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the ghost munchkin! RAW novel - Chapter 32
32화
덕팔이 산에 오르기 전 보낸 메시지 내용이 생각이 났다.
[확실하게 정신교육을 시켜올게]휴대폰을 꺼내 오늘 날짜를 음력으로 바꾸어 보았다.
“아.. 오늘이 그믐이구나.”
덕팔의 메시지 내용이 비로소 이해되었다. 덕팔은 진짜 악귀의 본모습을 은혜에게 보여주고 은혜가 경거망동하지 않도록 할 셈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은혜를 보호해야 할 덕팔이 쓰러져 있다.
자신은 미약하나마 신기의 능력을 가진 자, 은혜는 별종 신안의 능력을 가진 자였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자신을 지킬 능력이라곤 1푼도 없는 짐덩이였다.
“우리 내려가야 해요.”
“덕팔씨는요?”
“내려가서….”
아영이 뒷말을 잇지 못했다. 덕팔을 이대로 두고 내려간다면 내일 아침 일찍이라도 덕팔에게 도움이 될 사람을 데리고 와야 했다. 그러나.. 이 세상에 그럴 사람이 어디 있나?
덕팔의 두려움을 알 것 같았다. 덕팔은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었지만 덕팔 주변에 모인 이들은 덕팔에게 도움이 되는 이가 없었다. 김향숙 변호사가 기를 쓰며 재단을 만들고 일을 키워 능력자들을 모으려고 하는 이유를 이제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들만 살겠다고 이 산을 내려갈 수는 없다. 아영의 기억이 맞다면 오두막은 안전했다. 그날 그믐밤에도 오두막은 매우 안전했다. 문제는 덕팔이 이 산을 내려가면서 오두막에 설치한 안전장치를 그냥 두었느냐 하는 것이었다.
“어제, 악귀들이 많았다고 했죠?”
“네”
“집안으로도 들어왔나요?”
“아뇨. 밖에서 저만 노려보고 있었어요.”
아영이 한숨을 내 쉬었다. 안전장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덕팔을 간호하며 다시 한번 밤을 잘 넘기는 것. 산이라 해가 빨리 지기는 하지만 아직 자신들에는 5시간 남짓 시간이 있었다.
“서둘러요. 오빠는 무사할 거예요. 그렇게 믿어야 해요. 그보다 오늘 밤은 어젯밤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서운 밤이 될 거예요. 그러니 준비를 해야 해요.”
아영이 평상 위에 올려놓았던 짐을 오두막에 넣어 두고 은혜에게 눈치를 하였다.
“제가 물을 길러올게요. 언니는 여기 장작을 오두막 안에 넣어주세요.”
“춥긴 했지만, 이 많은 장작이 다 필요하진 않았는데…”
“어제완 비교도 할 수 없는 밤이 될 거예요. 그러니.. 얼른 장작을 넣어 두세요.”
아영이 물통을 들고 계곡으로 향했다. 전에 산책하며 보아 두었던 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오빠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해. 그래야 오빠 곁에 있을 수 있어.”
아영이 작게 중얼거리며 걸음을 내디뎠다.
그저 밥을 했고 찌개를 끓여 억지로 식사를 한 것밖에 없었는데 벌써 해가 지려 하고 있었다. 아영은 뒤편에 있는 소나무에 가보고 싶었지만, 그날 아침, 보았던 그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던 터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언니, 뒤편에 소나무 봤어요?”
“아, 그 벼락 맞은 소나무요?”
“벼락요?”
“네, 벼락을 맞아서 나무가 반쯤 갈라져 있어요.”
신령수가 벼락을 맞았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 좋은 징조는 아닐 것이라 확신이 들었다.
“이 평상을 안으로 넣어야 해요.”
“들어갈 곳이 없을 텐데..”
“오늘 밤, 우리 잠자리가 이 평상에 달려 있으니까요.”
아영이 눈치를 하자 은혜가 아영의 반대편에 서서 평상을 잡았다.
**
오두막에 들어선 아영은 쉬지 못했다. 은혜에게 장작불을 피우라고 하고 집에 남아 있던 천 조각과 한지 쪼가리로 오두막의 틈새를 꼼꼼히 막았다.
