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the ghost munchkin! RAW novel - Chapter 9
9화
한국대 의과대학 병원 내 커피숍
“오덕팔입니다.”
“최은혜에요. 김 변호사님하고 사적으로 친분이 있어서 그때, 덕팔씨에게 신세를 졌어요.”
“신세라니요. 별일 아니었습니다. 그냥 잊으시면 됩니다.”
“빙…의라는 거. 정말 무섭더군요. 풀지 못하면 평생 그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들었어요. 제게 빙의 되었던 명도는 더욱 비참하더군요.”
“아무래도, 3세 이하의 애기 귀신들이라서…”
“평생 방바닥을 기어 다니고 엄마젖을 찾고 오줌, 똥을 지리고 사는 인생! 그때는 몰랐지만, 후에 실상을 알고 보니 덕팔씨에게 고마움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정말 고맙게 생각해요. 덕팔씨는 제 인생을 구하셨어요.”
“아닙니다, 어렵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은혜씨는 우연히 그런 일을 당하신 거고. 다시 빙의될 일은 없을 테니 안심하시고 사셔도 될 겁니다.”
덕팔이 갈증이 나는지 빨대를 쪽 빨아 커피를 마셨다.
“크으..”
커피가 매우 썼다.
“이놈 시키가…”
최소 투샷, 쓰리샷이 첨가된 듯 커피가 거의 소태에 가까웠다.
“어머, 제 커피였나 봐요. 제가 커피를 좀 진하게 마시거든요”
최은혜가 덕팔이 마시던 커피를 가져가 조금 전 덕팔이 빨아 먹었던 빨대로 커피를 빨아 마셨다.
“아니.. 그거..”
“제 커피가 맞네요. 자, 이거 드세요.”
최은혜가 자신의 자리 앞에 놓여 있던 커피를 덕팔 앞에 내어 주곤 아무 일 없다는 듯 덕팔의 커피를 음미하였다.
“제가.. 민수를 좀 괴롭혔어요. 덕팔씨를 꼭 보고 싶었거든요.”
“아.. 그러셨군요. 제가 산속에 있으니…”
“재작년까지 민수 때문에 가끔 서울에 들렸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재작년에는 덕팔씨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민수 녀석이 정보를 늦게 제공하는 바람에 간발의 차이로 놓치고 말았죠. 호호”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최은혜의 수다는 쉼 없이 계속되었다. 덕팔은 그저 자신 앞에 놓인 커피를 마시며 은혜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 그래서 한국대에서 전임강사가 되었어요.”
“축하드립니다.”
“별일 아니에요. 호호”
은혜가 부끄러운지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덕팔은 이 수다의 끝이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앞으로…”
이젠 장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생각인 모양이다. 30년간 자신의 삶을 이야기 했다. 60까지 산다고 생각하면 앞으로 30년간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최은혜와 마주 앉은 지 정확히 두 시간이 되었으니 앞으로 두 시간만 더 버티면 되었다. 산술적으로는 그랬다.
그때, 덕팔을 구제할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띠리리링..
[임아영]오늘따라 아영의 전화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저 잠시만, 전화 좀 받고 오겠습니다.”
덕팔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전화를 받았다.
“어, 아영아! 그래 오빠야.”
은혜에게 들으라는 듯 아주 정확한 발음으로 ‘아영’과 ‘오빠’를 발음했다. 그러나 은혜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덕팔이 커피숍을 나가 아영과 본격적인 통화를 시작했다.
“그래, 김 변호사님께 부탁을 드려놨어. 어.. 어.. 알았다니까! 그래, 좀 있다 집에서 보자.”
덕팔이 전화를 끊고 다시 커피숍으로 들어가려고 뒤를 돌았을 때, 은혜가 덕팔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구, 깜딱이야.”
“우리 저녁 먹으러 가요.”
“네?”
“설마 그냥 돌아가시게요? 뭐 오늘 시간이 안 되신다면 내일 오전에 전화를…”
“가시죠. 저녁 먹으러..”
