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43
제 143화
52장. 이그니스의 약점 – 3화
순식간에 이그니스에게서 불길이 걷혔다.
자신을 향해 환한 미소로 달려드는 비에나를 보며, 더 이상 뜨거운 불길을 뿜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불길을 거둔 이그니스의 모습은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적발에 흑안, 그리고 뽀얀 피부를 가진 전형적인 귀공자의 모습이었다.
자레드도 자신의 외모에 대해서 제법 자신감을 갖고 있긴 했지만, 이그니스도 그에 준할 만큼의 멋진 외모를 가졌다.
“도대체 이게, 이게…… 어떻게 된 거죠? 믿을 수가 없어요. 영원히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던 당신을 이렇게 만나다니요?”
“당신이 저 녀석에게 일부러 요청한 것 아니었소?”
이그니스의 손끝이 가리킨 방향에는 팔짱을 끼고, 흐뭇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자레드가 있었다.
“자, 자레드!”
한달음에 달려온 비에나가 자레드를 꼭 끌어안았다.
지금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정령왕이라기보다 한 남자를 사랑하는 여인의 모습이었다.
정령왕 특유의 무게감은 살짝 벗겨져 나갔지만, 자레드는 그녀의 인간적인 모습이 훨씬 더 보기 좋았다.
“비에나 님, 가장 보고 싶으셨을 연인의 앞으로 비에나 님을 소환했습니다. 사실은…… 조금 못된 부탁을 드릴 생각이기도 하고요.”
자레드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그니스에게 미안한 마음은 없었지만, 비에나에게는 미안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떳떳했다.
두 정령왕은 오래전부터 서로 사랑하는 연인 사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각 자신들의 세계에서 정령왕이 되면서 더 이상 만나지 못하게 됐다.
수천 년을 대대로 내려온 정령의 규율은 자유의지로 둘이 재회하는 것을 막았다.
서로의 재회 의지가 조금이라도 개입된 만남이 벌어지는 순간, 저주가 내리도록 금제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정령왕에 등극하기 위한 첫 번째 의식의 조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만남은 달랐다.
두 사람은 자레드가 원석의 힘을 발동하기 전까지 서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서로 같은 공간에 공존하고 있음에도 금제가 발동하지 않은 것이다.
“무엇인가요? 그대의 부탁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줄 수 있어요.”
비에나는 자레드의 손을 붙잡고 있으면서도 시선은 이그니스에게로 향해 있었다.
그녀의 눈짓에 일찌감치 바람 정령의 군대는 차원문 너머로 다시 돌아간 후였다.
이그니스 월드에는 자레드와 비에나, 이그니스. 이렇게 셋만이 있었다.
“제가 6클래스로 도약할 수 있는 깨달음을 얻기까지 이그니스 님의 조언이 필요합니다.”
자레드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동시에 말도 존댓말로 바꿨다.
첫 만남에서는 기세에 밀리지 않으려 반말을 썼지만, 이제는 그를 존중해 주기로 한 것이다.
순간 특유의 욱하는 성격에 불길을 내뿜으려던 이그니스가 비에나를 보고, 다시 숨을 죽였다.
“도대체 내게 어떤 조언을 원하는 것이냐?”
이그니스가 묻는 순간.
[특수 퀘스트 : 도전을 위한 모험 2/3 – 두 번째] [보상 : 6클래스 달성] [이그니스에게서 태초의 화염에 대한 조언을 구하십시오. 불에 담긴 신묘한 역사를 경청하십시오.]퀘스트 목록이 갱신됐다.
자레드가 내용에 맞게 말했다.
“태초의 화염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그걸 인간인 네놈이 왜…….”
“이그니스, 자레드 씨는 정말 마법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에요. 결코 하나를 알려 줘도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정말이오?”
성난 황소와도 같은 이그니스의 성격이 비에나의 말에 순식간에 순한 양이 되어 버렸다.
서로 떨어진 시간이 오래되기는 했어도, 영생에 가까운 삶을 사는 둘에게는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비에나가 이그니스를 잘 알 듯, 이그니스도 비에나를 잘 알았다.
