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the ghost munchkin! RAW novel - Chapter 60
60화
신모들이 저녁 늦게 각 신터로 떠났다. 진향과 막내만이 총산에 남아 덕팔과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김혜원이에요.”
“오덕팔입니다.”
“막내는 아버지의 손녀랍니다.”
“아.. 그럼?”
“네, 그때 그자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당한 오라버니의 외동딸이지요.”
“으음… 그런데 왜..”
“이 아이가 자청을 했습니다.”
“고모는 뭐라고 그런 얘기를 해요. 고모, 오늘 나 할 일 없지?”
막내, 아니 혜원이 진향에게 묻자 진향이 살포시 아미를 좁혔다.
“아이~ 고모, 오랜만에 서울 왔는데 강남에 물 좋은.. 알지?”
“안 돼!”
진향이 엄한 목소리로 혜원의 요구를 거절하자 혜원이 입을 쭈욱 내밀었다.
“고모, 나 땅끝마을 살거든? 할아버지가 말 잘 들으면 서울로 올려보내 주신다고 했는데 벌써 4년이야. 죽은 듯 찍소리도 안 하고 지금까지 열심히 점만 보고 살았는데 이게 뭐냐고!! 그러니까.. 오늘 하루만.. 응? 하루만 보내줘!!”
“어휴.. 언제 철이 들래?”
“나 아직 서른도 안 됐어. 근데 귀신도 아니고 맨날 쪽머리에 소복을 걸치고 사니까 다들 날 아줌마라고 하잖아. 쪽머리 때문에 나 머리 빠지는 거 안 보여?”
“혜원아, 어르신도 계시는데 무슨 망발이니? 조용히 목욕재계하고 기도나 드리다 자렴.”
“고모!!”
진향의 눈에 힘이 들어가자 혜원이 꼬리를 말았다.
“알았어요. 맨날 나한테만…”
혜원이 덕팔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곤 조신하게 물러났다.
“아직 철이 덜 들어서…”
“활달한 분이신 것 같은데 이 일과는 성격적으로 잘 맞지 않는 듯…”
“그렇지는 않아요. 일할 때는 열심히는 하는데 아직 혈기를 주체하지 못해서 그만…”
“땅끝마을에 신터를 열면 장사가 되긴 합니까?”
“호호.. 벌이었어요. 워낙 노는 걸 좋아하는 아이라 아버지께서 조용한 곳에 가 마음을 다스리라고 벌을 내리셨는데 이런저런 일 때문에 잠시 잊으셨던 거죠. 최근에는 그 문제 때문에 가까이에 있다가 화를 당할까 우려가 되어 일부러 불러들이지 않은 거랍니다.”
“아, 그럼 그곳은 신터라기 보다는 기도원 같은 곳인 모양이군요?”
“호호.. 그냥 별장이랍니다.”
“…..그렇군요.”
“불러들일까요?”
진향이 묻자 덕팔이 고개를 저었다.
“제가 결정을 할 일은 아닌 듯싶으니 신모님들의 일은 큰 신모님께서 다른 신모님들과 상의하여 결정해 주십시오.”
“그럼 그렇게 할께요.”
진향이 웃으며 덕팔의 빈 잔에 차를 따랐다.
“슬슬 집으로 돌아가 볼까 합니다.”
“이곳에 머무시는 게 불편하신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저 아가씨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 아가씨를 언제까지 달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제집에 군식구들이 조금 있습니다. 그들의 문제도 해결해야 할 듯싶네요.”
“그러시면 박 집사에게 모시라고 이르겠어요.”
“신모께서는 다시 청송으로 내려가시나요?”
“당분간은 여기 있어야 할 듯싶네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여러 문제가 남아서요.”
“네, 종종 뵙겠습니다.”
덕팔이 몸을 일으키자 진향도 함께 몸을 일으키며 덕팔을 배웅해 주었다. 진향이 운철로 하여금 덕팔을 모시게 하려고 하였지만, 덕팔이 끝내 사양하고 아영의 차에 올랐다.
**
아영의 차가 집 앞에 도착하였다. 덕팔이 먼저 내리더니 크게 기지개를 켰다. 막 차 문을 열던 한유리의 귀에 풀썩! 하며 무언가가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덕팔이 대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엉망이 되어 있던 마당이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아마도 향숙이 사람을 시켜 집을 치운 모양이었다. 그저 일주일 남짓 집을 비웠는데 몇 달 만에 돌아온 것 같은 그리움이 있었다.
