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56
154. 광검제 (2)
본래 불빛이란 어둠을 방황하는 이들을 현혹하기 마련이다.
손을 뻗으면 그것에 불타서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멈출 수 없다.
불빛이 진짜로 있다는 것만으로도 빛을 향하는 갈망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커진다.
그것은 생명에게 각인된 일종의 본능이다.
강호에서는 그러한 광도(狂濤)를 일으키는 불빛이 천무고였을 뿐이다.
그리고 불빛에 현혹된 어리석은 부나방이 바로 상승의 무공에 집착하는 자인 것이고.
맹호검 이진천 또한 그런 부나방에 가까운 존재였다.
「천무고(天武庫) 암천로(暗天路)에 진입했습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이진천은 자꾸만 눈가에 어른거리는 빛의 글귀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한 줌의 내공도 느껴지지 않고, 기감 같은 것은 사용할 수 없는 공간.
마치 여태까지 배워 온 모든 것이 부정당하는 기분에 이진천은 울렁거림을 느꼈다.
‘……이것이 고금제일인이라 불리는 자가 남긴 비고라니.’
소름이 끼쳤다.
시야에 떠오르는 빛의 글귀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이 비고는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사람을 벌레로 취급하는 듯한 고독로라는 곳에서는 여러 사람을 가둬 놓고 싸우게 하더니.
갑자기 이번에는 내공까지 금제를 걸어 놓은 채 경쟁자를 죽이고 빠르게 길의 끝에 도달할 것을 권했다.
“빌어먹을…….”
이진천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직시하며 침음했다.
부족한 재능을 상승의 무공으로 채우려고 한 발버둥이 점점 그를 더 깊은 수렁에 욱여넣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애써서 심신을 다스리며 걸음을 내디뎠다.
‘……괜찮다. 이까짓 난관은 상승의 무공을 얻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버틸 수 있어.’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것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길을 걸으며 살인을 저지르는 것도, 심지어는 이보다 더 심한 것도 할 수 있었다.
이진천은 이미 사람이길 포기했다.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순식간에 그를 넘어서는 괴물 같은 천재들을 보며, 그는 깨달았다.
이대로 있다간 언제고 몇 번이고 천재를 받쳐 주는 역할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는 것을.
그를 조롱하듯 찬란하게 빛나는 재능에 압도되어 일생을 목을 조르는 것 같은 감각 속에서 살 것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비좁은 우물 같은 사문에서 뛰쳐나와서 그는 천무고에 입장한 것이다.
상승의 무공을 익혀서 경지를 올리려고.
‘사람 같은 건 몇이든 죽일 수 있다.’
어느새 어둠 속을 거니는 이진천은 핏빛 안광을 번뜩였다.
광검제(光劍帝).
무려 40년 전, 혈혈단신으로 점창파를 멸문시킨 전적이 있는 작자의 무공이다.
그 초월적인 존재가 남긴 무공을 습득할 수 있다면 이까짓 난관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진천은 그렇게 자신을 세뇌하듯 생각하며 검을 쥔 채 어둠을 걸었다.
갑자기 사람을 마주치면 망설임 없이 적을 베었고, 체면조차도 버리고 바닥을 구르며 목숨을 연명했다.
촤아악!
「경쟁자가 사망했습니다.」
「시야를 채운 어둠이 조금씩 소멸합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시야가 점점 밝아지는 것을 느끼며 환희에 젖었다.
‘그래! 바로 이것이다! 나는……! 나는! 좀 더 높이 올라갈 사람이란 말이다!’
어느새 광검제가 남긴 시련을 인간답지 않다며 내심 깎아내린 노인은 이 자리에 없었다.
추레한 살인자가 남았을 뿐이다.
이진천은 이제 어둠을 조심히 걷지 않았다.
타다닷!
오히려 소리를 내며 뛰어다니면서까지 열렬히 경쟁자를 찾아냈다.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기본기를 탄탄하게 다져서 그런지 그에게 적수는 없었다.
