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irman Kang the newcomer RAW novel - Chapter 171
제신입사원 강 회장 171화화
빌드 업(3)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한참이 지난 뒤 이상재가 조심스레 물었지만 최 회장은 얼굴을 찌푸릴 뿐이었다.
“기다 아니다만 말해. 아니면 아예 모르는 건가?”
“아닙니다.”
“뭐가 아니야?”
“준현이는 회장님의 핏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냥 회장님과 깊은 인연이 있고, 회장님께서 각별히 생각한, 막내아들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제가 아는 한…… 회장님은 혼외자가 없습니다.”
“역시…… 그런가…….”
실망한 표정이 아니다.
처음엔 확신했지만 언제부터인가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의심하게 된 건 닮은 구석이 없어서였다. 말투나 생각은 강 회장 판박이였지만 외모에서는 강 회장의 흔적이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그렇게 생각하셔서 결혼을 승낙하신 겁니까?”
“그게 절반은 넘지. 애가 똑 부러지고 타고난 장사꾼이라 적어도 집안에 해를 끼칠 놈은 아니라고 생각한 것도 있고.”
“어떡하죠? 그 절반의 이유가 사라졌으니 말입니다.”
최 회장은 슬며시 웃었다.
“괜찮아. 이미 강 회장의 아들이 차지할 몫 이상을 가진 놈 아닌가? 그 정도면 아들이 아니라 강 회장이라고 해도 못 이룰 업적이야. 10년 뒤면 최성 그룹 두 배 정도의 자산을 만들걸?”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갈수록 발전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니까요.”
“발전?”
“네. 처음엔 굉장히 조심스러웠지만 이젠 공격적인 마인드까지 갖췄습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행보가 더 기대되기는 하죠.”
최 회장은 가족의 칭찬이 싫지는 않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럼 그 행보의 마지막은 뭔가?”
“회장님께서 바라는 게 뭔지 잘 압니다.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말씀드리는데…… 준현이가 지원 요청하면 그게 뭐가 됐든 다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고. 자네는 어떤가?”
손녀사위를 적극 밀어주겠다는 대답을 기대했는데 엉뚱한 질문이 나온다.
“저 말입니까? 무슨 뜻인지……?”
“그 행보에 발맞출 준비가 됐냐는 말일세.”
“지금은 준비가 아니라 실행 단계로 접어들었습니다. 그 질문은 진즉에 하셨어야 합니다.”
“난 마무리를 묻는 걸세. 끝까지 발맞출 텐가?”
마침내 최 회장이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말이 뭔지 알아들었다.
이상재가 천천히 입을 뗐다.
“강 회장님이 머리였다면 전 손발이었습니다. 가끔은 손발이 머리가 놓친 걸 챙길 때도 있었죠. 손발이 놓친 걸 머리가 알려 주기도 했고요. 그렇게 강 회장님과 전 그룹을 이끌었습니다.”
최 회장은 듣기만 했다. 어떤 결론으로 끝맺을지 짐작도 가능한 말이다.
“지금의 저는 회장님 손녀사위에게 손발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 시간이 끝나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회장님 손녀사위는 머리와 손발을 다 가질 겁니다. 그때부터는 혼자 가야겠지요.”
“믿어도 되겠는가?”
“전 황준현이라는 놈과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그 친구는 강 회장님처럼 제게 특별한 존재이기도 하니까요.”
최 회장은 괜히 추궁했다 싶었다. 손녀사위가 이상재를 전적으로 믿는 게 미덥지 않았지만 지금은 왜 그렇게 신뢰하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이제 제 부탁의 대답을 해 주시겠습니까?”
“부탁? 무슨 부탁?”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충분한 지원…….”
“아, 그거?”
최 회장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 친구야, 이미 다 뺏겼어. 알토란같이 모아 뒀던 쌈짓돈까지 다 빼먹은 게 바로 그놈이라고.”
“압니다. 제가 부탁드린 건 회장님의 영향력입니다.”
“그거야 당연하지. 돈 드는 것도 아닌데.”
“그 영향력을 써 달라는 게 아니라 물려주라는 뜻입니다.”
“그건 물려주고 자시고 할 게 없어. 보따리에 싸 놓은 거라 들고 가는 거야. 지금은 내 아들이 가져갈 테니까, 그놈은 장인에게서 받아 가겠지. 온전히 가져갈지, 가져가면서 좀 흘릴지는 그놈 재량이고.”
