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5
제 35화
13장. 우리 영지가 달라졌어요! – 2화
지금처럼 나스 대륙에서 정복 전쟁이 활발했던 시기는 없었다.
소식이 실시간으로 전해지지 않을 뿐, 대륙 전역에서 많은 영지가 치열한 전쟁을 반복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의 영주가 내일은 목 없는 시체가 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이웃 영지는 기본적으로 적이라고 간주해야 한다.
천륜? 인륜?
그런 것은 전혀 안전장치가 될 수 없는 춘추전국시대였다.
실제로 형제가 각각 영주로 있는 영지끼리도 전쟁이 벌어져, 동생이었던 영주가 붙잡혀 처형당한 일도 있었다.
아들이 아버지를 공격하는 패륜도 이제는 더 이상 충격적인 소식이 아니었다.
그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영지가 특정 왕국이나 제국에 귀속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작위 체계 역시 상당히 무너져 있었다. 중심점이 될 대국이 없다 보니, 인접국의 국왕이나 황제가 선심성으로 남발하는 작위를 받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개판이었다.
‘대놓고 적대감을 드러내면 하수, 가만히 있으면 중수, 온갖 아양을 떨며 꼬리를 치면 고수지.’
나는 전부터 내 나름대로의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은 바로 이웃 영지인 마요르카 영지와 로넬라 영지에 선물 공세를 하는 일.
나는 두 영지에 우리 영지의 특산품인 크리비아 마정석을 비롯해서 각종 희귀 해산물을 보냈다.
잘 보이려고?
아니다.
힘이 없으니, 굴욕의 외교로 평화를 유지하려고?
더더욱 아니다.
확실한 저자세인 것처럼 보이기 위함이었다. 즉, 겁먹은 영주의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한 것이다.
분명 우리 영지는 두 영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것은 맞다. 무시당하고 있는 것도 맞고.
그래서 난 현생에서 각성한 시점부터, 미래의 여러 시나리오 중 하나를 확신하게 되었다.
바로 전쟁이었다.
시기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그들은 언젠가 우리 영지를 침공할 것이라고 말이다.
약육강식의 군웅할거 시대에서 먹잇감이 될 약소국을 노리는 것은 당연한 정복자의 본능이니까.
그래서 화전 양면 전술을 썼다.
라키스를 통해 대내적으로 은밀히 군사를 훈련시키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두 영지에 평화를 바라는 듯한 뉘앙스를 강하게 풍겼다. 친교의 서신은 물론이고, 요구하지도 않은 공물까지 보냈다.
이 부분을 두고, 군에서는 이런저런 말이 오가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난 내가 세운 전략에 확신이 있었기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똑똑.
그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바로 헤이즈의 목소리가 들렸다.
“영주님, 라키스 경께서 오셨어요.”
“경을 집무실로 모셔라. 그곳으로 갈 것이니.”
“네, 영주님.”
라키스와 영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계획이라 아침부터 그를 불렀던 터였다.
요즘 라키스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의 격무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평불만이나 힘든 내색 없이 열심히 일해 주는 것을 보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때마다 나는 느꼈다.
전생의 에서는 그저 하찮은 취급을 받았을지도 모를 인물들이 현생의 내게는 매우 중요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신이시여! 어떤 존재인지는 모르겠지만 보고 계십니까? 보고 계시다면, 내 다짐을 들으십시오. 나는 이번 생에서만큼은 평범한 엑스트라가 아니라 중요한 사람이 꼭 될 겁니다. 주인공이 될 수 없다면, 주인공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나는 힘주어 다짐했다.
내 곁에 있는 사람 하나하나, 인연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소중했다. 그래서 잃고 싶지 않았다.
전쟁은 이 모든 것을 사라지게 만들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다.
새드 엔딩으로 끝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 * *
5분 후.
자레드와 라키스가 집무실에서 만났다.
자레드는 헤이즈를 시켜 집무실의 내문(內門)과 외문(外門)을 모두 닫게 했다.
