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25
청풍표국 최강식객 025화
25화. 먹빛 하늘 아래(2)
“지금 뭐라고…?”
“황금 일만 냥입니다. 왜 그러시는지요? 혹 금액이 잘못되었습니까?”
그럴 리가 없는데, 통주출장소에서의 소액 인출 외에는 다른 인출 흔적은 없다며 긴장하는 그를 제지하며 임요성이 숨을 골랐다.
20년이란 세월을 목숨 바쳐 일한 데다가 각종 위험수당이며, 야근, 특근 수당까지 포함한다 쳐도 아무리 높게 봐도 단위 자체가 잘못된 것 같았다.
황금 천 냥만 해도 입이 떡 벌어질 금액인데…. 문파를 하나 세워도 충분할 금액이었다.
자기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해주는지….
“아닙니다. 그럼….”
임요성의 말에 지부장이 즉각 해당 금액에 대한 전표 몇 장과 전낭이 놓인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이건 확인 절차 없이 바로 쓸 수 있는 소액전표이며, 이건 금액별로 넣어둔 전낭입니다.”
일 처리가 깔끔하군.
강호에 나와 처음으로 뭔가 일이 깔끔하게 진행되는 느낌이었다.
“지부장님 성함이 어찌 됩니까?”
이런 사람들은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 대수롭지 않게 물었는데, 지부장은 그야말로 황송하다는 듯이 허리를 굽혔다.
“이 미천한 소인의 이름을 물어봐 주시니 감읍할 따름입니다. 소인의 이름은 구가 용식이라고 합니다.”
“크음.”
너무나도 감격하는 모습에 임요성이 입맛을 다시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이제 다 끝난 거군요?”
그렇게 말하며 임요성이 우려낸 차를 쥐고는 입에 가져갔다.
후룩.
임요성이 차를 마시는 모습에 지부장과 여인의 눈에 작은 이채가 지나갔다.
“으음. 차 맛이 좋군요.”
“예. 저희는 언제나 최상급 재료와 좋은 물을 쓰기 때문….”
지부장이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임요성의 칼끝이 자신의 목에 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어, 언제?’
지부장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칼이 뽑히는 것도 보지 못했고,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어느덧 그의 칼이 자신의 목에 닿아 있다니!
사실 이미 이 청년에 대한 사전 조사는 끝난 상태였다.
하북의 혈루쌍괴를 해치우고, 하북팽가의 대공자와의 비무에서 압도적인 실력을 선보인 신진고수.
아마도 향후 무림에 태풍의 눈이 될 무인이리라.
아직 이립에 미치지도 못할 것으로 본다면 향후 최소 차기 우내십존이나 상천십좌에 이름을 올릴 강자로 성장할, 또는 이미 그 단계에 있을 초고수!
그래서 무색무취의 자백제과 산공독, 춘약을 모두 준비했다.
그리고 정신을 산란케 하기 위해 자극적인 미녀도 옆에 두었고.
“언제부터 묵천의 천도들이 돈 많은 청년 뒤통수나 치는 신세가 되었지?”
임요성의 말에 지부장뿐만 아니라 농인이라던 여인까지도 커다랗게 눈을 치켜떴다.
“그, 그걸 공자님께서 어떻게…?”
“처음엔 혹시나 했다. 너희들에게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비혼결의 기운에 의아했지.”
비혼결이란 말에 둘의 눈이 세차게 흔들렸다.
묵천의 천도라면 모두 익히는 비혼결이 생판 모르는 청년의 입에서 나오다니!
묵천군 4대 절학 중 하나인 능비혼의 심법인 비혼진결을 보급화하여 만든 것이 비혼결이었고, 이 심법을 익히면 같은 무공을 익힌 이들은 그 기운으로 서로의 존재를 알 수가 있다.
우웅!
공기가 떨리는 느낌이 나더니 임요성의 새끼손가락에서 검은 액체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구용식과 여인의 눈이 세차게 흔들렸다.
이른바 운기제독술이라고 부르는 몸 안에 들어온 독을 기운으로 감싸서 몸 밖으로 내보내는 그야말로 강호 최정상급 절학이었다.
도대체 이 젊은 무사의 정체가 무엇이길래 이렇게 엄청난 신위를 보여준다는 말인가!
격랑이 이는 그들의 마음과는 반대로 담담한 임요성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만약 그냥 이대로 끝이 났다면 나는 의문을 가슴에 품은 채 일어났을 거야. 그런데 돈 많은 젊은 남자를 약으로 재워서 뒤통수를 치려 해? 묵천군이 수하들을 잘못 가르쳤어. 이 모습을 보면 지하에서 통곡을 하겠군.”
“…말씀을 삼가십시오. 천군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자는 중원 천지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 놈들이 이런 일을 벌였나?”
“…이 일은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만 공자의 돈을 털려는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계속해봐.”
칼끝이 목에 닿아 있어 떨리긴 했지만 할 수 없었다.
천천히 구용식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20여 년 전 갑자기 묵천회를 떠난 천군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묵천군이 갑자기 사라지고 묵천회는 공황 상태가 되다시피 했다.
