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the ghost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1
11화
시간을 보니 아직 5시가 채 되지 않았다.
“여보세요?”
[오빠, 어디야?]“어.. 밖에 나와 있어.”
[어딘데?]“어.. 강남.”
[강남 어디?]“어.. 그런 데가 있어. 왜? 저녁에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아니, 외식하자고. 내가 오빠 있는 대로 갈게.]“아니야, 내가 검찰청 근처로 갈게.”
[그럴래? 그럼 퇴근하기 전에 전화할게.]“어.. 그래.”
통화를 끝내고 다시 쇼파에 누웠다.
‘오늘은 일찍 끝나려나?’
검사라는 직업,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늘 야근에 시달렸고 토요일, 일요일 중 하루는 꼭 출근해서 일을 하곤 했다. 검사뿐 아니라 직원들의 삶도 그리 여유로워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보신하기 좋은 음식을 먹어야겠다.”
덕팔이 몸을 일으켜 펜트하우스를 치우기 시작했다. 늘어놓았던 약재 주머니를 정리하여 목함에 잘 넣어 두고 화로를 놓았던 자리도 깨끗하게 치웠다. 쇼파와 바닥까지 청소기를 돌린 후, 주변을 쭈욱 둘러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펜트하우스를 나섰다.
땡!
1층에 불이 들어오며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를 나서려는 덕팔의 눈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아니, 그녀가 덕팔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영아?”
“누구야? 언년이야?”
“엉?”
“누구냐고? 누구랑 맨날 호텔에서 뒹구냐고?”
로비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아영의 목소리에 덕팔이 내딛으려던 걸음을 뒤로 물렸다. 쪽팔렸다. 아영이 덕팔을 잡고 엘리베이터에서 끌어내며 엘리베이터 안을 살폈다. 당연히 누군가가 있을 리 없었다.
덕팔의 펜트하우스는 덕팔과 향숙이 가지고 있는 VIP카드로만 입출입이 가능할뿐더러 엘리베이터에서도 카드를 대지 않으면 절대 올라갈 수 없는 곳이었다. 뿐만 아니라 펜트하우스에서 엘리베이터를 잡게 되면 1층까지 논스톱으로 내려오기 때문에 덕팔과 함께 1층에 내리는 사람은 절대 있을 수 없었다.
“그년은 숨겨 놓은 거야? 아니면 먼저 간 거야?”
“아영아!”
“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내가 자격이 안 되네.”
아영이 추욱 늘어진 어깨로 호텔 로비를 걸으니 로비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아영만을 바라보았다. 덕팔이 아영을 쫓아가 아영의 팔을 잡았다.
“아영아!”
“괜찮아. 내가 오빠를 잘못 생각한 것 같아.”
“아영아, 내 말은 듣고 가야지.”
덕팔이 아영의 팔을 잡은 손에 힘을 주자 아영이 몸을 돌려 덕팔의 눈을 바라보았다.
“말해봐.”
아영의 눈 때문이었을까?
‘너랑 나랑 무슨 관계길래’
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말보다.. 보여주는 게 좋겠다.”
덕팔이 아영의 팔을 잡은 채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카드를 대니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면서 위로,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띵
숫자도 없었고 버튼도 없는 곳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내려.”
“버튼이 없었던 것 같은데?”
검사는 검사인 건가?
출입구에 카드를 대자 입구가 열렸다.
대리석 바닥에 부분 부분 양탄자가 깔려 있었는데 한눈에 보아도 쉽게 구할 수 없는 최고급이었다. 50평은 족히 넘어 보이는 넓은 거실. 조금 전까지 뭘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은은한 한약 냄새가 났다.
쇼파, 장식장, 그림 하나까지 모두 고급이 아닌 것이 없었다.
“이런.. 곳에서 놀았구나.”
“정확히는 약을 달이고 있었지.”
“약? 무슨 약?”
“윤석철에게 먹일 약!”
“오빠가 왜? 그 사람에게 약을 먹여?”
“네가 부탁했잖아.”
“나는…”
“네 부탁을 나는 내 나름의 방식으로 처리하고 있는 거야.”
“알았어. 더는 묻지 않을게. 근데 여기는 뭐야?”
“스승님께서 물려주신 곳이야. 정확히 말하면 스승님께서 머무셨던 곳이지.”
아영이 주변을 살펴보더니 고개를 주억였다.
“약재 주머니가 사라졌다 했더니 모두 여기에 와 있었네.”
