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03
제 303화
95장. 종막을 향해 – 3화
‘블링크!’
일단 벌어진 상황을 판단하기 전에 먼저 블링크로 현장을 이탈했다.
쏟아지는 장대비 때문에 체감하기까지 시간이 다소 걸리기는 했지만.
“크윽.”
마검에 당했다.
오른쪽 등 가운데 쪽에서 사선으로 찔러 들어온 레크나트의 마검이 복부를 관통해 버렸다.
주르르륵.
피가 쏟아져 나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너무 깨끗하게 관통해서 상처 부위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점이다.
보통 검이 ‘더럽게’ 찔러 들어왔다가 훑고 나오면, 오장육부가 줄줄이 꿰이거나 뼈가 크게 다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입술을 질끈 깨물고 참았다.
그리고 즉각 몸을 돌려, 레크나트를 향해 데큐플 트랜센던스 플레어 스피어를 전개했다.
쿠아아아!
“마법의 위력은 제법 봐줄 만한 것 같군. 하지만 과연 날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파앗!
레크나트가 마검을 이용해 만든 것은 검풍으로 만들어 낸 거대한 장벽이었다.
마치 내가 쓰는 바람의 장벽과 유사한 것이었는데, 순수 두께로는 내 것보다 훨씬 두꺼웠다.
애초에 레크나트가 방어 대응에 들어갈 것을 예상하고 펼친 공격이었다.
상대가 생각 없는 마수가 아닐진대, 당연히 정석대로 막는 것이 가장 빠르지 않겠는가.
퍼엉!
이윽고 5원소 마법의 집성체라고도 불리는 플레어 스피어가 장벽을 힘차게 두드렸다.
“읍!”
레크나트의 실력도 대단하지만, 내 초월 마법도 절대 장식품이 아니다.
데큐플 트랜센던스까지 끌어올리면, 용언 마법의 수준 정도는 훌쩍 뛰어넘을 수 있으니까.
치이이익!
레크나트의 몸이 지면 깊숙하게 끌림을 만들어 내며 뒤로 쭉 밀려났다.
바로 그때.
팅!
장벽에 부딪히면서 분화된 화염구 하나가 탁구공처럼 가볍게 장벽을 넘어 레크나트에게로 향했다.
노림수였다.
마치 대수롭지 않은 작은 불씨인 것처럼 레크나트에게 향한 작은 화염구는.
탁! 화르르르륵!
내가 손가락을 튕기자, 순식간에 100개 이상의 더 작은 불씨로 분열했다.
코어 스플래시.
5원소의 속성 중 하나의 힘을 압축된 코어로 담아서 전개하는 마법이었다.
일종의 수류탄과 같은 개념인데, 시동어 역할을 할 소리나 주문이 있으면 분열이 생기게끔 되어 있었다.
언뜻 보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 마법도 분류로는 9클래스의 마법이었다.
에서는 그 활용 가치가 크게 떨어져 사장(死藏)되어 버린 마법이지만.
‘내겐 아니지.’
노림수, 혹은 의외의 연계를 늘 즐기는 내게는 가장 변칙적인 선택지였다.
‘연쇄 발화.’
나는 바로 노림수를 가동했다.
특수 마법, 연쇄 발화였다.
반경 10m 내에 불씨가 있을 경우, 그 불씨를 연계해서 2차 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마법.
불길에 노출된 한 명의 ‘인명’에게 마력 1천을 소모해 발화를 유도하는 마법이지만.
단순하게 사람 없이 불씨만 있어도 가능했다. 내 기억으로 의 툴팁 오류로 안다.
왜 나중에라도 수정을 안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다음 순간!
[총 100개의 코어 불씨를 감지하여, 연쇄 발화를 일으킵니다.] [마력 10만이 소모됩니다.]상당한 비용을 투자한 노림수가 전개됐다.
앞서 플레어 스피어의 초월 마법에서 8만, 지금 10만, 도합 마력 18만을 소모한 노림수였다.
“이런 귀찮은 불길로 뭘……. 끄아아악!”
내 마법들을 아직도 잔재주라고 여기는 레크나트의 오만함에 일침을 가하는 확실한 한 방이었다.
화르륵! 화르륵! 화르르륵!
콰앙! 콰앙! 콰아아앙!
“으읏!”
연쇄 발화 시전을 위해 10m의 거리로 좁힌 내게도 엄청난 열풍과 불길이 전해졌다.
