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irman Kang the newcomer RAW novel - Chapter 79
제신입사원 강 회장 79화화
똑똑한 아내(3)
최석경은 술 한잔했는지 볼이 발그레한 채 호텔로 돌아왔다.
“만났어?”
“응.”
“술도 한잔했나 보네?”
“사촌 동생들이 자꾸 술 권하잖아. 평소와는 다르게 엄청 살갑게 굴던데? 하나라도 더 알아내려고 애쓰는 게 애처로울 지경이었어.”
결혼하고 처음으로 사촌 몇몇이 모여 저녁을 먹는다고 했다. 갑자기 연락이 와서 얼떨결에 나갔다. 그런데 결국 그들이 원한 건 사촌 간의 친목이 아니라 정보였다.
“보나 마나 작은아버지들이 시킨 거야. 이번 두 그룹의 빅딜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어떤 계열사를 매각하고 매입하는지 알아내려고 자식까지 이용한 거지.”
최석경의 눈빛은 경멸에 차 있었다.
“그건 희소식인데?”
강 회장이 웃으며 말하자 최석경은 뜻을 몰라 고개만 갸우뚱했다.
“작은아버지들이 모른다는 건 그만큼 비밀 유지가 잘되고 있다는 거야. 그러니까 그룹 내 주요 인사들은 이미 작은아버지들은 무시한다는 거지.”
“아……!”
“내가 말했지? 절대 월급쟁이들을 무시하면 안 된다고. 마음먹고 똘똘 뭉치면 사람 하나 바보 만드는 건 식은 죽 먹기야. 모르긴 해도 두 분의 정보망은 이제 완전히 먹통이야.”
“그래서 핏줄을 이용한 거네?”
“그게 마지막 남은 정보망이니까 안쓰럽긴 하다.”
최석경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럼 내가 말실수한 건가?”
“왜?”
“다른 건 모른다고 딱 잡아뗐는데 미국 태양광 발전소는 슬쩍 흘렸거든.”
“솔라파워? 왜?”
“갑자기 할아버지 생각이 나더라고. 오빠랑 나랑 할아버지 비자금으로 투자하도록 유도했잖아. 그래서 3년 안에 서너 배 돈 벌 수 있는 투자라고 여운만 남겼어. 그럼 그 애들이 쪼르르 달려가서 작은아버지에게 말할 거 아냐.”
“그럼 작은아버지들도 투자하겠다고 감춰 둔 돈을 꺼낼지도 모른다?”
최석경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만약 아빠가 투자 거부한다고 해도 적어도 두 분이 아빠 앞에서 굽실거릴 거 아냐. 난 그 모습이 보고 싶었거든.”
돈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모멸감을 주고 싶었던 마음일 게다.
지나온 세월 동안 맺힌 게 많아서일까, 아니면 기회를 만들려는 순간적인 판단이었을까?
목적이 뭐였든지 간에 기회를 이용하려는 치열함이 보인다.
이러다 정말 두 그룹을 공동 경영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 * *
갑자기 저녁이나 먹자며 연락 온 두 동생.
최진혁은 또 무슨 일인가 싶어 잠깐 긴장했으나 이내 여유를 되찾았다.
이미 기울어진 저울이다. 예전처럼 팽팽한 대치 상황에서 그룹 경영권을 놓고 눈치 싸움하던 시절이 아니다. 쪽박 차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동생들일 뿐이다.
사위의 말처럼 그룹 회장의 면모를 보여야 한다. 태도가 상황을 지배하는 시간이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두 동생은 한껏 자세를 낮춘 모양새다.
“우리도 이야기 들었어. 계열사 잔가지 다 쳐낸다면서?”
“잔가지 수준이 아니라 굵직한 가지까지 다 쳐내는 것 같던데?”
최진혁은 별말 없이 식사만 했다.
여유가 생기니 이놈들이 얼마나 한심한 말을 하는지 훤히 다 보였다. 꼭 필요한 질문도 아니고 의견도 아니다. 그냥 지금의 일을 두고 반복해서 하는 말일 뿐이다. 일일이 대꾸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별일 없지?”
최진혁이 처음 입을 열었다.
“응?”
“별일 없냐고. 안부 묻는 거다.”
“아…… 그래. 우리야 뭐…….”
두 동생은 서로 눈짓하며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혹시나 해서 먼저 말하는 건데, 계열사 정리하는 건 충분히 생각했고, 각 계열사 사장들과 논의한 뒤에 내린 결론이야. 그러니 다른 의견은 사양이다. 내가 다 알아서 하마.”
두 동생은 처음부터 선을 확 그어 버리는 태도에 발끈하는 마음도 없진 않았으나 지금은 성질부릴 때가 아니다. 오늘 형을 불러낸 목적은 딴 데 있었다.