하물며 그는 내공조차도 많이 쌓지 못한 무인이었다.
그러니 내공을 대신하는 기교들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했고, 그것을 이용하여 그는 빠르게 난관을 돌파해 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는 깨달았다.
「경쟁자가 사망했습니다.」
「시야를 채운 어둠이 조금씩 소멸합니다.」
「경쟁자가 사망했습…….」
「시야를 채운 어둠이 조금씩 소멸합…….」
「경쟁자가 사망했…….」
「시야를 채운 어둠이 조금씩 소…….」
사람을 마주치는 것보다 싸늘하게 식은 시체를 만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을.
몇 차례씩이나 바닥에 쓰러진 시체를 본 이진천은 환희에서 깨어났다.
“이게 대체 무슨…….”
그는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다.
여태까지 발견한 시체들은 전부 일관적으로 같은 검격에 목이 잘린 상태였다.
즉, 이자들을 죽인 자가 같은 사람일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무공을 어느 정도 배운 이라면 전부 같은 결론을 내릴 것이다.
「경쟁자가 사망했습니다.」
「시야를 채운 어둠이 조금씩 소멸합니다.」
「경쟁자가 사망했습…….」
「시야를 채운 어둠이 조금씩 소멸합…….」
「경쟁자가 사망했…….」
「시야를 채운 어둠이 조금씩 소…….」
심지어 이진천이 그러한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빛의 글귀는 끊이질 않았다.
마치 어둠에서 벗어난 그를 불태울 것처럼 늘어지는 글귀들을 보며 이진천은 몸을 떨었다.
이제 어둠은 없었다.
반갑지 않은 불빛이 주위를 감싸며 부나방을 응징할 것처럼 어둠을 걷어 낸 탓이다.
‘뭐, 뭔가가 잘못된 것 같…….’
생각이 이어지기 이전에 이진천은 본능의 경종을 느꼈다.
60년.
한 갑자를 넘는 세월 동안 사선을 여러 번 넘나들며 발달한 감각이 그의 몸을 굴렸다.
촤아악!
하지만 늦었다.
“끄아아악……!”
이진천은 등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통증에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그리고.
이내 그는 고통에 떨리는 눈동자를 통해서 적을 볼 수 있었다.
감정 없는 눈, 서방에서나 쓰일 것 같은 연미복, 불길함을 머금은 두 자루의 검까지…….
흡사 사신이 있다면 이럴까 싶을 정도로 불길한 청년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제가 접근했다는 걸 눈치채신 겁니까?”
이진천은 죽음에 직면했다는 것을 깨닫고 재빨리 거짓말을 지어냈다.
“……사, 사문의 무공이네! 나, 나를 살려 주면 무공의 구결을 알려주겠……!”
살고 싶다는 추레한 욕망이 불쑥 고개를 들어서 그런 것인지 말이 물 흐르듯 이어진다.
하지만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거짓말.”
순간적으로 청년의 눈이 파충류의 그것처럼 쩍 갈라지며 불꽃같이 일렁였다.
거짓을 완전히 간파한 것이다.
그 괴물 같은 모습에 이진천은 덜덜 떨며 기도가 조이는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다.
“아…….”
이진천은 최후에야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광검제의 무공을 탐낸 것은 분수에 맞지 않는 욕심이었다는 것을.
더불어 자신은 저 괴물 같은 존재를 위하여 천무고가 선택한 희생양에 불과하다는 것을.
광검제 같은 초월자의 무공을 익힐 존재는 사실은 내정되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주, 죽고 싶지 않…….”
서걱─!
그것을 깨닫고 돌아가기에는, 이제는 너무도 늦었다는 사실을.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강한 적들을 선별하여 죽였습니다.」
「일시적으로 17층 스테이지 내에서 모든 능력치가 +8 상승합니다.」
「모든 적을 섬멸하십시오.」
특수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것은 지루한 반복 작업에 가까웠다.
