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51
제 51화
20장. 나를 위해, 내 영지를 위해 – 1화
마하트 3세의 죽음을 확인한 나는 성큼성큼 옥좌로 향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아직 내부에 마기가 남아 있으니, 이를 밖으로 흘려보낼 장치를 열 겁니다! 기다려요!”
내 말에 벽 너머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던 엘라가 손가락을 모아,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돈이나 재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응당 전투의 끝과 연결될 전리품에도 관심이 있을 법한데.
그녀는 오히려 여유로워 보였다. 지금 이 상황을 즐겁게 보고 있는 것 같다고 할까?
그래서인지 팔짱을 낀 채, 어느새 옆으로 온 클로이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나는 바로 옥좌 뒤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문을 확인했다.
지하 대석실의 마기를 밖으로 빼내는 일종의 환기장치이자 ‘황제의 밀실’로 향하는 문이 함께 있는 곳이다.
드륵. 드르르륵.
이내 마하트 3세의 눈물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과연 그 안에 위치한 황제의 밀실이 보였다.
나는 입구에 보란 듯이 설치되어 있는 환기장치의 레버를 쭉 아래로 당겼다.
그러자 지하 대석실 쪽에서 쉬이이익, 하는 소리가 나며 바람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좋아, 그럼……!”
꿀꺽.
나도 모르게 군침을 삼켰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전리품 획득의 시간이다.
* * *
“캬……. 내가 에서 이 물약을 먹고 얼마나 행복했는지! 달콤한 물약 한 사발에 공짜 레벨업을 하는 것만큼 놀고먹는 느낌도 없을 거야. 그렇지?”
나는 망설일 것도 없이, 바로 물약의 병을 열어서는 내용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에서는 공략 완료 시에 9%의 확률로만 드롭 되는 전리품이었는데, 다행히 나와 줬다.
나는 91%의 실패보다, 9%의 성공에 가까운 사람인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물약을 마시기 무섭게 레벨업 메시지가 연신 눈을 어지럽혔다.
이 물약은 정해진 경험치만을 제공하기 때문에 레벨이 낮을 때, 상대적 체감 효과가 큰 편이다.
레벨 100이 넘은 시점에 마시게 되면, 레벨이 1이 오르면 많이 오르는 것이고 경험치 바 일부를 채우는 정도가 고작일 때도 많다.
[…….] [레벨업! Lv. 30 달성!] [레벨 30을 달성하여, 퀘스트 ‘세 번째 한계 돌파’를 완료했습니다. 보상으로 지혜 30을 획득하였습니다!]‘오늘 완전히 날이네, 날이야!’
입장할 때만 해도, 레벨 8이었던 내가 이제는 레벨 30이 됐다.
오늘 그동안 참아 왔던 레벨업을 단번에 끌어낸 것은 전부터 노렸던 칭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칭호 알림이 활성화됐다.
[칭호 ‘지칠 줄 모르는 도전자’를 획득하였습니다. 신의 축복과 가호가 내려, ‘구원의 신비’가 1회 활성화됩니다!]구원의 신비.
체력이 1 미만으로 떨어질 경우, 전신을 보호하는 무적의 역장이 10초간 유지되는 신의 가호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어떤 신이 내린 가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인간에게 매우 호의적인 신들 중의 하나가 만든 가호로 알려져 있다.
10초간 모든 공격 행위에 면역이 되기에, 위험 상황을 탈출하거나 체력을 회복하는 시간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앞으로 숱한 시련과 위기 상황에 마주해야 하는 – 때때로 죽기에 딱 좋은 – 나로서는 꼭 필요한 일회용 안전장치이기도 했다.
이렇게 신과 연계된 가호는 특정한 상황을 만족시킬 때만 얻을 수 있기에, 항상 신경 써서 챙길 필요가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이 순간에 어디선가 성장하고 있을 주인공도 차곡차곡 이런 가호들을 얻고 있을 것이다.
물론 녀석은 주인공 보정을 잔뜩 받아, 매번 운 좋게 얻겠지만!
“아차!”
나는 무의식적으로 내용물을 다 마신 물약 유리병을 바닥에 휙 던지려다가, 아슬아슬하게 반대편 손으로 병을 붙잡았다.
‘나중에 리필 해야지.’
설명에는 일회성의 물약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대신관의 축복을 받은 성수를 가득 채운 다음에 그대로 둔다.
