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the ghost munchkin! RAW novel - Chapter 93
93화
“원래라면 경찰 조사 때부터 그렇게 변명하는 게 맞지. 근데 배성우가 변호사 조력 없이 경찰에서 두서없게 진술을 하면서 여자가 어쩌구, 저쩌구 나온 거지. 변호사들의 아주 흔한 전략이야.”
“그래서,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데?”
“배성우 쪽에서 한유리씨 유가족들하고 합의를 시도하고 있나 봐. 아마도 된다고 봐야겠지.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들이니까.. 거기에 죄명이 살인이 아니라 과실치사가 되면 구속적부심사를 통해 풀려나게 될 거야.”
“사람이 죽었는데 그냥 풀려난다고?”
덕팔이 어이없는 표정이 되자 아영이 인상을 구겼다.
“내가 제일 열 받거든? 생각하니까 또 열 받네. 나 먼저 씻을게.”
아영이 진짜 열불이 났는지 뒷머리를 박박 긁으며 욕실로 들어갔다. 은혜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덕팔을 바라보았다.
“괜찮은 거죠?”
“솔직히… 괜찮지는 않네요.”
“저도 어제 그 얘기 듣고 화가 나더라구요. 하지만 덕팔씨! 이럴 때 일수록 냉정해져야 해요.”
“후우.. 법의 심판을 받는 것이 더 나을 텐데…”
덕팔이 쓰게 웃으며 3층으로 올라갔다.
**
드디어 김 형사가 황덕구의 범행 현장을 덮쳐 피해를 막아냈다. 피해자는 병원 원무과장이었다. 황덕구에게 납품을 받으며 각종 향응을 다 제공받고도 결국 더 많은 뒷돈을 주는 쪽으로 거래처를 바꾼 원무과장에게 원한을 품은 황덕구가 그를 죽이려고 하였지만, 잠복해 있던 형사들에 의해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물론 황덕구의 살인미수와 더불어 원무과장 역시 뇌물 혐의로 같이 조사를 받는 처지가 되긴 하였지만, 원무과장으로서는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누구야? 당신을 사주한 사람이?”
김 형사의 첫 물음에 황덕구의 고개가 쳐들어 졌다.
“할머니께서… 더는 참지 말고 살라고… 그 과장 새끼는 이 세상을 살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당신 할머니?”
“네, 제 할머니요. 어려서 절 키워주신 분입니다.”
김 형사가 기록을 뒤적거리더니 인상을 썼다.
“15년 전에 돌아가셨네?”
“네, 맞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분명히 할머니셨어요. 틀림없습니다.”
김 형사가 사진 한 장을 내밀자 황덕구의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맞아?”
“맞습니다. 맞아요. 저희 할머니세요.”
“알았어. 그러니까 결국 당신이 원무과장인 조찬영을 죽이려고 칼을 들고 병원에 간 것도 맞고, 실제 찌르려고 한 것도 맞다는 거지?”
“네. 맞습니다. 제가 그 자식을 죽이려고 했어요.”
“조서 그렇게 작성하고 검찰에 송치해도 이의 없지?”
“네.. 잘못했습니다.”
황덕구가 고개를 떨구었다. 잠입수사를 하던 형사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순박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저 사람이 사람을 죽이면 대한민국 사람 중 절반은 잠정적 살인자라고 평가하였다.
김 형사로서도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잠입 인원만 6명.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문책으로 끝날 것 같지 않았다. 특정인의 범죄를 예단하고 잠입 수사를 하였으니 민간인 사찰이라는 오해를 받아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황덕구는 예정대로 범죄를 저질렀다.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잠복한 형사들이 취조할 것이니 김 형사는 한 가지만 더 알아내면 되었다.
“할머니가 언제 나타나신 거지?”
“그러니까… 과장님이 납품하지 말라는 전화를 하셨고, 제가 그걸 부장님께 보고 드렸습니다. 그리고 사표를 쓰라는 소리와 함께 욕을 먹고 퇴근을 했는데 잠이 오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동네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몇 잔 마셨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집 앞에서 할머니를 뵈었어요.”
“평소에 술은 얼마나 마시지?”
