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94
“표정이 별로 좋지 않군.”
여한설은 장백호에게 노골적으로 이죽거렸다. 단순히 장백호가 눈에 거슬려서만은 아니다.
자신이 고목꼬리를 처치한다면 장백호가 자신에게 듀얼을 걸어올지를 판단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음 듀얼이 예정되어 있다면 어떻게 싸울지에 대해서 생각해야 했다. 다음 수를 읽어내는 것은 듀얼리스트로서 해야 할 당연한 일.
여한설은 머릿속으로 장백호의 덱 리스트와 자신이 가진 카운터 카드들을 재점검하며 장백호의 반응을 관찰했다.
승산은 어느 정도일까.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다지. 아무렇지도 않다.”
즐거움. 분노. 슬픔. 기쁨. 어떤 반응이 있을지에 대해서 기대했지만 장백호의 반응은 다분히 무기질적이었다.
그 대신 장백호는 허공에 손을 가져다 댔다.
“다만, 여기서 너를 확실하게 죽이기 위해서는 조정이 조금 필요할 듯하군. 패널티가 크기는 하겠지만··· 나또한 어차피 여기서 지워졌을 목숨이니 상관은 없겠지.”
장백호의 손이 허공을 짚었다. 무언가를 몇 번 건드리는 것처럼 보이던 손가락이 갑자기 거짓말처럼 지워졌다.
“!”
여한설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듀얼과 관계되지 않은 모든 인간의 행동은 물리법칙을 따른다. 장백호의 손이 사라졌다는 것은, 그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장백호의 한 손이 사라진 다음에는 발, 다리, 발목, 손목··· 그의 몸의 대부분이 사라져갔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손 하나와 눈. 그리고 입 뿐. 인간이라면 살아있을 수 없는 형태로 공중에 떠 있는 장백호를 보며 여한설은 입을 열었다.
“네놈. 몬스터였군.”
“몬스터라. 인간 아니면 몬스터. 그렇게 양분할 수 있는 세계관이라 부럽군.”
“그보다. 그 꼴이 되서 나를 어떻게 죽인다는 거지?”
“바로 이렇게.”
장백호는 남아 있는 손을 지휘하듯 공중에 휘저었다.
캬오오오!
여한설의 맹공에 뒤덮혀 반쯤 죽어가던 고목꼬리의 꼬리에 서려 있던 독기가 한 층 맹렬해지고 있었다.
“이게···무슨···?”
[고목꼬리의 독] [적 플레이어에게 스택만큼의 데미지를 주는 「독액」스택을 3 추가합니다.] [「독액」스택은 중첩될 수 있습니다.]변화한 고목꼬리의 특이성을 바라보는 여한설의 눈이 경악에 빠졌다. 강화된 능력. 그리고 자신에게 고정된 대상지정.
촤아악! 고목꼬리의 독액이 여한설의 몸에 쏘아졌다. 치지직! 아찔한 격통이 척추를 타고 온 몸에 흐른다.
“후우. 내가 가진 힘으로 변경이 불가능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과거에 남아 있던 데이터가 있더군. 롤백(rollback)이 지불해야 하는 패널티가 적어서 다행이야.”
“······.”
“무슨 말인지 궁금해 할 필요 없어. 내가 누군지 궁금해 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당신의 턴입니다.]여한설은 이를 악물었다. 최대한 많은 수치를 회복한 다음 고목꼬리를 처치할 심산이었는데 이 상태면 체력을 보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속전속결로 마무리할 수밖에 없다.
지지부진하던 여한설의 공격이 고목꼬리의 본체에 짓이겨들었다. 하지만 고목꼬리의 반격도 계속해서 이어졌다.
불가피한 데미지가 여한설의 몸에 계속해서 누적됐다. 본래라면 여유로운 승리여야 할 전투는, 한끗 차이의 아슬아슬한 난전이 되어버렸다.
듀얼이 종료되었을 때.
[승리하셨습니다.]여한설의 몸은 반쯤 무너져 있었다.
“왜 그러지? 표정이 그다지 안 좋은데.”
이죽여대는 장백호의 말. 절망에 찬 숨소리와 격통. 그리고 귀로 들려오는 변조된 기계음.
“듀얼!”
변조음이 들려온 곳에는 흑색 갑옷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그녀도 아는.
그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입에 건 채 정신을 잃었다.
***
[필드를 세팅합니다.]와이씨. 듀얼을 선언하기는 했는데. 저게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그로테스크한 눈알과 입, 손까지.
일단 정황상 장백호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는데. 왜 저 꼴이 됐는지 모르겠다. 사라진 단면에서 내부도가 그로테스크하게 비쳐진다.
아이씨. 눈 베렸네.
“···저게 뭡니까?”
“저도 모릅니다.”
