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the ghost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26
126화
“건강보조식품? 그건 뭐에요?”
“에.. 그러니까.. 할머니의 몸에서 노폐물을 빼내 할머니의 기력을 회복시켜주는 건강보조식품입니다.”
“얼마죠?”
“돈은 받지 않습니다. 사실 약재가 많지 않아 완전한 효과를 보실 만큼 약을 만들어 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저 부적의 힘을 이겨내실 정도로 회복을 시켜 드릴 겁니다. 그래도 건강하게 오래 사시는 데 도움이 되실 것이니 의심하지 마시고 드십시오.”
“한의사도 아닌데.. 뭘 믿고..”
딸은 여전히 덕팔을 의심하는 듯했다.
“그렇게 말씀을 하시면 저로서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선택은 여러분들이 하시는 것이니까요.”
“성분 검사를 의뢰해도 되나요?”
“문제가 없다는 결과가 나온 후에 제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 조건이라면 상관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시달리실 거라는 겁니다. 그 이상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나머지는 김향숙 변호사님과 상의를 하시죠.”
“선생님을 믿겠어요. 그러니 이 늙은이가 남편을 볼 수 있도록 해주시구려. 그 사람의 임종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여 한이 남았다오.”
“네, 할머니. 그런 사정이 아니었다면.. 그런 말씀도 드리지 않았을 거예요.”
노파가 덕팔의 손을 잡아주곤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
“오빠, 한번만!”
“크음..”
덕팔이 심기 불편한 얼굴로 아영의 시선을 외면하고 있었다.
사령탐정사무소에서 덕팔을 잡고 늘어지는 아영은 필사적이었다. 기상청의 일기예보로는 내일모레 비가 온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아영에게 남아 있는 시간은 단 하루, 내일 뿐이었다.
“좀 있으면 기말고사라고! 그런데 평일에 시간을 빼라니! 안 돼! 절대 안 돼!”
“시간이 너무 없어서 그래, 이번 한 번만 봐줘. 이렇게 사정할게.”
아영이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였지만 덕팔은 못 본 척하였다. 주말이라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보았을 것이다. 하다못해 평일 저녁이라면 아르바이트를 하루 쉰다고 생각하고 따라나섰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평일 낮에, 그것도 민경환의 수업이 무려 4시간이 들어 있는 화요일 아침부터 하루 종일 시간을 비워달라고 하니 덕팔로서도 절대 들어줄 수 없는 요구였다.
“안 되는 건 너도 잘 알 텐데.. 자꾸 이러면 서로 곤란해지잖아. 그렇지 않아? 아영아?”
“알지, 내가 잘 알지. 그래서 망설였다고.. 차라리 주말에 부탁할 걸 하고 얼마나 후회를 하면서 여기로 온줄 알아? 하지만 지금밖에 없어. 우리 방 계장님이 유관기관 4곳을 쫓아다니며 겨우 얻은 기회라고, 근데 접시 물에 코를 박는 것도 아니고 발목도 오지 않는 깊이에서 익사를 당할 뻔했어. 인부들이 겁을 집어먹어서 절대 안 하겠다는 걸 싹싹 빌다시피 해서 겨우 내일로 약속을 잡은 거라고. 그러니까,…오빠! 한 번만 도와줘.”
“….크음”
덕팔이 아예 몸을 틀어 앉자 아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덕팔 앞으로 쪼르르 달려가 다시 무릎을 꿇었다.
“오빠”
아영의 고양이 같은 눈망울에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지만 웃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걸 알고 있는 덕팔은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았다. 그때, 책상에 앉아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은혜가 아영의 편을 거들었다.
“덕팔씨, 한 번만 도와주지 그래요? 덕팔씨도 찝찝해하고 있었잖아요.”
“알죠. 알고는 있는데…”
“제게 좋은 생각이 하나 있는데…”
은혜가 방긋 웃었다.
**
다음 날 아침.
덕팔이 1교시 민경환 교수의 수업을 듣고 있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민경환의 강의와 판서에 집중하며 필기를 하고 있었다.
