중한 것들이옵니다. 아바마마께서 결정하신 겨룸을 통과해 선별된 이들에게 가르치면 더욱 유능해질 것이옵니다!”
“동의한다. 병졸 홍만복을 진무(鎭撫)로 승차시켜 인원의 선별 업무와 훈련 교관에 투입하도록 하시오.”
“명을 받드옵니다!”
“참으로 현명하신 처결이옵니다!”
그렇게 대신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하고 있을 때, 김점이 입을 열었다.
“제아무리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하더라도 실전을 모르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사옵니다. 해서, 그렇게 선별된 이들을 맹수 사냥에 동원하는 것은 어떠한지요?”
“응?”
김점의 말에 잠시 멈칫하던 세종은 곧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조선은 호랑이나 표범, 곰과 같은 맹수들로 인해 사람들이 죽고 다치는 인명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상당수의 경우는 맹수들의 영역에 사람들이 들어가 발생하는 것들이었지만, 늙어서 사냥 능력이 떨어진 맹수들이 사람을 덮치는 경우도 흔했다.
“그게 좋겠소. 안 그래도 착호갑사(捉虎甲士)만으로는 부족함을 느꼈는데 배운 것을 제대로 체득(體得)할 수 있으니, 참으로 일거양득이요. 그리합시다.”
“가납하여 주시니 참으로 망극하옵니다.”
세종이 흔쾌히 결정하자, 김점은 희색이 만면한 얼굴로 고개를 조아렸다. 옆에서 이 광경을 본 향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과연 김점 대감! 이 순간에도 지출을 메울 방법을 생각해 내다니! 과연 전독(錢毒)!’
예산과 관련해 악명이 높아지다 보니 김점에게는 새로운 별병이 붙었는데 ‘돈독’-고상하게 표현해 전독-이었다.
* * *
이렇게 해서 만복은 병졸들의 희망이 되었다. 훈장과 포상은 물론이고 왕이 직접 성까지 하사했다. 그것만으로도 부러워 죽겠는데 간부급으로 승차를 함과 동시에 교관이라는 관직까지 받은 것이었다.
결국, 언제부터인가 간부들은 물론이고 병사들까지 밤마다 정화수를 떠 놓고 빌기 시작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그저 한 건만 제대로 걸리게 해 주시옵소서.”
그렇게 해서, 세종의 전폭적인 결정과 지지를 받아 전문 저격 부대가 탄생하게 되었다.
‘착호총사대(捉虎銃士隊)’.
알려지기로는 백성들에게 해를 끼치는 호랑이와 맹수들을 사냥하는 임무를 받은 부대였다. 실제로도 백두대간은 물론이고 요동의 벌판과 동빙항 북부의 삼림 지대를 헤집고 다니며 맹수들을 잡아 댔다.
이 과정에서 은밀 기동, 매복, 저격 등에 특화된 군인들이 양성되었다.
‘바다의 불한당은 도전자들, 땅에서는 착호총사들’이라는 악명을 떨치게 된, ‘Tiger Hunters’, ‘Tigerjäger’, ‘Tigris venandi’라 불리는 부대의 탄생이었다.
* * *
한편, 조태남이 작성한 보고서는 경로를 밟아 북경의 선덕제에게 당도했다.
“흐음….”
선덕제가 조태남의 장계를 읽는 동안 배석한 신하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하필이면 마무리가….’
‘하필이면….’
신하들이 긴장하는 이유는 이번 토벌의 마무리가 영 좋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선덕제의 치세 동안 정예로 키워졌다는 명국군이었다. 그리고, 이번 토벌에서 그 평가에 걸맞게 상황을 이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유타와가 조선으로 월경해 전멸당하면서 화룡점정(畵龍點睛)을 하지 못한 것이었다.
가뜩이나 요즘 황제가 많이 쇠약해지면서 신경이 날카로워졌기 때문에 무슨 불호령이 떨어질지 모르게 된 것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장계에 손을 댈 수도 있었지만, 선덕제 치세에서는 그런 일은 꿈도 못 꿀 상황이었다. 잘못하면 ‘황제의 눈을 가렸다.’라는 죄명으로 혈사가 벌어질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선덕제의 신하들은 현장에서 보고가 올라오면 정리조차 안 하고 바로 황제에게 올렸다. 차라리 심하게 욕을 먹거나 한둘의 목이 잘리는 것이 떼죽음보다는 한결 나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