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01
제 201화
69장. 타락의 성전 – 2화
레나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었다.
예전에 파피스 9세가 자신의 침실로 썼던 곳을 둘러보던 중에 갑자기 생겨난 차원문에 빨려들어 왔단다.
연관 관계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파피스 9세가 출입할 수 있도록 별도의 장치가 있었던 듯했다.
“일단 당황하지 말고 나와 함께 이곳이 어떤 곳인지 살펴보자. 암흑 교단의 제단 중 하나로 보이는구나.”
“뮤트 마법부터 펼칠게요.”
평소와 달리 진중한 목소리로 미아가 뮤트 마법을 시전했다.
매번 업텐션으로 다니는 모습과는 다르게 상황에 매우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어쨌든 넷이 갇혔다.
그리고 텔레포트를 통한 탈출은 불가능하다.
아마 시전을 했다가는 간섭에 걸려 제자리에서 갈가리 찢겨 죽을지도 모른다.
[가즈넬라의 날개] [사용자 ‘자레드’와 사용자 ‘헤이즈’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즉시 사용 가능합니다.]가즈넬라의 날개를 이용해서 탈출하는 방법이 있기는 했다.
이것을 쓰면 나는 바로 헤이즈의 옆으로 이동할 수 있지만, 이 역시 텔레포트 개념이라 위험성이 다소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혼자만 적용되는 것이기에, 여기에 남게 될 세 사람을 구할 수단도 안 됐다.
-정말 기분 나쁜 냄새가 난당……. 자레드, 아무래도 내가 앞서나가야 할 것 같당.
데리가 앞장섰다.
수호자의 특성이 부여된 녀석답게 우리를 지키기 위해, 먼저 위험을 자처하는 모습이었다.
“괜찮겠어?”
-날 그저 그런 뚱냥이로 보지 마랑. 그동안 살 많이 뺐당!
데리가 앙칼진 목소리를 내며, 앞장서 나갔다.
과연 녀석의 말대로 움직임이 매우 가벼우면서도 빨랐다.
마치 고양이에게 헤이스트 마법을 걸어 준 느낌? 그 정도로 네 다리가 부지런히 움직이며, 통로 위를 미끄러지듯 걸어갔다.
“죄송합니다, 폐하. 침실에 놓인 인형이 너무 귀여워서 미아와 구경하러 갔다가 그만…….”
“괜찮아. 나라도 당연히 구경했을 거고, 그러면 끌려 들어왔겠지. 탓할 것 없다.”
나는 살짝 풀이 죽은 듯한 레나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녀석은 늘 내게 칭찬을 받고 싶어 하고, 실망을 시키지 않고 싶어 한다.
그래서 아주 작은 실수를 하더라도 크게 자책을 하며, 스스로를 거칠게 채찍질할 때가 많았다.
나는 경직된 분위기를 풀기 위해 농담을 꺼냈다.
“레나는 항상 단발이구나?”
“제가 볼 때 레나 언니는 긴 머리가 예쁠 것 같은데! 언니는 항상 머리를 짧게 자르더라고요!”
이윽고 원래의 텐션으로 들어온 미아가 말을 보탰다.
처음에는 당황한 듯했지만, 나와 레나 그리고 데리가 있으니 어느 정도 안심한 모양이었다.
사실 녀석도 꼭 그럴 필요가 없는 게…… 현재 3클래스 마법사다.
바람 마법으로 한정하면 5클래스의 마법사이기도 하다. 심지어 나보다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 바람 마법의 수는 더 많다.
미아나 레나나 나이만 어릴 뿐, 실력은 잘나가는 마법사나 검사 못지않았던 것이다.
다만…… 본인들은 자신이 강하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예전에 미아의 아버지인 라키스와 레나의 새 스승인 엘라에게 물어봐서, 그 이유를 알기는 했다.
비교 대상이 바로 나란다!
나를 기준으로 두고, 자꾸 자신을 비교하니 당연히 성장이 뒤처지는 것처럼 느낄 수밖에 없지!
어쨌든 레나의 강점은 탱킹.
게임에서는 주로 ‘강제 어그로 스킬’이라고 불리는 고유 기술을 꽤 많이 가지고 있다.
이것이 내게 의미하는 바는 매우 크다.
전투가 벌어지게 됐을 경우, 확실한 ‘딜러’의 포지션에서 공격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나는 충분히 근접전을 수행할 능력이 있다. 이때의 전투력은 90%쯤 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작정하고 원거리에서 오로지 공격만 하는 포지션을 잡는다면?
