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culus of Joseon RAW novel - Chapter 66
66화 추풍령전투 7
그러자 정범례가 한쪽 눈썹을 치켜떴다.
“겨우 닭 다섯 마리 가지고 되겠습니까? 열 마리 만큼은 베어야죠!”
“너라면 가능할 게다.”
“그런가요.”
정범례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정범례의 미소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형님,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무슨 부탁 말인가?”
“취계와 고기를 배급해 준다고 하셨던 약속은 꼭 지켜주십시오.”
“내가 내 입으로 뱉은 말이니 지키지 않을 리가 있겠느냐?”
“형님이 약속을 어기리라 생각지 않습니다. 단지 지금까지 풀떼기나 간신히 먹으면서 버틴 병졸들이 안쓰러워서 그렇습니다. 다들 형님의 말에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거든요. 그러니 약속을 꼭 지켜주십시오.”
“별 걱정을……. 내 무슨 수를 쓰더라도 반드시 그 약속은 지킬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나도 정범례처럼 지그시 웃으며 대답했다.
“아, 그리고 형님! 부탁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뭔가?”
“제가 닭 열 마리 만큼의 왜적들을 베면, 그때는 그 열 마리를 모두 좌위대에게 나눠주십시오.”
“좌위대에게?”
“네. 저를 믿고 따라줬는데, 그 정도 포상은 해야죠.”
“알겠다. 그리 하마.”
그러자.
와아아―!
뒤에서 좌위대가 크게 환호성을 질렀다.
평소 말수가 적은 정범례.
단순하긴 해도 그는 늘 올곧고 정직했다.
쿠리야마 토시야스에게 조경의 목을 베겠다고 하자, 내게 곧장 칼을 들이밀 정도였으니까.
정범례는 전투에 들어가기만 하면 아주 잔인하게 변했다.
함께 전장을 누비면서도 가끔 소름 돋을 때가 많았는데…….
이제 보니 의외로 병졸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지극했던 모양이다.
“하하하. 이런 식으로 나오시는 겁니까? 이거 안 되겠군요.”
정범례의 말에 김천남이 목과 어깨를 후두두 털며 말했다.
그러고는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우리 우위대는 열다섯 마리만큼을 약속한다! 본 우위장을 믿으라!”
와아아―!
김천남의 말에 이번에는 우위대가 환호성을 질러댔다.
이에 질세라.
“그럼 우리는 스무 마리로 하자!”
“거 그 정도 가지고 되겠수? 우리 후위대는 오십 마리다!”
이희춘과 황치원도 뒤를 돌아보며 한마디씩 했다.
와아아―!
그때마다 감사군 기병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의 유치한 경쟁에 또 한 번 미소가 지어졌다.
난 지휘자들과 감사군 기병들을 돌아보며 외쳤다.
“지금까지 대원 몇 명의 목숨을 잃었다. 죽은 그들을 생각하면 저 왜놈들을 하나하나 찢어발겨도 결코 속이 풀리지 않을 것만 같다!”
방금 내 말에 지휘자들과 감사군 기병들은 일순간 조용해졌다.
“난 희생된 자들의 목숨을 가벼이 여겼던 사람이 아니다. 또한 그대들의 목숨을 가벼이 여기지도 않는다. 하여 이제부터 목숨을 잃는 자들을 결코 용서치 않겠다. 명령이다! 그대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되, 이 전쟁이 끝나는 그날까지 목숨을 잃지 말도록 하라!”
네―!
감사군 기병들은 목청이 터져라 대답했다.
그들의 대답 소리는 추풍령 일대를 가득 메우고도 남았다.
“하나 더! 취계가 되었든, 고기가 되었든. 본 방어사가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너희들에게 아낌없이 베풀어 주도록 하겠다. 그러니 아침까지 부디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살아남도록 하라! 알겠나?”
네―!
이번에도 감사군 기병들은 우렁차게 대답했다.
이 정도면 지장산에서 정신없이 부상병들을 돌보는 아군에게도, 후방에서 대기하며 내 명을 기다리는 후속부대에게도 모두 들릴 만했다.
또한 웅이산 아래에서 재정비 중인 적에게도 들렸을 것이다.
아군과는 다르게 우리의 함성이 위협적으로 들렸겠지만.
‘그래,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다행이다. 할 수 있다!’