“형, 뭐 하고 있는 거예요?”
덕팔 옆에 앉아 있던 조인범이 덕팔의 노트를 바라보며 헛바람을 삼켰다.
“멋지지 않느냐? 나의 이 난이?”
덕팔의 노트에는 붓 펜이라는 문물의 신기를 가지고 멋지게 처져 있는 난초가 한가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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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우리 팬클럽 정회원 모임이 있는데 참석해 주실 수 있어요?”
노은지가 덕팔의 수업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불이 나게 달려와 덕팔의 팔을 잡고 매달렸다. 말은 참석이 가능한지 의사를 타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행동은 무조건 참석해달라는 것이었다.
“허음.. 젊은 처자가 젊은 남자의 팔에 매달려 이게 무슨 짓인고? 내일, 내일 다시 청을 넣도록”
덕팔이 어색한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강의실 밖을 빠져나갔다.
“인범 선배, 우리 더 파르 오빠가 왜 저러는 거예요?”
“몰라, 나도! 아침부터 저런다? 수업 시간에는 난을 치지 않나, 얘들이 아는 척을 해도 남녀칠세는 부동석이라며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하고 있어.”
“흐음.. 다음 드라마가 사극인가?”
“…응?”
“누가 봐도 연기 연습이잖아요. 근데 되게 자연스럽지 않아요? 진짜 조선 시대 사람 같잖아요. 걸음걸이도 그렇고.. 개량한복도 어쩜 저렇게 잘 어울릴까?”
노은지의 눈에서 하트가 발사되고 있자 조인범이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공부는 안 하냐? 다음 주부터 시험인데?”
“호호호.. 그다음 주부터는 방학이죠. 마음껏,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하루종일 덕질을 할 수 있는 자유 시간!!”
“꼭 졸업을 할 수 있길 바란다!”
“걱정하지 마요. 하다 하다 안되면 더 파르 오빠에게 특강이라도 받을 테니까!”
노은지가 상큼하게 웃으며 강의실을 떠나자 홀로 남은 조인범이 머리를 긁적였다.
“말이 돼서 반박도 못 하겠네.”
**
덕팔이 한국대학교 교정을 거닐고 있었다. 점심시간이었는지라 김정학 교수의 식사를 챙겨야 했지만 싸가지고 온 도시락을 대충 김정학 교수의 자리에 던져 놓고 교수연구실을 나와 한가로이 산책하였다.
멀리 계단이 보였다. 그 옆에는 아주 오래된 오동나무 한그루가 심어져 있었다.
“오동나무라… 그분께서도…”
덕팔이 오동나무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 계단 아래에서 걸음을 딱 멈춰 세웠다.
[친구 왔는가?]13척 댕기 동자 귀신 몽달이 오동나무 아래에 앉으며 덕팔에게 아는 척을 해주었다.
“나…나으리!”
덕팔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
기하리 정산마을 저수지.
인부들이 물이 완전히 빠져 논바닥이 갈라지듯 쩍쩍 갈라진 저수지 바닥을 조심스레 걷고 있었다. 그들의 앞에는 덕팔이 여유롭게 팔자걸음을 걸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인부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었다.
“다른 젊은 분들이 도움을 주지 않아 난감했는데 마을 어르신들이 이렇게 나서주시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야 얼마 남지 않은 목숨들이니 아쉬울 게 없어 마지막으로 마을에 도움이 되고자 나섰지만… 이보게, 젊은이. 여기는 요상한 곳이야. 그러니 조심, 또 조심하게!”
“네, 어르신 명심할게요.”
자신을 걱정해주는 늙은 인부들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준 덕팔이 성큼성큼 앞서 걸었다. 그렇게 20여m를 걷고 있을 때 덕팔의 걸음이 멈춰졌다.
“어르신들, 이곳에 잠시 계시겠습니까? 제가 잠시 저 앞을 살펴보고 돌아오겠습니다.”
