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irman Kang the newcomer RAW novel - Chapter 87
제신입사원 강 회장 87화화
할아버지 쌈짓돈(1)
“일단은 돌려보냈습니다. 충격이 커 보이던데…… 괜찮을까요?”
“그 범우케미칼 사장은? 장 부장 말대로 다 털어놓겠대?”
“탈세가 아니라 횡령으로 기소한다고 하니 펄쩍 뛰더군요. 이제 최성 그룹이라는 울타리가 사라졌다는 걸 안 이상 별수 있겠습니까? 어디까지 털어놔야 하는지 몰라서 고민하는 것뿐입니다.”
장기준 부장 검사는 자신 있는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전무님, 어디까지 갈 생각이십니까? 그래도 최성 그룹의 왕자 아닙니까?”
장 부장의 걱정은 이상재의 한마디에 사라졌다.
“강동훈은 탈락이야. 부자로 살지는 몰라도 경영에서는 빠질 거야.”
눈치 빠른 장 부장이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경영에서 탈락하는 계기가 바로 지금 이것 때문에……?”
“그렇지. 장 부장이 강동훈을 아웃시키는 거지. 이번 일의 주연은 바로 당신이야. 흐흐.”
장기준 부장은 이상재의 웃음소리가 부담이었다.
“정말 괜찮을까요? 이러다 나중에 내가 최성 그룹에게 보복이라도 당한다면…….”
“장 부장, 강동훈을 검찰청까지 데리고 왔을 때까지 최성 그룹 그 누구라도 전화 받은 적 있나?”
“네? 아…… 없습니다.”
“그치? 가족이라고 해야 형이랑 모친뿐인데, 모르긴 몰라도 둘 다 장 부장에게 감사할걸? 하나 처리해 줬으니.”
“모친까지요?”
“응. 잘 생각해 봐. 회장님 병원에 누워 계신 지 몇 년 지났어. 그런데도 후계가 없다고. 물론 상속세 때문에 쉬쉬하긴 하지만 보통은 누구 하나 전면에 내세워 그룹 회장 노릇 하거든.”
“다들 견제하느라…….”
“그래. 그러니까 마음껏 해도 돼. 끝까지 가는 거라고.”
끝까지의 의미가 어디까지인지 짐작하지 못한 장 부장이 눈을 깜빡거렸다.
“기소해. 장 부장은 물론이고 검찰도 손해 보는 장사 아냐.”
장 부장의 머릿속에 순식간에 그림이 그려졌다.
재벌 3세의 기소, 탈세, 횡령 그리고 언론의 헤드라인, 그 중심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까지.
“정말 뒤탈 없을까요?”
“최성은 개인과 그룹을 확실하게 구분할 거다. 그럼 변호사 싸움이겠지. 어차피 집유로 나올 거잖아. 변호사 비용이야 집안 돈으로 하겠지. 처가도 돈 많으니. 그리고 불구속 기소 아냐?”
“그렇겠죠. 구속 기소의 명분이 약하니까요.”
“딱 그 정도야. 혹시라도 이 일로 장 부장이 타격 입으면 내가 보상해. 옷 벗고 변호사 개업해. 첫해에 100억짜리 계약서 쓴다.”
대검 출신이나 가능한 꿈의 숫자. 첫해 100억.
이상재는 단 한 마디라도 허튼소리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안다. 100억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장기준 부장은 차라리 이번 일로 옷 벗고 나오고 싶을 정도였다.
“뭐…… 소신껏 검사의 본분을 다해야겠죠?”
두 사람은 잔을 부딪쳤다.
* * *
“이제 빼먹을 거 다 빼먹었으니 발길 끊은 줄 알았다.”
조금은 심통 난 얼굴의 최기석 회장을 보자 최석경이 쪼르르 달려가 팔짱을 끼며 애교를 떨었다.
그렇게 한참 노인네 심통이 풀릴 때까지 맞장구쳐 주고 나서야 호출한 이유를 말했다.
“이거…… 무슨 짓인지 아나?”
최 회장은 1면을 장식한 강동훈의 기소 사건을 가리키며 물었다.
순간 강 회장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무리 연 끊어진 관계라 해도 자식 아닌가? 자식의 허물은 부모의 허물이라 했는데, 이번 일은 아무리 재벌 3세라 해도 변명하기 어려운 부끄러운 짓이다.
잘나가는 계열사에 빨대 회사 꽂아 두는 거야 누구나 눈감아 준다. 그리고 흠잡히지 않으려 조심, 또 조심한다. 보통은 발생한 이익에서 배당금을 챙기거나 자금을 빌려주고 고금리 이자나 챙겨 먹는 게 정상이다.