순간 모든 피부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눈을 뜰 수도 없을 정도로 거센 후폭풍이 몰아쳤다.
“커억! 크헉! 끄어어억!”
아울러 불길 속에서 선명히 보이는 레크나트의 실루엣이 고통스럽게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방심하지 않았다.
레크나트와의 전투에서 승리를 확신할 수 있는 경우는 단 한 가지뿐이다.
놈의 심장이 뛰지 않거나, 아예 사라졌을 경우. 그런 경우가 아니면 단 1초도 방심할 생각이 없었다.
“더블 트랜센던스 매직 미사일.”
슈아아아!
나는 불길을 걷어 내려 하고 있는 레크나트에게 매직 미사일을 시전했다.
가장 기초적인 마법으로 대응이 쉽지만, 난전 중에는 신경 쓰기 힘든 ‘사소한’ 마법이기도 했다.
퍼펑! 펑! 펑!
“크윽! 윽!”
빙결, 물 계열의 마법을 이용해 급속으로 불길을 제압하려던 레크나트의 타이밍이 빗나갔다.
바로 다음 노림수로 이어 갔다.
‘플레임 버스트.’
역시 특수 마법이었다.
5초 이상 상대가 화염에 노출될 경우, 조건부로만 활성화할 수 있는 마법.
화마귀(火魔鬼)를 대거 불러들이는 일종의 소환 마법이라 엄청난 위력을 가진 것이기도 했다.
다만 그 조건이 까다로워서 발현이 정말 어려운데, 실로 오랜만에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키히히히히!
이윽고 레크나트의 전신을 감싼 불길에서 수많은 화마귀가 메뚜기 떼처럼 우르르 생겨났다.
찌익! 찌익!
녀석들은 불에 휘말린 레크나트의 살점을 인정사정없이 물어뜯기 시작했다.
[지옥불의 현신: 화염 계열 마법 대미지 100% 상승] [적마귀 학살자 : 악 성향의 모든 몬스터에 대미지 25% 추가]나는 레크나트를 상대로 상시 활성화되어 있는 두 개의 칭호를 다시금 살폈다.
아주 약간의 추가 대미지도 놓쳐서는 안 되는 상황에서 화염 시너지는 매우 중요했다.
방금 플레임 버스트가 위력적으로 들어간 것도 모든 화마귀의 대미지가 2배 상승했기 때문이었다.
[옵션 9 : 악마의 낙인 – 낙인의 대상자로 지정된 ‘1인’의 재생, 치유 능력이 99% 감소합니다. 지속 시간 30분. 쿨타임 7일]‘……아냐, 지금은.’
악마 유희의 9번 옵션이 눈앞에 아른거렸지만 참았다.
치유 능력을 거의 봉인하는 것이기에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이걸 쓰고도 죽이지 못한다면, 그때는 가장 중요한 패 하나가 사라지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한 차례 레크나트에게 더 큰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수단을 쓰기로 했다.
[옵션 6 : 확정적 해체 – 10초간 적의 모든 방어력 수치를 0으로 만듭니다. 쿨타임 24시간]바로 절대 약화의 반지에 있는 6번 옵션과.
[옵션 9 : 절망의 늪 – 10초 내로 대상에게 공격을 한 차례 명중시킬 때마다 움직임이 1% 둔화됩니다.최대 40%까지 둔화가 가능하며, 갱신되지 않을 시 둔화가 초기화됩니다. 광역 적용 가능]
꾸준히 둔화를 유발할 수 있는 9번 옵션이었다.
레크나트에게 방금처럼 치명적인 빈틈을 만들 수 있는 경우는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한다.
과아아!
이윽고 빗줄기와 공간을 거칠게 가르며, 레크나트를 향해 빠르게 쇄도해 들었다.
“이 망할 놈의 불길……!”
레크나트는 여전히 화마 속에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확실한 것은 저것으로 레크나트가 죽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기껏해야 심한 화상 정도 입겠지.
물론 그것도 깊은 상처지만, 그의 목숨을 끊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도 없었다.
지금도 결국 탐색전일 뿐이다.
본 전투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그저 서로 한 방씩 주고받았을 뿐이다.
‘대회복은 좀 더 아끼자.’