「길을 헤매는 모든 경쟁자를 제거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특수 과제 ‘죽음의 길잡이’를 달성하셨습니다.」
「일시적으로 17층 스테이지 내에서 모든 능력치가 +4 상승합니다.」
적에게 접근하고, 목을 베어 내고, 또 다른 적을 탐색한다.
그것을 반복하는 건 상상 이상으로 지루했다.
심지어 적들은 마력 회로나 기감 자체도 쓸 수 없어서 순수 감각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스킬 ‘어둠 늑대의 걸음’이 활성화된 상태입니다.」
기척 자체를 지울 수 있는 스킬이 있는 내게는 어이없을 정도로 상대하기 쉬운 적이었다.
「무림인 ‘이진천’의 사령을 흡수했습니다.」
「숙련도가 0.017% 상승했습니다.」
「무림인 ‘백석문’의 사령을 흡수했습…….」
「숙련도가 0.011% 상승했습…….」
「무림인 ‘이건백’의 사령을 흡수했…….」
「숙련도가 0.009% 상승했…….」
전투라 할 것도 없는 일방적인 학살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
「보유한 사령을 전부 사용하여 영구적으로 능력치를 상승시킵니다.」
「근력이 1 상승했습니다.」
「체력이 1 상승했습니다.」
「마력이 1 상승했습니다.」
마력도 기감도 사용하지 못하는 적들을 쓰러뜨리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스킬로 기척을 가리고 다가가서 배후에서 검격을 날리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예상외로 마지막에는 기척을 알아차리는 특이한 노인도 있었지만…….
‘뭐, 결국에는 그 사람도 기척을 우연히 알아챈 거 같았지.’
그마저도 결국에는 크게 행동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확실히 이런 건 취향이 아니야.’
특수 과제나 일시적 능력치 상승을 노리고 다른 경쟁자를 전부 죽였다지만…….
이 과정에서 때때로 죄 없는 자들을 죽이는 것이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천무고에 들어온 시점부터 재현되었다고는 한들 저들은 서로 싸울 의사가 있었다.
그래서 망설이지는 않고 적들을 몰살할 수 있었다.
「스킬 ‘순간 가속(B)’의 숙련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스킬 ‘순간 가속(B)’의 등급이 한 단계 상승합니다.」
「스킬 ‘바람의 은총(A)’의 숙련도가 100%에 도달했습…….」
「스킬 ‘바람의 은총(A)’의 등급이 한 단계 상승합…….」
「스킬 ‘육감(B)’의 숙련도가 100%에 도달했…….」
「스킬 ‘육감(B)’의 등급이 한 단계 상…….」
오랜만에 스킬들이 성장하는 것을 지켜본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
어둠에 휩싸여 있었던 방은 어느새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고.
제각각 다른 무기를 지닌 무인들은 목을 잃은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나는 시체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바닥에 흐르는 피에 혈천마검을 적셨다.
「진(眞) 혈천마검(A)의 전용 효과 ‘혈식(血食)’이 활성화됩니다.」
「피를 흡수하여 아이템의 등급이 A급(4,800/4,800)으로 성장합니다.」
「등급 수치가 성장 가능 지점에 도달하여 해당 아이템이 A급에서 A+급으로 성장합니다.」
어느새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던 핏물을 전부 들이킨 혈천마검은 요사스럽게 빛났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자니, 혈천마검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흐흐흐. 기분 좋군. 이렇게 많은 피를 마실 수 있을 줄이야. 참으로 좋구나.
담천우는 포만감에 젖은 것처럼 말했다.
“그것 참 잘됐네요.”
그에 나는 혈천마검을 허리춤에 매달며 대충 대답했다.
사실, 그가 포만감을 느끼든지 말든지 상관은 없었다.
‘진짜로 중요한 건 담천우가 얼마나 유능해졌는가이지.’
그때였다.
―……너도 참 한결같군. 본좌를 쓸 만한 도구 정도로 보는구나. 이럴 때는 참 동향 같단 말이지.
마치 속내를 읽은 것 같은 담천우의 말에 나는 흠칫했다.
