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118
118 인연(1)
“음, 아무튼 자동차 사업이 궤도에 오르느냐 마느냐가 달린 상황에서 갑자기 오하이오주를 오다니···태선의 선택은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사실 계획을 말해줬지만 샬롯으로서는 납득이 되지 않았는지 불평하듯 말했다.
자동차 사업 성공이 결혼 발표와 관련 있어서 초조해하는 것이려나.
그렇게 생각한다면 자동차 사업에 소홀한 것이 서운할 수 있으니 어쩌겠는가 달래줘야지.
“걱정 말아요. 우리가 신경 쓰지 않아도 자동차 사업은 이미 사실상 궤도에 올랐어요. 결혼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킴 부인님.”
“앗···그, 그건!”
그런 태선이 피식 웃으며 장난치듯 말하자 샬롯은 살짝 얼굴을 붉혔다나 한숨을 내쉬었다.
“킴 부인이라···듣기 좋네요. 에효, 알았어요. 아무튼 그럼 믿어도 되죠?”
“네, 믿으세요. 아예 이번에 오하이오주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가며 발표하죠. 우리 결혼할 거라고요.”
“아, 결혼 발표···정말로 돌아가면 하는 건가요?”
태선이 고개를 끄덕이며 확신을 시켜주자 샬롯은 말을 표현할 수 없이 기뻤는지 웃다 못해 눈물마저 그렁그렁해졌다.
“아, 그럼 뭐라고 운을 떼면 좋으려나요. 아무래도 회의에서 말하면 그렇고······다 같이 모인 자리보다는 일단 한 사람 한 사람들에게 적당히 운을 뗀 뒤에 말하는 게···?”
그리고 폭풍처럼 이어지는 말에 태선은 급히 말을 끊었다.
“워워, 샬롯 잠시만요. 기쁜 마음은 이해하고 동감하지만 지금은 먼저 할 일이 있잖아요. 리스버그에 다 왔으니 그 일부터 처리하죠.”
“아, 참! 너무 기뻐서 일하는 중이란 걸 잊었네요.”
샬롯은 평소답지 않게 흥분해버린 마음을 가다듬는지 심호흡하더니 짐짓 화제를 돌리려는지 이야기를 꺼냈다.
“그건 그렇고 아무리 오하이오주에 온 김이라고는 하지만···얼마나 대단한 인재이기에 태선이 직접 만나러 여기까지 왔는지 궁금하네요.”
“잘 아는 사람이 워낙 적극적으로 추천해서 궁금해서요. 온 김에 보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요.”
사실 태선이 오하이오주에 방문한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이름이 존 더스틴 아치볼드라고 했었죠?”
“네, 존 아치볼드.”
바로 태선이 전생하기 전의 역사에서는 록펠러 진영 최고 간부이자 수완가이며 심복이고 오른팔이었던 인물.
‘이 녀석만 영입하면 회사 운영의 난이도가 완전히 달라지지.’
혹여 록펠러가 본래 역사에서처럼 채가기 전 자신이 먼저 데려가기 위해서였다.
***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시 옆에 위치한 리스부르크는 작은 마을이었다.
그렇기에 아치볼드는 공립 학교를 다니며 늘 생각했다.
“···학교만 졸업하면 바로 이 작은 마을을 벗어나서 도시로 나가겠다고···그래서 사업으로 성공해서 돌아가겠다고 꿈에 가득 차 있었는데.”
그렇지만 고향을 떠난 지 몇 년은 고사하고 몇 달 지나지 않았거늘 벌써 세상이 만만찮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하아, 정말이지 뭐만 하려고 하면 모든 게 다 돈이구나.”
잘 곳을 구하려고 하니 돈이 들고 먹을 걸 사려고 하니 돈이 들고 신발이 해져서 사는 건 고사하고 수선하려고 해도 그것마저 돈이 필요했다.
하다못해 고정 수입이라도 있으면 다행이거늘.
“이번 일감도 오늘로 마지막이라는구먼.”
“그런가. 여기가 괜찮았는데.”
이번 일터에 소개받아 흘러들어온 이들이 다 그렇겠지만 일용직들이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데 그마저도 이번 일터의 일감은 오늘로 끝.
내일부터는 다시 소개소에 나가서 눈도장을 찍어야 했다.
‘아니, 내일도 아니구나. 돈 받으려면 지금 바로 소개소로 돌아가 봐야 할 테니까.’
아치볼드는 다른 인부들과 삼삼오오 무리 지어 인력소개소로 돌아갔다.
“쳇, 그린백이구먼. 그럼 더 쳐줘야 하는 거 아니오?”
“군말 말고 그냥 받으세요. 일하려는 사람은 넘쳐나는데 내일 일터는 험한 데로 가고 싶은 모양이신가봐?”
남북전쟁 시기 찍어낸 그린백으로 임금을 지불하는데 액면가를 낮게 취급받는 경향이 있었기에 조심스레 불만을 표출하는 노동자들도 있었다.
