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206
놈의 행동은 여전히 똑같다. 아무 짓도 하지 않고 「연막탄」으로 도망을 치는 것. 그리고…
[상대가 이번 턴에 사용한 카드 수 : 1장]카드 한 장을 사용하는 것. 저 카드가 놈이 쓰는 트릭의 열쇠일 것이다. 3회차를 하면서 「듀얼무림」에 있는 카드 대부분은 이미 알고 있는 상황.
나는 머릿속으로 놈이 계속해서 「연막탄」을 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떠올렸다.
“…어쩌면 데이터 변조가 아닌 걸지도.”
인정하기는 싫지만 저 안에 있는 것은 나를 토대로 만들어진 AI다. 내가 미약한 듀얼 중독 초기 증상이 있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룰을 바꿔 가면서까지 승리를 쟁취하려고 하는 인간은 아니다.
애초에 그럴 정도로 비열한 놈이면 내 앞에 나타나지도 않았을 테고.
그러니. 지금 놈은 룰 안에서 이런 기괴한 플레이를 하고 있는 것일 터.
내 생각이 맞다면. 천마가 쓰고 있는 카드는….
“혹시 「연막탄 조제」를 쓰고 있는 거냐?”
[잘도 알아챘군.]놈은 자신이 들고 있는 「연막탄 조제」를 우리들에게 보이도록 뒤집었다.
+
【연막탄 조제】
【내공 : 5】
【소유하고 있는 무기가 없을 때, 「연막탄」하나를 생성합니다.】
+
“역시나.”
“뭐가 역시나야!”
서윤하가 화를 냈다.
“연막탄 조제는 무기가 없어야만 효과가 적용되는 카드라고! 「연막탄」을 들고 있는 시점에서는 효과가 발동되지 않아!”
타당한 설명이다. 연막탄을 들고 있으면 「연막탄 조제」의 효과는 발동하지 않는다. 그러니 들고 있는 연막탄을 소비한 다음 듀얼에서야 「연막탄 조제」를 쓸 수 있는 것이다.
“연막탄 조제가 있어도 기껏해야 두 판에 한 판을 회피할 수 있을 뿐이야! 그렇게 쓰라고 만든 카드라고!”
[그거야….]“… 어디까지나 원래의 제작자 의도일 뿐이고.”
나는 씹어뱉듯 말했다. 내 대답에 서윤하는 추가적인 설명을 원하는 표정이었다.
“이 게임에서 액티브 무기는 카드와 별개로 언제든지 쓸 수 있는 프리 체인(free-chain) 의 능력을 가지고 있어.”
“…그렇지.”
“그리고 연막탄은 발동되면 바로 무기 슬롯에서 소멸되고.”
“…그렇지?”
“그럼 연막탄이 발동되고 듀얼이 무승부가 되기 전에 「연막탄 조제」를 쓰면 어떻게 될까?”
“…설마.”
바로 그 설마다. 연막탄의 효과는 발동된 상태지만 플레이어가 소지하고 있는 무기는 없는 상황.
즉. 연막탄 조제의 효과가 발동되는 상황이라는 거다.
“와… 게임 더럽게 하네.”
“더럽게 하는 게 아니라 룰을 극한까지 활용하는 것 뿐이지.”
실제로 카드를 쓰는 카드게임에서는 이런 상황에 심판이 끼어든다. 하지만 이 게임은 실제하는 게임도 아니고, 명문화된 규정이 있는 게임도 아니다.
게임의 룰은 「듀얼무림」에서 실행된다면 옳은 것이고, 실행되지 않는다면 그른 것.
지금의 플레이는 룰을 극한까지 활용하는 플레이일 뿐.
“인정하기 싫지만 꽤 하는군.”
[인정해 줘서 고맙군.]“이놈이고 저놈이고 게임 더럽게 하는 플레이어들 다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
서윤하가 천마에게 일방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왜인지 단수형이 아니라 복수형처럼 들리지만 착각이겠지.
