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44
제 144화
52장. 이그니스의 약점 – 4화
의미 가득한 시간이었다.
이그니스는 비에나와 손을 꼭 맞잡은 채, 자레드에게 화염 속성에 대한 많은 얘기를 들려주었다.
바람 속성이 조화와 적응이 관건이라면, 화염 속성은 반대로 충돌과 반목이 관건이라는 가르침을 줬다.
사실 속성은 사용자와의 하모니가 중요하다고 여겼던 자레드에게 이그니스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그는 거칠게 다룰 것을 주문했고, 화염이라는 속성에 내재된 반항 기질을 적극 이용하라고 조언했다.
몇 차례의 시연도 있었다.
이그니스는 자레드의 화염 마법을 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지만, 여전히 채울 구석이 많다고 했다.
누군가에게는 기분 나쁘게 들릴 수도 있는 지적이었지만, 자레드는 오히려 기뻤다.
더 강해질 여지가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그래서 정말 이그니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렸다. 더 알려 달라고.
오늘 헤어지면 다시는 이렇게 살갑게 가르쳐 줄 일이 없을 텐데, 이왕 알려 주는 거 시원하게 밀어 달라고!
여기에는 우군도 있었다.
자레드를 신뢰하는 비에나였다.
“이그니스, 알려 주세요.”
“이그니스, 자레드 씨는 정말 미래가 기대되는 인재예요.”
“이그니스, 뭐 해요?”
그녀는 자레드가 이그니스에게 요청과 부탁을 할 때마다, 부드럽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의견을 더했다.
계속된 연습과 가르침, 적응 과정에서 자레드의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일까?
이그니스가 말을 꺼냈다.
“내가 반쪽은 남겨 두려 했다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네가 더 많은 가치를 가질 것 같구나. 네게 내가 내릴 수 있는 가호의 절반을 내려 주겠다.”
“오!”
가호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자레드가 탄성을 터뜨렸다.
한편으로는 물음표도 찍혔다.
절반이라니?
질문을 하려는 찰나, 비에나가 먼저 가려운 부분을 긁어 주었다.
“이그니스, 다른 이에게 가호를 내렸나요?”
“내렸지. 불을 제법 잘 다루는 녀석이 있었거든. 자레드와 거의 비슷했어.”
“누구인가요?”
“그건 말해 줄 수 없소. 뜻하지 않은 나비효과를 만들어 낼 수도 있으니까. 무엇보다 일방적으로 알려 주는 것은 불공평하지.”
비에나의 말에 늘 공감하고 인정했던 이그니스지만, 이번만큼은 말을 아꼈다.
비에나도 채근하지 않았다.
그가 자신의 성격과 생각을 존중하듯, 그녀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누군가가 다녀갔다……. 그리고 이그니스의 가호 절반을 얻었다. 또 다른 진 주인공 후보인가?’
자레드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그쪽 방향으로 향했다.
카이클? 나탈리?
적어도 두 사람은 아닐 듯했다.
그들은 화염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가능성이 전혀 없다.
‘대륙에 화염 마법에 정통한 마법사가 적은 것은 아니지.’
머릿속에서 여러 후보가 떠올랐다.
하지만 심증만 갈 뿐 물증이 없다. 이그니스가 말해 주지 않았으니까.
‘됐다. 지나간 일에 안타까워하지 말자.’
자레드는 바로 잡념을 털어 내고, 이그니스가 내릴 가호에 집중하기로 했다.
정령왕의 가호는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부가 아닌 절반을 받는 것이라도, 그 가치는 매우 소중했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가호이기 때문이다.
이미 비에나의 가호는 자신이 전부 받았다. 그리고 여기에 이그니스의 가호 절반을 받으면?
이제는 다른 누군가가 이그니스를 찾아와도 그의 힘을 얻을 수 없다. 기회가 끝난 것이다.
‘성마 대전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부족해. 자만하지 말자. 자만하는 순간 끝이야.’
자레드는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들뜨려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바로 그때.
[화염 계열 마법 : Ex]소리 소문 없이 화염 계열 마법의 등급 판정이 SSS에서 Ex로 바뀌었다.
마법사로서 도달할 수 있는 최고 등급에 안착한 것이다.
물론 Ex 안에서도 숙련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최소한 천장이 보이는 꼭대기에 도착한 것은 맞았다!