그런 회사에 자금이 구멍 나고 세금도 못 낼 만큼 돈을 빼 쓰는 건 정신 나간 짓이다.
강 회장의 얼굴이 붉어진 것은 빨대 꽂은 회사 때문이 아니라 도 넘은 짓을 한 아들의 정신머리 때문이다.
“저도 뉴스 보고 알았습니다.”
이 말 또한 사실이다.
이상재가 세 회사의 합병을 위해 이런 일을 꾸밀 줄 몰랐다. 자신에게 꼭 보고할 필요도 없는 위치라 이 일로 따질 수도 없었다.
“그래? 그럼 이번 일은 그 실세라는 그 친구 짓인가?”
“냄새 맡고 수사를 시작한 건 검찰의 독단적인 행동일 수 있지만 기소까지 간다면 이상재 전무의 동의가 필요했겠지요.”
“그렇지? 강 회장 그 친구가 검찰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그룹 허락 없이는 절대 기소 못 해.”
그런데 이 영감이 갑자기 왜 이 일을 꺼내지?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가? 그 둘째는 완전히 그룹에서 아웃인가?”
단지 궁금해서 집요하게 캐묻는 건 아닐 것이다. 이 영감은 분명 더 많은 정보를 쥐고 있다.
“글쎄요. 워낙 윗선에서 진행하는 거라 제가 가타부타 의견 내기도 곤란해서 그냥 지켜보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 일은 최성 그룹 계열사 세 개를 하나로 묶는 작업 때문에 시작한 일이니까요.”
“그 방산 업체?”
“네. 이번 합병으로 최성 그룹은 규모나 기술 면에서 국내 최고의 자리를 차지했으니까요.”
강 회장은 계속 최 회장의 눈치를 살폈다. 그가 아는 정보를 다 털어놓기를 기다리면서.
“회사 잘되는 거야 일하는 놈들이 알아서 할 테고, 중요한 건 그 둘째 아들이다. 그놈이 이번 일로 완전히 물러나느냐, 아니냐가 더 중요한 거야.”
강 회장은 최 회장이 알고자 하는 핵심을 말했다. 둘째의 거취는 곁가지에 불과하다.
“이상재 전무는 믿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룹에 해가 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을 충신 중의 충신이지요. 아마 ST 그룹에는 그런 분이 안 계실 겁니다.”
“충신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최 회장은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지금이 왕조 시대냐? 충신은 얼어 죽을…… 지가 모시던 분의 아들내미를 검찰에 냅다 꼰지른 게 무슨 충신이냐?”
꼰질렀다…….
“이 전무가 검찰에 직접 제보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내가 이리저리 확인해 보니까 이미 검찰이랑 입 맞추고 블루스까지 췄다더라.”
흥분한 최 회장이 주절주절 늘어놓기 시작했다.
“탈루한 세금, 빼먹은 회삿돈, 추징금에 벌금까지 싹 개인 돈으로 다 내놓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는 조건으로 집행 유예 제안했어. 물론 항소 없이. 지금 그놈은 그 돈을 한 푼이라도 깎아 보려고 발버둥치고 있고.”
최 회장은 검찰의 진행 상황을 상세히 안다. 평소 같으면 남의 집 불난 거라 구경이나 하며 끝냈을 일인데 손녀사위 때문에 줄까지 동원해서 내막을 다 파악했다.
“그 정도면 적절한 것 아닙니까? 다들 그렇게 하잖습니까? 물론 추징금이나 벌금은 미적거리며 버티다가 유야무야되고요.”
“내 말은 충신이라는 놈이 핏줄을 엿 먹일 수 있냐는 거다. 그놈은 충신이 아니라 역적이라고. 넌 그런 놈을 철석같이 믿고 있고. 한심한 놈…….”
강 회장은 괜히 역정 내는 최 회장을 보며 웃었다.
“회장님 말씀 들어 봐도 충신 맞는데요?”
“뭐라?”
“원래 충신은 나라를 최우선으로 꼽지, 왕이나 왕자는 안중에 없잖습니까? 왕의 눈치나 보며 아부하는 놈들을 보통 간신이라고 하지요. 안 그렇습니까?”
“나라?”
“네.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상재 전무는 그룹에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요. 물론 회장님을 건재했을 때야 나쁜 짓 많이 거들었죠. 하지만 사람에 대한 충성은 그걸로 끝입니다. 대를 잇지는 않아요. 회장님 부재 상황에서는 당연히 그룹만 바라봅니다. 그러니 충신 아니겠습니까?”