나는 가볍게 대답하고 덱을 세팅했다. 지가 뭐건 간에 듀얼 선언 후 필드에 들어왔단 건 듀얼리스트라는 거고, 듀얼리스트라면 듀얼로 박살내 주면 그만이니까.
“···빌어먹을 자식.”
“나한테 하는 말이냐?”
“그렇다. 빌어먹을 정도로 좋은 타이밍에 나타나는군.”
“버릇 없는 놈 같으니라고. 너 가르치는 사람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냐?”
내가 교사는 아니고 강사긴 하지만 일단 지금은 임시 교수랑 비슷한 정도 권한은 가지고 있다 이 말이다.
학생한테 좀 막 대할 수 있다. 막말로, 7개나 수업을 하고 있는 노예를 막 자르기야 하겠어?
“이 상황에 교사 운운하는 게. 확실히 제정신은 아니군.”
“···조금은 동감입니다.”
권보람은 내 편인지 적 편인지 모르겠다. 젠장. 알 바 없고, 듀얼이나 하자고. 확인할 게 산더미니까.
“듀얼!”
장백호가 패를 뽑아들었다.
“나는 매지션 화이트를 소환하지.”
+
【매지션☆화이트】
【1 mana】
【소환 : 「트릭 박스」를 한 장 선택합니다.】
【1/1】
+
뿅. 바닥에서 하얀 옷을 입은 토끼 옷 차림의 소녀가 튀어나온다. 누군가는 귀엽다고 하겠지만 매지션 덱의 악랄함을 아는 내 입장에서는 표정이 구겨질 수밖에 없다.
마법소녀는 손에 쥐고 있는 봉을 휘둘러 세 개의 박스를 만들어냈다. 장백호의 손가락이 몇 번 리드미컬하게 까딱이다 하나의 박스를 골랐다.
박스를 고르자 나머지 두 개의 박스가 사라지고, 하나의 박스가 필드 위에 남는다.
+
【트릭 박스】
【오브젝트】
【상대의 플레이에 맞춰 트릭 박스가 발동합니다!】
+
매지션 덱의 핵심인 트릭 박스.
트릭 박스는 일종의 지뢰다. 이 카드들은 상대의 행동에 맞춰서 효과가 발동되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매지션 테크 덱은 상대의 플레이를 카운터하는 데에 특화되어 있다. 트릭 박스들을 상대에 맞게 고르는 것만으로도 상대 듀얼리스트는 그만한 압박을 느끼게 되니까.
[당신의 턴입니다.]내가 가져온 덱은 매지션 테크 덱과 5:5 정도의 승률을 만들 수 있는 「컨트롤 램프 대지」덱이다.
나는 핸드에 들어와 있는 「코인」을 사용했다.
[마법 사용 감☆지! 트릭 박스가 발동합니다!] [랜덤 마법 가챠! : 상대의 마법 하나를 동일 비용의 마법으로 변환합니다.]뾰로롱☆하는 열 받는 소리와 함께 내 동전이 쓰레기 마법으로 변했다. 뭐. 이 정도면 괜찮게 뺐네.
이 반응형 함정이라는 것이 상당히 짜증난다. 랜덤성이 있기는 하지만 그와 별개로 트릭 박스들의 평균 밸류가 높은 편이라 뇌 없이 트릭 박스들을 고르기만 해도 저티어에서는 너무 높은 승률이 나왔던 것이다.
“···턴 엔드.”
‘···물론 대회급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꽤 승률이 나왔고.’
당시 대회 우승을 차지할 정도였으니 그 위상이야 어디 가지 않는다. 매지션 테크 덱을 상대하는 가장 정석적인 방식은 ‘심리전’이다.
최대한 많은 플레이를 보고 플레이에서 나오는 방향성을 읽어내서 상대의 「트릭 박스」가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게 대응책인 것이다.
당시에 플레이데이터를 얻기 위해서 올라올 가능성이 있는 프로들의 방송을 줄줄 돌면서 버릇을 외워대느라 죽을 뻔 했었지.
반대로 뒤집어 말하면, 매지션 테크 덱은 상대의 버릇을 모른다면 뇌를 빼고 해도 무슨 덱을 상대로도 반반을 갈 수 있는 빌어먹을 성능을 가진 덱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꽤 걱정했는데.
까딱. 까딱.
저 까딱거리는 장백호의 손가락의 움직임을 보니 걱정은 기우였던 모양이다.
끝
리드미컬한 손가락의 까딱임. 까딱, 까딱, 탁. 신경쓰지 않는다면 누구나 지나칠 것이 분명한 행동이다.
매트로놈처럼 거의 균일한 속도로 흔들리는 손가락. 하지만 수백 번이 넘게 수많은 듀얼리스트의 버릇을 읽어온 나에게는 저 손가락은 허블 망원경보다 많은 정보를 내 머릿속에 전송해 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전에도 질릴 정도로 많이 본 패턴이거든.
