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966)
966화 나 빼고 다 호구…. (3)
“그 부분은 수도승이 아닌지라……”
후안이 진땀을 흘리며 대답을 회피했지만, 한명회는 더욱 후안을 압박했다.
“수도승이 아니라서? 뭐,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여기는 로마 아니오? 당신네 종교의 성도(聖都)! 문만 열고 나가면 당신네 종교의 승려들이 발에 채일 정도로 돌아다니는 데 뭐가 문제요!”
“하지만, 바로 결정하기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안인지라…..”
“태상황 폐하께서 처음 물으신 이후로 수십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시간이 더 필요하다? 흥!”
코웃음을 친 한명회는 최후통첩을 던졌다.
“이틀 주겠소! 만약 거부한다면, 유럽의 승려들은 물론이고 유럽인들 그 누구도 제국의 강역에 발을 들이지 못할 것이외다!”
“이틀은……”
“다시 말하지만, 문만 열고 나가면 길에 승려들이 넘쳐나고, 교황의 거처가 코앞 아니오! 이틀을 준 것만으로도 태상황 폐하의 자비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날의 협상이 끝났다.
* * *
그날 밤, 조반니 추기경의 저택 별채에 마련된 제국 숙소에서는 한명회와 성삼문, 신숙주가 오늘 일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오. 꼭 교황이라는 자의 확답이 필요한 것이오?”
의문을 제기한 성삼문은 말을 이어갔다.
“이미 제국의 본지에는 회회교라 불리는 이슬람교를 믿는 이들이 적지 않소. 유럽인들이 믿는 가톨릭만큼 성세가 크고, 전파에 열심인 종교가 이슬람 아니오? 하지만, 그로 인한 잡음은 별로 없지 않소? 제국의 초법에도 이미 그와 관련한 조항이 있고 말이오.”
제국의 초법에는 종교와 관련한 조항이 분명하게 적혀 있었다.
-제국과 황제에 충성하고, 제국의 법을 지키며,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제국인들은 자신이 원하는 신을 믿을 수 있다.
그리고, 이미 고려말엽부터 적지 않은 이슬람교도들이 들어와 살고 있었다. 하지만,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있었기에 성삼문이 과하다고 보고 지적한 것이었다. 성삼문의 지적에 한명회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말을 받았다.
“성세는 비슷하지만 이슬람과 가톨릭은 큰 차이가 있지. 이슬람에게는 교황이 없지만, 가톨릭에는 교황이 있지 않소? 분명히 제국과 황제보다 교황을 더욱 높여 모시면서 목숨 걸고 따르는 이들이 나올 것이오.”
흑두차가 담긴 잔을 들어 가볍게 목을 축인 한명회는 말을 이었다.
“지금도 알게 모르게 가톨릭을 믿는 제국인들이 조금씩 늘고 있소. 조상제례 문제는 단순히 제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오. 이를 통해 교황을 굴복시켜야만 하오. 황제 폐하와 제국의 법이 교황보다 위에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밝혀야 나중에 동티가 안 나게 되는 것이오. 전조(前朝)에서 부처를 믿는 승려들이 나라꼴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잊으면 아니 되오.”
“그렇군……”
한명회의 설명에 성삼문과 신숙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선의 개국 이후로 몇 세대가 바뀌었지만, 조선의 집권층은 종교에 관해 거의 편집증에 가까운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리고 다른 이유도 있소. 백성의 수를 늘리는 것.”
“아…….”
“드디어 시작인 것인가…….”
한명회의 말에 성삼문과 신숙주의 얼굴이 더욱 진지해졌다.
* * *
제국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위급한 문제는 ‘인구’였다. 그동안 ‘파격적’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의 보상이 담긴 다산장려 정책을 추진하고, 신지의 원주민들을 적극적으로 흡수한 제국이었다. 그 덕분에 얼마 전에 제국의 인구는 3천만을 넘어섰다. 하지만 제국의 관리들은 크게 기뻐하지 않았다.
“크게 늘기는 했지만, 제국 전체 강역의 넓이를 생각한다면……”
“전체까지도 갈 것 없어. 본지처럼 모여 살게 되면 신지의 1/5만 채워도 다행일 것이야.”