등과 복부의 자상(刺傷)이 무척 아팠지만, 나는 온 힘을 다해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리고 힐 마법으로 일시적인 지혈만 한 뒤, 불길을 실드로 받아 내며 레크나트에게 접근했다.
탁!
이어진 터치.
확정적 해체가 들어갔다.
지금부터 10초 동안, 레크나트의 모든 외피는 흐물거리는 껍질처럼 방어력을 상실할 것이다.
여기에 나는 9번 옵션, ‘절망의 늪’을 즉각 연계했다.
내가 꾸준히 공격을 이어 가면서 마법을 갱신한다면, 레크나트의 움직임은 크게 둔화될 터였다.
‘타넥스, 마력 보조.’
나는 바로 타넥스를 꺼냈다.
이제부터 보조 ‘마력’ 배터리를 장착하고, 확실하게 공격을 퍼부을 차례다.
확정적 해체가 적용되는 10초 동안은 내 목이 날아갈 정도의 위협이 아니라면, 절대 물러서서는 안 된다.
-올라, 마력 보조 기동. 최대 출력으로 마력을 전달합니다.
언제 들어도 차분한 올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데큐플 트랜센던스 헬파이어!’
미련 없이 즉시 헬파이어 마법을 캐스팅했다.
모션 캔슬로 복잡한 과정을 생략하자, 거의 즉시라 해도 무방할 타이밍에 지옥불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레크나트를 향해 맹공을 이어 가기 시작했다.
물러설 곳이 없는 전투.
꼭 마지막인 것처럼.
나의 공격에는 뒤가 없었다.
* * *
같은 시각.
‘도대체 이런 말도 안 되는…….’
레크나트는 몸에 붙은 불길과 화마귀를 제압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플레임 버스트로 자라난 수많은 화마귀는 마법이나 암흑 기를 방출하는 것으로는 사라지지 않았다.
자레드의 마법과 연계, 그리고 처음 보는 특수한 마법들은 레크나트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이카젤라를 통해 사전에 학습했던 인간의 마법을 훌쩍 뛰어넘는 것들이었다.
게다가 얼마나 많은 마력을 쏟아부은 것인지, 거센 불길이 진화될 조짐조차 보이지 않았다.
설령 일반적인 헬파이어 마법으로 타오른 불길이어도 보통 암흑 기를 대량으로 방출하면.
마치 횃불 위에 모래를 듬뿍 뿌려 놓은 것처럼 일순간에 진화되는 법이었다.
하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마력을 원료로 삼고 있는 불길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마치 기름 위에 물을 뿌리듯, 진화되는 듯하다가도 다시 원상 복귀가 될 뿐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자레드가 추가로 전개한 ‘확정적 해체’는 고통의 강도를 더욱 높여 주고 있었다.
물론 순식간에 이뤄진 작업이었기에 레크나트는 자신의 방어력이 0이 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레드가 이어서 전개한 헬파이어 마법을 완벽하게 놓쳤다.
자레드를 얕봐서 그런 것이 아니라, 고통에 익숙하지 않았던 상황에 갑자기 노출된 탓이었다.
다음 순간.
쿠아아!
레크나트는 두 눈으로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쏟아지는 빗줄기마저도 모조리 증발시킬 만큼 강렬한 열기를 머금은 지옥불이 날아드는 것을.
“씨X.”
고귀하고 고결한 마왕의 입에서도 절로 욕지거리가 나오는 상황이 벌어졌다.
일단 막아야 했다.
마검을 이용한 대응에는 한계가 있었기에 양팔을 사선으로 교차시켰다.
이 위에 암흑 기를 불어넣고, 마력의 역장을 두껍게 펼쳐 막을 생각이었다.
인간의 마법에 비유하자면, 6클래스 마법인 퍼펙트 실드의 두 단계 상위 호환 버전이었다.
하지만!
콰아앙!
헬파이어의 마법 구체가 부딪히는 순간, 모든 계산이 빗나갔다.
마법 자체는 역장을 이용해 성공적으로 막아 냈지만.
문제는 방어력이 아예 사라져 버린 몸뚱어리였다.
역장을 통해 전해진 엄청난 양의 충격을 몸이 제대로 버텨 내지 못한 것이다.
“쿨럭!”
역류.
후드드드득.
지금까지 아무 변화가 없던 레크나트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한 움큼 토해져 나왔다.
지금까지 수백 년간, 그 누구에게도 보인 적 없는 나약한 마왕의 단면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