“영업하고 있지만, 술을 잘 마시지 못합니다. 소주 한 병이면 취해버려서 접대할 때도 같이 술을 마시지 못하고 뒷수발이나 해야 해서 애로가 많았습니다.”
“그날도 많이 취했겠군?”
“네, 거의 한 병을 마셨으니까요.”
“기억이 나지 않거나 하진 않고?”
“그 정도로 술을 마셔본 적이 없습니다.”
“그날 할머니를 뵙고 나서 그 이후 원무과장만 보면 죽이고 싶은 충동이 생기던가?”
“아뇨. 그렇진 않았습니다. 몇 번 찾아가서 한 번만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긴 했지만 죽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오늘은?”
“그게… 부장님께서 퇴사를 고려하라고 하셨습니다. 짤리기 전에 사표를 쓰는 게 좋을 거라고…”
“그러니까 부장이 사표를 쓰라고 하니 갑자기 원무과장한테 화가 났다?”
“네.. 너무나 화가 나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해가 안 되는데? 사표를 쓰라고 한 건 부장인데 왜 원무과장한테 화가 난거지?”
“그…그게… 저도 잘… 아마도 할머니께서 원무과장 이야기를 하셔서 그런 게 아닌지…”
“흐음…”
김 형사가 잠시 생각을 정리하더니 황덕구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진술 성실하게 잘 받고 반성문 많이 쓰쇼.”
“네, 감사합니다.”
황덕구가 굽신거리자 김 형사가 먼저 일어나 조사실을 빠져나왔다. 조사실을 빠져나온 김 형사는 곧장 조사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유리벽이 쳐져 있었고 황덕구가 앉아 있는 모습을 큰 유리벽을 통해 볼 수 있는 비밀 공간이 있었다.
“어때? 뭔가 있어?”
덕팔이 고개를 저었다. 황덕구에게 달리 무언가가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은혜와 함께 하였지만 은혜 역시 특별한 것은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은혜가 입을 열려고 하자 덕팔이 눈치를 주었다. 입을 열지 말라는 것이었다. 김 형사는 눈치껏 덕팔과 함께 온 아가씨도 뭔가 한 수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덕팔이 말을 하지 않으므로 캐묻지는 않았다.
“강용우는 어때?”
“부인은 불륜이 아니었습니다.”
“그래?”
“열심히 부업을 하면서 생활에 보탬이 되려고 무척 애를 쓰는 억척 주부였습니다.”
“이상하군. 직장 내에서도 큰 문제는 없다고 하던데?”
“네, 얼마 전 물류 관리 직원이 그만두면서 익숙하지 않은 일을 떠맡게 되어 업무적으로 스트레스가 많은 것 말고는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황덕구가 저런 결과가 나오니 믿지 않을 수도 없고, 믿자니 걸리는 게 없고.. 참 미치겠네? 하여간 고생해. 조짐이 보이면 바로 연락을 하고..”
덕팔과 은혜를 배웅하던 김 형사가 덕팔을 보고 몰려드는 여경들을 막아서며 어여 가라 손짓을 하였다. 덕팔이 웃으며 경찰서를 빠져나와 차에 시동을 걸었다.
“어땠어요?”
“왜 말을 못 하게 했죠?”
“대외적으로 은혜씨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지 않아요.”
“왜요?”
“아버님도, 어머님도 원치 않을 테니까요.”
“저는 상관이 없는데…”
“저도 원치 않습니다. 은혜씨가 가급적 평범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할게요.”
은혜가 수긍하였다. 덕팔이 자신을 챙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자 기분이 좋아졌다.
“황덕구는 선한 인물이었나요?”
“네, 선한 인물이었어요.”
“강용우도 선한 인물이었다고 했죠? 그 전에 용의자 3명 역시?”
“네 모두 선한 인물이었어요.”
“영혼이 아닌 이의 성향까지 볼 수 있다는 게 놀랍네요. 아무래도 신안이 신속의 상위 능력이라는 말을 믿을 수가 없어요. 뭔가가 잘못 전해진 것 같다는 느낌이 자꾸 든다니까요?”
덕팔이 입을 내밀며 은혜의 능력을 부러워하는 사이 아영이 근무하는 서울00지방검찰청에 도착하였다.