**
느끼한 크림 파스타를 좋아할 것처럼 생긴 은혜가 데려간 곳은 한국대 근처의 청국장집이었다.
“홍홍홍, 이렁 음식을 참 좋앙행용.”
코를 막고 웃고 있는 은혜에게 덕팔이 웃으며 대꾸하였다.
“정능 성울에성 잉십 년을 살았궁용. 젱강 살덩 동넹는 청국장 앙먹어용. 항항항”
덕팔이 코를 막고 있던 손을 내리며 웃자 은혜가 웃으며 코를 막았던 손을 내렸다.
“냄새가.. 휴우..”
“무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른 식당으로 가시죠.”
“아뇨. 처음 먹어보는 거라 그렇지. 다른 분들은 잘 드시잖아요.”
은혜가 용기를 내고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덕팔의 식성에 맞추기 위해 이 식당을 찾은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두 사람이 조용히 주문한 청국장이 나오길 기다렸다. 이윽고 뚝배기에 보글보글 끌고 있는 청국장이 나왔다. 냄새와 다르게 맛은 아주 훌륭했다. 청국장에 들어간 김치가 시콤새콤 한 맛을 더해 꽤 맛있는 한 끼가 되었다.
식당을 나온 두 사람이 자신의 옷을 킁킁거렸다. 청국장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었다.
“호호호.. 아무래도 커피숍에 가기는 무리겠죠?”
“그렇네요.”
“저기 코너를 돌면 포장마차가 하나 있어요. 소주 한잔 어때요?”
“.. 그러시죠.”
덕팔과 은혜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한국대 인근은 이제 막 기말고사를 끝내고 술자리를 갖는 학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은혜가 말한 코너를 돌고 나니 허름한 포장마차가 한 대 세워져 있는 한산한 주택가가 나왔다.
“좋네요. 이런 곳.”
“선후배들하고 가끔씩 들렸던 곳이에요.”
데친 오징어와 소주를 시킨 두 사람이 나란히 술잔을 채웠다. 미리 나온 당근과 오이로 안주를 하며 두어 잔 술을 들이켰을 때 은혜의 입이 열렸다.
“그날 이후,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덕팔의 안색이 굳어졌다. 은혜는 덕팔의 반응과 무관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이어나갔다.
“처음에는 뿌연 무언가가 아른거렸죠. 그것의 부작용이라고 생각하고 점차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한동안 보이지 않은 적도 있었죠. 그러다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어요. 좀 더 선명했죠. 그렇게 조금씩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럴 리 없습니다. 신안은 기술이 아닙니다. 발전할 수 없어요.”
“그런 건 저는 몰라요. 저는 제가 경험한 바를 말씀드리고 있는 거예요.”
“흐음…”
“얼마 전에 운전하고 있었는데 도로 한복판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남자를 봤어요. 당연히 차를 세우고 119에 전화를 했죠. 그런데…”
은혜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저만 볼 수 있었어요. 아주 또렷하게…”
“후우… 지박령을 보신 거군요.”
“찾아보니 그렇더군요.”
“모든 것을 그렇게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겁니까?”
“아뇨. 어떤 것들은 아주 흐리게, 어떤 것은 아주 선명하게…”
“못 보는 것들도 있겠군요.”
은혜가 고개를 흔들었다.
“알 수 없어요. 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존재하는지는…”
“그것의 부작용은 없습니다. 스승님께도 그런 부작용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어요.”
“그럼.. 저는 왜 그러는 거죠?”
“그보다 먼저, 그런 이야기를 왜 김 변호사님께 하지 않으신 겁니까? 김 변호사님께 말씀하셨다면 스승님께서 살아계실 때 미리 조치를 취했을 텐데..”
“무서웠어요. 빙의로 인해 저희 어머니는 거의 돌아가실 뻔했었어요. 다 큰 딸이 그런 모습을 보였으니… 그런데 또 그런 일이 생겼다고 말씀드릴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어쩌면 별것 아닐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고 있었는지도 몰라요.”
“그래서 조용히 저를 찾으신 겁니까?”
“민수라면, 덕팔씨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쉽지 않았어요.”
