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70
168. 루나틱 난이도 (2)
전부 지킬 수 있다는 말을 마친 순간.
내게 모여든 시선은 대부분 어이가 없다는 반응에 가까웠다.
그럴 만도 했다.
능력치는 물론이고 권능이나 스킬까지 사라진 마당에 누구를 지키겠다느니 어쩌겠다느니 말하는 것 자체가 웃긴 소리다.
물론…….
‘하지만 내게는 통용되지 않는 상식이지.’
그것은 내가 무공을 배우지 않았고 권능까지 전부 사라졌을 경우의 이야기다.
광검제의 서고에서 여러 무공을 배웠고, 더불어 권능 스킬까지 유지하고 있었다.
능력치?
‘솔직히 말해서 능력치가 4배 가까이 차이가 나도 누구든 이길 수 있어.’
팀원들을 지키고 적을 물리치기엔 지장이 없는 수준이다.
그러니 굳이 이 자리에서 신체 능력에 적응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탈력감이 있어도 감수하고 싸울 수 있으니까.
“알겠다. 진심인 것 같으니 이렇게 된 김에 신세 좀 지도록 하지.”
모두를 지키겠다는 내 말에 가장 먼저 답한 것은 김승훈이었다.
“아, 되도록 빠르게 적응할 터이니 크게 걱정하지는 말고.”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말하곤 석실 벽에 걸린 양손 망치를 꺼내서 들었다.
그걸 지켜본 캐서린 베넷이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듯 중얼거렸다.
“왜 이 팀에는 이렇게 인간적이지 않은 인간들만 있는 걸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좋아요. 당신이 얼마나 괴물 같은지는 잘 알고 있으니 저도 신세 좀 질게요.”
캐서린 베넷도 이내 이견 없이 내 말을 수긍했고, 오춘석도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 뭐……. 애초에 저는 마법사라서 지켜주셔야 하니 달라질 건 없겠네요…….”
이어서 그들은 김승훈을 따라서 석실에 배치된 무기 중 하나를 선택했다.
시작의 석실이라는 명칭이 붙은 이 장소에는 무기 외에는 고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러니 무기를 고른 후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준비는 끝난 것 같으니 이제 미궁에 들어갑시다.”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등을 돌려서 미궁 입구로 추정되는 석문에 손을 얹고 힘을 줬다.
그그그─!
석문이 천천히 열리더니 이내 꿉꿉한 공기가 뺨을 스치듯 흘러들어왔지만…….
그에 시답잖은 감상을 가지는 대신에 바로 석실 외부로 나서며 주위를 슬쩍 살펴봤다.
빛나는 돌들이 곳곳에 배치된 신비스러운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주위를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둡진 않아서 다행이네.’
그 덕분에 어둠에 적응하는 귀찮음은 덜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친절한 모양새를 갖춘 미궁에 의외라고 생각하는 것도 잠시였다.
「거목 미궁 1층, [시작의 미로]에 입장했습니다.」
「거목 미궁에 숨어든 변이된 마물들이 서식하는 미로입니다.」
「세계수에 깃든 활력을 빨아먹는 잡것들이 도전자에게 적개심을 품습니다.」
「고난을 넘어서 숨겨진 열쇠를 찾으십시오.」
「그리고 미로 끝에 있는 문을 개방하여 아래층으로 내려가십시오.」
왜인지 모르게 익숙하지만, 동시에 이질적인 메시지가 떠올랐다.
“…….”
비슷하다.
탑이 시련에 진입할 때마다 띄워 주는 메시지에 가까운 형태였다.
하지만 시련에 부여되는 남은 시간도 없고 시련을 끝냈을 시의 보상도 명시되지 않았다.
‘탑에 가까우면서도 탑처럼 보상을 주는 곳은 아니라는 거지.’
이제야 좀 이곳에 대해서 알 것 같았다.
보상 없는 탑에 가까운 것이 바로 거목 미궁이다.
하지만…….
‘보상이 없으면 내가 알아서 챙기면 되는 법이지.’
그래도 보상을 아예 챙길 길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르륵─!
「[변이된 블랙 고블린]이 4마리 출현했습니다.」
네크로맨시가 있는 한, 얼마든지 보상을 흡수할 수 있으니까.
‘이게 바로 초심자의 행운인가?’
그리고…….
‘시작부터 능력치를 올릴 수 있겠어.’
운 좋게도 마침 보상이 될 제물이 나타났다.
***
캐서린 베넷은 한성윤에 대해서 제법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럴 만도 했다.
그녀는 직접 한성윤과도 결투한 전적도 있었고, 더불어 동료로 같이 싸워 본 경험도 있었다.
아마도 캐서린 베넷만큼 한성윤을 잘 아는 이도 적을 것이다.
왜인지 모르게 나사가 조금 풀린 것 같은 사고관, 어이없을 정도로 강력한 능력들, 끈질기게 성장에 집착하는 성정까지…….
‘아무리 능력치가 낮아졌어도 저 인간은 괴물처럼 강하겠지.’