난 마음을 가다듬으며 심호흡을 했다.
“이제 어쩌실 겁니까?”
그때 김세빈이 물어왔다.
“어쩌긴. 다시 가서 휘젓고 와야지.”
“네?”
“이제 슬슬 저것들은 제대로 대형을 갖춰 진격하려 할 게다.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하겠지. 나름 머리 굴린다고 시간 끌기 위해 몇 놈을 이쪽으로 내보내지 않을까?”
“그럼 어떻게 합니까?”
“오면 환영 인사를 해줘야지!”
난 다시 뒤를 돌아보며 명을 내렸다.
“감사군 기병들은 잠시 쉬면서 몸이나 풀고 있거라!”
네―!
“그리고 이희춘, 정범례, 김천남, 황치원, 최윤, 김세빈! 노함이 없어 아쉽긴 한데……. 가자! 조선 최강의 무인들이 어떤 실력을 갖고 있는지 마음껏 보여주고 오자!”
와아아―!
나와 이희춘, 정범례, 김천남, 황치원, 최윤, 김세빈이 앞으로 나서자 뒤에서 감사군 기병들이 또 다시 함성을 질렀다.
두두두두두―!
나와 이희춘, 정범례, 김천남이 앞에서 달리고,
김세빈, 황치원, 최윤이 그 뒤를 달렸다.
그렇게 우리 7명은 앞으로 쭉 내달렸다.
예상대로 웅이산 쪽에서 말 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적군에게 아군 기병은 성가신 존재들일 터.
어떻게든 우리부터 처리하고 싶어 안달이 났을 것이다.
그럴 경우 저들이 내놓을 수 있는 수는 몇 가지 없다.
첫 번째, 우리와 똑같이 기병을 이용한 전술을 펼쳐가며 조총을 쏘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어디까지나 상대가 보병 위주의 부대일 경우에나 효과적인 방법이다.
조총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훈련.
아군이 그런 훈련을 받았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기동성을 이용해 적군에게 최대한 접근하여 마구잡이로 쏴댔을 뿐이었다.
만약 기병과 기병이 맞붙는 싸움에서 총을 사용한다면?
어차피 적군도 흔들리는 말 위에서 총을 정확하게 쏘는 훈련을 해 본 경험이 전혀 없을 것이다.
안 그래도 총을 쏴서 맞추기 힘든 기병부대를 무슨 재주로 말을 타고 다니면서 맞출 수 있겠는가.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렇더라도 방금 내 전술을 경험해봤기에, 적 기병이 조총을 들고 뛰쳐나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딱 7명만 앞으로 나서게 한 것이다.
어두운 곳에서 원거리 무기를 가지고 소수의 인원을 상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는 기병을 이용해 우회 기동하여 아군 본대에 타격을 입히는 방법이다.
하지만 정상적인 참모나 지휘관이라면 이 방식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별이 반짝거린다고 해도,
오늘은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그믐밤이다.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공격 측이 수비를 하는 상대에게 우회 기동하는 우를 범할 인간은 없다.
상대가 매복을 계획했는지, 함정을 준비했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렇게 맹렬하게 공격을 퍼붓던 우리가 잠잠하게 대기하고 있으니, 적군으로써는 더더욱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적군은 우리가 무슨 꿍꿍이가 있구나 싶을 테니까.
물론 준비된 건 아무것도 없었다.
혹여 적군이 진짜로 우회 기동하여 지장산으로 건너가 아군을 괴롭힌다면, 나도 정말 답이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어차피 모 아니면 도다.
적군이 그리 나오지 않을 거라 확신하고 움직이는 길밖에 없다…….
만약, 정말 만약 지장산으로 우회한다면?
그때는 군관 손인갑이 어찌해 줄 것이라 믿어 보자.
두두두두두―!
“전부 산개해서 움직여라! 좌우로 갈지(之)자를 그리면서 달리고, 놈들의 머리통을 최대한 많이 박살내라!”
네―!
이희춘을 비롯한 6명은 대답과 동시에 움직였다.
왼쪽은 이희춘을 필두로 김세빈과 황치원이, 오른쪽은 정범례를 필두로 김천남과 최윤이 달렸다.
타앙―!
예상대로였다.
적군은 우리와 똑같이 기병을 이용해 조총을 쐈다.
하지만 우리의 숫자는 고작 7명.
