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87
제 287화
91장. 그 후, 1년 – 1화
50층까지의 공략을 마친 우리는 일단 황도로 돌아왔다.
이제 나스 대미궁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던전이 되었기 때문이다.
1층에서부터 50층까지의 공략을 재차 진행하면서, 모두 자신의 힘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깨닫게 됐다.
특히 라키스는 이제 명실상부한 소드 마스터의 반열에 올랐다.
본인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어느 누가 불과 4년 만에 한미한 영지의 치안대장이 소드 마스터가 될 수 있다고 믿을까?
하지만 그것은 현실이 됐다.
자화자찬이기는 하지만! 지금의 라키스를 만든 과정에는 내 공이 크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결실을 맺은 것은 역시 4년 동안 단 한 번도 훈련을 게을리 한 적이 없었던 라키스 자신이지만.
한편 나는 파라디소를 제압하면서 얻은 칭호 중 제국의 내정과 관련된 칭호는 즉각 발동시켰다.
이런 것들은 더 이상 아낄 필요가 없었다.
성마 대전 이후의 복구와 재건은 그때 가서 걱정할 일이다.
만약 성마 대전을 승리로 끝냈다면, 더 이상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현재에 집중할 수 있을 터다.
유의미한 칭호들을 모조리 쏟아부은 덕분에 크리비아 제국 전체가 ‘대(大) 황금기’에 돌입했다.
이는 정치, 경제, 상업, 치안을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백성의 만족도와 효율을 최대치로 높이는 황금기였다.
칭호가 일종의 집단 최면 효과를 일으킨다는 점에서 인위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어쨌든 지금은 성마 대전의 그날까지 흔들리지 않고, 모두가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했다.
황도로 돌아온 나를 반긴 것은 어제부터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던 베르하드였다.
용마 대전 및 마왕과 그의 군단에 관련된 옛 자료들을 수집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던 그.
그가 한보따리의 고서들과 더불어 나를 찾아왔다는 소식에 나는 한달음에 응접실로 향했다.
미지의 세계나 다름없는 동방대륙을 비롯한 많은 지식을 알고 있는 베르하드.
그는 내게 소중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다만 감정과 만남의 교류가 그동안 썩 많지 않았다는 점이 유일한 아쉬움이랄까?
하지만 나름의 신념을 갖고 중요한 것을 연구해 왔던 베르하드이기에 그의 희생은 값진 것이라 여겼다.
* * *
“음……. 도대체 이런 서적을 어디서 구하신 건지. 정말 신기하고 신기할 따름입니다.”
“출처를 밝히자면 드래곤의 것이라고 할 수 있어. 용마 대전 직후에 목숨을 잃은 드래곤의 레어에서 발견한 것도 있고.”
“그렇다면 드래곤에게서 건네받은 것입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훔쳤지. 드래곤은 동족이 죽어도, 그가 머물던 레어나 거처를 뒤지지는 않거든.”
“그 말씀은…….”
“주인 없는 집의 문을 따고 몰래 들어갔다 나온 도둑의 절도 품목이랄까.”
베르하드가 뒷맛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어쨌든 그가 구해 오지 않았더라면, 영원히 레어에 묻혀 있었을 서적이 꽤 많았다.
원본은 용언으로 되어 있었는데, 동봉된 책은 전부 베르하드가 주석을 달아 놓은 번역본이었다.
“이 작업을 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지. 용언이 어순의 원리만 알면 어렵지 않은데, 워낙에 별난 언어라서.”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베르하드 님.”
“고생은 무슨. 늙은 몸뚱이로는 도움이 영 되질 않으니, 머리라도 굴려서 도움이 될 수밖에.”
“내용은 다 읽었습니다. 이 내용대로라면 마왕군의 소환 위치를 특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자레드의 눈빛이 반짝였다.
책의 내용은 마왕군이 인간계에 현신할 경우, 어느 곳에서 나타날지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주 미세하면서도 작은 변화라서 전조를 탐지하는 것이 어렵긴 하지만, 분명 사전에 알아챌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전부는 아니고, 9할 정도?”
“적의 열 가지 수 중 아홉 가지 수를 미리 간파할 수 있다면, 이건 엄청난 이점이 됩니다!”
자레드가 힘주어 말했다.