**
서울00지방검찰청 조사실.
피의자 배성우에 대한 신문 전, 특별면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절 안 만날 줄 알았습니다.”
“내가 널 왜 피해야 하지?”
“하긴, 그렇군요. 배성우씨가 절 피할 이유는 없죠.”
“마음 아파? 크크 한유리가 죽어서? 누구 때문일까?”
“그것 때문에 보자고 했습니다. 왜 한유리씨입니까? 저여야 맞지 않습니까?”
“변호사가 말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배성우가 비릿하게 웃었다.
“녹음도 녹화도 되고 있지 않습니다. 100% 비밀이 보장된 면회라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믿지?”
“믿지 않는다면 별도리가 없지만 말하고 싶지 않나요? 결국 당신의 원망은 저에게 있을 텐데..”
“후후.. 말을 잘하네? 하지만 나도 이 계통에서 10년을 굴러먹었어. 아무것도 모르던 10대부터 어른들에게 이용을 당하며 그렇게 버텨온 자리라고..”
배성우의 눈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카메라가 꺼져 있는 것을 확인한 배성우가 몸을 앞으로 숙이더니 작게 속삭였다.
“널 죽이고 싶었다. 그런데.. 그X이 그러더군. 모든 것은 한유리 때문이라고.. 한유리가 날 무시하였기 때문에 너 같은 잡종한테 밀리게 된 거라고.. 그런데 말이야. 난 한유리한테 감정이 없었어. 무슨 말인지 알아? 난 이용당한 거라고. 누군가가 한유리를 죽이기 위해서 날 이용한 거야.”
“흐음.. 그랬군요.”
“내 말을 믿는 거야? 크크크 너도 미친놈이군.”
“그녀가 누굽니까?”
“나도 몰라. 빨간 드레스를 입은 예쁘장하게 생긴 년이 들어왔지. 크크 가슴이..크으..”
배성우가 두 손으로 당시의 상황을 묘사하며 웃었다.
“술집이었습니까?”
“그랬지. 내 단골 술집이었지.”
“술에 많이 취하셨던 모양입니다. 헛것을 보신 걸 보면.”
“헛것? 크크크 그래, 헛것이야. 내 변호사가 그날 CCTV를 봤는데 아무도 그 방에 들어오질 않았데. 말이 되나? 나는 분명히 그년을 봤는데… 내가 미친 건지.. 세상이 미친 건지.. 크크크”
배성우가 낮게 웃자 덕팔이 얼굴을 굳히며 마지막 경고를 하였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배성우씨의 손에 한유리씨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대가는 치르시길 권고합니다.”
“대가? 크크크 치러야지. 돈으로 말이야. 그 할매랑 삼촌이라는 작자들이 한 푼이라도 더 받아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하니 줘야지. 주고 난 나가면 그만이야. 그것들도 가족이라고.. 크크크”
덕팔이 고개를 흔들었다. 덕팔이 몸을 일으켜 조사실을 나가려고 하자 배성우가 지나치려는 덕팔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난 조만간 나가, 몇 년 지나면 내 사건은 촬영장에서 생긴 불운한 사고가 될 거고.. 그럼 난 재기할 수 있어. 그때까지 열심히 운동하며 몸을 만들어 놓으면 돼. 그때! 또 보자고.. 단역씨!”
덕팔이 조사실 문고리를 잡고 문을 열려고 하다가 몸을 돌려 배성우를 바라보았다.
“세상에 내려지는 벌 중에 가장 가벼운 벌이 인간이 인간에게 내리는 벌이라고 합니다. 그걸 거부하시면 더 크고 무거운 벌이 배성우씨에게 내려질지도 모릅니다.”
“크크크.. 그런 벌이 내려지면 다시 돈으로 대가를 치르지 뭐.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안 되는 게 있나?”
“그럴 수 있는지 지켜보지요.”
덕팔이 조사실 밖으로 나갔다.
조사실에 적막이 흘렀다. 배성우가 와락 인상을 썼다.
“대가를 치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나는 억울해. 피해자라고! 누군가가 날 이용했을 뿐이야.”
배성우의 고성이 조사실의 적막을 산산이 부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