손녀사위의 말에도 최 회장은 여전히 못 미더운 표정이었다.
“그놈 다른 꿍꿍이 있을 수도 있어. 어정쩡한 집안 알력으로 생긴 공백, 그거 무서운 거다. 그 공백을 틈타 전권을 쥔 이상재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 검은 머리 짐승은 쉽게 믿는 거 아니다.”
가만히 귀기울이며 듣던 최석경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큰 변화가 있어야 흐름이 바뀌죠. 그럼 당연히 이상재 전무라는 분이 무슨 엉뚱한 짓을 해야죠. 안 그래요?”
“뭐라?”
“그럼 최성 그룹이 대를 이어 아들에게 고스란히 들어가기를 바라시는 거예요?”
최석경은 그룹 회장인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최성 그룹이 아들이 아닌 다른 사람, 그러니까 전문 경영인 체제로 접어든다면 좋은 것 아니에요? 그래야 오빠도 그 전문 경영인 체제에 들어갈 수 있고…… 시스템에 깊숙이 침투해야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죠. 지금의 이상재 전무라는 사람처럼 말이죠. 제가 잘못 생각하는 건가요?”
최기석 회장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손녀의 생각이 기특하기도 하다. 하지만 부족한 것도 있다.
“석경아, 기업은 공적 영역이 아니라 사적 영역이야. 민주주의가 아니라 봉건제라는 뜻이지. 그룹 회장은 현자를 뽑는 게 아니야. 만약 이상재가 전문 경영인의 수준을 넘어 역모에 성공해 회장 자리까지 차지한다면 다음 회장은 그 친구 아들이 될 거다. 네 신랑에게 그 자리를 주지 않아.”
인간을 믿지 않는…… 아니 전적으로 믿을 수 있는 인간을 만나지 못한 최 회장다운 말이다.
강 회장은 웃으며 말했다.
“시스템에 들어가야 한다는 석경이 말도 맞고, 인간은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회장님 말씀도 맞습니다.”
최 회장이 비웃듯 말했다.
“양비론처럼 쓸모없는 게 양시론이다. 그래서 어쩌자는 게냐?”
“시스템에 들어가되 그 시스템을 유지하도록 해야죠. 적어도 제가 이상재 전무의 자리를 꿰찰 때까지는요.”
“그럼 너도 시스템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데?”
무슨 뜻인지 안다. 결국 경영자로 만족하느냐는 물음이다.
“저부터는 다시 봉건제로 돌아가야죠. 안 그러면 제 아내가 절 가만두겠습니까?”
최 회장은 그제야 마음에 드는 말을 들은 듯 얼굴이 밝아졌다.
“자신은 있고?”
“여러 겹으로 안전망을 치겠습니다. 이상재 전무는 제게, 전 우리 석경이 자식에게 최성을 물려줄 수 있도록 말이죠.”
“그룹의 주인은 결국 대주주다. 복안은 있느냐?”
“있습니다만, 아주 조금 부족한 부분도 있습니다.”
“복안이 부족한 게냐, 아니면 그 복안을 실행할 자금이 부족한 게냐?”
“당연히 자금입니다. 회장님께서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최 회장은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왜? 피 한 방을 안 섞인 손녀사위 놈에게 왜 돈을 줘? 넌 명절 때 절값 받는 것 말고는 내 돈 못 가진다.”
“피 한 방을 안 섞인 저 말고요. 핏줄 이어받은 손녀에게 좀 주시죠.”
“그 돈으로 주식 확보하려고?”
“그렇습니다.”
“그럼 굳이 석경이를 거칠 필요 있겠어? 그냥 내가 사마. 주식 사서 나중에 우리 손녀에게 주면 되지. 그 주식 시장에 나와 있는 주식은 아니겠지?”
최 회장의 눈이 반짝였지만 강 회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건 안 됩니다.”
“뭐? 왜 난 안 되는 거냐?”
“회장님이 확보하는 지분은 제 계획을 벗어나는 변수일 뿐입니다. 차라리 조금 부족한 게 낫지, 컨트롤 불가능한 변수는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변수라고?”
“최성 그룹 이상재 전무보다 더 믿기 힘들고 무서운 분입니다. 설마 믿으라고 말씀하지는 않으시겠지요?”
최 회장은 웃으며 바라보는 손녀사위의 뒤통수라도 한 대 갈기고 싶은 심정이었다.
고약한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