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mpion from Sapa RAW novel - chapter 11
고작 산적이 상대지만 정면 대결은 피할 생각이었다.
스무 명이 사방에서 모래를 뿌리고 그물을 던져 대면 자칫 역으로 당할 우려가 있고, 놈들이 헛간에 남은 일행을 인질로 잡을 가능성도 있었다.
‘처음 한두 놈을 충격적으로 죽여 버리면 알아서 혼비백산하겠지. 하지만 만약이란 게 있으니 최대한 안전하게 간다.’
산적 따위가 점혈을 풀 수는 없을 테니, 은밀하게 접근해 한 놈씩 수혈을 짚어 제압할 생각이었다.
‘소리 없이 잠입해서 모조리 재운다.’
컹! 컹! 컹!
“뭐야, 씨발.”
갑자기 들려온 소음에 고개를 돌려보니 웬 개 한 마리가 미친 듯이 짖고 있었다. 산채에 번견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아마 개를 집 안에 들여놓았던 모양이었다.
“이런 미친놈들, 무슨 개 새끼를 집 안에서 키워?”
야심 차게 준비한 잠입 작전이 시작부터 빠그라졌다.
어처구니없이 발각되었지만 불평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개 짖는 소리를 들은 산적들이 우르르 달려오고, 몇몇은 벌써 무기를 들고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먼저 다가오는 놈부터 족친다.”
일단 잡고 있던 놈부터 수혈을 짚어 재웠다.
동료가 정신을 잃는 모습을 본 다른 산적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끌고 온 놈들이 탈출했다! 전부 나와! 빨리……. 켁!”
시끄럽게 소리치는 놈에게 쇄도해 일수에 울대를 틀어잡았다.
덩치가 큰 놈이지만 내공을 아낌없이 사용해 한 손으로 들어 올렸다. 목을 잡힌 산적이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려 비명을 질렀다.
“저승에 가거든 염라대왕에게 자랑하거라. 일각노괴의 흡성대법에 맨 처음 당했다고 말이야. 앞으로 너 같은 손님 많이 받을 테니 미리 준비하라는 말도 전하고, 하하하!”
“켁, 이 자식 힘이……! 손을 뿌리칠 수가 없어!”
흡성대법의 구결대로 진기를 운용하자 노궁혈(勞宮穴, 손바닥 가운데 혈도)에서 강한 흡입력이 발생했다.
“하하하하!”
“아악! 살려 줘!”
일생의 한이었던 내공. 일각노괴의 약점이 부족한 내공이라는 것도 이제는 옛말이다.
“오늘부터 닥치는 대로 내공을 흡수해 주마! 천하제일의 공력을 쌓을 때까지! 하하하하!”
“살려 줘, 살려 달라고!”
“하하하하, 하하하…… 하?”
무언가 이상했다.
분명 노궁혈에서는 음압(陰壓)이 계속 발생하고 있는데, 혈도를 타고 넘어오는 기운이 없었다.
진작에 선천진기를 빨리고 죽었어야 할 산적은 여전히 팔딱거리고, 내공을 물 쓰듯 써 버린 탓에 산적을 들고 있는 내 팔만 아팠다.
“뭐야, 이거 왜 안 돼?”
순간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설마…… 선천진기는 흡수할 수 없나?”
뜸 들이는 사이 맹견 두 마리가 달려들었다. 다리를 물기 직전 급하게 선풍각을 휘둘러 대가리를 후려 찼다.
깨갱, 깽!
발길질에 얻어맞은 개들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나가떨어졌다.
흡성대법이 제대로 발현되지 않아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지금은 고민할 때가 아니라 움직여야 할 때였다.
“저놈이 개를 팬다!”
“잡아!”
산적들이 코앞까지 왔을 때 답허성실을 펼쳐 건물 위로 훌쩍 올라섰다.
무기를 들고 쫓아오던 산적들은 닭 쫓던 개처럼 허망하게 멈춰 섰다.
“지붕 위를 쳐다보는 모습이 참으로 개 같구나. 하면 개 패듯이 패 주는 게 인지상정이렷다.”
지붕 위를 달려 넓은 공터에 착지했다.
산적들이 허둥지둥 쫓아오는 동안 단검을 허리에 꽂아 넣고, 미리 봐 두었던 몽둥이를 집어 들었다.
빠악!
맨 처음 도착한 산적에게 몽둥이를 휘두르자, 놈이 눈을 까뒤집고 나가떨어졌다.
“오옷, 이 손맛은 뭐지?”
예상을 뛰어넘는 짜릿한 타격감. 생각해 보니 몽둥이질을 하는 게 거의 반년 만이었다.
퍽! 퍽! 퍽! 퍽! 퍽!
달려드는 산적이 차례로 나가떨어졌다. 신이 나서 몽둥이가 점점 빨라졌다. 만병지왕은 검이라지만, 역시 손맛은 몽둥이만 한 게 없다.
태허도룡검의 묘리가 담긴 몽둥이찜질. 촌뜨기 산적을 때려눕히기에는 차고 넘치는 곤법(棍法)이었다.
“내가 이 맛을 잊고 살았구나! 타격감은 황상(皇上)이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거늘!”
산적들도 바보가 아닌지라, 계속 얻어맞으며 달려들지는 않았다.
“멍청한 놈들아! 무턱대고 접근하지 마!”
“포위해! 모래 뿌리고 그물 던져!”
벌써 산적 열 명이 바닥에 쓰러졌지만, 아직도 절반이 남았다. 심지어 등 뒤는 목책이고, 앞은 포위됐다. 졸지에 정면 대결을 하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상황이 좋지 않군. 나중에 두고 보자!”
악당 같은 한마디를 외치며 답허성실을 펼쳤다.