“에이, 말이 그렇단 거지.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시나.”
다만 돈을 주는 사람이 몇 마디 하자 그 치들은 즉시 눈을 내리깔았다.
이 바닥에서 꽤나 굴렀다는 선수들도 꿈틀거리는 것이 고작인데 몇 주 전에 흘러들어온 초짜가 찍소리나 할 수 있겠는가.
툭───!
심지어 돈을 던져서 주는데 그걸 받지 못해서 지폐 몇 장이 바닥에 흩어졌다.
“내참, 그걸 못 받나.”
앞에서는 직원이 짜증 내고 뒤에서는 다음 노동자가 밀치고 나갔다.
그 바람에 바닥에 코를 찧으며 넘어질 뻔했지만 혹여나 돈을 잃을세라 아치볼드는 서둘러 그린백이나마 지폐를 챙겼다.
“······.”
그러고 밖으로 나오는데 자괴감이 들었다.
“차라리 정유회사로 가볼까?”
사실 얼마 전에 알게 된 한 정유회사 관리인이 일머리가 괜찮다며 자기 밑에서 한번 일해보라며 제안했었다.
“정유회사가 일이 힘들기는 하다는데······.”
그 정유소는 존 데이비슨 록펠러 회사 소유라서 망할 일은 없다나.
“더구나 록펠러 회사는 노동자들을 가혹하게 굴린다지.”
다만 그만큼 다른 일자리에 비해서는 임금이 셌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도시에서는 전구이며 자동차이며 공장 기계이며 죄다 석유를 넣어서 굴러간다고 한다.
“그 석유를 꽉 쥐고 있는 회사가 킴 스탠다드 오일이고 록펠러의 회사는 남은 걸 받아먹는 수준이라지만···그 정도만 해도 엄청나겠지.”
그 꼭대기에 있는 록펠러는 돈을 엄청나게 벌고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해보면 압도적인 업계 1위인 킴 스탠다드 오일의 사장은 어떠려나.
혹은 그 임원들은···당연히 마찬가지로 자신의 임금 따위와 비교도 못할 돈을 벌 것이다.
“하아······!”
하지만 아치볼드가 정말로 부러운 건 돈이 아니었다.
“나도 그 사람들이 하는 일 잘할 수 있는데.”
관리자로서 사람들을 만나고 사업의 방향을 정하고 조율하고 하는 일들.
기실 고향에서 올라온 것도 그런 자신감이 있어서였다.
-어이, 아치볼드. 널 위해서 하는 말인데···헛된 꿈은 버리고 현실을 인정하거라.
-네가 록펠러나 밴더빌트나 모건처럼 되겠다고? 아···예, 그러시겠죠.
-···어, 음. 그래 잘해봐라. 응원해주마. 안 된다고 해도 너무 좌절하지 말고.
다만 고향에서는 선생님이든 친구이든 이런 자신감을 내비치자 코웃음치거나 격려를 해줘도 안 된다는 전제부터 깔았다.
-이봐, 존 또 졸면 어떡하냐?
-밤에 공부? 염병 말고 일이나 열심히 해. 아니면 돈을 더 적게 받든가.
여기서도 그랬다. 아니, 더 심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그저 부품 취급이었고 자신의 포부를 드러내면 비웃었다.
“아냐, 나는 그런······.”
워낙 많이 들어서 뇌리에서 그들에게 들은 목소리가 저절로 떠오를 정도였다.
아치볼드는 고개를 내저으며 그걸 부정하려다 문득 맥없이 걸음을 멈췄다.
“···어쩌면 맞을지 모르겠네.”
부정하는 것도 너무 지치고 힘들었다.
차라리 인정해버리고 투쟁을 포기하면 편할 것 같았다.
“그래, 그럴지도.”
옆으로 잘 차려입은 웬 동양인과 금발 여자가 지나갔다. 자신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을 듯한 사람.
“···요?”
“···있다고 했으니까요.”
얼핏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지나가지만 누가 뭐라며 지나가건 말건 무슨 상관이랴.
“그래, 현실을 인정하고 내 그릇에 맞는 수준에 맞춰 살자.”
그저 자신을 내려놓고 혼자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러니 편했다. 다 놓아버리니 가슴을 꾹 눌러놓던 바위가 사라진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졌다.
“아치볼드, 왜 그렇게 길 가운데서 가만히 서 있나. 술이라도 같이 한잔할까?”
그때 한잔하자면서 어디서 술을 벌써 마셨는지 뒤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 지크 씨였군요.”
그 외에도 어울려 다니는 몇 사람이 있었다.
‘사람 자체만 보면 나쁘지들 않은데···너무 방탕해서 그렇지.’
이들이 같이 술 마시자며 권한 건 처음은 아니었고 늘 거절해왔었다.
이들처럼 될 것 같았기에.
“···네, 그러죠.”
다만 오늘은 이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으잉, 같이 간다고?”
그러자 오히려 지크 무리가 의외라고 여길 정도였다.
