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36
제 335화
104장. 심판의 창 – 2화
심판의 창의 구조를 완벽하게 파악한 이후, 나와 베르하드는 계속 동쪽으로 나아갔다.
적의 노림수가 무엇인지, 어떤 준비가 되었는지는 명확해졌다.
이제는 그들의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에 대해서 알아볼 차례였다.
새로운 문명과의 만남.
그것은 바다 위에서의 이동을 끝내고 육지로 접어들면서 시작된 접촉이었다.
모든 문명이 그렇듯, 동방 대륙의 문명도 물이 있는 강을 중심으로 몰려 있는 구조를 보였다.
다른 차원이라는 사실이 상상력을 많이 자극하게 만들었다.
이를테면 타 차원의 지적 존재는 기계일 수도 있고, 벌레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보이지 않는 생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차원 베디세트’의 문명은 마치 평행 세계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지구인 듯 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동양인들 위주로 구성된 하나의 거대한 세계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스 대륙이 서양인, 즉 유럽인 위주로 이루어진 중세 배경을 보는 느낌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인비저블이 허용하는 투명 상태에서 베르하드와 함께 묵묵히 그들을 관찰했다.
“저것은 분명 발현 기전이 마법은 아닌데, 마치 플라이 마법처럼 하늘을 가르는군.”
“저것이 동방 대륙의 능력 있는 존재들의 기틀이 되는 힘인 듯합니다.”
유심히 살펴본 베르하드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일반인이 특이 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사실 대다수는 평범한 시민이었다.
하지만 온몸을 꼼꼼하게 감싼 특수한 복장을 한 존재들이 나타났을 때는 상황이 달랐다.
그들은 저마다 작은 건물의 돌출부나 담벼락 등을 디딤대로 삼아, 훌쩍 하늘로 날아다녔다.
그것은 내가 전생에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보았던 ‘경공’을 쏙 빼닮은 모습이었다.
‘중원 무림에 현대식 세계관이 합쳐진 느낌이 바로 베디세트 차원인 건가?’
합리적인 추측을 했다.
실제로 경공 외에도 보법과 같은 특수한 동작들도 제법 보였다.
한편으로는 선후 관계가 충분히 이해가 갔다.
는 서양식 중세 판타지를 모티브로 삼아 제작된 세계관이다.
그렇다면 오리엔탈풍 콘셉트를 잡아 그와 대척 세력인 ‘동방 대륙’을 만든 것은 꽤 그럴듯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대장, 반란군 무리가 서쪽 보급 창고를 기습한 것 같습니다!”
“징그러운 놈들! 아직도 되지도 않는 평화 타령이나 하면서 우리 계획을 헛된 꿈이라고 방해를 하는 건가?”
“어떻게 할까요? 지원 요청입니다.”
“빠르게 이동한다. 이제 전쟁이 머지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후방이 교란되면 곤란하지. 아예 뿌리를 뽑는다.”
“예!”
통역 마법을 통해 그들의 대화가 고스란히 들려왔다.
“전에 내게 정보를 전달했던 그 존재들, 아마 그들이 바로 저놈들이 반란군이라고 지칭하는 존재들일 것이다.”
“그렇게 보이는군요.”
“어떻게 할 생각이냐?”
차원을 넘는 시점에서 내가 생각한 계획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저들이 반란군이라고 부르는, 그러니까 우리에게 도움을 주려 했던 세력을 찾는 것이었다.
둘째는 저들의 컨트롤 타워, 즉 리더를 찾아 어떤 형태로든 대화를 나눠 보는 것이었다.
물론 그 대화가 평화를 ‘구걸’하기 위한 대화는 아니고, 확실한 ‘경고’를 하는 쪽에 가깝겠지만.
나는 냉정하게 생각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숙원(宿怨) 사업처럼 나스 대륙을 침공할 준비를 해 온 그들이.
경고나 평화를 운운한다고 해서, 과연 먹었던 마음을 돌릴까?
절대로 그럴 리는 없다고 봤다.
우리에게 원한이 있어서도 아니고, 그저 내부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희생양이 필요한 것이니까.