[오셨습니까? 아저씨.]“잘 지냈느냐?”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네 덕에 무사히 나았단다.”
[새로운 기운이 느껴집니다. 인연을 만나신 것입니까?]“그래, 긴 이야기가 될 터이니 나중에 다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자꾸나. 우리 두 귀신 근로자들은 어디 갔니?”
[건물에서 근무 중입니다. 그들이 아저씨의 근황을 전해줘서 무사하심을 알고 안심을 하였습니다.]“그랬어? 내겐 그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아.. 처음에는 기운을 조절하지 못해서 그랬었을 거야. 이거 괜히 미안하군. 특식이라도 시켜줘야 할 모양이야.”
[떡볶이라는 음식이 참 맛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참고해 주십시오.]“그래, 그래. 알았다.”
덕팔이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낯익은 얼굴이 쇼파에 앉아 덕팔을 기다리고 있었다.
“….은혜씨.”
“건강해 보이네요.”
“네”
“건강한 얼굴을 보았으니까 이만 돌아갈게요.”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아뇨. 한유리씨를 지켜야 하잖아요. 혼자 갈게요.”
은혜가 쇼파에서 몸을 일으켜 현관문을 열고 나가자 덕팔이 은혜의 뒤를 따랐다.
“괜찮으십니까?”
“서운하지 않아요? 제가 도망을 가서?”
“은혜씨의 그 반응, 이해합니다.”
“왜… 왜 이해를 하죠? 서운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게 맞는 거잖아요. 저한테 아주 조금이라도 감정이 있었다면, 실망하고 화를 내야 하는 거잖아요. 그게 더 미워요.”
은혜가 화를 내며 대문을 꽝 닫고 나가 버렸다. 덕팔의 배웅은 여기까지인 모양이었다.
아영과 한유리가 2층 베란다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언니, 저러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병원에 얼굴 한번 안 비친 사람이 되레 화를 내내?”
“…. 나는 이해가 되는데?”
“진짜? 왜 나는 이해가 안 되지?”
“유리씨, 미워하는 감정보다 더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게 뭔 줄 알아?”
“미워하는 거보다 더 마음 아픈 거? 스토킹?”
“무관심이야.”
“아, 책에서 본 거 같아요.”
“오빠가 은혜 언니한테 상처를 주고 있네. 근데, 나도 저 상처를 입게 될까 봐 무서워.”
“…. 아저씨가 언니한테 왜?”
“그러게, 나도 그걸 잘 모르겠어.”
아영이 씁쓸하게 웃었다.
**
아침이 되었다. 덕팔은 오늘도 정성껏 지은 밥에 콩비지찌개를 끓여 내놓았다.
“콩비지? 나 이거 완전 좋아해요.”
덕팔의 식탁에 낯익은 여인이 앉아 숟가락을 들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쪽이 왜 여기에 앉아서 내 숟가락을 들고 있는 거냐구요.”
“어르신, 콩비지는 어디서 나셨어요? 서울에서는 구하기 진짜 힘든 음식인데? 우와 이거 안에 들어간 거 묵은지죠? 깨끗하게 빨아서 넣으셨네. 굿! 베리 굿!”
“이보세요. 무당씨!”
한유리가 버럭 화를 내자 그제야 혜원이 한유리를 바라보았다.
“저 무당 아니구요. 신모, 아니 아직 결혼을 안 했으니까 신녀라고 해주시겠어요? 그리고 제가 어르신 댁에 오는 게 뭐가 문제죠? 오히려 배우이신 한유리씨가 외간 남자 집에 얹혀사는 게 문제 아닌가요?”
“저는 이유가 있어서…”
“의뢰하신 건가요?”
“마..맞아요.”
“의뢰비는 주셨어요? 이 밥을 먹는데 밥값은 내고 계시나요?”
“그..그거야. 일이 끝나면…”
“계약은? 하셨구요?”
“그..그건, 우리 매니저 오빠가…”
“거보세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잖아요. 그저 입만 달고 들어와 앉아서 밥만 축내고, 사람을 위험하게 만들고.. 아닌가요?”
“무..무슨 말을 그렇게…”
“냉정하게 말을 하면 이 집에서 나가야 할 사람은 당신이에요. 민폐니까! 하지만 저는 마음이 넓은 여자니까 이해해 주겠어요. 그러니 앉아서 조용히 밥이 먹이나 먹도록 해요.”