SSS등급의 마법 가치가 Ex등급이 되려면, 최소 5년의 수련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를 즐겼던 수많은 플레이어들의 공통된 분석이었다.
기지를 발휘한 덕에 이그니스의 마음을 얻었고, 그에게서 넉넉히 자신의 실력을 보일 수 있었다.
선순환이었다.
‘최고야. 정말 최고라고!’
화염의 정점에 다다른 자!
이제는 제법 엑스트라의 껍질을 시원하게 벗겨 냈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어서 특수 마법도 생겨났다.
비에나가 자레드에게 바람의 장벽을 전수했듯, 이그니스도 특수 마법 하나를 전달한 것이다.
[특수 마법 : 연쇄 발화] [반경 10m 내에 또 다른 불씨가 남아 있다면, 서로 연계하여 2차 폭발을 일으킵니다.불길에 노출된 인원이 많아질수록, 연쇄 발화의 강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합니다.
연쇄 발화를 위해서 한 명의 인원에 1천의 마력을 소모합니다.]
“시험해 봐라.”
자레드가 툴팁을 확인하기가 무섭게 이그니스가 손가락을 튕기며, 약 10m 간격으로 불타오르는 목각 인형 10개를 만들어 냈다.
자레드가 바로 집중했다.
전수자가 눈앞에 있을 때에 시연해 보는 것만큼 최고의 검증 기회는 없을 테니까.
‘연쇄 발화.’
자레드의 손끝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목각 인형의 중심부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화염의 불씨들을 보며, 그것을 한데 묶는 상상을 했다.
그러자 다음 순간!
퍼퍼펑! 펑! 펑! 펑!
1만의 마력이 소모되며, 10개의 목각 인형에서 일제히 불기둥이 치솟았다.
이것은 평범한 마법이라기보다 플레임 버스트와 같은 조건부 마법에 가까웠다.
무서운 것은 목각 인형 사이에서 불길을 맹렬히 주고받으며 2차, 3차 대폭발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
자레드가 잠시 할 말을 잃은 채로 서 있었다.
폭발한 각각의 화력을 놓고 보면, 8클래스의 화염 계열 폭발 마법인 익스플로전을 쏙 닮았다.
아니, 그것보다 화력은 훨씬 더 강했다.
“마음에 드냐?”
“마법사에게 마법이 주어진 것만큼 행복하지 않은 게 있을까요? 감사합니다.”
자레드가 이그니스를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인간들의 세계에서 자레드는 분명 왕이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정령과 인간의 세계는 서로 분리된 개념이니까.
그들은 자신이 노예이건 황제이건 간에 신경 쓰지 않는다.
“자레드, 부디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고 최고의 마법사가 되어 줘요. 약속할 수 있죠?”
사랑은 이그니스와 하지만.
호기심과 관심만큼은 ‘자레드 바라기’에 가까운 비에나의 말에 자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암요. 두 분의 가르침을 잊을 수는 없죠. 가호가 갖는 소중함과 특별함도 잊지 않을 겁니다.”
“뭐, 그렇게 좋아할 필요는 없다. 네가 죽으면 가호는 회수되거든.”
“이그니스! 너무 차가운 말이잖아요!”
“후후, 죽지 말라는 얘기지.”
“하하하.”
이그니스의 덕담 아닌 덕담에 자레드가 웃었다.
성격이 더럽기로 유명한 이그니스와의 만남이었지만, 어쨌든 해피엔딩이 됐다.
8클래스 마법 화력에 준하는 광역 특수 마법도 얻었고, 화염 마법의 판정도 한 단계 올랐다.
시간은 며칠밖에 쓰지 않았지만…… 몇 년의 시간을 단축한!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다.
정령왕의 원석을 사용한 것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자레드는 이그니스가 만든 옥좌에 사이좋게 앉아 해후의 기쁨을 나누고 있는 두 연인을 뒤로한 채.
이그니스 월드를 빠져나왔다.
연인들의 알콩달콩 깨가 쏟아지는 현장에 오래 있고 싶지는 않았다.
어쨌든 자레드 자신은 여전히…… 솔로였으니까.
* * *
돌아오는 길.
나는 다음 계획을 세웠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클로이의 스승에 대한 문제이자, 우리 왕국에 필요한 인재.
바로 포르미도의 영입에 대한 계획이었다.