아무리 찾아도 그의 행적은 묘연했고, 그들은 때를 기다리기 위해 은밀히 숨어들었다.
묵천군에 대한 그들의 충성심은 그야말로 절대적. 그 누구도 배신을 하거나 묵천회를 나간 이는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전장, 표국, 기루, 큰 음식점, 동네 무관, 심지어 대문파나 세가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스며들었고, 혹시라도 묵천군에 대한 일말의 단서라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 시간이 흘렀고, 지금은 소소한 정보나 다루며 각자 소속된 곳에 적응해서 살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를 그리워하는 이들은 마지막으로 황궁, 특히 황실을 주목했는데 이마저도 별 성과가 없었다.
그렇게 잊고 있다가 이번에 삼 황자가 황제로 등극하는 일대격변이 일어난 뒤 쏟아져 나오는 끈 떨어진 연들에게 접근해 정보를 캐보는 중이었다.
만약 이마저도 성과가 없다면 묵천을 해체할 생각도 하고 있었다.
어차피 그들의 실력은 꽤 괜찮았기에 하오문이나 백도의 정보단체로 들어가면 제법 대우받고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젊은 고수, 그것도 황가에서 나왔음 직한 임요성을 보며 마지막 희망을 품었다.
돈을 훔치려는 목적이 아니라 춘약과 자백제, 산공독을 섞어 임요성이 알고 있는 정보를 알아내기 위함이었다.
여인과의 방사를 통해 은밀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자백제는 묵천이 자랑하는 것으로 물음에 절대 거역할 수 없고, 깨고 나면 여인과의 하룻밤 이외에는 모든 걸 잊는 약이었다.
그렇게 철저히 준비했건만….
지부장의 말을 듣던 임요성이 칼을 거두었다.
툭.
‘天君(천군)’이라는 글이 음각된 묵철의 패.
“제가 바로 묵천군의 제자입니다.”
임요성의 바뀐 말투보다도 그의 말 자체에 지부장과 여인의 얼굴은 그 어느 때 보다 경악으로 물들었다.
틀림없다. 이것은 천군의 묵패. 이것은 묵천의 천군만이 가질 수 있는 신분패였다.
“이, 이걸 어떻게! 정녕 공자께서 천군의 후계란 말씀입니까?”
“사실 묵천군께서는 우리… 불량인들의 교관이셨습니다.”
황궁에서 나온 이후 아무에게도 하지 않은 이야기를 꺼냈다.
이들은 그에 대해 들을 자격이 있었다.
“황자를 보필하고, 황좌를 쟁취하기 위해 묵천군의 행적을 지우는 건 필수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는 사실 제가 모신 주군을 죽이러 일 황자가 보낸 암살자였습니다.”
임요성의 말처럼 묵천군은 일 황자의 의뢰를 받아 삼 황자를 죽이기 위해 고용된 살수였다.
그의 강호 최고의 은신술과 침투술을 이미 알고 접근한 그들이었다.
정보단체의 수장으로서 살인 청부는 받지 않았던 그였으나 이번 의뢰는 실로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강호 3대 정보 조직이었던 묵천.
이번 일로 일 황자가 황제가 되어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다면 천하제일 정보문이 될 수도 있을 터.
하지만 마지막 순간 삼 황자의 인간 됨됨이를 알게 된 묵천군은 그대로 삼 황자의 사람이 된다.
그리고 비밀엄수를 위해 묵천군의 행적은 철저히 지워진다. 묵천군 스스로 원한 일이기도 했고.
이후 묵천군의 주도 아래 불량인이 만들어지고, 그때부터 황자는 차근차근 황제가 될 준비를 시작한 것이다.
여기까지 들은 구용식이 소리쳤다.
“거, 거짓말! 천군께선 우릴 생각하는 마음은 가족 이상이었습니다! 그런데 한마디 말도 없이 그렇게 사라지다니요! 말도 안 됩니다.”
“묵천군께서는 오히려 그 일로 묵천이 해체된다고 해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천하제일이라는 미망에 사로잡혀 수하들을 너무 극한으로 몰아치고, 몸집을 불리는 데만 신경을 썼다고 하시며.”
“그, 그런….”
그 말도 일견 수긍이 갔지만, 당시 묵천의 하늘 아래 모인 이들은 그의 꿈에 동조해서 모인 이들이었다.
강호의 가장 밑바닥을 기던 이들을 끌어모아 혹독한 수련으로 최고의 정보원을 만든 묵천군.
처음엔 죽고 싶도록 힘들었지만 점점 그의 꿈이 자신들의 꿈이 되어갔고, 강호 3대 정보 조직이라는 이름을 거머쥐었을 때의 희열은 당시 스무 살에 불과하던 구용식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미, 믿을 수 없습니다! 이 묵패를 어디서 탈취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구용식의 말에 물끄러미 그를 쳐다보던 임요성이 칼을 한 번 휘둘렀고, 구용식과 농인이라던 여인이 모두 풀썩 쓰러졌다.