그녀는 절대 마음에도 없는 칭찬은 하지 않았다.
연인인 자신에게도 싫은 점은 싫다고 얘기했고,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은 인정하지 않았다.
아울러 빈말이라든가, 듣기 좋은 칭찬을 꾸며 말한 적은 더더욱 없었다.
‘이 녀석이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것은 사실 아까 증명이 됐지.’
의도적으로 무시하려 하기는 했어도, 분명 자레드의 실력은 인정할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명분이 필요했다.
자신을 확실하게 납득시키고, 비에나의 말에 부드럽게 넘어가 줄 수 있는 명분 말이다.
“좋아. 자레드, 네가 가진 화염 마법의 힘을 내게 보여라. 나보다 더 냉정하게 관찰할 수 있는 비에나가 곁에 있으니, 눈속임 따위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이그니스가 엄포를 놨다.
그러고는 은근슬쩍 비에나의 곁으로 가서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포근하고, 따뜻했다.
항상 그리워했지만, 각자의 왕좌를 지켜야 했기에 만날 수 없었던 설움이 복받쳐 오르는 듯했다.
“이그니스, 보세요. 정말 놀라게 될 거예요.”
“단언할 수 있소?”
“그럼요. 이미 저의 가호를 힘껏 내린 분이기도 한 걸요.”
“정령왕의 가호를 말이오?”
비에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인정을 받은 마법사.
특히나 바람을 천시하기로 유명한 인간 마법사가 그녀의 인정을 받았다니, 더욱 호기심이 갔다.
이그니스가 자레드를 재촉했다.
“어서 보여라! 네 가치를 증명해야 태초의 화염에 대해 짧게나마 입이라도 털어 줄 게 아니냐?”
화르르륵!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레드가 손 위에 빠르게 수인을 맺으며, 화염 계열의 마법을 준비했다.
섹스튜플 트랜센던스 파이어 월.
6단계 강화된 파이어 월로 마력을 일거에 2만 4천이나 소모하는 어마어마한 초월 마법이었다.
화아아악!
이윽고 자레드가 불길을 자연스럽게 지면에 내려놓자, 성난 불기둥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
화염의 극의이자 그 자체로 불리는 이그니스도 타오르는 불길에 크게 놀랐다.
엄청난 위력이었다.
자레드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맹렬한 불길 위로 손가락을 튕겼다. 플레임 버스트였다.
크히야야악!
그러자 수많은 화마귀들이 불씨에서 자라나며, 사방으로 뛰쳐나갔다.
이그니스가 손을 휘저어 화마귀를 흡수하지 않았다면, 어딘가에 상처를 냈을 독한 마귀들이었다.
‘인간 중에서 뛰어난 존재들에게는 늘 신의 가호가 내린다고 말하곤 했었지. 직접 체험한 적은 없지만.’
이그니스는 자레드가 만들어 낸 불길을 보며, 옛 기억을 떠올렸다.
신을 운운할 정도의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자레드의 실력을 인정한 것이다.
옆에 있던 비에나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그니스, 어때요? 인간 마법사의 눈속임이라고 하기엔 너무 생생하고, 또한 강렬하지 않아요?”
“부정하지는 못하겠소.”
이그니스가 동의했다.
“그에게 가르침을 주세요.”
“당신의 마음을 진즉에 사로잡은 마법사라니……. 기분이 묘하군. 괜한 질투도 나고.”
“그 마음과 이 마음은 다른 거잖아요? 관심과 사랑은 전혀 다른 문제예요, 이그니스.”
부드럽게 백허그를 하는 비에나의 손길에 이그니스의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자레드에 대한 인정은 이미 하고 있었다. 단지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
하지만 이 정도면, 그의 요청에 의해 조언을 줄 자격은 충분히 갖춘 듯했다.
“자레드, 태초의 화염이 궁금하다고 했지?”
“맞습니다.”
“좋아, 한마디도 빠짐없이 들어라. 나중에 다시 말해 줄 일은 절대 없을 테니까.”
자레드가 바로 음성 증폭 마법을 걸었다. 단 한 글자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안배였다.