그러면 매년 1월 1일에 성수가 담긴 물약 병이 다시 라피르의 물약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 기억은.
현실에서처럼 하찮은 유리병 하나라도 소중하게 여겼던 어떤 자린고비 유저 – 누군지는 비밀 – 의 경험이 남긴 값진 유산이다.
소유권 리셋 버그와 같은 리셋 버그 계열의 일종이다.
라피르의 물약에 한정해서만 1년에 딱 한 번 발동하는 버그였기 때문에, 관심을 받거나 고쳐지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무덤을 쉽게 공략하려면, 지금보다 한참 높은 레벨 80 정도의 시점에 와야 정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발진이 딱히 고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계속 황제의 밀실에서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전리품 확인에 들어갔다.
* * *
5분 후.
나는 우선 전리품으로 얻은 아티팩트는 모두 아공간에 보관했다.
옵션과 관련해 내가 사용할지, 혹은 보관할지의 유무는 저택으로 돌아가 결정하기 위함이었다.
그 대신, 눈길을 끄는 두 전리품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하게 파악에 들어갔다.
여기서 얻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전리품이 두 개나 더 있었기 때문이다.
[마도 공학 제작서 – 영상 장치] [마정석에 특수한 마법진을 그려 넣어, 약 1시간 동안의 영상을 저장하고 출력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듭니다.]‘이 세계에서 방송할 일은 없겠지만, 녹화 용도로는 쓸 만하겠어. 나중에 제작 레벨이 오르고, 최고급 마정석의 공급이 원활해지면 CCTV 용도로도 쓸 수 있겠지.’
영상 장치 제작서를 얻었다.
에서는 캐시 상점에서 팔던 물건이었다.
유저들이 자신의 플레이를 방송과 연동하기 위해 필요한 장치 정도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이 세계에는 그런 방송이 당연히 존재하지도 않을뿐더러, 메인 스토리로부터 10년 전인 지금 그런 장치가 있을까 싶었는데.
마침 있었다.
이것이 있다면 이웃 영지나 적지에 단순히 정찰병만 보내는 것보다 훨씬 더 디테일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을 터!
영지 경영 및 정보활동에 필요한 최고의 수단을 얻은 셈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고대 마법서 – 마력 치환술] [마법에 심취한 것으로도 모자라 종국에는 자신의 영혼을 아티팩트에 봉인시킨 괴짜 마법사 이베나르가 남긴 마법서 5종 중 하나입니다.체력 1이 하락할 대미지를 20의 마력 소모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단, 마력 치환술이 적용되는 동안에는 마력 회복이 멈춥니다.]
이베나르는 나스 대륙력 400년대, 그러니까 천년 전의 마법사로 알려져 있다.
온갖 특이한 마법과 마도 공학을 연구했던 것으로 유명하다고 역사서에 남아 있지만, 전해진 지식은 하나도 없었다.
한데 여기서 실전(失傳)된 그의 지식 중 하나를 얻은 것이다.
체력과 마력의 교환비가 심하게 불균형이기는 하지만, 체력에 스탯 투자를 기피하는 마법사의 입장에서는 좋은 선택지였다.
현재 1300이 넘어가는 마력을 생각하면, 65의 추가 체력을 공짜로 얻은 셈이나 다름없고 말이다.
“후, 정말 큰 의미가 있는 공략이었어.”
나는 그렇게 뜨거운 숨을 몰아쉬며, 황제의 밀실을 나섰다.
나서기 전.
마침 밀실 구석에 놓여 있던 길쭉한 천 하나를 허리에 두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하트 3세와의 전투에서 바지가 흔적도 없이 불타 버린 상황이라, 민망한 하체를 가릴 수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졸지에 치마를 입은 것처럼 되긴 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이번 무덤 공략에서 나는 아티팩트 일곱 개를 포함한 전리품을 남김없이 챙겼다.
소기의 목적을 확실하게 달성한 알찬 공략이었다.
* * *
되돌아 무덤 밖으로 나오는 길.
자레드 일행은 들어왔을 때와 같은 방법으로 돌아 나왔고,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막간을 이용해 이자벨과 클로이의 스탯을 확인한 자레드는 두 사람의 레벨이 제법 올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자벨의 경우 환시의 주술이 전에 비해 2배 이상 강력해졌고, 마력 수치도 2배가 올랐다.
