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71
169. 루나틱 난이도 (3)
시야를 가리듯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를 바라보며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소질이 있는 도전자는 어둠의 신에게 은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장소가 존재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대체 무슨 목적이지?’
신의 은총이라니…….
심지어 그것도 탑에 종속된 신이 아니라 외부 신격이 가진 힘을 받는 것이다.
탑이 주최한 이벤트치고는 어이없을 정도로 의심스러운 구석들이 많았다.
물론 도전자에게 신의 은총을 내려 준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신성이 있는 도전자와 그렇지 않은 도전자는 천지 차이니까.
‘아마도 탑은 거목 미궁으로 도전자에게 신성을 얻을 자격을 주려고 한 것 같은데…….’
추측하건대 이 제단은 후보에 속하지 않은 도전자에게도 기회를 주려고 존재할 터이다.
하지만…….
‘이래서는 도전자가 탑의 외부에 있는 신이랑 긴밀한 관계를 맺을 텐데?’
도전자에게 기회를 주는 방식이 왜 탑의 외부에 있는 신격에 관련됐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답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이 거목 미궁 자체를 탑의 외부에 있는 신격들에게 크게 간섭당했든지…….
그것도 아니면 탑이 의도적으로 신격들에게 거목 미궁에 제단을 설치하는 걸 허락했을 것이다.
‘전자보다는 후자가 정답에 가깝겠지.’
그러나 탑은 신격마저도 쉽사리 건드릴 수 없는 강대한 존재이다.
신격들에게 간섭당했다는 것은 정답으로 채택하기 힘들었다.
그러므로.
후자의 추론인 탑이 의도적으로 신격들에게 제단을 설치하게 놔뒀다는 게 옳을 터이지.
하지만 탑이 왜 신격에게 제단을 설치하는 걸 허용했는지 알 수 없었다.
서로 모종의 거래라도 한 것일까?
“…….”
입을 다물은 채로 열심히 생각을 이어 가는 것도 잠시였다.
“이거 아무리 봐도 히든 피스 같은데요……?”
문득 캐서린 베넷이 꺼낸 말에 나는 생각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그렇겠죠. 시스템 메시지로도 숨겨진 신의 제단이라고 했으니까요.”
……어차피 탑이 왜 제단을 설치하게 해 뒀는지 같은 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나중에 알아도 상관이 없을 사실이다.
‘하지만 제단을 이용해서 얻을 이득은 중요하지.’
우선은 이 제단을 통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부터 알아보는 게 급선무였다.
실제로 오춘석도 왜 이런 게 있는지를 생각하기보다는 재빨리 사용 조건부터 파악했다.
“아마도 이 제단은 일정 조건을 충족한 도전자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는 제단 근처를 둘러보며 중얼거리듯 말을 이어갔다.
“소질이 대체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신의 마음에 드는 자, 같은 느낌이 드네요.”
그 말을 들은 나는 내심 조금이나마 감탄했다.
‘그럴듯하네.’
아마도 오춘석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을 것이다.
신격이라는 이들은 대부분 신도에게서 질 좋은 신앙을 받기를 원하게 되어 있으므로.
어둠의 신에게 신앙을 바치기 좋은 조건을 가진 이들이 이 제단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좋으니 우선은 이 제단을 사용할 수 있는지나 알고 싶군.”
김승훈은 심드렁하게 반응하고는 이내 제단 중앙에 있는 석판에 다가섰다.
“대놓고 석판이 중앙에 있으니, 아마도 이걸로 은총을 받을 수 있을지 어떨지를 알 수 있겠지.”
“아, 예……. 아마도 승훈 형님 말처럼 석판을 건드리면 제단이 작동하겠죠. 그렇지만…….”
“횟수 제한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로군.”
“그렇습니다.”
그 말에 캐서린 베넷이 눈빛을 반짝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그럼 제가 제일 먼저 해봐도 괜찮을까요……?”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도 은총에 관해서 관심이 있는 모양새.