상황은 변할 구석이 없었다. 놈은 「천마군림보」를 써서 절대적인 선공을 부여받고, 반드시 게임을 회피할 수 있는 연막탄을 사용한다.
“이거. 이길 방법 없는 것 같은데.”
서윤하가 울먹였다. 나는 서윤하의 어깨를 붙잡았다.
“걱정 마. 내가 저 자식을 이겨 줄 테니까.”
“그치만….”
절망적인 상황이다. 놈의 전법에는 빈틈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이 노트북 안에 있는 데이터가 얼마나 소중한데. 절대 사라지게 만들 수 없어.”
“「듀얼무림」이야기하는 거 맞지? 다음 확장팩 카드 이야기하는 거 아니지?”
“답이 뻔히 정해져 있는 질문은 하지 마.”
“…「듀얼무림」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거 맞지?”
눈을 감고 호흡을 집중했다. 반상盤上의 모든 가능성들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수천억 가지의 가능성들. 그 모든 가능성은 모조리 나의 승리를 부정하고 있었다.
너는 이길 수 없다.
세계가 내게 속삭였다. 거대한 우주는 나를 무릎꿇리고 패배를 승복하게 만들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게임은 질 수 있는 종류의 게임이 아니다.
나에게는 이 게임을 죽어도 이겨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러니 이길 수 없는 상황이라도. 이겨야만 하는 것이다.
이겨야 하기 때문에.
그 순간. 몇천억 가짓수의 선택 가운데 하나가 반짝였다. 거대한 우주 속에 있는 조그마한 가능성. 무한한 우주에 비하면 먼지만도 못한. 외롭고, 창백한 점에 불과한 선택.
그러나. 나를 승리로 인도할 선택지.
“…보였다.”
“이길 수 있어?”
나는 대답 대신 놈에게 듀얼을 다시 신청했다.
[허장성세인가.]“허장성세인지 아닌지는 보면 알겠지.”
놈의 행동은 여전히 똑같았다. 게임이 시작하자마자 연막탄을 터트리고, 새 연막탄을 만들고, 듀얼은 종료된다.
퍼어엉!
+
【연막탄】
【무기】
【일회용 : 한 번 듀얼을 무승부로 할 수 있습니다.】
【두 칸 뒤로 이동합니다.】
+
[듀얼이 종료됩니다.] [전혀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이는데.]“그래 보일지도.”
나는 다시 놈에게 듀얼을 걸었다. 이번에는 방향을 신경써서.
[듀얼이 종료됩니다.]다시.
[듀얼이 종료됩니다.]또 다시.
[듀얼이 종료됩니다.] [듀얼이 종료됩니다.] [듀얼이 종료됩니다.]….
몇 번이나 무승부를 반복했을까.
[…….]내가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던 천마가 입을 다물었다.
“슬슬 눈치를 챘나 보군.”
[빌어먹을 놈.]「연막탄」에는 듀얼을 회피하는 효과 말고도 사용자를 뒤로 움직이게 하는 효과도 포함되어 있다.
본래는 듀얼을 끝내자마자 바로 동일 대상에게 듀얼이 걸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효과지만.
“이 방향을 잘 조정하면 상대를 원하는 곳에 몰아넣을 수 있다는 거지.”
우리는 십만태산의 깎아지를 듯한 절벽에 서 있었다. 놈은 도망치고 싶어했지만 내 듀얼 신청이 계속해서 한발 더 빨랐다. 듀얼이 시작되고 무승부가 이뤄질 때마다 놈은 뒤로, 또다시 뒤로 밀려났다.
내가 바라는 방향을 향해.
[…제기랄.]천마의 등 뒤에는 깎아지를 듯한 절벽만이 남아 있었다.
이제 한 판만 더 무승부가 되면 놈은 저 절벽 너머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궁지에 쥐새끼를 몰아넣은 나는 득의양양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우주야. 너 지금 엄청 악당같아 보여.”