단기의 수련이었음에도 스스로 체감하고 느낀 바가 많았던 것이다.
클로이의 경우에는 특수 성향에 약점 분석 C가 생겨났으며, 레벨과 함께 민첩 스탯이 올랐다.
각각 주력 분야의 급상승을 경험한 셈이다.
“자레드 님, 감사합니다.”
클로이가 먼저 자레드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엘라에게 받는 교육도 성장에는 큰 도움이 됐지만, 이번 같은 실전은 처음이었다.
실전을 이론으로만 배워, 시작 전만 해도 생각이 많았던 그녀였다.
하지만 자레드의 든든한 지원 아래 실전 경험을 쌓은 것이 매우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스스로 느끼는 바가 많았다.
이론과 실전은 정말 천지 차이라는 것을.
그리고 자레드의 모습을 하나하나 보면서 배웠다.
상황 하나하나의 유불리를 머리로 따지는 것보다, 직관적인 몸의 반응이 더 신속할 때가 있음을 말이다.
‘스승님이 힘으로 제압하는 타입이라면, 자레드 님은 날카롭게 약점을 노리는 타입이야. 내게는 사실 자레드 님과 같은 노림수가 더 필요한데…….’
성향만 놓고 봐서는 자레드의 전투 방식에 더 관심이 갔다.
전면전을 피하고, 치고 빠지는 게릴라식 전투를 하는 그의 대응 방식이 암살자인 자신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꼭 가르침을 청하자.’
클로이는 결심을 굳혔다.
엘라도 분명 좋은 스승이지만, 자레드도 자신에게 많은 가르침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토우를 상대하면서 다양한 공격 옵션을 시도한 것만으로도 얻은 것이 꽤 많았던 것이다.
그때, 고개를 휙 돌린 자레드의 눈빛과 클로이의 눈빛이 순간 마주쳤다.
이렇게 정면으로 마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클로이가 흠칫 놀라 고개를 숙였다.
뭐랄까, 가슴이 두근거리는 찌릿찌릿한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자레드는 별생각이 없는지 피식 웃고는 엘라에게 물었다.
“마정석은 많이 담았습니까?”
“아주 많이요! 이 정도 수준이면 클로이는 제가 받은 의뢰비만큼이나 챙겨 가겠는걸요?”
엘라는 싱글벙글했다.
자신의 전리품은 아니지만, 제자인 클로이가 이렇게 성과를 낸 것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클로이가 말했다.
“스승님의 몫도 따로 챙겨 드리겠습니다.”
“상납도 아니고, 그게 무슨 소리야? 노력의 대가는 노력을 한 사람이 취하는 게 맞는 거야. 그런 마음 씀씀이는 조심하도록 해.”
“스승님.”
“세상은 그렇게 순수하지 않거든. 내 몫은 칼같이 내가 챙기는 거야. 함부로 양보하지 않고.”
“깊은 공감이 가는군요.”
자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엘라의 말을 들을 때면, 한 번씩 자레드도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되곤 했다.
맞는 말이다.
세상은 나를 우선시하는 사람에게 더 유리하게 돌아가곤 한다.
나를 내려놓은 채, 남을 돕는 이타적인 삶을 살아서는 남는 것이 없다.
‘그런 사람을 전생에서는 호구라고 부르곤 했었지.’
돌이켜 생각해 보면, 자신도 무척 호구 같은 삶을 살았다.
가진 건 쥐뿔도 없으면서, 주변 사람들을 배려한답시고 철저하게 나를 희생시키며 살았다.
그리고 아득바득 자신의 이익과 권리를 챙기려는 사람들을 뒤에서 욕하곤 했었다.
‘현생에서는 절대 그러지 않을 거야. 반드시 나를 위해, 그리고 내 영지를 위해서 살겠어. 나를 방해하는 그 무엇도 용서하지 않겠어!’
자레드가 힘주어 다짐했다.
이제 영지에서 선점할 수 있는 이득이라는 이득은 모두 챙겼다.
델루크의 은신처를 털어 아티팩트를 얻었고, 마하트 3세의 무덤을 공략하여 레벨과 또 다른 아티팩트를 얻은 것이다.
‘이제 영지 발전에 역량을 집중해 보실까?’
자레드의 눈빛이 거듭 차오르는 총기(聰氣)로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