굳이 김승훈이나 나는 은총을 받든 받지 않든 상관이 없었고 오춘석도 은총 자체에 크게 흥미가 있는 거 같지는 않았다.
“흠흠! 다들 이견이 없으시다니, 제가 제일 먼저 은총을 받을게요!”
그러므로 자연스레 캐서린 베넷에게 순서가 넘어갔고…….
「도전자 ‘캐서린 베넷’이 어둠의 신에게 은총을 받을 것을 택했습니다.」
이내 그녀가 석판에 손을 올리자 그런 메시지가 떠오르며 석판에서 검은 기운이 흘러넘쳤다.
「도전자 ‘캐서린 베넷’이 어둠의 신에게 선택받았으므로 은총이 부여됩니다.」
캐서린 베넷이 은총을 받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와, 와! 돼, 됐어요! 제가 은총을 받아 냈어요!”
“잘됐네요. 무슨 은총을 받았는지 알려주시죠.”
캐서린 베넷은 기쁨에 찬 얼굴로 호들갑을 떨더니 이내 받은 은총을 설명했다.
“은신의 장막이라는 은총인데……. [MP]라는 걸 사용해서 몸을 숨길 수 있는 능력이네요. 어, 그리고…….”
“그리고?”
“……어둠의 신에게 받은 은총은 탑을 나가도 사라지지 않는다네요? 더불어 예비 사도 자격까지 획득했다나? 아무튼, 그렇다네요.”
“…….”
예비 사도 자격.
그 말을 들은 나는 이어서 떠오르는 메시지에 눈을 찌푸렸다.
「어둠의 신이 당신을 바라보며 배시시 웃습니다.」
‘이건 또 무슨 수작질이지?’
내게 호의적이라지만 의도를 알기가 힘든 신이 갑자기 동료를 예비 사도로 지정했다.
물론 정확하게는 예비 사도가 된 게 아니라 자격을 얻은 것이라지만…….
그래도 어둠의 신이 목적을 가지고 캐서린 베넷에게 예비 사도 자격을 준 것은 틀림없었다.
「어둠의 신이 재회가 멀지 않았다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합니다.」
이 메시지를 보니 더더욱 그러했다.
‘재회가 멀지 않았다, 라…….’
그게 무슨 말인지 고민하기도 전에 또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숨겨진 신의 제단이 소질 있는 자가 더는 없음을 확인했습니다.」
마치 이제 볼일은 전부 봤으니 축객령을 내리는 거 같은 글귀였지만…….
「숨겨진 신의 제단이 봉쇄됩니다.」
뭐, 저쪽에서 은총을 이제 주기가 싫다는데 이쪽에서 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제 얻을 건 전부 얻은 거 같으니…….”
나는 조용히 의지를 불태우며 말을 이었다.
“1층 시련을 끝냅시다.”
최대한 빠르게 힘을 되찾을 생각이었다.
***
어둠의 신이 내게 악의적이지 않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녀는 오히려 내게 사도화까지 허락해 주며 전투의 신을 무찌르게 해 줬던 호신(好神)이므로.
하지만 숨겨진 신의 제단을 통해서 예비 사도 자격을 줄 수 있는 다른 신도 그럴 것인가?
‘그렇지 않겠지.’
당장 떠오르는 전투의 신처럼 내게 악의적인 신은 확실하게 존재할 것이다.
이건 의심 같은 게 아니라 확신에 가까웠다.
1층 [시작의 미로]에는 다른 도전자가 없는 것 같지만…….
그 이후로 나타날 2층 그리고 3층 같은 장소에도 도전자가 없을까?
아니다.
오히려 탑은 다른 차원 간의 경쟁이 될 수 있다고까지 공지했다.
즉,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점점 나는 위험에 처할 확률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솔직히…….
‘조금은 재밌네.’
온몸에 긴장감과 생기가 감돌았다.
이 미궁에서 닥쳐올 온갖 위기를 넘긴 후에는 얼마나 강해질 것인가?
그 즐거운 궁금증을 곱씹으며 미로를 나아가니 어느새 1층 돌파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네크로맨시의 숙련도를 올릴 수 있는 마물은 쉽게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철컥! 쐐액! 카앙!