전투력은 120% 수준으로 크게 오른다. 오랜 경험의 축적으로 판단한 데이터의 결론이다.
“예전에 고아원의 담 너머로 인사를 하고 지냈던 용병단의 언니, 오빠들은 제 단발이 참 잘 어울린다고 했었거든요.”
레나가 쭈뼛쭈뼛하며, 부끄러운 표정으로 답했다.
맞아. 나를 만나기 전에 고아원에 있다가 노예로 팔려 왔었지.
일라미 지하 광산에서 레나를 구출했던 일도 엊그제의 일처럼 머릿속에 생생하다.
-이상 없당.
앞서 나간 데리가 아직 보이는 것이 없음을 알렸다.
통로는 생각보다 길었다.
애초에 타락의 성전 자체가 나무가 흙에 뿌리를 내린 것처럼 다양한 갈래길이 존재했다.
그래서 이런 통로는 예사인지라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다.
“용병단 사람들과 연락해 봤어?”
문득 그것이 궁금했다.
이자벨이 원래 몸의 주인이었던 사람의 가족들을 만나 새로운 인연을 맺었듯이.
고아인 레나에게도 마음의 안식처가 될 수 있는 인연이 남아 있지는 않을까 싶어서였다.
“네……. 소식은 들었어요. 나스 대미궁 공략 중에 모두 목숨을 잃었다고…… 하더라고요.”
최대한 덤덤하게 말하려고 애쓰는 레나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용병들의 삶이란 그렇다.
어떤 의뢰를 받고 나서 모두 힘차게 도전했다가, 그 패기에 휘말려 모조리 죽음을 당하기도 한다.
“언니, 내가 있잖아. 미아가 있잖아! 슬퍼하지 말아요. 항상 언니 곁에 내가 있을게!”
그때, 미아가 뒤에서 레나를 꼭 끌어안아 주었다.
엄마인 메리를 쏙 빼닮아서 그런지 마음이 정말 천사 같다.
실제로도 미아는 레나를 친언니처럼 여기고 가까이 지낸다고 했다.
각자 마법사단과 기사단의 단장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있으니, 물리적 거리도 가깝긴 했다.
-셋. 나쁜 놈 셋.
그때, 데리가 갑자기 멈춰 서서는 바로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뮤트 마법으로 소리가 완벽하게 잡히고 있어, 데리를 포함한 우리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전혀 외부의 기척을 느끼지 못한 단원 셋이 방에서 통로를 향해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제게 맡겨 주세요.”
레나가 용맹하게 나섰다.
나는 트랜센던스 뮤트 마법으로 음 소거의 범위를 훨씬 더 넓혔다.
이왕 차단할 거면, 곧 단원들이 토해 낼 비명까지 확실히 차단하는 게 좋아 보였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파아아앗!
레나를 중심으로 뻗어져 나간 무색의 어그로 스킬에 세 단원이 그대로 휘말렸다.
“으어? 어어어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자석에 이끌려 가듯 빨려 들어가는 몸!
단원들은 황급히 검을 빼 들어 레나를 공격하려 했지만.
푸욱! 푸욱! 푹!
레나는 아주 경쾌하게 세 번의 찌르기로 단원들의 목숨을 손쉽게 거두어 버렸다.
투지 극한 SS에 약점 분석 S.
이 성향의 조합이면, 가벼운 일격이라고 해도 강한 힘을 싣는 것이 가능하다. 이른바 일점 타격.
그것이 가능했기에 단원들은 손을 쓸 틈도 없이 심장을 꿰뚫려 목숨을 잃은 것이다.
-그래도 확실하게 죽인당.
바로 데리가 허무하게 쓰러진 시신 위에 올라타서, 그들의 심장 속에 자신의 발톱을 밀어 넣었다.
나름대로 확인 사살.
녀석! 헤이즈와 함께 던전을 여러 군데 다니더니, 가르치지 않은 것도 엄청 배워 왔다. 아마도 헤이즈가 가르친 센스일 것이다.
나는 바로 그들이 있던 방 안으로 들어갔다.
딱히 특별한 시설은 없었다.
타락의 성전 여기저기에 분포되어 있는 숙소 중 하나인 듯싶었다.
한데 바로 그때.
“저건……?”
암흑 교단의 문양이 새겨진 특이한 아티팩트 하나가 보였다.
일단 문양을 확인하니 전생으로 비유하자면, ‘도깨비’와 유사하게 생긴 문양의 교단이었다.
‘움브라 교단.’