어느새 덕팔의 손에 천문도룡도가 들려있었다. 덕팔이 신중한 걸음으로 한 걸음 더 나가려 하자 덕팔의 귀에만 들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한 존재의 목소리 같지 않고 여러 사람이 속도를 맞춰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돌아..가라.. 우리의.. 한은.. 풀리지.. 않았다.]“흐음..”
덕팔이 내 품고 있는 심상치 않은 기운에 수사원귀가 타협을 하려 하고 있었다.
“그건 좀 어렵겠네. 학교까지 빼먹고 왔으니 오늘은 끝을 봐야 하거든? 슬슬 나와 보지?”
덕팔의 딱 부러진 거절에 덕팔의 눈에만 보이는 거대한 해일이 순식간에 덕팔을 덮쳐왔다.
**
“나으리..”
몽달이 웃으며 계단을 내려 덕팔에게 다가오더니 이내 얼굴이 굳어졌다.
[그대는 누구인가? 누구이기에 나의 친우를 흉내 내고 있는 것인가?]“…. 나으리..”
덕팔의 모습이 사라지고 하얀 소복을 입은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학생들의 눈에는 덕팔이 그냥 그 자리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그대는… 그대는…]몽달이 신령수 어혜화의 모습을 보더니,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서는 그녀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소첩… 탁문아입니다. 나리를 배신하고 나리를 거열형(수레에 사지를 묶어 찢어 죽이는 형벌)에 처하게 만든 나리의 소실이 옵니다.] [탁…문…아!!]몽달이 머리를 움켜쥐더니 그 자리에서 몸부림을 쳤다.
**
온통 물의 세상이었다.
덕팔이 허우적거려보았지만 수영에 익숙하지 않은 덕팔로서는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수영을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덕팔은 마치 물의 공포 속에 갇혔다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이제 돌아갈 마음이 생겼느냐?]‘익숙한 이 느낌!’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리고 얼마 전 다시 그를 만났을 때 경험했어야 했던, 지난 십여 년간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던 바로 그 공포였다.
‘악귀 따위가 어떻게 이런….’
덕팔은 자신의 경솔함을 자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악귀의 능력을 무시했고, 김혁성이 준 신기의 힘을 너무 믿고 있었음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덕팔의 시야가 좁아지고 세상이 온통 뿌옇게 변해가고 있을 때, 덕팔의 오른손에서 기묘한 감각이 느껴졌다.
지이잉..
천문도룡도가 주인의 위급함을 알았는지 울고 있었다.
지이잉…
덕팔이 천문도룡도를 힘주어 쥐었다.
[그대! 내 말이 들리는가?]작았지만 또렷하게 들려왔다.
‘누구지?’
[나는 천문의 힘, 천문을 열 수 있는 열쇠니라…]‘천문?’
‘…고맙군.’
[그대는 그대를 더 믿어야 한다. 그대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부족한 능력이 아니라 그대가 스스로에게 가지는 의심, 불신이니라…]‘의심? 불신?’
[그대는 이미…]천문도룡도의 말이 끊겼다. 분명 중요한 힌트를 주려고 하였는데 천문도룡도의 힘이 다한 모양이었다.
점점 시야가 좁아 들었다. 이제는 세상과 자신조차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덕팔이 허우적거림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서서 눈을 감아버렸다. 덕팔의 몸을 옥죄는 물의 울렁임이 더욱 크게 요동을 하였다.
‘나를 믿으라… 스스로에게 가지고 있는 불신을 지우란 말이지…’
덕팔이 자신의 몸을 관조하기 시작했다.
‘나는 무엇을 가지고 있는 거지?’
김혁성의 준 신기가 느껴졌다. 그 뒤로 스승이 숨겨둔 힘이 있었다. 그리고.. 안쪽 깊은 곳에 작고 초라하지만 가장 익숙하고 반가운 기운이 느꼈다. 바로 덕팔 본연의 힘!
세 힘이 서로를 견제하며 덕팔의 몸에 그렇게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몸 안으로 들어가 정착을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