어느새 미로에는 수많은 함정이 살아 있는 듯 꿈틀거리며 존재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갑자기 천장에서 떨어지는 쇳덩이, 미로의 벽에서 사출되는 화살, 사신의 낫처럼 느껴지는 발목을 훑으려는 칼날까지…….
도저히 이 능력치로는 지나갈 수 없는 장치들이 즐비했다.
“이건 못 지나가겠군. 현재 능력치로는 이곳을 지나가는 건 자살에 가깝다.”
쿵.
김승훈은 전투 망치를 땅에 소리 나게 내려놓고는 그렇게 툴툴거렸고.
“뭐, 그거야 그렇겠죠. 이거 마법적 장치로 구성된 거 같은데, 아마도 어딘가에 해제 장치가 존재하지 않을까 합니다.”
오춘석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흥미로운 사실까지 알려줬다.
아, 물론 크게 집중해서 듣지는 않았다.
어차피 쓸모도 없을 정보니까.
나는 검을 허리춤에 다시 매단 채 가볍게 몸을 풀었다.
아무래도 이 능력치에서는 나도 조금은 각오해야 할 것 같았으므로.
“당신 또 이상한 생각하는 거 아니죠……?”
그걸 본 캐서린 베넷이 왜인지 모르게 살짝 굳은 얼굴로 그리 물었지만…….
“척 보기에도 이 너머에 뭔가가 있을 거 같잖습니까.”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말하며 자세를 다잡았다.
“뭐, 뭔가가 있을 거 같다는 거에는 동의하지만, 함정 해제 장치를 먼저 찾아야 하…….”
“되도록 빠르게 돌아오겠습니다. 아, 그리고 열쇠도 발견하면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십중팔구 이렇게나 공을 들인 함정 너머에는 중요한 아이템이 있기 마련이다.
“이 인간이 또 무슨 미친 짓을……! 당신 그러다 진짜로 죽는다니까요……!?”
물론 캐서린 베넷은 이것까지는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나를 말렸으나 귀담아듣지는 않았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바로 권능 스킬을 발동했다.
「권능 스킬 ‘바람의 은총’이 활성화됩니다.」
「모든 속도가 100% 상승합니다.」
「현재 스킬 중첩 진행도 – [10]」
그리고…….
‘신성력이 엄청 빠르게 사라지네.’
심장에 축적된 신성이 활활 타오르는 양초처럼 빠르게 녹아서 사라진다.
하지만 그만큼 권능 스킬 효과 또한 확실하게 올라갔다.
후우웅!
귓가를 거칠게 때리는 공기를 가르는 소리에도 나는 정신을 또렷하게 집중했다.
아무래도 능력치가 초기화되다시피 낮아진 터라서 동체 시력도 그만큼 수준이 떨어졌다.
기본 동체 시력의 모자람을 죽음을 목전에 뒀다는 위기감으로 극한까지 올릴 필요가 있었다.
실제로…….
함정 더미에 직접 달려가니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찌릿한 감각이 함정들을 인지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함정이 많으니 최소한으로 몸을 움직일 필요가 있어.’
휘이익!
살짝 무릎을 굽히고 머리를 좌측으로 움직여 정면에서 날아온 두 개의 화살을 흘리고.
‘바닥에서 솟구치는 창살들은 서로 간격이 있으니 굳이 그 자리를 피하지 않아도 돼.’
파바밧!
갑자기 바닥에 뚫린 구멍에서 솟구치는 창살들을 틈새 사이로 움직여 피했다.
‘어차피 천장에서 떨어지는 함정들은 속도를 못 쫓아올 정도로 가속하면 문제가 없지.’
쿠쿠쿵!
더불어 천장에서 떨어지는 돌덩이나 쇳덩이는 떨어지는 것보다도 빠르게 움직여 무시했다.
그 과정을 몇 번 반복하고 나니 메시지가 나타났다.