계획이라고 해서 딱히 거창한 것은 아니고, 그저 그와 대련을 벌여서 승리하면 그만이었다.
단, 주의할 점이 있다면.
목숨을 걸고 내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면 죽고, 이기면 그에게 소원을 빌 수 있다.
스토리에서는 이 내기에 300명이 넘는 유명인이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중.
포르미도에게서 10걸음 이상을 도망친 사람은 없었다고 했다.
‘역사대로면 성마 대전이 발발하는 해에 포르미도가 죽기는 하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 네임드지만, 일단 영입은 꼭 하고 싶었다.
클로이의 스승으로 붙여 주기만 한다면, 그녀의 실력은 지금보다 최소 두 배 이상은 성장할 것이다.
왕국으로 돌아가기에 앞서, 나는 잠시 술집에 들렀다. 당연히 위장용 가면은 착용하고 있었다.
늘 그렇듯, 술집에서는 수많은 호사가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데 바로 그때.
“자네들 들었나? 이티마 제국이 리스티스 왕국을 기습 공격해서, 왕국의 전역을 장악했다는군!”
“뭐? 아무리 제국의 기습이라고 해도 명색이 왕국인데 전역을 장악당해?”
“못 들었나? 이티마 제국의 사주를 받은 자들이 내부에서 반란을 일으켜 안팎으로 호응을 했잖은가!”
“배신자들이 있었구먼?”
“국왕이 반군에게 붙잡혀 광장 한복판에서 참수를 당했어! 그러면 이미 상황은 끝난 것 아닌가?”
“끝이지.”
“이티마 제국이 얼마나 치밀하게 설계했는지 감도 오지 않을 정도일세.”
‘역시 이 세계는 살아 숨 쉬는 세계야. 그것도 아주 예리한 칼춤과 배신, 모략이 난무하는 곳.’
5제국 16왕국. 아니, 내 왕국이 추가됐으니 이제는 17왕국.
나스 대륙은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다.
종주국도 종속국도 없는 독자적인 힘을 갖춘 국가가 난립해 있는 군웅할거의 시대다.
‘질서가 재편될 거야.’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세계에 환생한 지 어느덧 2년하고도 시간이 더 흘렀다.
에서도 3년 차를 기점으로 수많은 정복 전쟁이 대륙 전역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전쟁으로 인해 파탄 난 경제와 농업 때문에 5년 차에 ‘나스 대기근’이라는 재앙이 발생하는 것이고 말이다.
성마 대전에서 플레이어들이 힘을 못 쓰게 된 스토리상의 이유가 바로 5년 차의 대기근과 이로 말미암아 열린 대전쟁 때문이다.
‘막아야 해.’
막고 싶다.
설령 전쟁이 발발하더라도, 내가 다스리는 왕국 안에서만큼은 굶주리는 사람이 없게 하고 싶다.
그래서 오브렌과 하루가 멀다 하고 회의와 연구를 거듭하며, 벼 품종 개량을 시도하는 중이었다.
아직 가시적인 성과는 없으나, 연구를 처음 시작할 때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 있기는 했다.
바로 그때.
“짜잔! 이게 뭔지 아나? 오늘 풀린 다이어트 묘약이지! 크리비아 왕국에서만 생산된다는 마법의 묘약이야!”
한 남자가 품속에서 유리병 하나를 꺼냈다.
아키의 상단에서 판매를 시작한 다이어트 포션이었다.
“자네들, 알지? 내가 40 평생을 날씬하게 살아 본 적이 없는 거.”
“알지! 아다마다!”
“크리비아 국왕이 직접 보여 줬잖은가! 내 몸집만 한 남자가 순식간에 홀쭉이가 되었단 말이야!”
“정말 신기하더군. 그것보다 국왕이 직접 상품 시연을 선보일 줄이야! 정말 놀랐지.”
“그래서 믿고 산 것 아닌가. 국왕이 보증한다는데, 안 믿고 배기겠어?”
“그렇지!”
“지켜들 보게! 3개월 동안 술, 담배 전부 끊고 인체 개조에 들어갈 테니까. 가즈아!”
“하하하.”
나는 손님들의 대화를 들으며 조용히 흡족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랬다.
아키의 공격적인 판매 전략과 맞물려, 벌써 다이어트 묘약이 대륙 전역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곧 우리 왕국으로 쉴 새 없이 몰려들게 될, 금화 유입의 전주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