사실 성마 대전을 착실하게 대비하고는 있지만, 뭔가 막연한 점이 없지 않아 있었다.
바로 마왕군이 어디서 나타나게 될 것인가에 대한 문제 때문이었다.
예상한 지점에서 나타난다면야 온갖 마법진과 마도 공학의 방어 시설이 빛을 발하겠지만.
예를 들어 아무것도 없는 넓은 들판이나 평야, 극단적인 예로 황궁 한가운데에서 나타난다면?
그때는 그야말로 지옥이 펼쳐진다.
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전장은 그 자체가 마왕군이 신나게 뛰어놀 놀이터가 되고 말 테니까.
“책의 내용만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는 것이기에 직접 사전 검증 절차를 거쳤다. 들어맞더군.”
“정말입니까?”
“한번 직접 보겠느냐?”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아펠리오스 산의 중턱으로 갔으면 좋겠는데.”
베르하드가 자연스럽게 자레드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자신을 데리고 멀티 텔레포트로 이동해 달라는 뜻이었다.
자레드의 트랜센던스 멀티 텔레포트는 거리의 제약이 거의 없는 것으로 자레드만이 시전할 수 있는 유일한 마법이기도 했다.
대마법사라 불리는 베르하드도 텔레포트로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는 한정적이었다.
“아펠리오스 산이면 예전에 다녀온 적이 있죠.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역시 초월 마법이라는 것이 정말 전가의 보도와도 같군.”
“그렇습니다. 늘 제게 책임감을 느끼도록 만드는 마법이죠.”
파팟!
자레드가 베르하드의 손을 잡는 순간, 이미 두 사람은 아펠리오스 산에 도착해 있었다.
지금까지 수없이 텔레포트 마법을 시전해 온 베르하드도 놀랄 정도로 이동은 빨랐고, 거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멀었다.
“자, 그럼 예측 지점을 함께 찾아보지. 난 이미 알고 있지만, 나만 알아서는 안 되니까.”
“예, 같이 찾아보죠.”
그렇게 둘의 탐색이 시작됐다.
그로부터 1시간 후.
“벌써 네 개의 포인트……. 각 포인트마다 최소 3천 이상의 군세를 생각하면 된다고 했으니 이 산에서만 1만이 넘는 마왕군이 나타날 예정이군요.”
“이제 어느 정도 전조 현상을 보이는 위치가 짐작이 가나?”
“미세하게 살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지만, 확실하게 미래를 알 수 있다면 이 정도 수고쯤은.”
베르하드의 물음에 자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베르하드의 말대로 전조 현상을 보이는 위치는 일반적이지 못했다.
마나가 비정상적으로 응집되거나, 아주 적은 범위이기는 하나 뜬금없는 공간 왜곡이 있었다.
특히 예측 지점 부근에서는 마나가 지나치게 간섭을 받아 사방으로 흩날리는 등 확실한 신호가 존재했다.
마나 감응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는 자레드에게 마나가 간섭받는 위치를 특정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다만 이런 포인트를 찾기 위해서는 어쨌든 반경 500m 안으로는 들어와야 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 ‘수고로움’이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대륙 전역을 둘러봐야 해. 꽤 귀찮은 일이 되겠지만, 한 번 해 두면…….”
“적보다 한 수에서 두 수, 세 수를 앞서가는 대응을 할 수 있겠죠. 귀찮을 이유도 없고, 당연히 귀찮아서도 안 될 일입니다.”
자레드가 결연한 표정으로 베르하드에게 답했다.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다.
베르하드의 말에 따르면, 이렇게 특정을 할 수 있는 포인트는 전체 포인트의 9할 정도라고 했다.
나머지 1할의 위치는 마왕군의 현신과 동시에 결정이 되기 때문에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10개 중 10개가 막연한 것보다 1개만 막연한 것이 백번 나은 일이었다.
이는 불특정하게 방어 수단을 분포시켜 마왕군을 대비하는 것보다, 훨씬 더 화력을 집중할 수 있는 효과를 가져다줄 터였다.
“탐색과 선별 작업은 빠를수록 좋을 듯해. 다만 이런 미세한 감지는 어지간한 마법사는 하기 힘들 것이야.”
“제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신데르스 자치령 기준, 남쪽의 조사를 맡을 테니 네가 북쪽을 맡는 것이 좋겠다.”