흑아를 집어넣은 임요성이 조용히 차를 홀짝이다 미간을 찌푸리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설마 만나겠냐고 여겼던 스승의 옛 인연들을 보며 과거의 기억이 한 조각 떠올랐다.
* * *
“하아, 하아, 넌 정말 독한 놈이다. 내 독종이라는 독종은 종류별로 다 봤지만 너처럼 조용하면서도 독기 충만한 독종은 처음이야.”
“후우, 후우, 벌써 지친 거예요?”
“미친놈. 널 배려한 거라는 생각은 못 하는 거냐?”
“후우, 전 멀쩡한데요?”
“입가에 흐르는 침이나 닦고 말해라.”
“…땀인데요?”
털썩.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는 흉한 인상의 사내가 바닥에 검을 놓고 주저앉았다.
머리카락이 침투 행위에 방해가 된다며 머리를 빡빡 밀고 다니다가 머리카락 자라는 게 귀찮아서 아예 불로 지져 인위적으로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도록 만들었다는 일화의 주인공, 묵천군이 손짓했다.
“됐고, 여기 앉아봐라.”
“…왜요? 그냥 한 판 더 하죠?”
“그냥 앉아봐, 이 새끼야.”
“하아.”
칼질 한 번이라도 더 하고 싶던 열세 살의 임요성이 자리에 앉았다.
작은 언덕 위에 아무렇게나 앉은 두 사람의 시야로 우중충한 먹빛 하늘이 펼쳐졌다.
그리고 사내의 말이 툭 던져졌다.
“너 내 제자 안 할래?”
“예에?”
뜻밖의 말에 임요성이 깜짝 놀라 몸을 곧추세웠다.
그가 강호에 있을 때 천하를 호령하던 정보 조직의 수장이었다는 건 이미 불량인들에게 공공연한 비밀.
그가 이곳에 오기 전 천하 10대 고수의 반열에 올랐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다른 이들 몰래 그의 제자가 되기 위해 청한 이들이 많았으나 모두 거절당한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에게 제자가 되라고?
“아마 빠르면 5년? 안에 본격적으로 시작하실 모양이다.”
일명 황자의 난 계획이 시작되는 것이다. 모두 그날을 위해 칼을 갈고 있는 것이고.
“많이 죽을 거다. 그리고 나도 살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고. 자식 새끼도 없고, 갑자기 이렇게 되느라 바깥에 제자도 한 명 없어. 그래도 내가 익힌 무공을 누군가에게 전수는 해줘야 저승 가서 사부한테 욕 한마디라도 덜 먹을 것 아니냐?”
잔뜩 찌푸린 하늘에 지는 노을은 먹빛 같았고, 그 하늘을 쳐다보며 말하는 묵천군의 옆얼굴도 먹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러면 우리 모두를 제자로 받아주시면 되잖아요? 그럼 우리가 살 가능성도 높아지고.”
“인석아, 비인부전 모르냐?”
“그게 무슨…. 어차피 다 죽을지도 모를 마당에.”
코웃음을 치며 말하는 어린 임요성의 머리에 꿀밤 하나를 먹인 묵천군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어린놈이 뭘 안다고 재수 없게. 그게 아니라 내 수련을 버틸 수 있을 만한 놈이 없어. 그야말로 인간이라는 존재의 밑바닥까지 드러나는 수련이거든. 그나마 네놈이 좀 버틸만하기에 물어보는 거야.”
꿀밤 맞은 자릴 만지작거리던 임요성이 답했다.
“좋아요! 제자 할게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런 기회를 걷어찰 바보는 없다.
“흐흐. 좋아. 그런데 한 가지 약속해줘야 할 게 있다.”
“뭐죠?”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살겠다고 약속하거라.”
“예에?”
임요성이 미간을 찌푸렸다.
“하! 그게 약속한다고 돼요? 여기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딨다고. 그런다고 안 죽을 거면 다 약속하고 말지.”
“그래. 어차피 우린 목숨을 바쳐 황자를 지켜야 하지. 그런데 만약 너와 나 또는 네 친구와 너, 이렇게 둘 중의 하나만 살 수 있는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할 거냐?”
“그거야….”
쉽게 답하기 힘든 내용이었다.
당장은 내 목숨이 우선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막상 일이 닥치면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약속하라고. 황자는 제외하고, 다른 모든 상황에 있어선 네 목숨을 우선으로 생각하겠다고. 그리고 만약 마지막까지 살아남는다면… 바깥에 있는 우리 애들 좀 돌봐줘….”
아마도 살아남으라는 말은 뒷말을 하기 위한 밑밥이었을 것이다.
먹빛 하늘을 등지고 있는 그늘진 그의 얼굴이 더 슬퍼 보였다.
부하들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이 느껴졌다.
“좋… 아요. 근데! 우린 다 살 거예요! 그래서 옛말할 날이 올 거라구요! 아니 내가 그렇게 만들 거예요!”
어린 임요성은 그렇게 소리쳤고, 그를 바라보는 묵천군의 눈빛은 따스하게 휘어졌다.
임요성의 열세 살 늦봄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