우리를 제대로 맞출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적군의 숫자는 어림잡아 세어 봐도 약 50여 명 정도였는데, 여러 부대를 모아 급작스럽게 만든 티가 났다.
이들은 제대로 대형을 갖추지도 않았고, 일괄된 지휘체계로 지휘하지도 않았다.
여기저기에서 이래라저래라 하며 소리쳤고, 다들 어디로 가야될지 몰라 우왕좌왕해댔다.
“가운데부터 돌파한다!”
반면 우리는 호흡이 너무도 잘 맞았다.
흩어졌던 이희춘, 정범례, 김천남, 황치원, 최윤, 김세빈은 일제히 가운데로 모여 적 기병을 베었다.
“으헉!”
적 기병들은 조총에 탄환을 넣고 사격 준비를 해야 할지, 아니면 창을 들고 우리와 맞서야 될지 몰라 허둥지둥거렸다.
그럴수록 우리에게는 기회가 될 뿐이었다.
우리 7명은 창과 칼을 휘두르고, 활을 쏘며 미친 듯이 적 기병들을 하나하나 박살냈다.
적군 중 일부가 심지에 불을 붙이고, 조총을 쏠 준비를 했다.
“다시 흩어져!”
내가 힘껏 소리치자, 약속이나 한 듯이 이희춘, 정범례, 김천남, 황치원, 최윤, 김세빈은 한꺼번에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타아앙―!
당연히 조총은 엉뚱한 곳을 향해 탄환을 날렸다.
그러면 모두가 뭉쳐서 적군을 베고.
그러다 다시 흩어져서 적 조총을 피하고…….
그러길 몇 차례나 반복하며, 적 기병들의 목을 하나하나 날려버렸다.
그때.
“突撃!”
(돌격!)
웅이산 쪽에서 누군가 그렇게 외쳤다.
그러자 왜적들이 일제히 함성을 내지르며 이쪽으로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적 본대가 이제야 재정비를 마친 모양이었다.
그들은 나름 사나운 기세로 몰려왔다.
난 재빨리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언덕 위를 바라보았다.
‘옳거니!’
저 언덕 위에서 횃불 두 개가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박몽열이 분명했다.
투석 준비가 끝났다고 신호를 보내주고 있는 것이다!
“모두 뒤로 물러나라!”
난 모두에게 소리쳤다.
내 명에 따라 이희춘을 비롯한 여섯 사람은 빠르게 말을 달려 퇴각했다.
두두두두두―!
이제는 임기응변으로 행동해야 했다.
그것은 노함과 박몽열도 마찬가지였다.
난 사전에 그 어떤 수신호 약속도 하지 않았었다.
그럴만한 여유도 없었거니와 미처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함과 박몽열도 알아서 요령껏 적에게 투석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적군의 주력은 보병과 궁병, 그리고 일부의 조총병일 뿐이었다.
적군은 기병으로 충분히 시간을 벌면서 대형을 갖추고, 그 뒤에는 일제히 달려 나올 것이 뻔했다.
내가 노린 시점은 바로 이때였다.
적군이 대형을 갖춰 일제히 튀어나올 때.
그때 돌덩이를 던져 놈들의 머리통을 박살낼 생각이었다.
난 다시 한 번 언덕을 올려봤다.
박몽열이 횃불로 원을 그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짧은 시간에 노함과 수신호를 맞췄나 보다.
그러자.
슝―!
슈웅―!
피슈우웅―!
커다란 돌덩이가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적군들의 비명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슈우우웅―!
또 다시 퍼붓는 돌덩이.
그 바람에 적군의 대열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지장산 아래 넓은 벌판.
이곳이 바로 이용순이 제시했던 첫 번째 타격 장소였다.
이용순도 적군이 여기즈음에서 대열을 정비해 아군을 몰이하리라 예상했었다.
예상은 딱 들어맞았고, 마침 투석기도 와주었다.
이제 적군은 대열이 흐트러져, 또 한 번 대오를 정비할 수밖에 없다.
슈우우웅―!
또 돌이 날아갔다.
그러길 이번에도 수차례.
“あっちだ!”
(저쪽이다!)
그때 적군 쪽에서 누군가 그렇게 외쳤다.
아마도 그 누군가가 언덕 위의 박몽열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왜놈들 중 상당수가 언덕을 향해 우르르 몰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