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the ghost munchkin! RAW novel - Chapter 37
37화
밖이 시끄러웠다. 출동한 구급대가 온 모양이었다. 구급대원들이 계단을 뛰어오르는 틈으로 눈에 익은 얼굴이 있었다.
덕팔이 당황하여 얼른 현관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는 구급대원에 밀려 잠시 자리를 내어 주자 들 것에 임산부를 싣고 나가려는 구급대원들이 다시금 덕팔의 길을 막아섰다.
“빨리 내려가요. 어서!”
덕팔이 엄하게 소리를 치자 은혜가 움찔하곤 몸을 움츠리며 계단 아래로 내려가려 했다. 그때, 들것에 실려 내려가던 임산부가 배를 잡고 고통을 호소했다. 덕팔의 눈이 질끈 감겼다.
‘빌어먹을..’
임산부의 비명과 함께 은혜가 쓰러졌다. 구급대원들이 다시금 들것을 들고 거실로 들어와 임산부에게 응급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비명은 전염병처럼 들것에 실리려는 임산부들에게서도 튀어나왔다.
은혜에게로 가는 길이 뚫리자 덕팔이 급히 달려가 은혜를 안고 계단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은혜는 덕팔에게 안겨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신내림!
아주 지X이었다. 가까운 곳에 신기를 가진 아영도 있었건만, 태아들의 백은 더 크고, 더 넓은 그릇을 원했던 모양이었다. 아니 어쩌면 은혜의 알 수 없는 그 능력이 태아들의 백을 육신에서 떠나게 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덕팔이 달려 나가자 아영이 김 형사에게 현장을 맡기고 덕팔의 뒤를 따랐다. 덕팔은 급한 대로 트럭 적재함을 열고 은혜를 눕혔다. 품에서 작은 소도를 꺼내 손가락에 피를 내곤 은혜의 가슴에 내리꽂으려 하였다.
“그러..지 말아요”
워낙 작은 소리였기에 덕팔이 이를 듣지 못하고 소도가 은혜의 가슴을 막 찌르려하였을 때 은혜의 손이 덕팔의 소도를 잡았다.
“은혜씨?”
엄청난 힘이 느껴졌다. 은혜의 맨손에 의해 소도가 부러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지… 말아요.”
겨우 은혜의 말을 알아들은 덕팔이 도를 거두자 은혜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미안해요. 덕팔씨.”
“아니, 그런 건 괜찮습니다. 몸은 어떠세요?”
“괜찮은 것 같아요. 많이 어지러웠었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몸에서 백을 빼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혹여라도 남아 있을 혼의 찌꺼기 때문에 은혜씨가 곤란해질 수 있어요.”
“아니요. 아이들은 이미 다 떠났어요. 이상하게도 그게 느껴져요. 순수한 푸른 기운만 제 가슴에 남았어요.”
“그게.. 느껴집니까?”
“네.. 신기하게도…”
덕팔이 차 안에서 몸을 빼내자 은혜가 차 밖으로 나왔다.
“은혜씨, 그 기운이 악하지 않다고 해도 인간의 몸이 견딜 수 있는 신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모르겠어요. 지금은 그냥.. 그 아이들을 그냥 두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에요.”
덕팔이 고개를 흔들었다. 신기를 가진 무당들도 모실 수 있는 신이 다 다르다. 그 그릇의 크기에 따라 담을 수 있는 신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태자귀가 신기와 무관하게 가슴에 품을 수 있다고 하지만 무려 5개의 백을 몸 안에 담았다. 은혜의 몸이 견딜 수 없는 엄청난 힘인 것이다.
덕팔이 직접 신력을 거두지 않고, 신투 장갑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신력을 모으는 이유가 무엇인가? 몸이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허허허.. 어르신, 어떻소? 나의 마지막 작품이?”
뒤에서 들려오는 노인의 목소리. 김혁성이었다.
“당신, 저 사람에게 무얼 한 겁니까?”
“어르신은 날 기억하지 못하는 듯하지만 나는 오래전에 어르신을 본 적이 있소, 심지어 어르신의 능력이 봉인될 때 운이 좋게도 한팔 거든 적도 있었지.”
“뭐요?”
“선생께서 연락을 해왔소. 어르신의 능력이 선생의 능력을 뛰어넘어 신속의 힘을 가진 내가 필요하다고 하였지. 허허, 생각해보니 나는 어르신의 은인이 아니오? 허허허”
“헛소리하지 마십시오. 그날, 오두막에는 외부인이 없었습니다.”