“태초에 이 세계에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정령은 바로 우리, 화염의 정령…….”
그렇게 이그니스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말하는 이그니스도, 함께 듣는 비에나도, 그리고 6클래스를 위한 깨달음이 필요한 자레드에게도 흥미로운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 * *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경청한 이그니스의 이야기는 정말 재밌고 알찬 내용이었다.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이그니스의 말을 통해, 나는 빠르게 6클래스의 깨달음을 얻어 갔다.
그리고 이그니스의 말이 거의 끝날 즈음.
[특수 퀘스트 – 도전을 위한 모험을 모두 완료하였습니다!] [보상으로 6클래스 달성이 이뤄집니다! 지금부터 6클래스 마법의 사용이 가능해집니다.]몸 전체에서 숨길 수 없는 붉은 섬광이 사방으로 방출됐다.
그 빛이 너무 강렬해서 나는 물론, 정면에 있던 이그니스와 비에나까지 똑똑히 볼 수 있는 변화였다.
두 사람이 깜짝 놀란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클래스가 오르면 주어지는 하나의 특전 선택권을 바로 사제지간 시스템 강화에 투자했다.
이것만큼 불로소득을 극대화하기에 최적화된 특전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른 특전들은 내가 원하거나 노력하면 충분히 챙길 수 있는 것들로 그다지 메리트가 없었다.
[사제지간 시스템의 강화를 선택하였습니다.] [현재 적용 중인 제자는 헤이즈, 이자벨, 레나, 미아, 율리안, 아르케네스, 클로이, 라키스입니다.] [강화를 진행하면, 최대 인원이 8인에서 12인으로 늘어납니다.]‘발데스, 나오미, 메리가 후보군으로 적합하지.’
제자 목록에 누구를 넣을지는 일찌감치 생각을 해 뒀다.
선전 장관으로서 거듭 성장하고 있는 발데스.
이제 나와 같은 6클래스의 백마법사이자, 동시에 디미오스 마법사단의 단장인 나오미.
그리고 조만간 요리 능력을 활짝 개화시켜 주고자 하는 메리.
이렇게 셋이었다.
한 자리는 만약을 대비해서 공석으로 두기로 했다.
한번 시스템에 제자의 이름이 등록되면 다시는 목록에서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설령 그 제자가 죽는다고 해도 마찬가지.
그래서 예전에 를 즐기던 시절, 많은 플레이어들이 이런 멘트로 제자를 구했다.
[절대로 접지 않으실 분만 구해요! 제발! 제자 되실 분 환영! 제자의 성장으로 올라가는 스탯마다 골드로 계산해서 드립니다.]‘내 제자들이 죽는 꼴은 절대 못 보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절대 안 봐.’
이것은 오래전부터 다짐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나 이상으로 제자들을 소중히 여길 것.
어쨌든 이렇게 6클래스를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그니스와 비에나 사이에 존재하는 러브 스토리와 이스터에그를 이용한 꼼수였다.
사실 나쁘게 말해서 꼼수지, 좋게 말하면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톡톡히 해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6클래스의 변화를 체감하고 마법의 목록을 훑기 시작하는 동안…….
“비에나, 정말 보고 싶었소.”
“저도요. 차원문을 그대로 둘까요? 우리의 자유의지로 연 차원문이 아니니까, 언제든 이 문으로 당신을 만나러 올 수 있어요.”
“당연히 그대로 둬야지! 그럼 문을 닫고, 예전처럼 생이별하자는 것이오? 당신을 위해, 우리가 함께할 옥좌도 만들어 뒀거늘!”
“이그니스!”
서로 껴안고, 뽀뽀하고, 키스하고, 스킨십을 진하게 하는 것이 당장에라도 ‘어른의 사정’으로 넘어갈 것 같은 조짐이 보였다.
“흠흠.”
나는 일부러 헛기침을 했다.
포티아 화산을 방문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그니스에게 좀 더 가르침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는 화염 자체이자 최고이며, 살아 있는 정수다.
그에게 화염 속성을 다루는 깨우침을 조금이라도, 단 한 마디라도 더 청해 듣고 싶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