「미궁 업적 ‘불가능을 가능으로(Unique)’를 달성했습니다.」
「미궁 점수 +15점을 획득합니다.」
「스킬 ‘전투 집중(C+)’이 생성됩니다.」
아무래도 탑의 업적과는 다르게 미궁에서 쓸 수 있는 스킬을 제공해 주는 것 같은데…….
「스킬 ‘전투 집중’이 활성화됩니다.」
「사용자의 집중력이 두 배 상승합니다.」
그 덕분에 부족한 동체 시력이 보충되어 금세 함정의 길을 꿰뚫을 수 있었고…….
쾅!
이내 함정의 길 끝에 자리한 보랏빛 석문을 발로 걷어차듯 열어젖히니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거목 미궁 1층, [시작의 미로] 보스룸에 입장했습니다.」
보랏빛 옥좌에 더러운 왕관을 쓴 애꾸눈을 가진 고블린이 앉아있었다.
콰츠즙!
놈은 옥좌에 앉은 채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검은 고깃덩어리를 허겁지겁 먹고 있었다.
심지어는 뼈조차도 그대로 버리지 않고 씹어 먹는 꼴이 상당히 기괴했다.
「1층 내에 있는 변이된 마물들을 먹어 치운 타락한 고블린 킹입니다.」
「타락한 고블린 킹은 거목 미궁 내부로 숨어들었지만, 심층부로는 내려가지 못했습니다.」
「그 탓에 거목 미궁이 가진 양분을 흡수하지 못했고, 동족상잔으로 세계수가 가진 힘을 혼자서 독차지했습니다.」
그다지 궁금하지 않은 스테이지 설명은 대충 눈으로 훑고 넘겼다.
「타락한 고블린 킹을 해치우고 아래층으로 내려갈 수 있는 열쇠를 획득하십시오.」
어차피 중요한 것은 하나니까.
“크르르…….”
어느새 씹던 고기를 근처에 내동댕이친 고블린 킹이 하나만 남은 눈으로 나를 째려보았다.
“운이 좋네.”
그리고…….
“설마 이런 걸 혼자서 해치울 수 있을 줄이야.”
나는 싱긋 웃음을 지으며 곧장 고블린 킹에게 달려들었다.
***
전투는 빠르게 끝났다.
타락한 고블린 킹이니 어쩌느니 시스템이 지껄였지만…….
결국에는 신체 능력을 제외하면 특출난 것도 없는 괴수였다.
「타락한 고블린 킹의 사령을 흡수했습니다.」
「숙련도가 37.9% 상승합니다.」
「고유 특성 ‘네크로맨시’의 숙련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고유 특성 ‘네크로맨시’의 등급이 한 단계 상승합니다.」
“최상급 난이도치고는 맥없을 정도로 보스가 약한데.”
나는 장검에 묻은 피를 탈탈 털어 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미궁 업적 ‘전투의 예술(Rare)’을 달성했습니다.」
「미궁 점수 +4점을 획득합니다.」
「미궁 업적 ‘광기의 검술(Rare)’을 달성했습…….」
「미궁 점수 +4점을 획득합…….」
「미궁 업적 ‘동료를 기다려주지 않는(Rare)’를 달…….」
「미궁 점수 +4점을 획…….」
전투를 끝내자마자 떠오르는 메시지의 세례에 눈을 찌푸렸다.
“시끄럽네.”
바로 미궁 업적 메시지를 시야의 구석으로 치워버리고 나니 한숨이 나왔다.
“미궁 업적이니 어쩌느니 한 주제에 쓸데없는 점수나 주기는.”
이전에 전투 집중 스킬을 준 업적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쓸모없는 업적들이 많았다.
‘차라리 업적 보상으로 스킬이나 줬으면 좋았을 거 같은데.’
미궁 점수라는 알 수 없는 숫자들을 늘려 줘 봤자 기쁘지도 않았기에 나는 해야 할 것을 했다.
「미로 탈출 열쇠(Common)를 획득했습니다.」
「미로 끝에 도달할 시, 자동으로 사용됩니다.」
옥좌의 손잡이 위에 있는 검은 열쇠를 손에 쥐자 시스템 메시지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제 1층 시련도 끝이네.’