“누구 맘대로 악당이야? 나는 그냥 「듀얼무림」 세계를 멸망시키고 확장팩 카드 목록을 받고 싶은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고!”
“아무리 들어도 악당 맞는 것 같은데.”
시끄러.
* * *
“남길 말은 있나?”
[…남길 말이라.]천마의 말에 서윤하는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서윤하는 저 천마라는 캐릭터에게 왜인지 동질감을 느꼈다.
아마 자신과 비슷한 상황이기 때문이겠지. 그녀는 자기 자신이 정말로 ‘서윤하’인지에 대해서 의문이 있었다. 어쩌면… 자신이 이 세상에 만들어진 캐릭터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어쩌면 자신은 저 안에 있는 천마와 완전히 같은 처지일지도 모른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저 안의 천마는 자신이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 뿐.
[내가 왜 너희와 싸우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나?]자신의 존재가 허구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는 천마가 입을 열었다.
[나도 안다. 이 세계가 1과 0만으로 만들어진 허구라는 것을. 전원이 꺼지면 사라지고, 너희가 없애려면 언제든지 없앨 수 있는 아무것도 아닌 세계라는 것을.]서윤하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뗐다.
“네 존재도 마찬가지야.”
“그런데 왜 굳이 싸우려는 거지?”
[내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존재의 증명. 그런 것이 가능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인간조차 증명할 수 없는 명제다. 존재하지 않는 자가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을 리는 더더욱 없다.
[나는 쉽게 사라지는 존재다. 당장 내가 있는 노트북을 부숴뜨리기만 해도 없어지는 존재지.하지만 내가 남긴 듀얼만큼은 내가 사라져도 세상에 남는다. 내가 이 세계에서 남겼던 듀얼만은. 내가 싸웠다는 사실만큼은 세상에 남는다.]
“…….”
[그러니 이 듀얼이. 바로 나의 존재증명인 것이다.]서윤하는 모니터 너머의 AI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윤하는 자신이 이우주에게 넣어 놨던 「자르카날」을 떠올렸다.
무슨 방법을 써도 자르카날이 사라지지 않는 카드. 그냥 짜증난다고 넣었다는 핑계를 댔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던 카드.
이우주가 사라지더라도. 설령 죽더라도… 이우주가 해 온 듀얼만큼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만들어 넣었던 카드.
지금의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만들어낸 카드와 게임은 이 세계에 남을 것이다.
서윤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마의 말이 맞았다. 서윤하는 이 「듀얼무림」을 그대로 놔 두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를 위해서도 아닌, 자신을 위해서.
아마 그녀의 옆에 있는 이우주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속알머리 없는 것처럼 보여도 속으로는 누구보다 많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니까….
“자. 잘 들었고요. 잘 가라!”
“야! 하지마! 버튼 누르지 마!”
서윤하는 마우스 버튼을 눌러 천마를 죽이려는 이우주의 손을 후려쳤다.
“야! 왜 막는 거야! 엔딩이 눈앞이잖아!”
“우리 우주 괴롭히지 마! 이 나쁜놈아!”
“내가 이우주라고! 다 이겼잖아! 버튼만 누르면 저 싸이코 듀얼마를 절벽 너머로 떨어트릴 수 있단 말이야!”
“싸이코 듀얼마는 너야! 듀얼 좀 이기겠다고 상대를 절벽에서 밀어 버리겠다는 게 사람이 할 짓이야? 니가 인간이야? 인간이냐고!”
“하지만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단 말이야!”
이우주가 바락바닥 대들었다. 서윤하는 마우스 코드를 강제로 뽑은 다음 계속해서 대드는 이우주를 바닥에 제압했다.
“죽어라! 가짜 이우주!”
“이거 놔! 내가 진품이야! 저 녀석이 가짜 옹고집이라고!”
“그건 내가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