이는 향도 마찬가지였다.
“21세기로 비유하자면 1억이 넘은 셈이지. ‘인구가 1억만 넘으면 내수만으로도 경제가 돌아간다.’라는 말이 있지만, 그래도 부족해.”
결국, 역대 황제들과 관리들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해서 나온 결론은 ‘외부에서 받아들인다.’였다.
“문제는…. ‘어디서?’겠지.”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은 명과 왜였다. 하지만, 가장 먼저 떠오른 것만큼이나 가장 먼저 제외되었다.
-명국인, 아니 중국인들은 명에 살든, 다른 곳에 살든 ‘중화인(中華人)’이다. 절대 융화되지 않는다. 왜인 역시 그 강도는 약하지만 명국인들과 비슷한 성향을 보인다. 따라서 가장 먼저 명과 왜가 제외되었다. 이어서 점점 범위를 넓혀가면서 가능성을 점쳐보았지만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대월이나 섬라 등의 국가들도 문제가 있다. 바로 불교. 그 나라 백성들에게 불교가 가지는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절대 불가.
-아랍의 이슬람교도들도 문제가 있다. 바로 이슬람의 율법 때문이다. 지금 제국에 거주하는 이슬람교도들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지만, 그 수가 많아지면 율법 문제로 반드시 사달을 일으킬 것이다.
거기에, 가려 먹는 것이 너무 많다! 먹는 것에 진심인 제국인들, 특히, 본지인들과 반드시 충돌한다!
-아프리카의 오귀자(烏鬼子)들도 문제가 많다. 최소한의 의사소통과 예절을 지키는 것, 기초적인 셈이 가능할 정도로 교육하는 것에 시간과 인력, 예산이 너무나 많이 든다. 신지의 원주민들을 ‘제국화’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달리는데 아프리카의 오귀자까지 하는 것은 역부족이다. 거기에 아프리카의 오귀자들을 보는 제국인들의 인식도 문제다. 제국인들이 오귀자들에 관해 제대로 알게 된 것은 알렉산드리아를 오가면서였다.
문제는 그곳에서 접한 오귀자들 대부분이 노예였다는 것. 사노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채 10년이 지나지 않았고, 역모에 준하는 중죄를 지은 이들이 여전히 관노의 신분으로 노역하는 제국이었다. 그런 제국인들에게 제대로 된 의사소통조차 힘든 오귀자들이 어떤 대우를 받을지는 명약관화였다.
물론, 이탈리아와 다른 여러 곳에서 자유민으로 상당한 성취를 이룬 오귀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힘겹게 쌓은 부와 지위를 내려놓고 제국으로 올리는 만무했다. 결국, 이리저리 거르고 거른 끝에 남은 이들은 유럽인들이었다.
-대부분의 제국인들이 접한 유럽인들은 부유한 상인들이나 학자들, 뛰어난 장인이나 유능한 선원들이다. 덕분에 제국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법을 지키는 것과 관리의 명령을 따르는 생활에 익숙하다.
-백성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귀족들의 수탈에 힘겨워 하고 있다. 적당한 세금만 내고 치부가 가능하다면 자발적으로 이주할 것이다.
-손재주가 좋은 장인들의 수가 많다.
-스위스인들의 예를 보다시피, 신뢰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제국이 제대로 대우해 준다면 그들은 절대적으로 충성할 것이다.
-거기에 유럽인들은 서로 앙숙인 관계가 많다. 이이제이(以夷制夷)의 계략을 이용해 사민한다면 유럽인들은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며 앞 다퉈 제국에 충성할 것이다.
“여기까지는 좋지만, 문제는 그들이 믿는 종교지.”
유럽인들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였고, 그들에게 신부와 교황이 끼치는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때문에, 한명회가 과하다고 할 정도로 후안을 압박한 것이었다. 여기서 교황과 교회의 권위를 꺾어야만 앞날이 편해지기 때문이었다. 여담으로 이는 한명회 혼자만이 생각해낸 계략이 아니었고. 역시 나 향이 배후에 있었다.
