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the ghost munchkin! RAW novel - Chapter 33
33화
“덕분에 오랜만에 도돌이 잎도 따게 되었네요.”
덕팔이 바가지를 들고 와 노란빛이 살짝 도는 흰 꽃잎을 따기 시작했다.
“이게 그때 마셨던 그 차에요?”
“네, 스승님의 건강이 나빠지시면서 도돌이 꽃이 피지 않았는데, 신령수의 상태가 나빠지면서 귀신들이 많이 모여 영기가 충만해진 모양입니다.”
덕팔은 몇 개의 바가지에 야생초와 잎사귀, 줄기를 꺾어 모았다.
“오늘은 수확이 좋은데요?”
“악귀를 본다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어요. 그런데 봉인이 풀려서 어떻게 해요?”
“괜찮습니다. 배뱅이 잎이 워낙 강한 영기를 가지고 있어 봉인이 풀리긴 했습니다만, 일시적인 것이라고 믿고 있어요. 스승님의 능력은 그리 간단한 게 아니거든요.”
은혜가 다행이라는 듯 안심을 하자 덕팔이 물었다.
“지금도 저랑 같이 있고 싶으십니까?”
“….”
은혜가 즉답하지 못하였다. 그날 밤의 충격이 너무 컸던 탓이리라. 덕팔이 웃었다.
“제 곁에 계시면 계속 그런 것들을 보아야 합니다. 은혜씨에게는 맞지 않아요. 사실 이 땅에 사는 그 누구도 그와 맞을 수 없죠. 피할 수 있다면 피해야 합니다.”
“.. 미안해요. 저는 두려워요.”
“그것이 정상인 겁니다. 저는 은혜씨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은혜씨가 자신의 능력 정체를 알아가면서 너무 쉽게 심취하는 것 같아 내심 불안했거든요.”
“덕팔씨가 매사에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지 그 이유는 충분히 알게 되었어요. 그러니 저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어요?”
“그럼요. 당연히 그래야지요.”
밥을 하다 말고 중간에 사라진 은혜를 찾으러 오두막 뒤편으로 돌아 들어오던 아영이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간단히 식사를 마친 세 사람이 짐을 꾸렸다. 더 이상 이곳에 있으면 안 될 이유를 100가지도 더 댈 수 있는 상황이었는지라 하산을 결정한 것이었다.
“저는 하루만 더 이곳에 머물게요. 두 분은 오늘 내려가셔서 이장님 댁에 머물러 주세요. 제가 부탁을 드렸다고 하면 흔쾌히 방을 내주실 겁니다.”
“오빠, 그냥 같이 내려가면 안 돼?”
“이곳에 너무 많은 악귀가 모여 있어. 지금은 괜찮겠지만 다음 그믐이 되면 포화상태가 될 거야. 그럼 조만간 이 산을 타고 아랫마을로 내려가겠지. 그러기 전에 정리해야 될 것 같아.”
“신령수가 죽으면 악귀들도 더 이상 안 모이는 거 아냐?”
“저 신령수는 죽은 게 아냐. 신령의 힘을 잃고 있을 뿐이야. 그러니 신령수도 살려야 해.”
아영은 함께 내려가길 바라는 듯하였지만 덕팔이 두 사람을 억지로 밀어내자 마지못해 산을 내려갔다.
혼자 남게 된 덕팔이 판자와 노끈 등을 챙겨 들고 신령수 곁으로 갔다.
“어쩌다 벼락을 맞으셨어요? 이제 겨우 신령이 되었는데 말입니다. 내 힘 써 볼 테니 꼭 다시 회생하세요.”
덕팔이 두꺼운 나뭇가지 아래에 각목을 세우고 지지대를 만든 후, 갈라진 나무 틈새로 되직하게 만든 진흙을 발랐다.
“내가 어르신을 위해 진토를 만들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어요. 아시죠? 진토 만드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지? 그러니 내 정성을 봐서라도 꼭 회복하세요.”
고르게 진흙이 발라지자 힘을 쓰며 갈라진 나무를 하나로 모아 노끈으로 감았다. 나무에 상처가 덜 나도록 판자를 대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신력이 회복되면 이따위 노끈쯤이야 간단히 잘라내겠죠?”
덕팔이 웃으며 나무 아래에 거름과 퇴비를 뿌려 주곤 손을 털었다.
“그동안 어르신을 괴롭혔단 잡귀들은 오늘 내가 데려갈게요. 그러니 당분간 몸을 회복하는 데만 집중을 하세요.”