“그리하시죠. 정말 감사합니다, 베르하드 님. 작금의 상황에서 정말 천금과도 같은 정보였습니다.”
“감사는 무슨. 됐다. 그저 늙은이가 작은 재주 하나 부리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고생하셨습니다.”
“자레드.”
“예?”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마왕도, 마왕군도 창조주가 만든 피조물일 뿐 이를 넘어설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맞습니다. 마왕이니 하는 이름을 달고 있어도, 결국 거대한 이 세계에서는 한낱 미물일 뿐이죠.”
“용마 대전이 그러했듯, 이번 성마 대전에서도 우리가 승리하리라고 믿는다. 쓸모가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아낌없이 내 힘도 보태마.”
“정말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입니다!”
힘주어 말하는 자레드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걸렸다.
이제부터는 정말 속도전이었다.
어디에 힘을 집중하고, 어디에 전략적으로 힘을 뺄지 데이터를 착실하게 수집할 때가 온 것이다.
미래의 판도를 결정지을 은밀한 조사가 그날 이후부터 시작됐다.
* * *
시간은 유수와도 같이 빠르게 흘렀다.
나스 대륙력 1418년 9월 4일.
나는 어느덧 불어오기 시작하는 가을의 찬바람을 느끼며.
달력의 오늘이 예고된 성마 대전으로부터 정확히 6개월 전의 시간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간 봄과 여름은 어느덧 오래전의 일처럼 아련하게 느껴졌다.
황도의 상공.
내가 늘 황도 전체를 내려다보고 싶을 때면, 플라이 마법을 이용해 향하는 곳이었다.
어떤 장애물도 존재하지 않는 탁 트인 창공에 몸을 띄우고 있으면, 완벽한 자유가 느껴진다.
“폐하! 폐하 만세!”
“폐하께서 우릴 보고 계셔!”
예전에는 황도의 상공에 이상한 점(?)이 생겨나면 놀라는 백성들도 참 많았는데.
내가 이런 식으로 황도 여기저기를 둘러본다는 사실을 백성들이 안 이후로는, 뭔가가 보이면 열심히 손을 흔든다.
다들 반가워하는 것이다.
“그대들이 우리 크리비아 제국의 주인이고, 기둥이니라!”
나는 힘껏 음성 증폭 마법을 이용해 백성들을 독려했다.
농번기가 끝난 백성들은 자진해서 공사 현장에 역부로 투입되고 있었다.
황도 안에서도 마왕군의 소환 예상 지점 두 곳이 특정됨에 따라, 방어선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던 것이다.
이곳은 꽤 소환 규모가 큰 ‘스팟’으로 여겨져서, 대규모 마법진을 통한 각종 방어 시설들이 구축되고 있는 상태였다.
“어디 보자…….”
나는 황도의 남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대규모로 연병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훈련 중인 라키스와 엘라의 모습이 보였다.
병법과 진법에 능한 라키스는 아르모니아 17세로부터 신성력 안수를 받은 병사들을 상대로 다양한 진법을 훈련 중이었고.
엘라는 아그레시오 기사단 전체의 기강을 확실하게 잡으며, 모의 전투 훈련을 하고 있었다.
마법사들은 북쪽에 있는 탁 트인 언덕 일대에서 아마 나오미의 지휘 아래 집중 훈련 중일 터였다.
훈련과 공사.
이렇게 투 트랙의 준비가 진행되고 있는 곳은 비단 황도뿐만이 아니었다.
대륙 전역이 그러했다.
성마 대전에 대한 확실한 인식이 일반 백성이나 군인, 엘리트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알려지면서.
신분이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나스 대륙을 마왕군으로부터 지켜 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극히 일부는 다가올 재앙을 인지하지 못한 채, 음모론이니 하며 부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름 두려움은 있는지, 부정을 하면서도 또 준비는 열심히 했다.
물론 재앙이 현실이 아니길 바라는 절실한 마음은 알겠지만……. 그래도 어쨌든 다들 운명을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바로 그때.
샤아아아. 샤아아아.
연병장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서 힘껏 손을 뻗어 가며 병사들의 회복을 돕고 있는 헤이즈가 보였다.
거리로 따지면 800m 이상의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원격 치료가 가능한 헤이즈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디바인 나인.’
얼마 전.
그녀가 치유사의 극의, 그 끝의 경지에 다다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