한성윤이 일반적인 도전자와는 다르다는 것쯤은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저런 것들을 상대하는 건 무리야……!’
그런 그녀조차도 이 상황에서는 침음을 흘리는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 저런 게 1층에 들어서자마자 나타나는 거야……?”
고블린(Goblin).
본래는 제일 수준이 낮은 등급으로 분류되는 괴수이지만…….
이 거목 미궁에서 서식하는 고블린은 도저히 최하급이라고 부를 수 없는 수준이었다.
기본적인 고블린의 신장에 두 배 정도는 되는 체급에 근육질에 가까운 육체까지…….
비쩍 마른 평범한 고블린과는 아예 격이 다르다.
심지어 이 괴물 같은 고블린은 4마리나 있었다.
‘도저히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캐서린 베넷은 냉정하게 힘을 합쳐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 자리에 있는 4명이 전부 전력을 다해도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
권능도 스킬도 없는 상태에서는 이것이 상식적인 결론이다.
그래서 한성윤 또한 바로 달려들지는 않고 잠시 고민을 거칠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탓!
캐서린 베넷이 말릴 틈도 없이 한성윤은 바로 바닥을 박찼다.
아주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경쾌한 움직임에 그녀는 경악했다.
‘미쳤어, 정말로……! 대체 무슨 생각으로 무리하는 거야……!?’
서로 힘을 합쳐도 이길 수 있을지 어떨지도 모르는 적들에게 무턱대고 돌진하다니?
솔직히 말해서 자살 기도자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데…….
“어?”
이상할 정도로 달리는 속도가 빨랐다.
「권능 스킬 ‘바람의 은총’이 활성화됩니다.」
「모든 속도가 40% 상승합니다.」
「현재 스킬 중첩 진행도 – [4]」
도저히 스킬이 없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속도에 캐서린 베넷은 당황했다.
그것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저게 10 정도 되는 민첩으로 낼 수 있는 속도라고……?”
김승훈마저도 눈을 찌푸리며 의문을 드러냈고.
“뭔 저런 말도 안 되는 속도가……! 설마 이 짧은 사이에 스킬을 복구했다고……?”
오춘석은 말도 되지 않는 걸 봤다는 듯 질겁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키에엑……!!”
부우웅……!
고블린 하나가 한성윤에게 달려들며 몽둥이를 내리찍듯 휘둘렀고.
이내 한성윤은 검으로 이전보다도 말이 안 되는 기예를 선보였다.
카가각……!
검이 뱀처럼 몽둥이를 타고서 흐른다.
마치 기름칠이라도 해 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칼날이 몽둥이를 타고서 오른다.
그리고…….
“저건 대체……?”
촤아악!
「치명타!」
「변이된 고블린이 HP를 전부 소모하여 세계수의 양분으로 치환됩니다.」
케이크를 자르듯 손쉽게 변이된 고블린의 목이 베어지더니…….
이내 고블린은 몸이 무너지는 동시에 빛의 입자로 바뀌어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사라졌다.
“키아악─!”
그에 분개한 또 다른 변이된 고블린이 한성윤에게 달려들었지만…….
서걱─!
「치명타!」
「변이된 고블린이 HP를 전부 소모하여 세계수의 양분으로 치환됩니다.」
새롭게 달려든 고블린마저도 맥없이 머리가 반으로 쪼개져 죽었다.
“…….”
그에 캐서린 베넷은 멍하니 한성윤을 바라보았다.
대체 무엇이 어떻게 됐는지 알 틈도 없었다.
검이 휙휙 미끄러지듯 움직이더니 갑자기 고블린이 둘이나 죽었다.
그것이 캐서린 베넷이 본 모든 것이었다.
실로 압도적이기 짝이 없는 광경이지만…….
“대충 이런 식으로 시스템이 굴러가는 건가?”
정작 엄청난 기예를 보여 준 한성윤은 감흥도 없다는 말투였다.
오히려 전투보다는 그의 시야에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에 더 흥미를 보이고 있었다.
“키, 키에엑…….”
그제야 변이된 고블린들은 무엇이 이상하다는 걸 알아챘는지 주춤거리며 물러서려 했지만…….
「권능 스킬 ‘바람의 은총’이 활성화됩니다.」
「모든 속도가 80% 상승합니다.」
「현재 스킬 중첩 진행도 – [8]」
촤아악! 콰지직!
제대로 거리를 벌리기도 전에 섬광처럼 검날이 번뜩였다.
잠깐 눈을 깜빡일 사이에 거리가 좁혀지고, 고블린들이 단숨에 정리됐다.
「치명타!」
「변이된 고블린이 HP를 전부 소모하여 세계수의 양분으로 치환됩니다.」
「치명타!」
「변이된 고블린이 HP를 전부 소모하여 세계수의 양분으로 치환됩…….」
그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캐서린 베넷은 몸을 부르르 떨면서 중얼거렸다.
“저 인간 진짜로 같은 종족이 아닐 수도 있어…….”
그것은 경외심에 물든 목소리에 가까웠다.
***
거목 미궁 내부에서의 전투 자체는 싱겁게 끝났다.