“그렇게 다 막으면 산소가 부족할 거예요.”
“천장 쪽으로 구멍이 있어서 그런 문제는 없을 거니까 염려 말아요.”
손가락을 천장 모서리를 가리키며 일을 마무리하였다. 대충 집안을 둘러본 아영이 은혜 곁에 앉았다. 장작불이 올라오니 집안이 금세 훈훈해졌다.
“오빠는 어때요?”
“계속 같은 상태예요. 어제저녁에는 열도 오르고 온몸이 붉게 달아올랐는데 지금은 열도 없고, 피부색도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아영이 고개를 주억이며 덕팔 쪽으로 몸을 내밀어 덕팔의 신색을 살폈다. 그저 잠이 들어 있을 뿐, 안색이 좋지 않거나 병색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작은 유리창 사이로 긴 노을이 지고 있었다. 아영이 숨을 크게 내쉬며 은혜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오늘 밤은 매우 추울 거예요. 그리고… 매우 무서울 거예요. 보이지 않는 저보다 볼 수 있는 언니가 훨씬 괴로운 밤이 될 테니 가급적 저쪽 창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말아요.”
아영이 덕팔이 준 부적이 담겨 있는 바지 주머니를 꽉 움켜쥐며 힘주어 말을 하자 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
서울00지방검찰청 214호 검사실.
방 계장의 얼굴에 그늘이 져 있었다.
“수정씨, 혹시 검사님하고 통화한 적 있어요?”
“아뇨? 님 찾아 떠나신 분께 전화를 드리는 건 실례 같은데요?”
민수정이 웃으며 대꾸를 하자 방 계장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오늘 아침 김 형사의 전화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검사님, 안 계십니까? 일을 시켜놓고 연락이 안 되니 참~ 답답하네]무슨 일이었는지 캐물었지만 김 형사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냥 사적인 부탁이라고만 하더니 전화를 끊어버렸다.
아영이 김혁성 사건을 너무 쉽게 포기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아는 아영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었는데 너무 쉬웠다. 김 형사에게 잠복을 부탁한 것일까?
하지만 이미 사건은 종결되었다. 김혁성은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고 정식으로 통지서도 발송되었다. 그 말은 즉, 지금부터 하는 수사는 모두 월권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양 계장의 손에 너무 늦게 도착한 부검의 소견서가 들려 있었다. 피해자 모두 출산의 흔적이 있었다는 소견이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양 계장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영이라면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터!
양 계장이 이 소견서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을 하다가 이윽고 자신의 책상 서랍에 조용히 넣어 두었다.
**
아침 해가 떠오르자마자 아영이 오두막 문을 활짝 열고 나왔다. 어울리지 않는 파카였다. 너무 낡아 군데군데 솜이 삐져나오는 파카였지만 어젯밤 이 파카가 아영을 살렸다. 뒤따라 나오는 은혜는 말 그대로 거지꼴이었다. 옷을 껴입고 다시 그 위에 담요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가뜩이나 낡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으니 50년대 전쟁 난민을 보고 있는 듯했다.
“이젠 그 이불 좀 치워요. 구석에서 찾은 거라 냄새가.. 어휴!”
“파카도 만만치 않거든요? 인신 선생님이 생전에 입으시던 유품 같은데.. 그렇게 막 입어도 돼요?”
“훗.. 일단 산 사람은 살아야죠.”
“호호.. 맞아요. 어휴.. 장작을 그렇게 땠는데 실내에 고드름이 생길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어요. 아영씨 말을 듣지 않았으면 진짜 동사를 할 뻔했다니까요?”
밤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두 사람이 부쩍 가까워졌다. 하긴 밤새 껴안고 엉엉 울고 있었으니 가까워지지 않을 내야 않을 수 없는 상황이긴 했다.
서로의 민낯을 보여주니 속내를 터놓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시선을 한곳에 모으기 위해 두 사람은 밤새 덕팔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덕팔의 어린 시절, 어려운 삶, 그리고 그의 어머니. 중학교 때부터 몸져누워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에는 오줌, 똥을 받아내야 했던 덕팔의 아버지, 그리고 그의 실종.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드라마와 같은 이야기였다. 덕팔과 동갑인 은혜는 그때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추억해 보았다. 학원에 가기 싫다면 떼를 썼고, 인삼을 갈아 넣은 건강 주스가 맛이 없다며 몰래 버리기도 했다.