“너희 집에서 한약을 달일 수는 없으니까.. 아무래도 집도 좀 협소하고..”
“우와.. 48평 아파트에 살면서 협소하다고?”
아영이 피식 웃었다.
“뭐, 이곳은 거실만 해도 내 집보다 커 보이니 할 말이 없네. 집 구경해도 돼?”
“그래.”
아영이 일어나 곳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아직 덕팔도 다 들어가 보지 못한 베드룸까지 곳곳을 누비던 아영이 30분 만에 쇼파로 돌아와 앉았다.
“여자 물건은 없네. 합격!”
“훗.. 나도 아직 못 들어가 본 곳이 많아서.. 근데 아영아.”
“미안해, 오빠. 내가 주제넘었어.”
아영의 사과에 덕팔의 입이 막혀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영은 여우였다. 28살 여자가 가질 수 없는 다른 뭔가가 있었다. 직업이 검사라서 그런 것인지, 특별한 삶 때문에 생각이 깊어진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영은 확실히 다른 또래들과는 많이 달랐다.
“나는 너를 좋은 동생으로 생각하고 있어. 이 세상에 너랑 나 둘뿐이잖아.”
“알아.”
“그러니까…”
“곤란하게 하지 않을게. 그런 일이 생겨도 적어도 오빠 앞에서는 절대 이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을게.”
“고맙다.”
“근데…”
“응?”
“쪽팔렸어?”
“아까? 그거?”
“응”
덕팔이 피식 웃었다.
“막장 드라마 보면서 한번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 히히”
“손각시가 또 붙었는지 한번 살펴봐야겠다. 그렇지 않고서는 28살 먹은 여자애가 할 짓이 아니야.”
덕팔이 손가락에 피를 내려고 하자 아영이 덕팔의 손을 잡았다.
“나.. 쪽팔렸어. 후회했거든.”
“난 걱정이 되더라. 검산데 혹시라도 사진이라도 찍혀서 인터넷 같은데 네 사진이 돌아다니면 어쩌나 하고..”
“뭐.. 그런 상황이 되면 정식으로 기자회견하고 오빠가 날 책임져야지. 아니면 내가 미친년 되니까!”
아영의 당당한 말에 덕팔이 아영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너 미친년 안 만들려고 내가 내 인생을 너에게 바쳐야 하냐?”
“이 오빠 보소? 검사를 상대로 폭력을? 수갑을 차봐야 인생의 쓴맛을 알지? 딱 기다려. 내가 평생 못 빠져나갈 수갑을 가져올 거니까.”
아영이 돌려 말했지만 ‘그렇다’는 말이었다. 말로서는 아영을 이길 재간이 없을 듯싶었다.
“가자, 밥 먹으러.”
“여기서 시켜 먹으면 안되나? 룸서비스 같은 거?”
“안될걸?”
“별수 없네. 그럼 가자고.. 닭백숙 먹으러!!”
아영이 당연하다는 듯 덕팔의 팔에 팔짱을 끼며 웃었다.
오랜만에 강남으로 내려간 아영이 청계산 토종닭 백숙을 제안하였다. 아영은 이미 알고 있는 단골집이 있었는지 전화 예약을 하였다.
“이모, 토종닭으로 3마리!”
[사무실 회식하시나 봐요. 검사님?]“아뇨, 두 사람이 가니까 아주 작은 방이면 돼요.”
[호호, 남자친구? 먹성이 좋으신가 보다. 준비해 놓을게요.]“고마워요. 이모.”
스피커폰이었는지라 통화내용이 다 들렸다.
“졸지에 먹성 좋은 남자친구가 됐네?”
“오빠가 희생해야지. 이 야리야리하고 예쁜 여 검사가 닭백숙 세 마리를 뜯는다고 소문이라도 나봐. 나는 끝장이라고!”
“그러게 조금씩 식사량을 줄이라니까”
“그게 내 마음대로 되면 얼마나 좋겠어. 점심때마다 몰래 숨어서 배달 족발 먹느라 얼마나 고생하는 줄 알아?”
덕팔이 웃으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이쯤 먹었으면 식사량을 줄이는 방법을 강구해 봐야 할 것 같았다.
“그럴 때 먹는 약이 있는데… 먹어볼래?”
“진짜?”
아영의 얼굴이 반색이 되었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쫌만.. 더 먹고.”
**
백숙은 참 맛이 좋았다. 워낙 큰 놈들이 나와서 아영이 만족할 만큼 먹고도 덕팔조차 벨트를 풀어야 할 정도로 양이 많았다.