어쩐지 마물보다는 함정이 많은 계층 같지만, 스테이지 배경을 알고 나니 이해는 됐다.
타락한 고블린 킹이 자꾸 동족을 먹어댄 탓에 이제 남은 고블린이 거의 없는 것이다.
처음에 놈을 봤을 때도 고블린으로 추정되는 고깃덩이를 먹고 있었으니, 스테이지 배경에 충실한 것으로 볼 수 있었다.
‘초반에 나타난 고블린조차도 희귀한 것이나 다름없는 거겠지.’
뭐, 어쨌거나 네크로맨시도 이제 등급이 올라서 스킬도 흡수할 수 있게 됐으니 아쉬움은 없었다.
「타락한 고블린 킹의 사령을 흡수하여 영구적으로 능력치를 상승시킵니다.」
「근력이 6 상승했습니다.」
「민첩이 5 상승했습니다.」
「체력이 7 상승했습니다.」
「마력이 5 상승했습니다.」
「내구가 7 상승했습니다.」
이전보다는 조금 적을지언정 능력치는 적잖을 정도로 올랐다.
그리고.
「타락한 고블린 킹이 보유하고 있던 스킬 중 한 가지를 흡수합니다.」
이내 스킬 흡수 메시지까지 떠오르며 보상이 늘어났다.
「스킬 ‘일격 집중(D+)’을 습득했습니다.」
스킬 성능을 살펴보니 마력을 소모하여 다음 일격을 강화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더불어 스킬 사용 후의 일격은 기술의 완성도 또한 상승한다는 사실도 말이다.
‘나쁘지 않은 스킬이네.’
뭐, 굳이 공격을 강화해야 할 정도로 딜링에 부족함을 느끼는 건 아니지만…….
이 미궁 내에서 언젠가는 필요성을 느낄지도 모르므로 있어서 안 좋을 건 없었다.
그에 만족하고 있자니 보스룸 입구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화려하게도 저질러 놨군.”
어느새 함정을 전부 해제했는지 팀원들이 모여 있었다.
“사실 이 정도면 능력치고 뭐고 대부분 초기화가 안 된 거 아닌가……?”
김승훈은 나를 힐끗 보더니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그렇게 말했다.
“그렇진 않습니다. 저도 능력치는 다 초기화됐습니다.”
권능 스킬을 유지하고 있는 시점에서 전부 초기화됐다고는 볼 수 없겠으나 능력치는 전부 초기화되었다.
물론 그것마저도 네크로맨시로 이제는 제법 능력치를 올려뒀지만 말이다.
“……그래, 당신을 걱정한 내가 멍청했네요. 세상에서 당신을 걱정하는 것보다 쓸모없는 걱정은 없을 거예요.”
캐서린 베넷은 이제는 걱정도 되지 않는다는 거 같은 공허한 목소리였다.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성윤 씨는 전부 알아서 한다고 했잖아요. 함정을 전부 피할 때부터 알아보셨어야죠.”
오춘석은 이제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캐서린 베넷의 말을 받아치곤 피식 웃었다.
“…….”
새삼 이렇게 이목이 쏠리니 귀찮음이 느껴졌기에 바로 화제를 전환했다.
“……뭐, 아무튼 일은 잘 풀렸으니 된 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마침 이런 것도 얻었고요.”
“그거 설마……!?”
“생각하시는 물건이 맞을 겁니다.”
“허어……. 성윤 씨는 이쯤 되면 만능처럼 느껴질 정도네요…….”
나는 오춘석의 얼떨떨한 목소리를 들으며 작게 웃음을 지었다.
“1층을 벗어날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제 미궁을 내려갈 시간이다.
***
의외로 미로 탐색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1층 주요 이벤트 자체가 타락한 고블린 킹을 쓰러뜨리는 것이기 때문일까?
함정 장치 해제 루트 같은 건 찾기가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미로 출구를 찾는 건 금세였다.
철컥─!