공중으로 솟구쳐 목책 너머로 몸을 숨기자, 놈들이 던진 그물과 모래는 허무하게 목책을 때렸다.
“놈이 도망쳤다!”
“쫓아!”
“아냐, 쫓지 마! 일단 부상자를 수습해!”
산적들은 내가 도망치자 혼란에 빠졌다.
목책 반대편에서 귀를 기울여 보니, 놈들은 결단을 내리지 못해 다투고 있었다.
“목책 밖은 너무 어두워. 그 못생긴 놈이 숨어서 습격하면 우리가 불리해.”
“하지만 이대로 놓칠 순 없어! 우리가 사제를 납치한 게 도시에 알려지면 무슨 꼴을 당할지 알잖아!”
‘못생긴 놈? 이 씨팔 놈들이.’
나는 산적들이 쑥덕거리는 사이 목책을 빙 돌아 정문을 통해 산채 내부로 다시 들어갔다.
망루에 오르기 전 입구 근처에 있던 경계용 활을 챙겼다.
“간 줄 알았지?”
화살 두 대를 연달아 날렸다.
“악! 내 다리!”
“뭐야, 어디야! 끄악!”
산적 두 명이 허벅지에 화살을 맞고 고꾸라졌다. 뒤늦게 나를 발견한 산적들이 다시 그물과 창을 들고 우르르 달려왔다.
“놈이 망루 위에 있다!”
“도망친 게 아니었어!?”
“하하하! 속임수다, 이 병신들아!”
화살을 날릴 때마다 산적이 다리를 붙잡고 쓰러졌다. 놈들은 방패가 없으니 날아오는 화살에 무방비로 얻어맞았다.
“수, 숙여! 흩어져!”
“일단 피해라!”
산적들이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각자 건물 뒤로 몸을 숨겼다. 이제 멀쩡한 산적은 다섯 명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다른 변수가 없다고 판단하고 망루에서 내려왔다.
“다섯 명 정도는 뭐.”
내공이 부족한들 천하의 능태오가 무지렁이 다섯 명을 상대 못 할까?
몽둥이를 붕붕 돌리며 남은 놈들을 향해 걸었다. 내가 활을 꺾어 버리자 숨어 있던 산적들도 입술을 앙다물고 나를 향해 다가왔다.
“한판 붙자. 매질이라도 해야 속이 좀 풀릴 것 같거든.”
기분이 좋지 않았다. 흡성대법을 한 번에 성공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사람을 때리면 좀 나아진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 그냥 어릴 때부터 그랬다.
-그러지 좀 마라. 사람 때리면 떡이 나오냐?
내 난폭한 성정을 염려하던 사부의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다.
사부가 하는 말을 대체로 잘 들었던 나지만, 이건 고칠 수 없는 타고난 기질이었다.
가만히 눈을 감으니, 사부의 얼굴이 떠오른다.
“사부, 미안해요. 다시는 이러지 않기로 했는데…….”
눈을 뜨고, 몽둥이가 풍차처럼 회전했다.
“울어라, 태허도룡검!”
그날 밤, 우는 것은 검이 아니라 몽둥이였다.
사파에서 온 용사
내공이 없는 세계
산채를 초토화하고, 잠들어 있는 일행은 헛간에서 꺼내 공터로 옮겼다.
탁, 타탁.
모닥불이 타오르며 듣기 좋은 소리를 냈다. 한참 동안 말없이 불꽃만 바라보았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흡성대법이 실패한 원인을 분석해 봤지만, 다양한 가정이 동시에 떠올라서 생각을 정리하기 어려웠다.
‘애초에 선천진기(先天眞氣)는 흡수할 수 없는 건가?’
내공을 따로 수련하지 않아도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가진 기운이 있다.
이걸 선천진기라고 부르는데, 내가 포박까지 당해 가며 산적 본거지에 온 이유도 놈들의 선천진기를 흡수하기 위해서였다.
‘강호의 소문은 믿을 게 못 된다더니…….’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사람이 흡성대법에 당하면 목내이(木乃伊, 미라)로 변해 죽는다고 했다.
그 말을 근거로 선천진기도 흡수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인데, 보기 좋게 실패하고 말았다.
산적들의 혈도를 제압해 놓고 밤새워 온갖 실험을 했지만, 선천진기는 움직이지 않았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에게 해 볼 수 있는 건 다 해 봤다. 다른 대상이 필요하겠군……. 설마 무공을 익힌 사람에게도 안 통하는 건 아니겠지?’
흡성대법을 성공시키지 못하면 오로지 옥심귀일공으로 내공을 쌓아야 한다.
곤륜의 정순한 심법으로 내공을 쌓는 건 속도에 한계가 있다. 정공법으로 과거의 경지를 되찾으려면 적어도 오십 년은 걸릴 것이다.
‘오십 년이 지나면 손봐 줘야 할 놈들은 전부 늙어 죽고 난 뒤일 것이다.’
한숨이 푹푹 나왔다.
“으음……. 어라? 테온……?”
“정신이 드냐?”
잠에서 깨어난 아우레오가 눈을 비비며 상체를 일으켰다. 그것이 신호가 된 것처럼 토마스와 에릭도 부스스 일어났다.
“여긴 어디죠? 우린 분명 산적에게 납치를…….”
“산적은 내가 처리했다. 잠 깼으면 출발할 준비 해.”
“예? 그게 무슨…….”
아우레오는 잠시 혼란스러워하더니, 금방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무언가 짐작하는 바가 있어 보였다.
반면, 용병들은 호들갑을 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산적들을 처리했다고? 어떻게? 놈들을 따돌린 거라면 이렇게 퍼질러져 있을 때가 아니야.”