“흐뭇하네.”
“가격도 괜찮아.”
“좋은 곳이네. 이런 곳은 잘 알아놔야 인생이 행복해져.”
“맞아, 맞아.”
오랜만에 두 사람 모두 만족할 식사를 마친 아영과 덕팔이 차 안에서 맛집 예찬을 하고 있었다.
“집으로 갈 거지?”
“응, 오빠는 어디 다른 데 가게?”
“아니, 집에 가기 전에 마트에 좀 들릴까 해서. 너 내려주고 마트에 잠시 다녀올게.”
“그럼 같이 가.”
“너 피곤하잖아. 시간도 많이 늦었는데.”
시계를 보니 벌써 10시가 넘었다. 마트에 들렸다가 집에 가면 12시가 훌쩍 넘을 것 같았다.
“그래도 같이 가. 오랜만에 대형마트 가서 시식도…”
“또 먹어?”
“시식이잖아. 시식!”
아영이 입술을 빼물며 귀엽게 웃었다. 천성이 밝고 맑은 여자였다. 어려서부터 그랬던 기억이 났다. 늘 덕팔을 쫓아다니면서 밝은 기운을 주곤 하였다. 공부도 꽤 잘했던 기억이 있다. 하긴 그랬으니 그 어렵다는 사법고시에 합격했겠지만…
“오빠”
“응?”
“오빠, 학교 다닐 때 공부 엄청 잘하지 않았어? 내 기억에 졸업식 때 학교장 상도 받고 그랬던 것 같은데?”
“뭐.. 한때..”
“한국대도 충분했잖아.”
“뭐.. 한때..”
“공부.. 다시 해보는 건 어때?”
“이 나이에?”
“이제 겨우 서른인데? 다시 공부해서 대학 가서 졸업해도 서른다섯이야. 만학도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런 경험 나쁘지 않잖아.”
“그런가? 하긴 그러면 20살짜리 여자애들이랑 같이 학교 다니고 엠티도 가고 좋긴 하겠다.”
“생각해보니까, 방송통신대학도 괜찮은 거 같아. 굳이 학교를 다녀야 맛인가? 학위만 있으면 되지?”
“후후.. 생각해볼게.”
“하고 싶은 거! 더 늦기 전에 했으면 좋겠어. 3수하고 들어온 선배들, 군대 갔다 와서 오빠 나이에 아직 학교 졸업도 못 했어. 큰 차이 없다고 생각해. 굳이 대학이 아니더라도.. 뭐든지 오빠가 하고 싶은 거, 꿈꿔 왔던 거 한 번쯤 도전해 봤으면 좋겠어. 뒷바라지가 필요하다면 옥바라지 빼고 다 이 임아영이가 책임질 거니까!!”
“옥바라지? 아.. 그 감옥에 가면?”
“검사가 죄수 옥바라지하는 건 좀 그렇잖아.”
“하하하.. 그래그래, 네 말이 맞다. 고맙다, 아영아. 깊게 생각해 볼게.”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영이 라디오 볼륨을 올렸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익숙한 팝송이 흘러나왔다. 아영이 흥얼거렸다.
‘좋아하는 거.. 하고 싶지만 내 발목을 잡는 그 사람 때문에…’
덕팔의 기억이 20살, 그때로 돌아가고 있었다.
**
“아버지!”
“크크크… 네 놈이 몸을 내놓지 않으니 네 아비의 몸이라도 가져가겠다.”
“그만해. 그만.. 왜 자꾸 나한테 그러는데?”
“어리석은 놈. 네 어미의 보호가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느냐? 결국 네 어미도 네 아비처럼 나에게 잡혀 먹히고 말 것이다.”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은 일찍이 포기했지만, 아버지의 병수발은 포기할 수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집은 칠흑처럼 어두웠다. 형광등을 켜보았지만,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빛조차도 암막 커튼에 가려진 듯한 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칠흑만이 존재했다. 그곳에서 진우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와 사투를 벌였다. 몸을 차지하려는 악귀와 내어주지 않으려는 진우의 싸움은 끝내 건너 방에서 시름시름 앓고 있는 아버지에게로 불똥이 튀었다.
힘에서 밀린 악귀가 진우의 방심을 틈타 아버지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버지의 몸을 이용해 진우와 2차전을 준비하였다. 서슬 퍼런 부엌칼이 아버지의 손에 의해 진우에게로 날아왔다.
진우가 급히 몸을 피했지만 계속되는 공격에 점점 뒤로 물러설 곳을 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