덕팔이 나무를 토닥거려 주곤 몸을 돌리려 하였다. 그때, 소나무에서 솔방울이 하나 떨어졌다.
“엥? 벌써 자손을 보려 하셨어요? 이거 이거 벼락을 맞은 이유를 알겠네. 어찌 그리 욕심을 부리셨습니까? 그렇게 힘을 한쪽에 쏟으니 악귀들이 어르신을 침범한 게 아닙니까. 쯧!”
덕팔이 질책을 하면서도 솔방울을 두 손으로 잘 감싸 들었다.
“제가 가져갈까요?”
바람에 소나무가 흔들거렸다. 덕팔이 크게 웃었다.
“신령수가 무슨 인연에 그리 집착을 해요? 인간이야 겨우 100년도 못 사는 존재이거늘.. 결국 또 헤어져야 할 운명이란 말입니다.”
덕팔이 몸을 돌려 가려 할 때 덕팔의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었다.
“이건.. 벼락 맞은 어르신의 파편이네요. 거참, 능력도 좋으시네. 벼락의 기운을 어찌 이리 많이 모았습니까?”
덕팔이 반쯤 타버린 나뭇가지를 갈라진 소나무 틈 사이에 끼우려 하자 바람에 소나무가 다시 흔들렸다.
“제가? 저는 이런 거 필요 없어요. 제가 이렇게 무시무시한 기운이 왜 필요하겠어요? 저는.. 괴물이 되고 싶지 않아요.”
바람이 없었음에도 소나무가 부르르 떨었다. 덕팔이 소나무를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인간이나 그런 욕심은 없어요. 몸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어르신이나 쓰세요. 아! 그리고 말입니다. 전에 반말 짓거리 한 거 미안해요. 봉인된 신안으로는 신령이 된 어르신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거든요. 후후, 할아버지 나무인 줄 알았던 신령수가 이리 어여쁜 아가씨 나무일 줄 누가 알았겠어요. 하하하”
***
아영과 은혜가 해가 지기 전에 아랫마을에 도착하였다. 이장 집을 찾아가 하룻밤 묵기를 청하자 이장이 두 사람을 흔쾌히 반겨 주었다.
“근디, 우리 덕팔이 총각은 어찌 안 내려 왔데?”
“오빠는 오늘 밤에 할 일이 있데요.”
“그려? 어이구, 그 총각은 정이 많아서 큰 일여. 분명히 우리 마을 사람들을 보호 할라고 또 그렇게 어려운 일을 하는 갑네. 어쨔쓰까, 내일은 돼지라도 한 마리 잡아야 할랑갑네.”
이장은 덕팔이 산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대충 아는 모양이었다.
“별문제 없을 거예요. 늘 하던 일이라고 하니..”
“뭔 소리여, 그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디. 소싯적 어르신께서도 그믐밤만 지나고 나면 하루 이틀은 앓아 누으셨당께?”
“네? 선생님께서요?”
“뭐, 나중에야 그런 일이 없으셨지만, 처음에 산에 오르셨을 때는 엄청났지. 암, 그렇고말고..”
이장부인이 이른 저녁상을 차려 오자 이장이 음식 타박을 했다.
“찬이 이게 뭐시당가? 귀한 손님들이 오셨는디? 닭이라도 한 마리 잡아야 헐 거 아녀?”
“아따, 이 양반은? 닭은 삶는디 시간이 안걸린다요? 닭 삶는 거 기댕겼가는 속이 뒤집어 징께 먼저 이거라도 드시라고 안 내왔소?”
“그려? 역시 우리 마누라랑께. 처자들, 이거라도 얼렁 드쇼잉? 닭은 다 삶아 지믄 내올텐게?”
이장이 자리를 뜨려고 하자 아영이 이장을 불러 세웠다.
“이장님, 그 말씀 조금 더 해주시면 안되요?”
“뭔 야그?”
“그 밤에 하는 거..”
“아.. 거시기?”
이장이 다시 자리에 앉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첨에 어르신이 마을에 오셨을 때.. 그니까, 나가 완전 꼬맹이였을 땡게. 한 사십 년은 훌쩍 더 된 거 같네? 그때는 어르신도 상당히 젊어브르쓰야. 산에다가 집을 짓고 사시것다고 혀서 울 아부지가 몇 날 며칠 산에 올라가서 집 짓는 것을 도와 드맀지. 나도 한두 번 따라갔고.”