그렇다면 첫 번째 계획이 더 나을 것이다.
대척점에 있는 세력을 찾아, 그들에게서 이 세계의 정보를 최대한 많이 얻어 내는 것.
그게 작금의 상황을 가장 빠르게 파악하고, 앞으로의 일을 대비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봤다.
“저 군대를 추적해 반란군이라고 부르는 세력과의 접점을 찾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네 생각이 그렇다면 이의는 없다. 바로 뒤를 쫓도록 하지.”
“그러시죠.”
나와 베르하드는 부지런히 그들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인비저블에 뮤트까지.
확실하게 기척을 숨긴 우리였기에 바로 뒤에서 쫓고 있음에도 놈들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 * *
“다 죽여 버려!”
“하늘이 두렵지 않으냐? 너희들이 이렇게 악랄하게 굴수록 세상의 평화는 점점 더 멀어진다!”
“개소리 집어치워! 평화는 무슨 얼어 죽을 평화! 서방 대륙 놈들 때문에 수십 년째 대기근으로 허덕이고 있다는 것을 모르느냐?”
“그게 왜 서방 대륙의 문제란 말이냐? 무리한 토목 공사와 이권 다툼 때문에 생긴 우리의 재난이거늘!”
“에잇! 갈수록 개소리만 늘어놓는군. 다 죽여! 포위망에 갇힌 놈들이니 한 놈도 살려 두지 마라!”
보급고를 공격해 무기와 여분의 식량을 챙기려고 했던 자들은 모두 포위된 상태였다.
자유의 날개.
그것이 바로 현장의 군인이 반란군이라고 부르는 자들이 소속된 단체의 이름이었다.
차원과 차원의 대전쟁.
자유의 날개에서 가장 걱정하고 있는 미래의 모습이었다.
지도자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광기는 평범한 사람의 이성마저 마비시킬 정도였다.
맹목적으로 주입된 서방 대륙에 대한 분노는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만들었다.
이 말도 안 되는 논리에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과 판단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런 자들을 이미 배신자, 반란자로 취급해 죽이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이왕 죽을 거! 멍청한 새끼들 모가지나 더 따고 뒈지자! 다 죽여 버려!”
자유의 날개 단원들은 이를 악물고 수적으로 몇 배는 더 우세한 군인들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미 끝이 정해진, 불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과 같은 돌진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빠직! 빠직! 빠지지직!
“아, 아니? 저게 뭐지?”
“이게 무슨……. 끄아아악!”
하늘에서 번쩍하던 섬광을 확인한 군인들이 무어라고 말을 채 끝맺을 새도 없이.
콰콰콰쾅! 쾅! 콰쾅!
드넓은 창공에서 수없이 많은 다발의 고압 전류가 생겨나 일제히 군인들을 타격했다.
단지 섬광만 번쩍인 것이 아니라, 전류 하나하나가 파괴적인 폭발력을 지닌 ‘재앙’이었다.
“끄어!”
“크악!”
사방에서 들리는 것이라고는 단말마의 비명밖에 없었다.
갑자기 아무것도 없던 창공에서 우뚝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한 남자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실례하지.”
그 옆에 나타난 백발노인이 단원들을 빠르게 낚아채며, 그들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신속하게 전장을 이탈해 안전지대로 가는 모습이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현장에서 자유의 날개 단원들과 함께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하려 했던 류원석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본대의 지원이 아니었다.
아무리 봐도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닌 두 존재가 갑자기 나타나 자신들을 구하고 적군을 공격하고 있었다.
콰직! 콰직! 콰지지직!
마치 뇌신이 강림하기라도 한 듯 번개 줄기는 그 이후로도 한참을 끝없이 내리쳤다.
심지어 어느 순간에는 마치 분노하는 듯한 신의 형상 같은 것이 창공에 진하게 생겨나기도 했다.
그때는 전과 비교도 안 될 정도의 굉장한 위력의 전류가 내리쳤고, 지면에는 수m의 구덩이가 파였다.
그로부터 1분 후.
“대장, 대체 어찌 된 겁니까?”