매우 도도하면서도 쌀쌀맞은 목소리로 한유리를 찍어 누른 혜원이 덕팔에게 시선을 돌리며 얼굴을 바꿔 방긋 웃었다.
“어르신, 신터 밖에서는 오빠라고 불러도 돼요?”
쪽머리를 하지 않은 혜원은 20대 중반의 발랄한 아가씨였다. 그저 쪽머리를 하고 소복을 입었을 뿐인데 사람을 10살 넘게 늙게 한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편히 부르십시오.”
“고마워요. 오빵!”
싱글거리던 혜원이 한유리를 째려보며 찬기를 흘렸다.
“밥 안 먹나요?”
유일한 우군인 아영이 출근을 한 상황에서 한유리는 눈칫밥을 먹어야 했다. 밥이 입으로 들어갔는지 코로 들어갔는지 알 수도 없는 식사였는지라, 불이 나게 식사를 마친 한유리가 2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덕팔이 한유리가 사라진 것을 보고 물었다.
“아침부터 웬일입니까?”
“호호호.. 어제 밤에 몰래 나이트에 갔죠. 새벽에 들어가다가 고모한테 딱 걸렸어요. 싹싹 빌었는데 들은 척도 안 해서 어쩔 수 없이 여기로 왔어요. 제가 서울에 아는 사람이 있어야지요.”
혜원의 표정이 순식간에 처량 그 자체로 변했다. 연기했어도 아주 훌륭한 배우가 될 것 같았다.
“제집은 어떻게 아시고…”
“어머? 이 집이 얼마나 유명한데요? 인터넷에 검색해보니까 금방 나오던데요?”
“하하.. 그렇습니까? 흐음..”
헛웃음을 웃던 덕팔이 한숨을 내쉬자 혜원이 큰 웃음을 터트렸다.
“처음 봤을 때는 우리 할아버지랑 맞짱을 뜨길래 속에 구미호 백 마리쯤 가지고 있는 꼰댄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까 완전 쑥맥 오빠네. 호호호호”
“그런가요?”
덕팔이 빙그레 웃었다. 자신을 쑥맥이라고 놀리는 저 아가씨야말로 세상 물정 모르는 쑥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고모가 오빠를 되게 싫어했는데 어떻게 해서 고모 마음을 돌린 거예요?”
“글쎄요.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큰 어르신의 유지 때문이지 않을까 싶은데?”
“그럴 리가 없어요. 우리 고모가 할아버지 조카라는 건 알고 있죠?”
덕팔이 고개를 끄덕이자 혜원이 말을 덧붙였다.
“우리 고모가 어려서 작 할아버지, 할머니를 여의고 할아버지 손에서 딸처럼 키워졌기 때문에 할아버지를 무척 끔찍이 위하거든요? 친 손녀인 저보다? 근데 고모가 말하길, ‘저 남자는 적이다’라고 했단 말이에요.”
“오해를 푸신 모양이죠.”
“그런가? 아닌 것 같은데? 나중에 고모 화가 풀리면 물어봐야지. 헤헤”
혜원이 귀엽게 웃었다.
“그래서 해남으로는 안 돌아갈 겁니까?”
“얘기 들으셨구나. 헤헤, 그래서 찾아왔어요. 저 좀 살려달라고.. 저 진짜 가기 싫거든요? 오빠, 아니 어르신! 저 좀 서울에 있게 해주세요. 그럼 제가 뭐든 다 해 드릴게요. 진짜에요. 저 점도 잘 보고, 굿은.. 쫌 그렇지만 암튼 부적도 잘 써요. 볼래요? 이 집에 잡귀 둘이 있는데 한방에 소멸 시켜 볼까요?”
“하하.. 그러시면 안 됩니다. 막내 신녀님 때문에 지하 거실에서 오돌오돌 떨고 있는데 그런 위협을 하시면 기절을 할지도 몰라요. 뭐 좋습니다. 절 위해 뭐든 다 한다고 하시니 그럼 먼저.. 설거지하시죠.”
“네?”
“드신 그릇과 한유리씨가 드신 그릇, 몇 개 안 됩니다. 깨끗하게 뽀독뽀독 소리가 나도록 아주 깨끗하게 설거지를…”
덕팔이 부엌 밖으로 나가자 혜원이 고개를 떨궜다.
“내가 유일하게 못 하는 게 설거지와 요리라는 걸 미처 말하지 못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