“흐음… 지금 주변에 무엇이 보입니까?”
은혜는 포장마차와 그 주변을 돌아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것도요.”
“흐음… 일단 알겠습니다. 혹시라도 또 무언가가 보인다면 그 자리에서 저에게 연락하세요.”
은혜가 덕팔을 바라보며 물었다.
“제 말을 안 믿으시는 거죠?”
“네.”
은혜의 고개가 무겁게 떨궈졌다.
“.. 그만 돌아갈게요.”
은혜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리려 하자 덕팔이 나지막하게 말을 건넸다.
“제가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은혜씨의 그 말이 거짓말이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정말 은혜씨가 그런 일을 겪고 있다면, 그 고통은… 제가 가장 잘 아니까요.”
은혜가 말없이 포장마차를 나갔다. 덕팔은 이제야 나온 오징어를 집어 한입 씹으며 소주잔을 기울였다.
“크아.. 술이 쓰네.”
**
소주 한 병을 다 비운 덕팔이 터덜터덜 걸어 지하철을 탔다. 술 냄새에 청국장 냄새까지 섞이니 주변 사람들이 코를 막았다. 덕팔은 하는 수 없이 중간에 지하철에서 내려 택시를 잡아탔다.
퇴근 시간. 택시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일진이 사납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국장만 먹지 않았어도, 최은혜만 만나지 않았어도, 하필 오늘 민수를 만나러 가지만 않았어도, 김 변호사를 오늘 만나지 않았어도, 아영의 부탁을 받아들이지만 않았어도, 아영이 그런 부탁을 하지만 않았어도…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 끝에 오늘 일진이 사납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지금 시간 8시 15분.
퇴근 시간이 끝나고서야 길이 뚫렸고 1시간 40분 만에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가니 깜깜한 거실에 한 인형이 쇼파에 앉아 있었다.
“아이고, 깜딱이야.”
“어디 갔다 오는 거지?”
“저녁 먹고… 소주 한잔 하고..”
“누구랑!”
“그..게… 민.. 수.. 랑?”
“훗, 거짓말할 때, 뇌 기능이 정지되는 것은 여전하군. 말을 더듬고 있잖아?”
아영이 고개를 돌려 덕팔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 오늘의 사나운 일진은 아직 끝난 게 아니구나.
덕팔은 절망하였다.
급히 끓여낸 김치찌개에 밥을 세 그릇째 퍼먹고 있는 아영을 바라보며 은혜의 이야기를 곱씹고 있었다.
‘그 포장마차에서 잡귀의 기가 느껴졌었어. 신안을 가지고 있었다면 아무리 기가 약한 잡귀라고 하더라도 보여야만 했던 거야. 그런데 그 여자는 보지 못했어. 그 여자는 기가 강한 악귀만 볼 수 있다고 하는 것 같은데 그런 신안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어. 거짓말이야.’
하지만… 덕팔은 망설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 여자는 무척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는 거야.”
땡땡땡
아영의 숟가락이 유리잔을 두드리고 있었다.
“뭔 말이 사실인데? 그 여자는 또 누구고?”
생각한다는 게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뱉어낸 모양이었다.
“아.. 하하, 민수가 고민이 있는 선배를 데리고 나왔는데 그 여자가 신안이 있다고 우겨서 말이지..”
“그래서?”
“내가 볼 땐, 거짓말 같아서.”
“왜 그런 생각을 했는데?”
“그게.. 신안은 못 보는 게 있어서는 안 되는 거거든..”
“오빠가 그랬다고 다른 사람도 오빠랑 같다고 생각할 순 없는 거잖아.”
“스승님께서도 그랬어.”
“겨우 두 가지 경우일 뿐이야. 너무 섣부르게 판단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 그럴까?”
“그래,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 보는 거로 하고! 근데 그 여자는 누구야? 나보다 이뻐? 늘씬해? 뭐 하는 여잔데? 몇 살인데!!!!”
그럼 그렇지. 너무 진중하게 자신의 말을 들어준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오늘은 일진이 좋지 않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