「거목 미궁 1층, [시작의 미로] 끝에 도달하여 [미로 탈출 열쇠]가 사용됩니다.」
미로 끝에 다다를 시, 자동으로 사용된다더니…….
진짜로 손에 쥔 검은 열쇠가 빛의 입자가 되어서 사라지고 바로 석문이 열렸다.
「거목 미궁 1층, [시작의 미로]를 내려갈 자격을 얻었으므로 보상이 주어집니다.」
「[아이템 · 권능 · 스킬] 중 한 가지를 선택하여 능력을 하나 복구할 수 있습니다.」
“능력 복구……. 하아, 진짜로, 이게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드디어 스킬을 되찾을 수 있겠군. 조금은 답답함이 사라지겠어.”
“승훈 형님은 그렇겠죠. 으으. 저는 스킬 간 연계가 안 되면 마법도 제대로 못 쓸 겁니다.”
더불어 능력까지 되찾을 수 있게 되자 팀원들은 전부 능력 복구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럴 만도 했다.
‘다음 층에서도 이렇게 전투 없이 지나갈 수는 없을 테니 되찾을 능력이 중요하겠지.’
그리고 팀원으로서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도 능력 복구에 마음을 쏟게 했을 터다.
어차피 팀원들이 얼마나 강해지든 간에 상관은 크게 없겠지만…….
도전자 간의 경쟁이 시작될 때까지는 그래도 어느 정도는 능력을 갖춰 주길 염원했다.
그렇게 동료가 강해지길 비는 것도 잠시였다.
‘이제 나도 보상을 택해야지.’
이내 시스템 메시지에 적힌 선택지 중 하나를 눌렀고…….
「[아이템 · 권능 · 스킬] 중 [권능] 선택했습니다.」
「봉인된 권능 중에서 되찾을 것을 고르십시오.」
이어서 선택창을 쭉 내려서 원하는 걸 골라서 되찾았다.
「권능 ‘혈천심공’이 봉인에서 해제됩니다.」
이걸 고른 이유는 특별할 것 없었다.
‘이게 제일 가성비가 좋으니까.’
혈천심공으로 마력 회로를 조금이나마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혈마신공에 연계하여 선혈의 구도자나 잿빛 선혈 같은 걸 대체하는 것도 필요했다.
‘선혈의 구도자나 잿빛 선혈을 되찾는 것보다는 혈천심공으로 마이너 버전 스킬을 쓰는 게 낫지.’
일석이조를 넘어서 일석삼조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가성비 좋은 권능이다.
그에 만족감을 느끼고 있자니 이내 팀원들도 전부 선택을 마쳤고…….
“그럼 이제 아래층으로 갑시다.”
나는 바로 시답잖은 대화로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에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누구보다도 빠르게 최심부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그리고.
「거목 미궁 2층, [악신의 속삭임]에 입장했습니다.」
「이곳은 거목 미궁에 들어온 같은 차원의 도전자들이 모이는 장소입니다.」
「악신은 이 도전자들에게 피로 물든 잔치를 벌일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무나 좋으니 도전자를 한 명 이상 죽여서 의식을 거쳐서 제물로 바치십시오.」
「※단, 아무런 제물도 올리지 않음으로써 악신을 기만할 시, [고대 악마]가 출현합니다.」
이어서 나타난 핏빛 안개가 흐르는 공동(空洞)에 입장하자마자 나는 눈을 빛냈다.
지구 차원 도전자들이 이 자리에 집결한다는 것 때문은 아니었다.
‘고대 악마가 출현한다고……?’
아무도 제물로 바치지 않을 시, [고대 악마]가 나타난다는 경고에 눈길이 간 것이다.
고대 악마.
뭔지는 몰라도 일견에는 매우 강할 것 같은 이름이다.
틀림없이 고대 악마의 사령은 나를 빠르게 강해지게 해 줄 터다.
그러니…….
“고대 악마는 악신을 기만해야 나타나는 건가…….”
어쩌면 이번 계층에서 상상 이상의 보상을 얻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못할 것도 없지.”
그것도 아주 좋은 보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