한국대학교 미대에 합격하였을 때, 아버지는 3개월간 세계 일주를 시켜주었다. 물론 어머니가 따라붙었지만 꿈같은 시절이었다. 덕팔이 병상에 있는 아버지를 위해 아침, 저녁으로 신문, 우유를 배달하며 대학을 포기하고 있을 때 자신은 대부분의 사람이 누릴 수 없는 호사를 누렸던 것이었다.
“부끄럽네요.”
“저도 마찬가지죠. 가까이 있었지만, 속사정은 잘 몰랐어요. 덕팔 오빠가 장시간 아르바이트를 하지 못하는 이유도, 몇 개 대학에서 장학금은 물론, 생활비까지 지원하겠다는 제안을 했음에도 진학을 포기해야 했던 이유도 모두 아버지 곁을 장시간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어요.”
“덕팔씨는 지난 시간을 보상받아야 해요.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이유로 삶이 망가졌으니까요.”
“동감해요. 그래서 오빠 곁에 있으려고 하는 거예요. 제가 그의 보상의 될 수 있다면 말이죠.”
“호호호.. 아무래도 대한 그룹 무남독녀가 보상으로 더 낫지 않을까요?”
“오호호.. 무슨 소리! 어려서부터 함께 자라며 서로의 영혼까지 교류할 수 있는 제가 훨씬 낫죠.”
“같은 동네 살았다고 영혼까지 교류한다면 대한민국 재벌가들은 모두 영혼의 동반자게요?”
결국 새벽녘에 이르러서는 치열한 치정극을 벌인 두 사람이었지만 서로에 대한 이해, 특히 덕팔에 대해 갖는 감정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밥 먹어야죠?”
은혜가 두려움을 털어냈는지 밥을 찾았다. 아영이 웃으며 솥뚜껑을 열었다. 어제 먹다 남은 밥이 있었다.
“누룽지 탕 어때요?”
“조금 부족하겠지만 일단 그거라도 먹어요.”
“밥을 새로 합시다. 저도 밥을 먹어야 하니.”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오두막에서 들려왔다.
“오빠!”
“덕팔씨!!”
두 여인이 덕팔에 안겨들었다.
“어이쿠야, 넘어집니다.”
덕팔이 두 사람을 밀어내 웃었다.
“덕팔씨, 눈이…”
“덕분에 봉인이 한 10년쯤 일찍 풀리고 말았네요.”
덕팔이 뒷머리를 긁었다.
**
식사를 준비하는 두 여인을 두고 덕팔이 오두막 뒤로 돌아가 보았다. 기형적으로 굽고 또 굽은 소나무가 벼락을 맞아 반으로 쪼개져 있었다.
그날, 배뱅이 잎을 먹은 것은 명백히 자신의 실책이었다. 배뱅이 나무는 식물도감에도 나와 있지 않은 영기식물이다. 사실 배뱅이 나무란 깨 나무가 영기가 충만한 곳에서 자라며 영기를 머금은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그 입사귀가 배뱅이 잎이었다. 그러니 일반인들이 깻잎과 배뱅이 잎을 구분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정말 이상해요. 이 잎사귀, 어제까지만 해도 빛이 나지 않았는데…”
“영기를 덜 머금어서 그랬을 겁니다. 배뱅이 잎은 잎을 따고 사나흘은 지나야 영기가 충만해지거든요. 어제 그믐밤을 지내면서 영기가 충만해져서 은혜씨 눈에 빛이 보이게 된 걸 겁니다.”
“미안해요. 제가..”
“아니죠. 이건 제 잘못이에요. 이곳에 도착했을 때 한 바퀴 돌아봤어야 했는데 신령수가 벼락을 맞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습니다.”
신령수 밑에서 자라고 있는 배뱅이 나무를 가리키며 덕팔이 은혜에게 친절히 설명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