이상재는 최 회장의 말을 듣다 보니 또 하나를 깨달았다.
규모가 다르면 모든 게 다 자연스럽다.
최성은 규모에 걸맞지 않은 영향력을 가지려다 보니 엄청난 노력과 돈을 쏟아부어야 했지만 ST는 그 이름만으로 다 가질 수 있다.
그러니 이름만 가지면 영향력도 고스란히 물려받는다. 좀 흘릴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아들이 아니라 사위라 그럴 테고.
“그렇군요. 규모가 작은 장사꾼이라 몰랐던 사실입니다.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결례는 무슨. 됐네. 오늘 같은 날 찾아와서 이렇게 뻘소리나 늘어놓은 내가 결례를 범한 거지. 이만 가 보겠네.”
최 회장은 천천히 일어섰다.
“가끔 찾아와서 내 말동무나 좀 해 주게. 이건 부탁일세.”
이상재는 머리 숙였다.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회장님.”
* * *
사흘째 되는 날 새벽, 강 회장은 홀로 봉은사를 찾았다.
곳곳에 불은 환히 밝혔지만 조문객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그룹에서 파견된 직원들도 곳곳에 짱박혀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지 눈에 띄지 않았다.
조용히 빈소를 살펴봤지만 상제도 보이지 않았다. 계열사 비서실 직원인 듯한 사내가 강 회장을 발견했지만 목에 건 직원증을 보자 신경 쓰지 않았다. 차출된 요원이라 생각한 것이다.
높은 단에 놓인 영정 사진. 수년 전의 사진이다.
자신의 영정 사진을 바라보는 게 야릇한 기분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마치 타인을 바라보는 듯 별다른 감흥이 들지 않았다. 사진 속의 노인보다 젊은 자신의 모습이 이제는 더 익숙한 탓이다.
조용히 국화 한 송이를 올리고 가져온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슬쩍 올렸다.
아무도 준비하지 않겠지만 지금 가장 간절한 게 바로 시원한 커피다. 커피를 즐겨 마시지는 않았지만 가끔 입안이 마를 때는 이만한 게 없었다.
답답한 육신을 훌훌 터는 날 아닌가? 시원하게 한 모금 하기를 바랐다.
아주 짧은 순간 사람의 삶이 참 하찮게 느껴졌지만, 빨리 털어 냈다.
그런 감정은 죽음 직전에 충분히 느끼면 될 일이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살아 있다는 걸 충분히 느끼면 된다. 뭔가를 하고, 뭔가를 이루고, 뭔가를 남기고. 앞으로도 이런 일을 되풀이하며 살 것이다.
강 회장은 자신의 지난 생을 빈소에 다 털어 버리고 나왔다. 이제 젊은 강 회장의 시간만 남았다.
* * *
장례식이 다 끝나고 모두가 상복을 벗었다.
가족이 모였지만 슬픔이 아닌 긴장감만 감돌 뿐이다. 이제 모두 가면을 벗고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야만 진정한 장례가 끝난다.
서로 눈치만 볼 때 장남인 강동성이 입을 열었다.
“아버지의 개인 재산은 이상재 전무가 목록을 만들고 있습니다. 정리 끝나는 대로 보고하겠다고 하네요. 그리고 지분 현황은…… 어머니는 이미 말고 계시죠? 19퍼센트가 조금 넘는 거?”
“그래, 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내 생각을 너한테 이야기해야 하니?”
충분한 대답이다. 어머니는 자신의 지분으로 아들이 경영권을 승계하는 데 조금도 도와줄 생각이 없다. 이제 아버지의 지분은 11퍼센트로 줄어 버렸다.
“그럼 지금부터 재미있는 레이스를 시작하는 거군요. 누가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해서 아버지의 자리를 차지하는지. 안 그렇습니까, 어머니?”
강동성이 조선희를 노려보며 말했다.
서로에게 양보하라는 부탁도 없고 강요도 없다. 이미 가족이 아니라 남남이다.
조선희는 둘째를 향해 말했다.
“동훈아, 네 형이 네게 화학과 금융을 준다고 했다지? 난 내 지분 전부를 네게 주마. 단…… 5년 뒤에. 내가 회장실에서 5년을 지내고 나면 그 자리는 네 것이다. 물론 그 5년간 네가 손가락만 빨고 있으라는 것도 아니야. 화학, 금융, 물산. 이 세 사업군을 총괄하는 부회장 자리가 널 기다린다. 네 형은 그냥 대주주일 뿐이다. 아니…… 그래도 사장 노릇은 하겠네. 건설이 있으니까.”