“당연하지, 나는 그날 어르신의 대신하여 그 장갑을 끼고 악령수 앞에 있었소. 어르신도 알고 있지 않소? 그믐날마다 악령들을 불러 모으는 그 괴기스러운 소나무! 봉인에 필요한 힘을 내가 모아 주었소. 이제 이 늙은이의 말이 믿어지오?”
덕팔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봉인의식은 분명 그믐날 시행되었다. 스승께서 신투장갑의 능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한 조치라고만 알고 있었거늘 그 뒷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이보세요. 헛소리하지 마시고 차에 타십시오.”
김 형사가 재촉하자 김혁성이 두 손에 채워진 수갑을 흔들며 웃었다.
“허허허, 나는 이렇게 되었으니 어르신께서 이 늙은이를 찾아와야 할 것 같구려. 허허허”
“한 가지..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왜? 저 사람입니까?”
“이젠 보이지 않소?”
김혁성이 힘을 모으자 은혜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저..저.. 저 사람…”
덕팔이 은혜를 돌아보곤 은혜를 자신의 뒤를 숨겼다.
“처음 보았을 때 알았소. 나의 평생의 염원을 풀어줄 그릇이 내 앞에 나타났다는 걸. 고맙구려. 이것으로 내가 베푼 은혜는 없던 것으로 합시다.”
김혁성이 김형사의 차에 오르며 빙그레 웃었다.
“늦기 전에 꼭 날 찾아오시구려. 허면 어르신이 평생 궁금해하던 그 일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오. 허허허”
김혁성을 태운 차는 떠나갔지만 덕팔은 그 차를 시선에서 떼어 놓지 못했다.
“오빠, 피!”
“응?”
아영이 덕팔의 입술에서 흐르고 있는 피를 닦아주었다. 입술을 너무 세게 깨물었는지 입술이 다 터지고 말았다.
“후우.. 돌아가자. 오늘은 우리 집으로 가자. 아무래도…”
“응.. 알았어.”
아영이 덕팔의 뒷말을 듣지도 않고 동의를 하자 덕팔이 은혜를 바라보았다. 은혜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
불안한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은혜와 아영은 피곤하였는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잠이 들었다. 차 안에서 세 사람의 대화는 거의 없었다. 그저 덕팔이 은혜를 힐끔거리며 상태를 살폈을 뿐이었다.
덕팔은 밤새 은혜의 방을 들락거리며 은혜의 상태를 살폈다. 은혜가 잠든 사이에 은혜의 몸에서 백을 빼낼까 숱한 고민을 하였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며 잠시 잠이 들었던 덕팔은 아영이 출근을 하며 깨워주자 그제야 눈을 뜰 수 있었다.
“부엌에 먹을 게 있을 텐데…”
“경찰서에 가보려고… 은혜 언니나 잘 챙겨줘.”
아영이 현관문을 열고 나가며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
“은혜 언니.. 별일 없겠지?”
덕팔이 고개를 살짝 끄덕여 주자 아영이 작게 미소 지으며 출근길을 서둘렀다. 덕팔이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오늘은 딱히 요리하고 싶지 않아 어제 먹으려고 만들어 놓았던 찌개를 덥혀 놓고 밥만 새로 하여 상을 차렸다.
덕팔이 은혜를 부르려 했을 때, 은혜가 2층 계단을 밟고 있었다.
“식사하세요.”
“…네”
은혜가 말없이 덕팔의 맞은편에 앉아 젓가락을 들었다. 젓가락으로 반찬과 밥을 몇 번 깨작거리던 은혜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찬이 없어서 그래요?”
“아뇨. 맛있어요. 단지…”
덕팔이 조용히 은혜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배가 불러요.”
“….. 아!”
덕팔은 그제야 이해를 하였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그리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3층으로 향했다. 한참 동안 무언가를 찾던 덕팔이 한서 한 권을 들고 내려왔다.
“이 책은 스승님께서 전국을 돌며 수집한 책 중에 한 권이에요.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어서 그냥 지식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 은혜씨의 상태를 보니 이 책에 쓰여져 있는 글이 생각이 났어요.”
덕팔이 책의 한 구절을 읽어주었다.
“강원도 치은 마을에 도착한 나는 혼백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무당을 보았다. 점을 보면 미래를 훤히 알 수 있고, 굿을 하면 악귀들을 물리치는 용한 무당이었다. 하여 내가 물었다.
‘임자는 어찌하여 그런 능력을 얻게 되었나?’
‘본래 저는 무당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어린아이 둘이 찾아와 제자로 받아 달라 청을 하였는데 두 아이의 모습이 꼭 빼닮아 쌍둥이인 것을 알았습니다. 낡고 허름한 옷을 입고 짚신도 신고 있지 않았기에 내가 그 아이들을 불러 밥을 먹였습니다.’