마력까지 운용할 것도 없이 검술로 승부를 보니 아주 쉽게 마물들이 목을 내어준 것이다.
‘애초에 권능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데 고블린 같은 게 적수가 될 리도 없지.’
뭐, 신성 으로 신성력 및 권능 스킬을 유지한 것 자체가 사기적이라지만…….
이쯤 되니 아주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긴장감이 휙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래도 방심하지는 않겠지만.’
이내 감상을 정리한 나는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사령들을 전부 흡수했다.
「변이된 고블린의 사령을 흡수했습니다.」
「숙련도가 18.4% 상승합니다.」
「변이된 고블린의 사령을 흡수했습…….」
「숙련도가 17.8% 상승합…….」
「변이된 고블린의 사령을 흡수했…….」
「숙련도가 13.4% 상승…….」
「변이된 고블린의 사령을 흡…….」
「숙련도가 19.2% 상…….」
사체들은 빛의 입자로 환원됐음에도 사령만큼은 남아있었다.
‘세계수의 양분으로 치환됐다고 했었나?’
아마도 도전자 또한 저렇게 죽은 고블린처럼 빛의 입자로 사라지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진짜로 죽은 고블린과는 다르게 HP를 전부 소모하면 미궁에서 퇴출되는 식이겠지만.
「보유한 사령을 전부 사용하여 영구적으로 능력치를 상승시킵니다.」
「근력이 9 상승했습니다.」
「민첩이 6 상승했습니다.」
「체력이 9 상승했습니다.」
「마력이 4 상승했습니다.」
「내구가 8 상승했습니다.」
사령들을 전부 흡수하자 몸에 활력이 솟구치는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 능력치가 오르는 게 확실하게 체감되는 것도 오랜만이네.’
전신을 장악하는 성장의 쾌감을 즐기는 것도 잠시에 불과했다.
“다음부터는, 저희도 이제 전투에 참여할게요.”
어느새 다가온 캐서린 베넷이 그렇게 말했고 이내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그녀에게 질문했다.
“벌써 현재 능력치에 적응한 겁니까?”
“아니, 그건 아니지만…….”
“그런데 왜 굳이 이렇게 급하게 전투에 참여하는 겁니까.”
“그건…….”
캐서린 베넷은 잠시 말꼬리를 흐리더니 얼굴을 붉히며 말을 이어갔다.
“이, 이래서야 미궁을 공략하는 내내 당신한테 도움만 받을 것 같아서요…….”
반드시 제 역할을 완수해내고 말겠다는 것 같은 얼굴에 헛웃음이 지어졌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좀 기특하네.’
굳이 이렇게 맞춰 줄 필요는 없는데 전투에 바로 합류하겠다니 귀여움까지 느껴질 지경이었다.
“동감이다. 이대로 가다간 쓸모없이 짐만 지울 뿐이니, 익숙지 않아도 전투에 참여해야지.”
“저도 성훈 형님이랑 같은 입장입니다. 이렇게까지 날로 먹는 건 그다지 성미에 맞지 않아서요.”
이어서 김승훈과 오춘석도 전투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했고 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앞장서서 미로를 걷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서 네크로맨시로 성장하려면 굳이 팀원이 나서서 좋을 건 없겠지만…….
‘그래도 팀원도 성장은 해야 하니까.’
어차피 팀원도 아예 버리고 갈 수는 없는 존재이니 감수할 가치는 있었다.
뭐, 네크로맨시로 능력치를 올리는 것에 크게 집착할 이유가 줄어든 것도 한몫했다.
이제 능력치 차이는 실력 차이로 찍어 누를 수 있을 정도가 됐으니…….
솔직히 능력치 정도야 최저 요구 수준만 맞춰도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어차피 계층을 내려갈 때마다 되찾는 스킬이지.’
1층 보상으로 되찾을 스킬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미로에 빠져들고 있었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괴수는 아직까지 없었지만, 지리 감각이 조금 꼬이는 것 같았다.
‘확실히 길이 어렵네.’
길 자체가 단순하지 않고 구불구불한 것이 어째서 [시작의 미로]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모를 느낌이라 해야 하나?
하지만 그렇게 길을 헤매는 것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미로에 숨겨진 방을 발견했습니다.」
미로 중간에 존재하는 웬 검은 문을 발견한 것이다.
“숨겨진 방이라…….”
그러고 보니 미로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열쇠가 있어야 한다고 시스템이 알려준 게 생각났다.
이곳에 미로를 통과할 수 있는 열쇠가 있는 것일까?
확신하긴 힘들지만…….
‘가능성은 충분히 있겠지.’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는 생각에 나는 바로 검은 문을 열어젖혔다.
그런데…….
“이건 또 뭐지……?”
문을 열자 나타난 것은 생각하지도 못한 것이었다.
「숨겨진 신의 제단을 발견했습니다.」
제단(祭壇).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의식을 치를 수 있는 장소.
이곳은…….
「소질이 있는 도전자는 어둠의 신에게 은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도전자가 신에게 힘을 받을 수 있는 장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