외문을 설치한 지는 좀 됐는데, 집무실 안에서 나누는 대화를 한 마디도 새어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자레드가 만든 방음 구조였다.
그 덕분에 외문 밖에 가까이 서 있는 헤이즈도 절대로 안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확실한 기밀 유지가 되는 셈이다.
“영주님, 일개 치안대장에 불과한 제가 영지 전체의 상황을 브리핑하는 역할을 해도 될는지요?”
“내 앞에서는 사고의 폭을 유연하게 가져가도록 하시오. 누가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소. 어떤 마음으로 하는지가 중요하지. 직위에 얽매이지 마시오. 판단은 내가 하오.”
“예, 영주님. 농경 파트의 오브렌 경과 상업 파트의 아빌라 경이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셔서 필요한 자료를 모두 정리했습니다. 특히 아르케네스 상단으로부터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자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역시 아르케네스였다.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사뭇 무거웠던 자레드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르케네스를 영입한 것은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가 됐다.
그는 물 만난 고기처럼 활약하고 있었고, 상단의 규모는 하루가 멀다 하고 커지고 있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조만간 기존의 영지 직영 상단으로 있는 아이히만 상단의 규모를 제칠 것이라는 전망도 있을 정도였다.
자레드가 의자를 당겨 앉으며, 라키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좋소. 쭉 막힘없이 이야기를 들어 봅시다.”
“최근 영지의 주 수입원은 악몽의 숲 입장료, 통행료, 세금, 직영 아르케네스 상단의 약초 및 포션 판매, 그리고 레드 고블린과의 거래로 얻은 금의 유입입니다.”
“그렇소. 레드 고블린과의 거래는 어떻소?”
“상당히 만족스럽다고 합니다. 고블린 로드 이바니바 님께서 양질의 스톤을 공급해 줘서 고맙다며, 이번에 한 수레의 금을 더 주셨다고 하더군요. 그 가치만 따져도 금화 4000골드에 달합니다.”
“그들에게 철과 금은 흔하나 스톤은 귀하니까 어쩌면 당연한 씀씀이일지도 모르겠군. 전쟁을 좋아하지 않으니, 철도 그다지 필요하지 않을 것이고.”
“이 자금의 대부분은 군비로 지출됐습니다.”
“그렇게 내가 지시했지.”
“예. 영주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영지 내 곳곳에 위치한 주요 도로들을 모두 정비하고 보수하였으며, 모든 공방을 24시간 가동하여 무기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생산된 무기는 모두 비밀 창고에 보관되고 있으며,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현재 훈련 상황은 어떻소?”
“영주님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다수의 유능한 교관들을 복귀시킴으로써, 엄청난 시너지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훈련 상태는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밥과 고기를 배불리 먹으며 훈련을 하니, 병사들의 의욕도 매우 높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오. 앞으로도 병사들에게 지출되는 군비는 아끼지 말도록 하시오. 양질의 빵과 맛 좋은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말이오.”
“예, 영주님.”
“자, 계속 얘기를 들어 봅시다.”
“그 외에도 관개 시설 정비를 모두 완료하였습니다. 이제 안정적으로 라이나 호(湖)의 물을 농지에 공급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고질적인 물 걱정은 완벽히 사라졌습니다!”
“그러면 농지 정비도 어느 정도는 끝났고…….”
“예. 도로 정비도 끝나면서, 구획을 나누어 영지를 관리하는 것이 한결 수월해졌습니다. 영지 행정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 참, 농업관, 상업관, 치안관들의 근무 현황은 어떻소?”
“이번에 영주님께서 신설하신 행정 부서의 인재들은 열성적으로 상관을 돕고 있는 중입니다. 오브렌 경, 아빌라 경, 그리고 저, 모두가 만족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업무 분담이 잘되기는 할 것이오.”
“예, 이 모든 것이 영주님의 혜안 덕분입니다.”
라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
자레드는 행정 부서에 새로운 관직을 신설하고, 관련 인력을 대거 충원했다.
인맥이나 혈연 따위로 인재를 선발한 것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직접 인재를 채용했던 것이다.