나는 그 쌍둥이 아이들이 태자귀였음을 알았고, 이 무당이 두 백을 가슴에 품고 사는 이유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
“예로부터 태자귀를 둘 이상 품고 있는 무당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신은 그 기질이 다 다르므로 서로 다른 것들을 품고 있으면 충돌하여 숙주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기에 무당들이 이를 꺼렸던 겁니다.
어제 은혜씨는 태자귀 다섯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들로 인하여 혼의 공백을 채운 것이지요. 은혜씨는 신기의 능력자가 아니지만, 혼의 그릇이 그만큼 컸던 모양입니다. 그러니 제가 드린 약으로는 그 그릇을 다 채울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처음 아주 어린 동자귀가 빙의 되었을 때에는 덕팔의 약이 효과가 있었어요. 그런데 왜 이번에는 효과가 없는 걸까요?”
“정확히 뭐라 답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짐작해 보자면, 그때 그 빙의로 말미암아 은혜씨의 그릇이 커졌거나 아니면 원래 가지고 있지 않았던 능력이 개화된 것이 아닌지 짐작하고 있습니다.”
“원래 가지고 있지 않던 능력이라면? 신안 말인가요?”
덕팔이 고개를 저였다.
“은혜씨가 가지고 있는 능력은 신안이 아닙니다. 신안은 그런 형태로 발현되지 않아요. 제가, 스승님께서 알지 못하는 다른 능력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신기는요?”
“원래 아주 미미한 수준으로 신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영이보다도 더 보잘 것 없는 능력이지요.”
“신기 능력이 그렇게 보잘 것 없는데 어떻게 백을 다섯이나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거죠?”
“보통 귀신이 붙는 것을 어깨에 걸친다고 표현합니다. 빙의는 신의 혼이 육신을 지배하는 것을 말하고, 접신 그러니까 귀신이 붙는 것은 가까이 두고 소통함을 의미합니다. 내림굿을 하는 이유는 그 소통의 길을 열어주기 위함이죠.
그런데 태자귀는 그 표현을 달리합니다. 태자귀는 혼이 없기에 그 백이 몸 안으로 스며듭니다. 그래서 가슴에 품는다고 표현을 하지요. 하여 태자귀는 신기 능력과 무관하게 가슴에 품을 수 있습니다.“
“아.. 그게 그런 의미였군요.”
“하지만 한 가지 아셔야 하는 게 있습니다. 본래 산 것과 죽은 것은 함께 있어서는 아니 됩니다. 그것이 혼이 사라진 백이라 하더라도 저승의 것이 이승에서, 그것도 사람의 몸에 남아 있으면 좋을 리 없지요.
특히 그 신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인간의 몸은 무리하게 되고 결국 영혼이… 흐음..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하나?”
설명하는 도중 덕팔이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분명 이를 표현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입에 담기 어려운 것이었던 모양이었다.
“제 영혼이 좋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되나요?”
“흐음… 정확히 말씀드리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가시게 되는 겁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
이쯤 되자 은혜도 충격을 받았는지 얼굴이 핼쑥해졌다. 자연히 고개가 떨궈졌다. 덕팔은 은혜를 설득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이라도 품고 있는 백들을 흩어내길 권하고 싶군요.”
은혜가 덕팔의 말에 아무런 대구도 하지 않고 고개만 숙이고 있다가 생각이 정리되었는지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어제.. 사실 덕팔씨와 아영씨가 그곳에서 무엇을 하는지 무척 궁금했었어요. 몰래 따라가 볼 생각도 했죠. 근데 두려움이 더 컸어요. 그래서 차 안에 얌전히 있었죠.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절 불렀어요.
주위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인기척이 없었는데 제 귀에는 또렷하게 들렸죠. 자신을 보러 와 달라고 했어요. 저는 너무 무서워서 고개도 들지 못하고 귀를 막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이미 그 계단에 서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표정을 지은 거군요?”
“네, 너무 놀랐어요. 차 안에서부터 그 계단에 오를 때까지 저는 없었으니까요. 계단에서 덕팔씨를 보고 다시 의식을 잃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다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제발 구해달라고…. 그 소리가 점점 작아질 때 덕팔씨의 모습이 보였어요.”
“혼이 사라지며 남긴 잔념이였을 겁니다.”
“그런가 봐요. 이제는 그 소리조차 들리지 않아요. 그냥 뭐랄까? 배부른 느낌? 좀 이상하죠? 하지만 지금 제 감정은 딱 그래요. 배가 불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