“그거야 형 책임으로 형이 진행하는 건데 우리가 뭐라고 하겠어? 잔소리할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니까.”
“그래? 그럼 됐고. 마음 편히 밥 먹겠네. 한잔할래?”
최진혁은 술을 들어 두 동생의 잔을 채웠다.
“그래, 할 이야기는 뭐야?”
막내인 수혁이 눈짓하자 둘째인 상혁이 눈치 보며 입을 열었다.
“최성 그룹 미국 태양광 발전소, 유에스솔라파워? 맞나?”
“응, 맞아.”
“그거 통째로 인수한다던데, 사실이야?”
“그럴 생각이다. 차세대 에너지 사업으로 미국에서의 교두보가 될 거야.”
“인수 자금이 어마어마하다고 들었는데…….”
“우리 종합화학도 만만치 않으니까 그리 큰 부담은 아니야. 인수 가격 절충하면 나 혼자서도 충분히 부담할 수준이다. 너희들 계열사에까지 손 벌리지 않아도 되니까 안심해.”
최상혁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런 뜻으로 물어본 거 아냐. 우리가 힘이 되고 싶어서 그러는 거지.”
이번엔 최진혁이 손을 내저으며 단칼에 잘랐다.
“솔라파워는 ST솔루션에서 인수할 거다. 너희들 계열사 돈 받으면 또 지분이 쪼개져. 아버지께서 교통정리 하고 계신데 왜 차선 복잡하게 엉키게 해? 심플하게 ST솔루션 자회사로 만든다. 관심 가지지 말아 줬으면 좋겠는데?”
“아니, 그게 아니라 회사가 아니고 우리 개인 자금으로 도와주겠다는 거야.”
“뭐?”
최진혁은 이놈들이 왜 이러나 싶었다.
회삿돈 빼먹고, 자회사 차려 돌려치기 해 가면서 알차게 모은 돈 아닌가? 그 피 같은 돈을 인수 자금에 보태?
“너희들 돈 많은가 봐? 조 단위가 넘어간다. 도대체 얼마나 있어야 돕는다는 소리 듣는지 알아? 몇백억은 명함도 못 내밀어. 한강 물에 돌 하나 던지는 건 돕는 게 아니라고.”
“너무 무시하는 거 아냐? 백 단위는 아니지.”
백 단위가 아니라고 했으니 최소 천억이다. 정말 이놈들이 왜 이러나?
“뭐, 그 정도를 빌려준다면야 난 좋은데…… 이자 많이 못 준다. 그래도 괜찮아?”
두 동생은 동시에 얼굴을 찌푸렸다.
“빌려준다고? 형이 우리 생각을 오해했네. 우린 투자를 원해. 유에스솔라파워 주식을 원한다고.”
최진혁은 두 동생의 입을 막았다.
“그만하자. 지분으로 엉키는 거 싫다고 했지? 이건 ST솔루션 독자 사업이다. 다른 사람 손 타는 일 없을 거야.”
“아니, 형, 우리 말 끝까지 들어 봐. 우린 우리 지분의 의결권 전부 형에게 일임한다니까. 경영에 관해서는 절대 입도 뻥긋하지 않고 그쪽으로는 쳐다보지도 않을 거야. 이건 정말 순수한 투자 개념이라고 생각해 줘.”
매달리는 표정을 보니 절박하리만큼 거짓이 없어 보였다.
단순 투자라…….
도대체 이놈들이 무슨 정보를 얻었기에 이렇게 들러붙는지 최진혁으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 * *
“그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지분 의결권까지 넘긴다고 했으니 생각 좀 해 보마, 하고 끝냈어.”
강 회장은 웃음이 터지려는 걸 참으며 말했다.
“똑똑한 따님 덕분에 동생들이 찾아와서 굽실거렸군요. 따님이 원하는 바였으니 그러려니 하십시오.”
“뭐, 석경이?”
“네.”
“무슨 말이야, 그게?”
강 회장은 최석경이 최 회장 앞에서 했던 말과 사촌들이 모인 자리에서 슬쩍 흘린 말을 장인에게 설명했다.
핵심 키워드는 하나다.
“미 증시에 상장한다고?”
“네. 그러니 동생분들이 의결권도 필요 없는 주식을 원하는 겁니다. 최소 서너 배는 벌 테니까요. 그것도 3년 내에 말이죠.”
최진혁도 놀랐다. 그 역시 상장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 아닙니까? 회사 경영권에 방해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상장해 추가 자금을 확보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요?”