당시 향과 모의를 끝내고 나온 한명회는 닫힌 문을 돌아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이러니 ‘모든 음모의 배후에는 태상황 폐하가 계시다.’라는 소문이 도는 거지…..”
한편, 한명회를 내보낸 향은 계획을 검토하다 중얼거렸다.
“만약 이 계략이 실패하면 제국의 모든 신혼부부에게 인삼과 장어라도 돌려야겠지…. 아니면 백일씩 휴가라도 줘야하나……”
* * *
이틀 뒤, 후안은 한명회에게 알렉산데르 6세의 답을 전해왔다.
“교황 성하와 추기경 회의에서 결론이 나왔습니다. ‘가문의 구성원들이 모여 조상을 기리는 것이라면 율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입니다.”
이미 조반니 추기경을 통해 들어 알고 있었던 한명회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긴 시간을 끌어온 문제의 답이 정해지니 감개가 무량하오. 태상황 폐하를 대신해 감사를 표하는 바이오. 그런데 가능하다면 공식적인 문서도 받고 싶소.”
한명회의 말에 후안은 뒤에 있던 사제에게 손짓했다. 사제가 들고 온 은쟁반 위에는 후안이 말한 내용이 적힌 문서가 놓여 있었다. 문서에는 알렉산데르 6세와 추기경들의 인장을 찍은 밀랍을 단 리본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역사에 길이 남을 문서가 담긴 쟁반을 한명회에게 넘기는 후안의 얼굴은 전에 없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이 문서야말로 세속의 권력에게 교황이 패배했다는 공식적인 항복문서였기 때문이었다.
* * *
한명회가 교황의 문서를 건네받는 것을 끝으로 교황과 교황령에 관한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회담의 참가자들은 사도 궁전의 회의장에 계속 머물면서 회의를 이어갔다. 오늘 이후의 이탈리아를 놓고 지분 나누기에 들어간 것이었다. 진정한 협상의 시작이었다.
“본 제국이 이탈리아의 내정에 간섭할 이유도 없고, 의향도 없지만, 조언은 가능하다고 보오. 그래서 조언을 좀 하고 싶은데 괜찮겠소?”
“그럼요! 당연히 괜찮지요!”
한명회의 질문에 로렌초는 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동맹의 다른 지도자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조언이라니 경청하겠습니다.”
‘젠장! 생각 같아서는 볼일 다 봤으니 가라고 하고 싶지만!’
‘제국이 빠지면 나폴리 왕국이 설칠 것이 분명하니…..’
‘나폴리 촌놈들이 설치는 것보다는 제국과 피렌체 놈들이 설치는 것이 더 낫겠지.’
그들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한명회의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강력한 전력을 보유한 이는 제국이었다. 그것도 그냥 강력한 것이 아니라 압도적인 강력함이었다. 그 다음으로 강력한 이는 의외로 나폴리 왕국이었다.
제국의 직접적인 지원을 받은 피렌체도 강력했다. 하지만, 제 국군이 빠지면 스위스군도 빠지게 되고, 피렌체가 나폴리 왕국의 뒤로 밀리게 되는 것이었다. 때문에, 로렌초는 적극적으로 한명회와 박자를 맞췄고, 밀라노, 제노바, 베네치아의 참주들은 떨떠름한 표정을 하면서도 끌려 다닐 수밖에 없게 된 것이었다.
“여러분들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참으로 감사하오. 그동안 이탈리아의 불쌍한 형편을 살피며 본 제 국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소. 이제 이탈리아의 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본 제국의 순한 이웃인 이탈리아의 발전을 진심으로 기원하고 있소.”
온갖 화려한 수식어로 가득한 서두를 길게 늘어놓은 한명회는 잠시 목을 가다듬고는 말을 이었다.
“여기 이 자리에 모인 분들은 이탈리아의 통일을 위해 나선 도시와 왕국의 지도자들이시오. 이탈리아와 여러분들의 도시가 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훗날, ‘제국 빼고 모조리 호구였다.’라는 평가를 받은 회의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