―참나, 이럴 때나 파악 능력이 올라가기는……. 이것도 대단하다면 대단하구나.
“……마음을 읽은 겁니까?”
―그렇다. 그 불경스럽기 짝이 없는 사고를 읽었느니라. 본좌를 숭배하라고는 하지 않겠다만, 조금은 존경심을 가지는 것이 좋을 터다.
나는 잠시 검을 바라보다 이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심층 의식에 있는 생각은 읽지 못하나 보네요.”
―뭐? 아니, 그걸 어찌 벌써 알았…….
“방금 제 생각을 하나도 못 읽으셨잖습니까. 읽었으면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거 같은데.”
―……대체 이번에는 또 무슨 이상한 생각을 한 것이지?
“비밀입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이내 바닥에서 빛나는 돌로 이루어진 선을 따라서 움직였다.
“아마도 표층 의식에 나타나는 생각을 읽는 것 같은데, 등급이 오르며 할 수 있게 됐겠죠.”
―……쓸데없이 눈치만 빨라서는. 그래, 그 말대로다. 검이 주인으로 인식하는 자와의 동화율이 올라서 그런지, 이제 생각 정도는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건 상당히 좋네요.”
전투 도중에 전음을 써서 마력을 소모하지 않아도 되니 효율이 좀 더 높아졌다.
심지어 그 외에도 이점은 더 있었다.
마력 운용 기술에 대화를 도청당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든지, 긴박한 상황에서 굳이 의사를 따로 전달할 필요성이 사라졌다든지…….
여러모로 아이템으로서 유능해졌다.
―실례되는 생각이란 생각은 가리지 않고 전부 하는군.
“아이템을 아이템이라고 해야지, 그럼 뭐라고 해야 하는 겁니까.”
―…….
“이런 걸로 삐지지 좀 마십시오.”
―삐, 삐지다니? 그런 것이 아니라……!
“아니면 말고요.”
―말이라도 좀 끝까지 듣고 대답해라!
담천우가 쏟아내는 변명에 대충 대답해 주며 빛나는 선을 따라서 길을 걸어갔고.
이내 나는 빛나는 선의 끝에서 사람 한 명이 간신히 지나갈 비좁은 길을 발견했다.
그에 망설이지 않고 바로 그곳으로 들어서니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천무고(天武庫)의 암천로(暗天路)를 통과했습니다.」
「진행 자격을 만족하여 문이 개방됩니다.」
쿠구궁─!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조건 만족.」
「모든 경쟁자를 살해했음을 확인했습니다.」
「숨겨진 관문이 개방되며 진정한 후계자의 자격을 일부 갖춥니다.」
갑자기 통로의 끝에 있는 출구에 석문이 내려오며 막히더니…….
「광천로(光天路)가 개방됩니다.」
통로 중간에 찬란한 빛을 내뿜는 포탈이 생성됐다.
“……뭐지?”
원래 무림 차원에서도 이렇게 포탈이 나타나는 것이 정상인가?
―……그럴 리 있겠느냐? 저런 것은 본좌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럼 대체 뭡니까? 관문 대신에 갑자기 포탈이라니?”
―말했잖느냐. 이 천무고는 신격이 후계자를 가리기 위해서 만든 공간이라고. 그러니 특수한 장치가 존재해도 이상하지는 않지.
“…….”
―단지, 본좌가 기억하는 바로는 이러한 관문이 존재했다고는 들어본 적도 없다. 아마도 특수 조건 아래에 개방되는 관문이겠지.
담천우는 어이가 없다는 어투를 유지하면서도 설명을 멈추지 않았다.
―뭐, 네놈에게 알맞게 이해시켜 주자면, 이렇게 말해 줄 수 있겠군.
그리고 이어지는 담천우의 말에 나는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일종의 히든 스테이지라는 뜻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더니…….
‘이렇게 말하니 좀 색다르게 들리네.’
어쩐지 좋은 이변이 생긴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도 엄청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