설마 이런 제안이 나올 줄 몰랐던 두 아들은 깜짝 놀랐으나 반응은 달랐다.
둘째는 입만 떡 벌렸고 첫째는 소리쳤다.
“어머니!”
하지만 조선희는 장남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아, 건설은 이미 지분 엮인 것도 없으니까 우리 최성 그룹에서 제외할 거다. 그리고 적당한 건설사 하나 인수해서 거기에 최성건설이라는 간판을 달 거고.”
조선희는 웃으며 장남에게 눈길을 줬다.
“이름 바꿔야 할 거야. 내가 소송해서라도 최성이라는 이름 못 쓰게 할 테니까. 그리고 그 회사 임직원들 전부 스카우트할 생각이다. 과연 몇 명이나 남아 있을지 나랑 내기해도 좋아.”
이 내기에서 질 게 뻔하다는 걸 강동성도 안다.
그룹에서 떨어져 나온 회사와 그룹에 속한 회사를 놓고 고르라고 한다면 모조리 빠져나갈 게 뻔하다.
강동성은 급히 동생을 쳐다봤다. 이놈이 또 어머니에게 속으면 안 된다.
하지만 동생의 얼굴에서 이미 갈등을 읽었다.
강동성은 최대한 차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넌 또 저 말을 믿냐?”
강동훈은 벌어진 입을 다물었다.
“그만해요, 엄마. 이제 다 끝났어. 내일이라도 이사회 열고, 부족하다면 주총이라도 열 거야. 거기 안건은 단 하나, 엄마의 회장 대리직 박탈. 아시겠어요? 다 끝났다니까.”
선언과도 같은 말에 강동성은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래, 또 속는다면 병신이지. 여기에 넘어가면 동생은 가망 없다.
하지만 둘째의 선언에도 조선희는 흔들리지 않았다.
“좋다. 그럼 네게 믿음을 주마. 내 몫으로 상속받는 지분을 아예 네가 받아라. 단 한 주도 남기지 않고 곧바로 네게 준다고. 괜히 이리저리 주인만 바꾸며 세금만 많이 낼 필요 있겠어?”
강동훈의 입이 다시 벌어졌다.
“단, 넌 내게 네가 가진 그룹 지분 전부의 의결권만 넘기면 된다. 딱 5년간. 그럼 난 내가 한 약속을 지키고, 너도 5년간 날 지지하는 거야. 이보다 더 깔끔할 수 있겠어? 이래도 이 어미를 못 믿어?”
어머니의 말대로 정말 깔끔하다.
변호사와 상의해야 정확하겠지만 별다른 조건이 없는 한 5년 뒤 그룹 회장 자리는 자신이 차지한다.
아버지가 2대 회장이었고, 3대는 어머니가, 그리고 4대는 바로 자신이다.
게다가 어머니가 앞으로 5년밖에 회장직을 유지할 수 없다는 내용을 임직원이 알면 그들이 누구에게 줄을 설지는 뻔하다.
5년이면 고작 대통령 임기 아닌가? 대통령이 권력을 과시하는 건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될지 몰라서다.
공무원은 아주 잠깐 5년짜리 임시직에 머리를 숙이지만 차기 대통령이 누군지 확정되는 순간 공무원은 차기에게 줄 서며 바로 그때부터 레임덕이 시작된다.
어머니는 지금 회장직에 눈이 멀어 이 간단한 순리를 모른다.
게다가 자신은 부회장이라는 직함까지 얻는다. 실세는 바로 자신이며 어머니는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간판만 회장일 뿐 실질적인 힘은 없다.
강동훈은 어머니를 노려보는 형에게 말했다.
“형, 미안한데, 내가 생각을 좀 해 봐야겠어.”
“동훈아!”
“아니, 솔직하게 말해서 엄마의 이런 제안을 거절하기가 쉬워? 만약 이 제안을 내가 아닌 형에게 했다면 형은 단칼에 거절할 거야? 5년만 참으면 되는데? 안 그래?”
이 상황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게 아니라 어부지리다.
꾹 참고, 아니 포기하고 기다렸더니 이런 열매가 떨어질 줄이야.
절반 정도 차지한 것으로 만족하려 했는데 5년 뒤 전부 차지하게 됐다.
최성 그룹 후계 전쟁에서 승리자가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는데…… 강동훈은 앞으로 5년간 어머니께 효도해야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