“아니요. 이장님, 그때 얘기 말고 덕팔오빠 얘기만..”
“아, 총각 얘기만? 허허허 그려그려.”
이장이 웃으며 시간을 30년 뒤로 넘겼다.
“긍께, 10년쯤 전에 아주 어린 총각이 여글 찾아왔어. 어르신을 뵙겠다고 왔는디 우리 마을 사람들이 누구여? 절대로 안 가르쳐 줬거등? 어르신 소문을 듣고 오는 잡놈들이 하루에 몇 명씩 되어브르씅게.”
“아뇨. 그다음에요,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로 오빠 혼자 그 일을 해왔잖아요. 근데 그게 어려운 일이라면서요?”
“아.. 그거? 그랬제. 검나 게 어려운 일이제. 첫 그믐이 지나고 나가 걱정이 되야서 오두막에 올라가 봤제 근디 운신도 못허고 있더라고. 그 담부터는 그믐이 지나고 나믄 닭을 잡아들고 산을 올라갔제. 그때마다 피죽도 못 먹은 사람 맹키로 평상에 널브러져 있는디 어찌나 맴이 안좋던지.
그러다가 한 육 개월쯤 되었을랑가? 아, 그날은 너무 팔팔한겨. 그리서 나가 궁금혀서 물어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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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좀 살만헌가?”
“네, 살기 위해서 결국 스승님의 말씀을 어기고 말았네요.”
덕팔이 양손에 낀 가죽장갑을 만지작거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건 어르신의 장갑이 아니당가?”
“맞아요. 스승님께서 태워버리라고 하셨는데.. 제힘으로는 도저히 저 악귀들을 상대할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아이고, 그리서 그렇게 맨날 골골 거렸고만? 어쨔쓰끄나, 미안혀서..”
“아닙니다. 조만간 저 소나무도 신령수가 될 것 같으니.. 큰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잉? 저 못나니 소나무가 신령수가 된다고?”
“예, 드디어 오랜 업을 이겨내고 선신이 되고 말았습니다.”
“참말로? 거참, 희안코만. 근디 참말로 다행여. 그럼 앞으로 덕팔이 총각이 덜 위험한 것이잖여.”
“뭐.. 그도 그렇네요.”
덕팔이 뒷머리를 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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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힘들었으믄 어르신이 ‘콩이 팥이다’ 허믄 콩으로 팥죽을 끓이던 덕팔 총각이 어르신의 말씀을 거역혔것능가? 그러니 나가 그 일이 쉽다고 말을 헐 수 있겄어?”
“그런 일이 있었군요.”
“참말로 고마운 총각이랑께. 우리 마을 어른들이 저러코롬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는 것도 덕팔이 총각이 내준 한약 때문이잖여.”
“정말요?”
지금껏 조용히 듣고만 있던 은혜가 끼어들었다.
“처자는 참 밥도 복스럽게 먹네이? 밥 좀 더주까?”
“네, 5그릇만 더..”
“그려, 그려. 한창 먹을 땡께..”
이장이 마누라를 불러 밥솥 째 밥을 가지고 오라고 이르고는 몸을 숙이더니 작게 속삭였다.
“본래 이 마을에는 용한 무당이 있었다고 혀. 거시기 뭐시냐? 쌀 한 줌을 턱! 하니 뿌리면 모르는 게 없는 용한 무당이었디야. 근데 어느 날, 그 무당이 급살을 맞은겨.”
“왜요?”
“그거야 나도 모르지? 근디, 그 담부터 이 마을에 자식을 낳는 사람이 없는겨. 대가 끊긴다고 난리가 났었지. 애가 생겨도 뱃속에서 죽어버링께. 환장할 노릇이었어. 그리서 젊은 애들은 다 떠나 불고 영감, 할매들만 살었어.
근디 또!“
“또 뭐요?”
“할매들이 급살을 당하는 겨.”
“할머니들만요?”
“그려, 그믐밤만 되믄 여지없이 하나씩 급살을 당하는디. 온 마을이 초상집이었어. 근디, 그때!”
“그때?”
“도사님 한 분이 이 마을을 지나가신겨! 그 도사님께서 도포 자락을 펄럭임서 딱! 그러신 거지. 저 나무를 뽑아서 나를 따르랑께!!”
“??”
도포 자락?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도포 자락 타령인가?
“저.. 그게 언제적 이야기에요?”
“그게? 글씨, 왜란 전이라고 혔응께. 한 200년 됐으까?”
임진왜란, 1492년 발발. 400년도 더 된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