바로 움브라 교단이다.
악마로 불리는 움브라의 모습을 본떠서 그린 문양이라는데, 못생긴 얼굴이라 딱히 관심은 없다.
어쨌든 ‘타락의 성전’이 움브라 교단과 연관된 곳이라는 사실은 확실히 알게 됐다.
잘됐다.
일전에 아키에게 마수를 뻗친 전적도 있고, 언제고 복수를 확실하게 해 주고 싶었던 참이니까.
‘도대체 무슨 아티팩트지?’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팔찌처럼 보였다. 생긴 것도 투박했고.
[광신의 팔찌] [분류 등급 : 1성] [옵션 1 : 착용한 대상의 수명을 90% 소모하여, 모든 신체 능력을 5배로 강화합니다.단, 동일한 대상에게 2번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아니, 이런 정신 나간 아티팩트를 만들었다고……?’
광신의 팔찌.
1성으로 낮은 분류 등급을 보아하니, 제작 자체는 매우 간단해 보이는 아티팩트였다.
문제는 옵션이었다.
누가 봐도 착용자의 수명을 담보로 각성시킨 뒤, 소모품처럼 쓰고 버리려는 사악한 의도가 뻔히 보이는 아티팩트였다.
이것이 단원이 머물던 숙소에서 나왔다? 그러면 이유는 뻔했다.
언제든 이 팔찌의 능력을 사용해서, 암흑 교단의 단원들을 살인 기계로 쓰겠다는 뜻이었다.
‘움브라 교단 놈들. 정말 적당히, 라는 것이 없잖아.’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느낌.
한 가지는 확실하게,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이 무엇이든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폐하, 다른 녀석도 잡았습니다. 놈들의 방에 붙어 있던 지도인데 아무래도 내부 지도 같아요.”
그새 다른 방에 있던 단원들을 손봤(?)는지, 레나가 미아와 함께 지도를 가져왔다.
건네받은 지도를 펼쳐서 확인해 보니, 현재 우리가 있는 타락의 성전 북부를 그린 지도로 보였다.
나는 북서쪽에 보이는 표식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탈출로가 하나 보이네.”
“네? 이건 해골에 X 표시가 그려져 있는데요? 폐하, 이건 탈출구가 아니라 죽는 곳 아니에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법한 것들에 변주를 주는 것이 암흑 교단 녀석들이 자주 쓰는 수법이란다.”
전생의 경험이 있기에 나는 바로 표식의 의미를 간파했다.
일단 탈출로는 확보됐다.
나는 좀 더 둘러볼 생각이었고, 일단 미아와 레나 그리고 데리부터 나가게 할 생각이었다.
녀석들은 분명 강하긴 하지만, 타락의 성전에는 변수가 많다.
무엇보다 어떤 존재가 보스 몬스터로 등장할지 가늠이 안 됐다.
“너희 둘은 데리와 함께 나가.”
“안 돼요! 폐하 곁에 있을 거예요! 절대 그냥 저희를 보내지 마세요!”
“안 됩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미아와 레나가 격렬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 녀석들이 이렇게 겁 없는 녀석들이었던가?
내가 황당한 표정으로 둘을 쳐다보자, 미아가 천사 같은 미소를 뿜뿜 날리며 내게 말했다.
“폐하는 항상 혼자서 힘든 일을 맡으려고 하시잖아요! 다들 그게 싫대요! 폐하께서 조금만, 아주 조금만이라도 저희에게 기대실 수도 있는 거잖아요?”
“……동감합니다.”
미아는 웃고 있었지만, 내뱉은 말에는 뼈와 가시가 아주 단단히 박혀 있었다.
레나도 격렬한 끄덕임으로 적극적인 동의의 의사를 밝혔다.
“그동안 열심히 수련하고 훈련했어요. 제 능력을 믿어 주세요!”
“저도 정말 손에 굳은살이 박이고, 피가 철철 흘러나올 만큼 독기를 품고 열심히 했습니다!”
미아와 레나는 내게 자신들의 결연한 의지를 밝혔다.
이는 충동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그간 가슴속에 담아 온 말을 시원하게 토해 내는 듯했다.
‘내가…… 너희들에게 생각보다 무심했구나.’
두려움 따위는 집어치우고 강렬하게 투지를 불태우는 미아와 레나의 모습을 보며, 나는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하는 것을 느꼈다.
두 녀석은 더 이상 어린 소녀가 아니었다.
나를 귀감으로 삼아서 치열하게 자신을 채찍질하며 성장해 온.
멋진 전사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