자레드는 그들과 직접 면담을 하면서 포부와 계획을 꼼꼼하게 들었고, 한편으로는 심안을 이용해 잠재력을 교차 검증했다.
종국에 자레드가 선별하여 합격시킨 인재들은 저마다 해당 분야에서 발전할 가능성이 높은 유망주였다.
올해로 일흔을 넘긴 오브렌과 아빌라의 대체 인력으로 키우기에도 손색이 없었던 것이다.
‘합격자 모두 오래전부터 그토록 원하던 분야에서 일하게 된 터라, 충성도도 폭발적으로 올랐지.’
기억을 떠올린 자레드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어찌나 열망이 대단했는지, 업무를 시작함과 동시에 전원이 충성도 100을 찍었다.
그야말로 ‘영주님, 충성 충성!’이었다.
“이런 말을 하기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모든 것이 순조롭습니다. 정말 너무 잘 풀린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조심스러울 필요는 없소. 나도, 경도, 다수의 가신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이오.”
“특히 영주님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군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합니다. 다만 말씀드리기 죄송한 부분이 있사온데…….”
“괜찮소. 말하시오. 내가 과거에 저지른 과오에 대한 반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오.”
“사실 은퇴한 군인들이 꽤 많았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매년 군의 예산은 기록적인 삭감을 당하고 있었고, 그런 까닭에 봉급이 많이 지급되는 베테랑들이 우선적으로 정리되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영주님의 엄명이 있으셨고…….”
라키스가 고개를 푹 숙였다.
결국 이것도 자레드가 직접 결정하고 행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자레드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영주지만, 그때의 자레드는 분명 답 없는 망나니 X끼가 맞았다.
자레드가 얼굴을 붉혔다.
“면목 없을 따름이오.”
“아닙니다. 이제부터는 기쁜 소식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영주님의 지원에 힘입어, 노련한 군인들이 대거 복귀하였습니다. 과거 마수들의 침공에서 영지를 지켜 낸 경험이 많은 역전의 용사들이니, 영주님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그들의 수는 얼마나 되오?”
“최소 100명은 됩니다. 이들 역시 분지에서 훈련 중입니다. 대외적으로 기밀은 완벽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입이 가벼운 자들은 애초에 복귀시키지도 않았습니다.”
“오…….”
얼추 계산하자면 이렇다.
영지의 공식적인 병력의 수는 총 300명 안팎.
하지만 숨겨진 별동대를 포함시키면 1300명이 넘어간다.
사실상 우리 영지에서 가용 가능한 모든 전력을 동원한 셈이다. 외부 용병의 영입 없이 말이다.
어쨌든 숨겨진 별동대가 있다는 것은 회심의 일격에 쓸 조커 카드를 확실하게 들고 있는 셈이었다.
“모든 준비가 완벽합니다. 영주님, 이제 저희는 어떤 전투도 최고의 컨디션으로 치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투지를 불태우는 라키스의 목소리에서 비장함이 느껴졌다.
그는 이 감정 그대로, 병사들을 훈련하고 교육하며 같은 열정을 불어넣고 있었다.
바로 그때.
똑똑똑. 똑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헤이즈의 목소리가 들렸다.
“영주님! 지금 막 마요르카 영지에서 마법사 아크론 님과 사신단이 도착했어요!”
“뭐? 아크론이 직접?”
라키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뭔가를 더 요구하려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협박하거나.”
수석 마법사인 아크론을 보낸 이유는 하나다.
바로 영주의 의중을 자신의 오른팔을 통해, 가감 없이 정확하게 전달하겠다는 뜻이다.
아크론은 영지 간의 전쟁을 하게 될 경우, 내가 가장 먼저 마주치게 될 가능성이 높은 적수다.
결코 가벼운 상대가 아니었다.
“올 것이 왔군.”
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간 고분고분 공물을 받아먹던 녀석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은.
곧 피바람이 불어닥칠 것을 알리는 전조이기도 했으니까.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전생의 경험이, 직감이, 그리고 냉정한 판단력이! 올바른 미래로 나아갈 길을 말해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