“자네 말대로 서너 배의 이익이 확실하다면 왜 최성 그룹에서는 이걸 넘기겠다는 거지? 3년만 쥐고 있으면 타틸 사와의 계약도 끝나서 자유로운데?”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 딜은 대표이사가 추진하는 겁니다. 3년 뒤라면 어찌 될지 모르죠. 병실에 누워 있는 강 회장이 벌떡 일어날지도 모르고, 자식들이 그룹 경영권을 장악할지도 모르죠. 지금이 아니면 그 양반이 생각하는 구조 조정은 불가능합니다.”
최진혁의 자세가 달라졌다.
생각지도 못한 카드 한 장이 손에 들어온 셈이다.
“그럼 3년 뒤면 투자금을 전부 회수할 수 있다는 말인데…….”
“솔직히 이 카드는 석경이가 정말 잘 던진 겁니다. 3년 뒤 미국 증시 상황을 예측할 수 없으니 만능까지는 아니더라도 여러 기능을 갖춘 카드죠.”
“그 여러 기능이 뭔지 들어 볼까?”
“인수 자금은 해결됐죠? 그러니 최성 그룹이 원하는 대로 가격 맞춰 주실 수 있으니 협상을 서두를 수 있습니다.”
“그건 최성 그룹을 위한 워딩 같은데…… 우리 사위 월급 주는 회사니까 내가 좀 양보하지. 그다음은?”
“회장님은 어떻게 하실지 모르겠지만, 증여를 생각하면 개인 자금을 내실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 증여의 대상이 제 아내가 된다면 금상첨화겠지요.”
“그건 좀 애매하긴 하다. 만약 아버님이 다른 생각 하시면 일이 틀어지는데…….”
“그 애매한 부분은 좀 있다 한 번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동생분들에게 투자받으십시오. 최대한 많이.”
“적대적인 관계 진영에 돈을 불려 주겠다는 건가?”
“이번에 최성과 ST의 딜이 성사되면 각 계열사의 이해득실을 따져 단기적이지만 주가가 출렁거리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지.”
“그럼 주가 떨어진 계열사의 주식을 은밀히 매집할 생각도 있으시죠?”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최대한 모을 생각이다.”
“동생분들 역시 그런 생각일 겁니다. 그런데 만약 솔라파워 인수 때 투자받으면 동생분들 자금이 말라 버립니다. 주가가 떨어진 걸 구경만 해야 하지요.”
“3년간 꼼짝도 못 하게 만든다?”
강 회장이 씩 웃었다.
“꼭 3년일 필요가 있겠습니까?”
너무 단순해서 망각하고 있던 것을 떠올렸을 때도 사고의 전환이 일어난다.
지금 최진혁이 딱 그런 상태였다.
IPO는 경영진이 결정할 문제다. 유에스솔라파워를 ST가 인수하면 최고 경영자는 최진혁이다.
3년 뒤 타틸이 빠지고 나서 곧바로 상장할 것인지, 상장하지 않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건 최진혁의 몫이다.
동생의 돈을 계속 묶어 두고 싶다면 상장을 미루면 된다.
“볼모로 잡아 두는 좋은 방법이 생겼구만.”
“그뿐이겠습니까? 회장님 자금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적어도 동생분들에게 회장님의 비자금이 흘러들어 가는 일은 막을 수 있습니다.”
“우리 집안 비자금을 싹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지도 모르겠군.”
“더 재미있는 일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더 재미있는 일?”
“비자금은 차명일 가능성이 높겠죠? 그 차명 계좌가 어떻게 들어오는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겁니다.”
최진혁은 사위의 뜻을 알아챘다.
“설마? 아버지야 모르겠지만, 동생들이 설마 차명 그대로 돈을 던질까?”
강 회장은 두 동생이 바로 지금 큰 실수를 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평상시에 실수한다면 멍청한 일이지만, 궁지에 몰렸을 때는 조급함이라는 함정이 기다리고 있다.
그 함정을 피할 때 필요한 게 현명한 평정심인데, 강 회장이 지켜본 바로는 그들이 그 정도까지 현명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최성과의 협상을 빨리 끝내야 합니다. 서두르지 않으면 기회조차 없다는 걸 알려 주면 냉철한 판단을 못 하게 되죠.”
최진혁은 또 한번 혀를 내둘렀다.
동생들의 실수를 유도하려면 최성 그룹과의 협상을 빨리 끝내야 하고, 서두르는 쪽이 협상에서 많은 양보를 해야 한다.
결국 동생들의 자금을 묶어 버리기 위해서는 최성 그룹의 요구를 대거 수용하는 수밖에 없다.
사위 놈은 지금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 한다.
생글생글 웃는 사위의 얼굴을 한 대 치고 싶을 만큼 얄미웠지만, 사위가 이끄는 방향이 틀리지 않는다는 것도 인정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