“모르겠다. 한 사람에 의해 보안군 모두가 전멸 당했어. 어림잡아 백 명은 넘어 보였는데…….”
류원석이 가리킨 자리에는 바람에 머리를 흩날리며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남자가 있었다.
바로 자레드였다.
* * *
‘걱정했던 것보다 놈들의 수준이 썩 높지는 않은 것 같군.’
나는 남김없이 몰살당한 적들의 흔적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제법 위력적인 반격을 펼치는 녀석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한 놈도 없었다.
물론 놈들의 실력이 동방 대륙 전체를 대표하는 실력은 아닌 만큼 속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초전을 압도적인 화력으로 제압했다는 점에서 시작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아의 구분은 확실했다.
‘붉은 거미’가 그려진 견장을 차고 있는 군인들이 바로 우리 나스 대륙의 적이 될 놈들이고.
‘백색 날개’가 그려진 견장을 찬 사람들이 우리에게 도움을 주려고 했던 존재다.
쉬이이.
나는 적막감이 감도는 현장에 빠르게 착지했다.
방금 전의 일격으로 적군은 물론이거니와 주변에 있던 모든 감지 시설들이 박살이 났다.
현대식 문명의 틀을 갖고 있어서인지 CCTV 같은 장치도 제법 많았던 것이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내가 펼친 마법 정도는 그들이 보는 화면 속에 담겼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들에게 일부러 보라고 한 의도도 있었다.
그러면 추가로 지원부대를 보내든 아니면 대화를 요청하든 간에 어떤 식으로든 제스처를 취할 테니까.
“저희를 도와주신 분이십니까?”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땅에 내려오기 무섭게 그들은 내게 달려와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통역 마법을 통해 듣는 탓에 약간의 시간차가 생기긴 했지만, 내용은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둘은 나스 대륙, 아니 서방 대륙에서 왔습니다. 곧 임박할 전쟁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요.”
가감 없이 목적을 밝혔다.
이들이 설령 아군이 아닌 적이 될 존재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우리는 이미 동방 대륙과의 전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으니까.
“아? 하지만 결계는 온전한 상태로는 절대 넘어갈 수 없는…….”
“예외는 있는 법이니까요.”
그들은 나와 베르하드가 생채기 하나 없이 결계를 넘어온 것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일단…….”
남자가 말을 이어 가려는 순간.
애애앵! 애애앵!
사이렌 경보가 울렸다.
현장에 문제가 생긴 것을 모를 리 없을 테니, 바로 다음의 대비 체계가 가동된 것일 터.
확실히 나스 대륙과는 다른 문명을 가진 세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기억하는 현대의 모습과 유사해서 크게 당황스럽지는 않다는 것.
반면 베르하드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사이렌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파악하려는 모습이었다.
“베르하드 님, 일단 전원 이동하죠. 아까 여기로 오면서 봐 둔 은신처가 있습니다.”
“알겠다.”
“모두 손을 잡으십시오. 여기서 전부 다 함께 벗어날 겁니다.”
“예?”
“시간 없습니다. 어서.”
얼떨결에 그들은 모두 손을 맞잡았다. 인원은 약 15명가량.
많은 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모두가 투지와 열의로 가득 찬 모습이었다.
그리고.
파아앗!
나는 멀티 텔레포트를 이용해서 모두를 신속하게 현장에서 이탈시켰다.
그렇게 우리는 눈 깜짝할 사이, 수km는 족히 떨어진 인적 드문 야산에 도착했다.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확실하게 자유로운 곳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마음 편하게 그들의 상태를 쭉 살펴보니 다행히 부상자는 없었다.
“주변 경계는 내가 하마.”
베르하드는 상공으로 날아올라, 주변을 꼼꼼하게 살폈다.
아까 드론도 봤고, 별도의 감시 체계가 있는 것도 확인한 만큼 만전을 기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나는 대장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조심스럽게 소속과 이름을 밝혔다.
“저는 서방 대륙에서 온 자레드 폰 유칼레스라고 합니다. 서방 대륙을 통일한, 크리비아 제국의 황제죠.”
다음 순간.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
열다섯의 일원 모두가 할 말을 잃은 듯 침묵을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