“웬일이야? 너 방에서 공부한다면서?”
“이런 날도 있어야죠. 그냥 오늘은 울적해서요.”
“하하하, 그래 잘 생각했다. 이런 날도 있어야지. 특별히 오늘은 내가 사주도록 하마.”
자연스럽게 붉은 수염의 지크가 다가와서 아치볼드의 어깨를 휘감듯 팔을 걸쳤다.
“그러고 보니 아치볼드 네 녀석이 이제 몇 살이지? 총각 딱지는 뗐냐?”
“그···그 말을 갑자기 왜 나오나요. 열일곱 살이긴 한데···아직 그런 일에 관심 없어요.”
“관심 없기는! 좋다, 인생의 선배로 내가 특별히 선심 써서 물 좋은 술집에 데려가마. 거기 마담이······.”
“아니, 그렇게까지는···그냥 술이나 마시자고요.”
“어허! 오기로 했으면 군말 말고 따라와. 우울할 때는 다들 그렇게 기분 전환하는 거야.”
지크의 말에 다른 치들도 맞장구치며 거의 끌려가듯 하다 아치볼드고 결국 자기 스스로 걸음을 떼려는데 그때.
“거기 잠깐만! 혹시 거기 존 아치볼드 씨 있으십니까?”
아까 자신을 지나쳐 금발 여자를 데리고 인력사무소로 들어갔던 동양인 남자가 급히 달려오면서 소리쳤다.
“네?”
반사적으로 답하며 돌아보자 동양인은 눈썰미가 좋은지 그걸 알아보고 성큼성큼 달려 이쪽에 곧바로 다가왔다.
“존 더스틴 아치볼드 씨?”
“···네에.”
조심스레 위아래를 훑어보며 아치볼드가 답했다.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알고 부르는데 눈빛에 경계심이 어릴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체격도 크고 다부진 동양인이 자신에게 대체 무슨 용건이 있어서 찾아왔단 말인가.
“무슨 일이냐, 존? 너 돈이 궁하다더니 혹시 고리대금이라도 빌렸냐?”
“아뇨, 그런 적 없어요.”
그래도 같이 노가다를 뛴 동료애라는 건지 지크 일행이 아치볼드의 앞을 막아섰다.
“이보쇼, 우리 막내에게 무슨 볼일이야?”
“그냥 한 가지 제안할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동양인이 답하는 사이 그와 동행한 금발 여자가 뒤늦게 따라와서 합류했다.
“태선, 아무리 급해도 그렇게 먼저 가버리는 일이 어딨어요.”
“미안해요, 샬롯. 방금 전에 나갔다는데 놓칠까봐요. 기껏 리스부르크에서 왔는데 놓치면 곤란하잖아요.”
“그야 그렇긴 하지만.”
말하는 걸 들어보니 금발 여자는 샬롯이고 동양인 남자의 부하인 듯싶었다.
‘뜻밖이네. 반대로 금발 여자가 어디 부자집 아가씨이고 저 남자가 부하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상식적으로 동양인이 상전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다만 그렇게 생각해보면 신기하기는 했다.
‘이름이 태선이랬나. 어떻게 동양인이 저런 여자를 부하로 데리고 있을 수 있지.’
그러다 문득 하나 깨달았다.
“어, 잠깐만요. 방금 전에 리스부르크에서 왔다고···?”
“예. 아치볼드 씨를 만나러 리스부르크로 갔는데 몇 주 전에 떠났다는 말을 듣고 수소문해서 찾아왔습니다.”
“리스부르크로 간 것도 모자라서···수소문해서 저를 찾아오셨다고요?”
어이가 없다 못해 무서울 정도라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대체 왜?’
이 사람들은 대체 왜 자신을 찾아왔단 말인가.
하물며 차림새를 보면 이런 구닥다리 동네에 어울리지 않는 이들이거늘.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하는데 시간을 내주시겠습니까?”
하물며 나이도 자신이 한참 어릴 것 같은데 정중한 말투로 권하고 있었다.
“아치볼드, 보아하니 험악한 사람들은 아닌 것 같아도 내 경험으로 이런 자들은 사기꾼인 경우가 많아. 무시하고 술이나 마시러 가지.”
반면 지크 무리는 물러나긴 했으나 술집 거리로 발걸음을 돌리며 짐짓 눈짓을 했다.
어느 쪽을 따라갈지···잠시 고민했으나 아치볼드는 지크 무리에게 말했다.
“나중에 같이 마셔요.”
“쯧, 세상 물정 모르기는. 뭐 알았다.”
미련 없이 가버리는 지크 무리를 뒤로 하자 동양인은 옅게 웃으며 앞장섰다.
“···저기 이쪽으로 가면 그냥 공터인데 왜 여기로?”
그리고 얼마쯤 걷다 뭔가 이상해서 물었다.
혹시 으슥한 데로 데려가서 납치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으나 곧 기우라는 걸 깨달았다.
“어라, 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