“나는 매지션 레이나를 소환!”
다시 한 번 필드에 트릭 박스가 깔렸다. 2마나의 트릭 박스. 까딱거리며 흔들리는 손가락.
내 생각이 맞다면 소환수 반응형 트릭 박스인 「아차상☆미믹」일 것이다. 물론 내 생각이 맞을 때의 이야기지만.
한 번 시험해 볼까.
[당신의 턴입니다.]“나는 모래요정을 소환.”
+
【모래요정】
【1 mana】
【유언 : 마나 최대량을 1 증가시킵니다.】
【0/4】
+
[트릭 박스 발동!] [「아차상☆미믹」의 효과로 소환된 소환수에게 4 데미지를 줍니다.]와드득! 트릭박스가 발동하며 모래요정의 몸을 집어삼킨다. 모래요정이 남긴 모래가 바닥에 흩어지며 내 몸에 스며든다. 이거 묘하게 죄책감 드네.
불안하게 까딱이는 손가락. 왜 고마나 소환수 일색 계열의 빅 램프 덱에 모래마녀가 들어가 있는지 의문을 가지는 거겠지.
아무튼 모래요정의 소환으로 놈의 버릇은 확실해졌다. 덱 리스트, 플레이 스타일, 그리고 빼도박도 못하는 손버릇까지.
장백호는 매지션 테크 덱으로 세계대회를 제패했단 「청 브리즈」를 그대로 가져온 듀얼리스트다.
“···운이 좋았군. 쓰레기.”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방금의 함정이 아차상 미믹이었던 덕분에 이득은 봤지만 모래요정 같은 카드는 덱에서 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권보람이 내게 충고한다. ‘운 좋았던 게 아닌데요. 다 제대로 읽고 덱을 준비해 왔고, 제대로 심리전에 이겨서 이득을 본 건데요.’ 라고 말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하지만 나는 자신의 트릭을 줄줄히 읊어대는 싸구려 악당이 아니다.
“제가 운이 좀 좋은 편이죠.”
물론 거짓말이다. 나는 운이 더럽게 없다. 운이 좋은 인간이 게임 세상에 쳐박혀서 생명을 건 듀얼을 하고 앉아있을 리가 없다. 벼락맞을 세상 같으니라고.
“그리고 오늘은 계속해서 운이 좋을 예정입니다. 운세 어플로 봤는데 절호조라고 하더라고요.”
“하, 운의 따위가 세상에 있을 리가 없다! 듀얼리스트의 강함은 실력으로만 정해지는 것이란 말이다!”
운의 영향을 커다랗게 받는 카드 게이머가, 그것도 빼도박도 못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는 주제에 저런 소리를 당당하게 읊어대다니. 내 뱃속에서 뭔가가 부글부글 끓으며 훈계질을 하고 싶어한다.
안돼. 참아. 내 안의 훈장님. 훈계질은 학생들에게만 하는 거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눈 앞의 버릇투성이 버릇없는 놈을 때려눕히는 것 뿐.
나는 조용히 카드를 뽑아들었다.
***
“···말도 안 돼.”
“뭐가 말이 안 돼.”
여유롭게 대답하는 전익현의 대답을 들으며 장백호는 핏줄 선 눈으로 전익현을 노려봤다.
현재의 턴은 15턴. 장백호가 깔아올린 「트릭 박스」의 갯수는 20개. 그 중 유효타로 터진 트릭 박스는 처음 「동전」을 무효화했던 트릭 박스 하나가 전부다.
나머지 트릭 박스들은 모조리 손해를 보는 방식으로 파괴당했다. 트릭 박스가 다지선다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거의 불가능한 확률을 전익현은 뚫어낸 것이다.
“이게 가능할 리가 없단 말이다!”
“왜. 나 오늘 운이 좋다니까? 운세 어플 보여줄까?”
전익현이 장백호의 눈 앞에 휴대폰을 흔들었다. 휴대폰 안에는 ‘절호조다냥!’같은 되도 않는 소리를 지껄여대는 마스코트가 웃음을 터트리고 있다.
“개소리 하지 마! 매지컬 트릭 박스 양산공장을 발동!”
+
【매지컬 트릭 박스 양산공장】
【9 mana】
【「트릭 박스」를 할 수 있는 최대한 만들어냅니다.】
+
장백호의 눈 앞에 선택지가 줄줄히 이어졌다. 기계음과 함께 필드에 트릭 박스들이 한가득 깔렸다. 그가 아무리 운이 좋다고 해도 이 상황을 헤쳐 나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니 트릭 박스들로 한두 턴만 상황을 벌면 그 다음에는 역전의 발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